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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성공회신문 868호 사설] 성공회 신앙을 이어가는 가정 공동체

 

[성공회신문 제868호 2016년 5월 14일자 사설]

성공회 신앙을 이어가는 가정 공동체

건강한 가정은 건전한 사회와 교회의 기초다. 5월을 가정의 달로 지키고, 가정주일을 기념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문화는 가정생활 안팎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유교 전통이 강조한 효의 의미는 많이 퇴색했다. 핵가족화를 지나 이혼과 비혼(非婚)이 흔하며, 한부모가정이 늘고 있다. 세대 간에 깊어지는 단절과 갈등은 가족의 유대를 위협한다. 청년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고 자조하는 가운데,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 20%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중이다. 늘어나는 아동학대 뉴스는 이기적이고 냉혹해진 우리 문화와 생활고의 단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자녀사랑과 부모공경을 외치는 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부모세대는 사회의 변화, 생각의 다양성을 더욱 너그럽게 수용하고, 자녀세대는 부모세대의 노고와 땀이 만든 역사를 이해하는 자리를 가정과 교회에 마련해야 한다. 서로 이해하는 태도를 훈련하고 대화하는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도록 가정을 새로운 신앙공동체로 쇄신해야 한다.

한국성공회는 이른바 ‘가족교회’(패밀리 처치)의 특성이 있다. 가정과 가문으로 신앙을 대물림하는 일이 교회를 유지하는 큰 힘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를 잇는 신앙이 이제 쉽지 않다. 농촌교회는 젊은 세대가 떠나 노령화되었다. 도시에도 지역에 근거한 본교회[전도구] 대신, 장거리를 이동하여 명분과 친분으로 모이는 교회가 많아졌다. 교회학교는 위축되고, 자녀들과 동반한 교회생활이 어려워졌다. 자녀의 입시경쟁을 염려하여 집에서 가까운 아무 교회에나 출석하거나 신앙생활을 잠시 멈추라고 권유하고, 부모세대는 관습과 친목 중심의 신앙생활에 만족한다. 이런 생활로는 자녀세대에게 신앙의 동기를 주기 어렵다.

“부모를 공경하라”(출애20:12)는 제5계명은 부모를 잘 봉양하라는 뜻보다 훨씬 깊다. 이는  부모세대의 신앙을 잘 물려받으라는 요청이다. 돌보고 섬기는 수준의 부모봉양은 이미 사회복지가 담당하게 되었다. 이제 가정의 의미를 전통의 혈연공동체를 넘어 ‘신앙을 세우고 이어가는 공동체’로 새롭게 바꿔야 한다. 세상의 기준을 따라서 자신의 편의와  주장만 내세우면 가정공동체는 건강하게 유지되기 어렵다. 오히려 닫힌 관계 속에서 더 심각한 갈등과 불화의 장으로 변질되기 쉽다. 가정은 공동의 신앙생활을 기준으로 삼아서 서로 보살피는 공동체일 때 진정 화목하다. 가족이 서로 교회 신앙의 경험에 초대하고 대화하면서 가정생활의 공통점을 마련하면 갈등 조정 효과도 높아진다.

‘자녀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부모의 생각은 일견 합리적이고 관용적으로 들린다. ‘어느 교회를 나가더라도 다같은 하느님을 믿는 일이라’는 이해는 잉글랜드 국교회의 전통일 뿐, 교파교회인 한국성공회로서는 안이한 태도요 엉뚱한 변명이다. 교회가 하느님나라를 위해 세워진 생명의 공동체임을 믿는다면, 교회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헌신하는 신앙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은 복되고 복된 일이다. 성공회가 자유로운 헌신으로 참된 삶을 이끄는 ‘지상최선의 교회’임을 확신한다면, 성공회 신앙을 가족이 함께 하는 일은 그 어떤 상속보다 귀하다. 성공회 전통 안에서 신앙을 이어 “복을 받고 땅에서 오래 살리라”(에페6:3)는 은총을 풍성히 누리는 교회와 가정이 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