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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기사옮김) 김근상 주교 인터뷰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5231741395&code=900315

[믿음의 새길을 찾는다]“한국사회·종교 내 조정자 역할 할 것”
입력: 2008년 05월 23일 17:41:39
ㆍ대한성공회 신임 서울교구장 김근상 주교

22일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대성당에서 김근상 신임 주교(56)의
서품식이 열렸다. 서품식은 박경조 주교의 집전과 대한성공회 초대 한인 주교인
이천환 주교의 설교로 진행됐다.
김 주교는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박경조 주교의 후임으로
성공회 서울교구 제5대 교구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서울교구장은 대내외적으로 대한성공회를 대표하는 자리다.
주교 서품식을 하루 앞둔 21일 성공회 서울교구 성당에서 김 주교를 만났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22일 열린 서품식에서 서울교구 주교로 서품된
김근상 주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무슨 일이든 저지르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정근기자>

다양한 색깔로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공동체

“못생긴 나무가 숲을 지키듯 성공회 사제들 가운데서도 제일 못난 나에게
성공회를 지키라고 소임을 맡긴 것 같습니다.
동료 사제, 신도들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똑부러지게 일을 하겠습니다.”

김 주교는 권위를 중시하는 다른 성직자들과 달리 말과 행동이 활달하고 거침없었다.
특히 뛰어난 언변으로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을 따라잡기가 숨가빴다.

-앞으로 성공회를 어떻게 이끌 생각입니까.

“성공회가 500여년 동안 이어온 가장 큰 미덕은 어떤 사안이 생겼을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주적 절차를 거쳐 합의점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성공회는 구성원을 한 방향으로 끌고가는 강압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자발적인 신앙에 바탕을 둔 유연한 조직입니다.
극우부터 극좌까지 함께 모여 있으면서도 상대에게 자기것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성공회의 매력입니다. 이런 정신을 살려 무지개처럼 여러 색깔이 어우러지는
아름답고 활력있는 교회를 만들겠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와 종교에서 성공회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입니까.

“성공회는 구교(가톨릭)와 신교(개신교)의 중간지대 같은 교회입니다.
구교와 신교, 개신교의 진보 교단과 보수 교단, 교회와 사회 등에서 일어나는
온갖 갈등과 대립들을 조정해 우리 사회가 일치와 화합, 상생을 이루게 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교회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미움과 갈등을 씻고
함께 어울려 공통의 희망과 미래를 만드는 데 조정자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열린 교회’로서 성공회의 특성은 교구장 선출과정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성공회는 교구장을 뽑을 때 입후보나 정견발표도 없이 ‘당선자’가 나올 때까지
하루 최대 20번까지 ‘무한 반복 투표’의 절차를 거친다.
따라서 평소의 삶과 능력 자체가 선거운동인 셈이다.
김 주교는 “비교적 짧은 과정”인 6차 투표 끝에 교구장으로 선출됐다.

3대째 성공회 사제의 길 걷는 ‘괴짜 주교님’

김 주교는 외할아버지(이원창)와 아버지(김태순)에 이어 3대째 성공회 사제의
길을 걷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1926년 서울 대성당 건립 후 첫 주임사제를 지냈다.
평양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남북이 분단됐지만 “교회를 지키겠다”면서 북쪽에 남았다가
순교했다. 아버지도 서울대성당 신부를 지냈다.
아버지는 늘 “설교는 유언처럼 간절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가난이 지긋지긋해서” 사제가 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사제직에서 은퇴했을 때는 어머니가 궂은일을 해가며 생활을 꾸렸다.
서강대 화학과 3학년 때 진로를 바꿔 가톨릭대 신학부에 들어갔다.
그가 처음 신학대에 진학하겠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어떤 여자를 데려다
나처럼 고생시키려고 하느냐”면서 다림질하던 다리미를 집어던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성공회 성미가엘신학원(현 성공회대)을 졸업하고 1980년 사제서품을
받으면서어머니는 아버지, 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이어지는 성공회 사제의 삶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다.


김 주교는 대학시절 이른바 운동권에서 활동했고, 연극 기획과 연출,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요즘도 노래방을 찾아 칸소네 ‘리멘시타’ 등을 부르며 분위기를 이끈다.
그러면서도 개성과 소신이 뚜렷해 교회 안에서 일찍부터 ‘괴짜 사제’로 소문이 나 있다.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독립한 ‘영국 국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1885년부터 한국 선교를 시작해 한때 ‘장(장로교)·감(감리교)·성(성공회)’ 3대 교단으로
불릴 정도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재는 신자 5만여명, 전체 사제 수 230명으로 교세가 그리 크지 않지만
‘작지만 강한 교회’로 기독교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 지역의 문화와 전통 속에서 교회를 만들고 예배를 하는 토착화는
성공회의 오랜 전통입니다.
성공회 선교사들은 지역사회에서 모아진 교회의 재산으로 교세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고스란히 내놓고 떠나는 자비량운동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앞으로도 교단의 외형이나 신자 수에 연연하기보다 교회가 꼭 해야 할 일을 찾아
해낼 것입니다.”


김 주교는 김성수 주교(성공회대 총장)와 박경조 주교 등 서울교구장으로서 성공회를
진보적인 교회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한 ‘스타 사제’의 계보를 잇고 있다.
서울교구 교무국장 등을 맡아 김성수 주교를 보필했으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통일위원장·부회장, ‘온겨레 손잡기 운동본부’
상임대표 등을 맡아 교회연합·일치 운동과 북한돕기에도 앞장섰다.
최근까지 구리시에 있는 성공회 장애인종합복지관장을 맡았다.
김성수 주교는 서품식을 앞두고 그에게 주교 반지와 십자가 목걸이를 전해줄 정도로
김 주교에 대한 애정과 기대감이 남다르다고 한다.

교회가 권력과 결탁하면 부패

“나는 북쪽 사람들이 ‘민족’ 운운하며 당연한 듯 도움을 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동포애 때문이 아니라,
아프리카에 갔을 때 느끼는 것과 똑같은 인류에,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에
북한을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살기 위해 북한을 돕는 것이기도 하지요.
옳다 그르다 따지기보다 우선 배고픔을 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교회 일치와 연합운동은 얼마나 진척되고 있나요.

“아직은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더 많지요.
조금 늦더라도 기도하고, 기다리고, 설득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뻔히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이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끊임없이 함께 일을 하면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요즘 한국사회가 광우병 파동과 대운하 문제 등으로 시끄럽습니다.

“생명가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쇠고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 선물 주듯 처리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지요.
어른들이 책임을 지지 않으니까 젊은이들이 촛불을 드는 것이고,
정치인들이 대운하를 막지 않으니까 종교인들이 강을 따라 걸으며 생명가치를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단체들은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대규모 기도회를 열기도 했지요.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낍니다. 세상 권력과 결탁할 때
교회는 빠르게 부패합니다.
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대제가 4세기 초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언한 것은
교회에는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종교가 권력이 아니라 낮은 곳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김 주교는 성공회가 광복 후의 기아해방운동, 1980년대 민주화운동, 외환위기 당시의
노숙자 나눔의 집, 최근의 소외계층과 북한 돕기운동 등 우리 사회의 절실한
고민과 어려움을 외면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남을 위해 일하고, 그 일조차 잊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그렇게 가르치다보니
성공회가 하는 일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요.
그래선지 다른 교단에 비해 관념적이고 고급스럽고, ‘젠틀맨’ 같다는 인상만
강한 것 같아요.”

그는 “후배 사제들을 라오스·캄보디아·버마 등 고통의 땅에 보내 굶주린 사람을 도우면서
사제가 세상을 위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끼도록 하겠다”면서
“진부하고 평범하기보다는 더 많은 도전의식과 호기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은 내 곁에 없었으면 합니다.
사고를 치든, 실수를 하든, 무슨 일이든 저지르는 것이 젊음이고 진취성입니다.”

▲ 김근상 신부는

1952년 경기 평택에서 났다.
성공회 성미가엘 신학원을 졸업하고
80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영등포교회, 캐나다 토론토교회,
서울대성당 등을 거쳤다.
서울교구 교무국장과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NCCK) 통일위원장·부회장,
‘온겨레 손잡기 운동본부’ 상임대표,
구리시장애인종합복지관장 등을 지냈다.
‘세계성공회 평화대회, 서울 2007’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김석종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