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3일 (연중22주간 목 /녹) 성찬례 성서말씀

골로 1:9-14

9 우리는 그 소식을 들은 날부터 여러분을 위하여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해 왔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와 판단력으로 하느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게 되기를 빌어왔습니다.
10 또 우리는 여러분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생활을 함으로써 언제나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온갖 좋은 일을 행하여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더욱 잘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11 또 우리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권능으로부터 오는 온갖 힘을 받아 강하여져서 모든 일을 참고 견딜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12 아버지께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는 성도들이 광명의 나라에서 받을 상속에 참여할 자격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14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

시편 98:1-5

1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놀라운 기적들을 이루셨다. ◯ 그의 오른손과 거룩하신 팔로 승리하셨다.
2 주께서 그 거두신 승리를 알려 주시고 ◯ 당신의 정의를 만백성 앞에 드러내셨다.
3 이스라엘 가문에 베푸신다던: 그 사랑과 그 진실을 잊지 않으셨으므로 ◯ 땅 끝까지 모든 사람이 우리 하느님의 승리를 보게 되었다.
4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을 올려라. ◯ 기뻐하며 목청껏 노래하여라.
5 거문고를 뜯으며 주님께 노래 불러라. ◯ 수금과 많은 악기 타며 찬양하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루가 5:1-11 

[고기잡이 기적; 첫 번째로 부르신 제자들 (마태오 4:18-22; 마르코 1:16-20; 요한 1:35-42)]
1 하루는 많은 사람들이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는 예수를 에워싸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2 그 때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대어둔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그 중 하나는 시몬의 배였는데 예수께서는 그 배에 올라 시몬에게 배를 땅에서 조금 떼어놓게 하신 다음 배에 앉아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5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6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7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8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그의 동료들과 10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11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본기도> 능력의 하느님, 주님은 모든 선한 일의 근원이 되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진실한 믿음을 더하시어 주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선한 일을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나이다. 아멘!

오늘 루가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을 부르신 장면을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다시 호수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셔서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았다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때 연관을 지어 기억합니다. 무엇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 식이지요. 제자들은 호수가에서 물고기를 보거나 물고기를 잡는 일을 보면 예수님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특별히 제자들은 “두려워하지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계기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나요? 무엇을 볼 때 그 기억이 떠오르세요?

혹시 아직 부르심을 받지 않은 분도 계시나요? 호수가에 서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나를 따라 오너라고 부르심을 받지 않은 많은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빵을 배불리 먹고도 정작 “말씀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듣겠는가?” 하며 떠나가 버린 군중도 있었습니다. 나병 환자 열사람이 고침을 받았지만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군중으로 남는 일이 비난받거나 저주받을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군중은 예수님을 뒤따르는 제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군중인가요? 제자인가요?

예수님께 제자들은 왜 필요했을까?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예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경험하며 뒤따른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입니다. 가르치기 위해서 먼저 배운 이들입니다. 그들은 배움은 계속되는 어리석음을 전제로 합니다. 갑자기 깨우친 제자는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오해하고, 흥분하고, 인정받으려 하고, 높아지려고 하고, 정작 예수님의 깊은 뜻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예수 뒤따름이 어디까지일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넘어서까지 예수님을 뒤따른 사람들, 그들이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일은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덕을 보는 일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살아서는 물론이요, 죽어서 까지 예수님을 뒤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성찬례는 상징 중의 상징입니다. 우리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뒤따르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의 새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이어받아 뒤따라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하신 약속, “두려워 하지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이 말씀은 우리가 제자라면 우리에게도 똑같이 유효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얻으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사람을 얻기 위해 전도여행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한 번의 설교로 삼 천명의 회심자를 얻기도 했습니다.

살아생전에는 예수님을 뵙지 못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그러니까 죽음을 넘어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통해서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로는 에수님의 뜻대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 가운에서 사람을 얻기 위해 애썼습니다. 바울로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도 사람을 얻기 위해서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성공회는 참으로 자랑할 만한 전통이 많습니다. 자유롭습니다. 관용적이고 포용적입니다. 전례를 중시합니다. 공동체가 물려받은 복음의 핵심내용을 잘 이어받고 있습니다. 성사를 중시합니다. 관념으로 저 세상을 그리고 이 세상을 포기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펼쳐지기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에 헌신합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성공회는 한 가지를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일에 소홀한 것은 아닐까요? 역설적으로 125년전에 이 머나먼 동방의 나라에 사람을 얻으려고 배를 타고 오신 선교사들에게서 사람을 얻는 신앙을 배웠으려만, 오늘 우리는 얼마나 사람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일까요?

잉글랜드 국교회의 전통에 익숙한 선교사들의 선교를 받은 탓일까요? 한 때는 성공회는 성공회에 나오라고 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침묵의 전도로 유명했습니다. 물론 강압적이고 무례한 전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는 분명 성공회 밖에서 사람을 낚아서 새로이 성공회를 이루는 성공회 신자를 만드는 일이어야 합니다.

종종 “복음이 중요하지 성공회가 중요하냐?”는 말을 듣습니다. 대단히 신앙이 깊은 말 같지만 자칫 이 말을 오해하면 바보가 되니 조심해야 합니다. 가령 어떤 장군이 “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이 중요하지, 우리 군대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군대의 희생이 클지라도 감수하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이겠지요. 근데 맹구 같은 친구가 “아, 그러니까 전쟁승리가 중요하고, 군대는 안 중요하니 군대가 없어도 되나보다” 생각한다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복음이 중요하지 성공회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주장은 성공회가 복음을 위해서는 별로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도리어 복음을 위해서 진정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춤과 춤추는 사람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복음과 교회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신앙은 자족적으로 자기완결적으로 멈출 수 없고 반드시 사람을 얻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그 사람과 친교공동체를 이루는 일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성공회는 예수님을 뒤따르는 전례와 선교의 제자공동체, 그 이상의 다른 정체성이 없습니다. 복음은 교회와 따로 존재하는 어떤 명분이나 관념체계가 아닙니다. 복음이 중요하고 성공회는 안 중요하다는 것은 그냥 레토릭, 수사학적인 말장난입니다. 이미 교회를 이룬 상태에서, 이미 국교회의 지위가 있는 상태에서 짐짓 겸손한 자기 반성처럼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세상의 지배체제를 상대로 하여 복음의 내용을 가지고 대결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성공회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 자가당착의 말이 됩니다. 위에서 비유했듯이 전쟁 상황에서 군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위선적이고 비현실적인 엉터리 주장이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사람을 낚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제자들을 부르신 그 부르심 자체가 곧 복음의 한 내용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제자공동체를 이루었고,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으로 예수님의 일을 이어가는 선교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계속 행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능력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반드시 교회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실현됩니다. 골로사이 교회에 보낸 편지는“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고 표현합니다. 사람을 얻어서 성공회 교회를 이루는 일은 곧 그 사람과 우리를 함께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일”이 됩니다.

제자의 표지는 예수님을 뒤따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듯이, 새로운 사람을 낚는 일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불러 교회공동체를 이루도록 하고, 우리가 부르고 세운 그 사람이 또 사람을 불러 교회공동체를 이루도록 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면 모든 일은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서 다 이루실 것입니다.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온갖 그럴듯한 이야기를 다하고, 온갖 계획과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열매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교회도 사람의 교회이고, 결국은 세상도 사람의 세상입니다.

이제 좀 더 분명히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대한성공회입니다. 모쪼록 베드로에게 하신 주님의 약속이 우리에게도 기쁨의 권면, 위대한 소명이 되기를 바랍니다.“두려워하지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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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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