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신문 제865(2016327) 사설]

부활 - 일으켜지신 주님, 일으켜지는 교회

부활의 기쁨과 능력,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신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 교회는 부활의 의미를 세상과 어떻게 나누고 있을까? 단순히 예수님 시신이 살아난 일이라고 주장하면 세상 사람들은 부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수준의 설명으로는 신자들마저도 부활의 참된 의미를 깨닫기 어렵다. 말로는 부활을 중시하고 축하하더라도, 실제 마음과 삶은 부활의 기쁨과 능력에서 멀어지고 만다.

부활(復活)의 의미는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이해해야 한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 “십자가에서 못박혀 세상을 떠난 예수가 자신의 예언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일이라는 풀이는 일반인의 통념일 뿐 그리스도교의 부활신앙과는 거리가 멀다. ‘부활로 번역된 그리이스어 아나스타시스’ (ἀνστασις)죽음에서 일으켜짐, 일어남, 올림이라는 뜻이다. 라틴어에 어원을 둔 영어 레저렉션’(resurrection)다시 일어나다, 일으켜지다는 뜻이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신적인 능력으로 스스로 되살아나셔서 신의 아들임을 입증한 일이 아니다. 부활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사건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니라, 세상 죽음의 권세가 참사람을 살해한 죽임이다. 동시에, 그 죽임을 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향한 희생과 사랑을 위해 받아들인 죽음이기도 하다. 부활신앙은 그 희생과 사랑으로 죽임과 죽음에서 일으켜지셔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을 깨닫고 우리도 죽음에서 일으켜진 생명의 삶을 사는 일이다.

시체의 소생을 사실로 확신하는 일을 부활신앙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보고 체험하는 일이 진정한 부활신앙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 11:25-26).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는 죽더라도 사는 차원을 드러내야 하고, “영원히 죽지 않는수준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교회는 부활의 교리를 관습적으로 믿는 이들의 모임이 아니다. 교회는 죽임과 죽음을 뚫고 일으켜진 예수님께서 절망 속에 흩어진 제자들을 몸소 일으키시어 당신의 몸으로 삼으신 공동체이다. 교회는 예수님을 살아계신 주님으로 모신다. 이것이 성찬례의 의미다. 교회는 세상구원을 위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하느님나라의 일을 이어간다. 이것이 선교의 의미다.

참된 부활신앙을 누리려면 우리 교회가 세상에 하느님나라를 전하려 어떤 십자가를 짊어졌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 신자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기 위해세상에서 무엇을 실천하며 희생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세상의 칭찬을 받는 성공이 아니라 세상의 박해를 받는 실패와 죽음이 하느님께서 일으켜주시는 참된 부활의 조건이다. 주님 부활의 영광을 기뻐하고 찬양하며, 죽음에서 일으켜지신 주님과 하나되어, 죽음의 권세를 누르고 일으켜지는 성교회와 교우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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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