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3일 (연중 21주일)

여호 24:1-2, 14-18 / 시편 34:15-22 /에페 6:10-20 / 요한 6:56-69

<강론초록>

                      성찬례가 교회를 만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는 지금 감사성찬례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게 성찬례를 드리고 있어서 불편한 점을 잘 모르지만, 어떤 이들에게 감사성찬례는 퍽 불편한 예배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구체적이고 중요한 삶의 문제들을 간구하고, 개인의 답답하고 묶인 마음을 풀어내기가 어렵다는 느낌입니다. 설교도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아닙니다.  생각과 경험이 많은 어떤 신자에게는 정말 신앙생활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구원의 확신이나 구원의 체험을 드러내거나 확인하기 어렵다는 느낌입니다.  성체와 보혈이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사실도 머리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머리로 이해하고, 내가 감정적으로 느껴지는 감동이 은혜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성찬례가 미신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무미건조한 형식적인 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성공회 신자와 성직자 가운데서도 성찬례를 그저 교회가 드리는 다양한 예배 가운데에서 한 형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더 사람들에게 와닿는 설교 중심의 예배로 바꾸면 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예 외워두시면 좋습니다. “교회가 감사성찬례를 만든 것이 아니라, 감사성찬례가 교회를 만든 것이다.”

 어떠세요? “교회가 성찬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성찬례가 교회를 만든 것이다.” 이상한 주장일까요? 제가 성공회 사제라서 과장해서 드리는 말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교회전통이 그렇게 증언하고, 우리의 지성과 양심과 공감의 능력이 이 진실을 인정합니다. 겉으로는 우리 교회가 성찬례를 드리는 모습이지만, 내용으로는 성찬례를 통해서 우리 교회와 신자가 비로소 참된 교회와 신자로 되어갑니다.

그래서 지난 4주간, 오늘까지 5주째 우리는 스스로를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표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기대어 우리의 미사, 곧 감사성찬례, 곧 성체성사의 의미를 살펴왔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서 이 감사성찬례에 대해서 두 가지 내용을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성찬례는 “육적인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성찬례는 “습관적인 일이 아니라 고백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찬례는 “육적인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입니다. 모두 공감하시겠지요?  그런데 흔히 육적인 일은 육체에 관련된 일, 물질에 관련된 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에 관계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오해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육적인 일과 영적인 일의 기준은 육체성, 물질성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아름답게 지으신 이 세상과 우리 인간의 몸입니다. 성자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신 일은 세상과 육신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인정해주신 일이 됩니다. 육적인 일과 영적인 일은 기준은 그런 점에서 실체의 문제 아니라, 관계의 문제, 곧 어떤 관계를 살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육적인 일은 깨어진 관계를 살아가는 일입니다. 본래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시고, 우리를 당신의 모습대로 지으셔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형제자매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개별화된 인간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경쟁하고 다투며 살아가면서 깨어진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 깨어진 관계에 사로잡혀 사는 삶을 육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영적인 일은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풍성히 받은 이들이 서로 받은 은총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각자 받은 은총의 선물을 함께 서로를 위해 나누는 일, 이것이 영적인 일입니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믿으면 그때부터 영적인 인간이 되는 것일까요? 하느님을 믿는 일이 인간을 육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으로 변화시킬까요? 여러분 자신의 경험, 우리 이웃을 살펴본 경험에 비추면 어떠세요? 아닙니다. 유감스럽고, 고통스럽지만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성경은 표현하기를 “자연인”을 벗어나서 “신앙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신앙인에게 비로소 중요해지는 것이 육적인 신앙인이 되는가 영적인 신앙인이 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나 개인이 복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신앙인은 맞지만, 영적인 신앙인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을 나만 누리고 있으며, 심지어 나만 가져야겠다고 독점하고 있으면 육적인 신앙인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을 교회공동체를 통하여 신앙인들 서로에게 나누고 나아가 세상을 향해서 나누는 이들이 영적인 신앙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육적인 신앙인의 상태에서 영적인 신앙인으로 변화되는 일입니다. 이 일은 신앙인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것을 “거듭난다, 새로 태어난다, 위로부터 난다, 하늘로부터 난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는 표현이 같은 뜻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는 영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신앙인을 영적인 신앙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먹이시는 것이 바로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 성체와 보혈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셨지만 예수님은 영적인 분이십니다. 성령에 가득한 분이십니다.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자신을 위해서 능력을 쓰시지 않고, 자신이 높아지고 성공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시고, 오직 다른 이들을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더 내어주는 삶을 사셨습니다. 세상을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내어주신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일이 우리의 성찬례입니다.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위해 사셨듯이, 그래서 세상을 살리는 영원한 생명, 참 생명이 되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써 예수님의 힘으로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힘으로 세상을 산다는 일은 예수님의 능력을 구해서 세상에서 나 혼자 성공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의 가치와 질서와 문화를 사로잡은 육적인 태도를 벗어나서 하느님나라에 속한 이들로서 영적인 삶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찬례를 드리며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시는 목적은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시는 일이 나 개인이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무엇을 더 얻을 수 있는 자격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과 저 세상 모두를 오직 예수님의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이 육적인 세상에서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성찬례의 힘이 아니면, 열심을 내는 신앙인들조차도 여전히 육적인 신앙인에 머물 위험이 큽니다. 이론과 주장이 아니라, 이 시대에 직접 경험하게 되는 일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와 교회가 “가장 이기적으로 살아가며, 가장 자기중심의 독선을 내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찬례가 교회와 신자를 만드는 힘이 있다는 말씀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 진실 중의 진실입니다. 우리 성공회는 그래서 성찬례를 우리 교회의 가장 중요한 표지로 삼습니다. 성공회를 성찬례의 교회, 전례의 교회, 성사의 교회 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의 진실이 연결됩니다. 우리가 주일에 모여서 성찬례를 드리는 일은 결코 습관적인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찬례는 우리의 결단과 고백을 바탕으로 하는 참여입니다. 우리는 단지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성찬례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찬례를 통해서 우리와 우리의 삶과 이 세상을 새롭게 한다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개별적으로 흩어져버리는 인간이 아니라 성찬례를 통해서 하나되는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고 있음에 관심을 둡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시라”는 진리는 깨닫기 쉽고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나 혼자 성공하는 일이 행복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직접 말씀을 들은 수많은 제자들도 “말씀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듣고 따르겠는가?” 하며 예수를 버리고 물러갔으며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하고 예수님이 비감하게 물으셨을 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 대답합니다. 

감사성찬례를 드리러 오시는 우리 교우들은 “이제는 육적인 삶이 아니라 영적인 삶을 살겠노라고” 결단하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참된 영적인 삶을 열어주신다. 주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을 전해주신다.” 는 믿음과 고백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성찬례는 우리가 한 개인으로서 교회라는 제도나 공간 안에 들어와서 어떤 예식이 거행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 아닙니다. 성찬례를 통해서 우리는 참된 영적인 신자가 되고 참된 영적인 교회의 지체로 다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임재를 통해 이루어지는 거룩한 변화의 본질입니다. 떡과 포도주가 성체와 보혈로 변화되었다는 우리의 믿음은 이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성령을 통해 예수님의 힘을 얻어서 예수님처럼 살 수 있게 된다는 믿음과 같습니다.  

성찬례를 통하여 세상 가운데서 예수님의 영적인 일을 계속 이어 실천해가는 예수님의 살아있는 몸인 교회를 이루는 사건에 초대받고 참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는 우울한 심판의 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기쁨의 잔치 자리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나 한 빵을 나누며 한 몸을 이룹니다”는 고백을 가지고 이제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시게 됩니다. 성체를 영하러 행렬을 지어나가는 교우를 보십시오. 앞 사람이 곧 내 영의 모습이요, 내가 곧 뒷사람이 보는 영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신앙인들로 다시금 새로워집니다. 성찬례를 마치면 우리는 한 몸을 이룬 영적인 형제자매들, 또 다른 영적인 나들에게서 빛나는 광채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성찬례는 “나를 위한 육적인 일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영적인 일”입니다.

성찬례는 “습관적인 수혜가 아니라, 고백적인 참여”입니다. 

이제 세상에 대성당의 외형의 아름다운 건물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드러난 대성당을 통해서 이 곳에서 이루어지는 영적인 신자로 변화시키는 성찬례, 세상을 변화시키는 고백과 참여로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감사성찬례의 능력과 기쁨과 영광이 전해져야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임종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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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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