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서울교구 성직자들이 모여 3박 4일 논의한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성공회의 성장방안 모색과 다른 하나는 성공회의 정체성 확인이다. 두 주제 모두 중요하지만 어느 것에 강조점을 둘 것인가에 따라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한 편의 주장은 “성공회 정체성이란 것이 대체 따로 있기나 한 것이냐,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 것은 교회의 본분인 복음전도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니 모든 수단방법을 다 동원하여서라도 일단 성장을 이루고 난 다음에 그 다음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다른 견해는 “엄연히 성공회의 전통이 있고 특성이 있는 것인데, 이를 살리고 반영하여 성장하는 길을 찾아야 교계와 사회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미 물량적인 성장에 초점을 두고 성공을 이룬 다른 교파들과 무슨 차별성이 있으며 그들이 드러내는 문제점들은 어떻게 피해갈 수 있느냐”는 염려이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씀들이다.

주지하는 바, 한국 성공회는 영국 성공회의 고교회(앵글로 캐톨릭)에 속한 선교사들에 의해 선교되어 영향을 받아왔다. 한국인 주교가 서품된 1965년 이후로 그 주류의 흐름은 서서히 대두되는 다른 신앙적, 신학적 흐름들과 크고 작은 갈등과 화해의 사건들을 짧은 역사 안에 남기게 된다. 2000년대 글로벌 시대가 되자 성공회에 대한 이해는 한없이 다양해진다. 자신들의 국교회로서 주도적으로 변화해간 영국성공회 안에는 훨씬 자유롭고 다양한 흐름이 있음이 확인된다. 성공회의 전통을 자기 나라와 사회에 맞게 맥락화한 세계 성공회 전체도 물론 참으로 다양한 모습들이 있다. 이미 한국 성공회 안에도 영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세계성공회의 경험을 가지고 온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보여지는 외형적인 모습”을 중심으로 성공회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것은 무리(無理)스럽고 의미없는 일이다.

한국 성공회 정체성의 확인은 주체성의 확립과정이어야 한다. 그 주체성은 무엇보다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교회의 본분에서 찾아져야 한다.
성공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은 어떤 “오리지날(Original)한 성공회 모델”을 찾는 일이 아니다. 개신교와 천주교와 비교하며 성공회의 특징을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 성공회는 성공회일 뿐이다! 성공회로 규정되는 특성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성공회로서 예배하고 선교하는 우리 자신의 실력과 반성이 중요하다. 특정한 입장을 선호하고 앞세우는 것보다도 그 입장의 신학적 내용, 전통적인 흐름을 깊이 이해하고 소개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세계성공회의 뿌리라고 할 영국 성공회의 태생부터 성공회는 어떤 교리적인 규정이나 제도적인 틀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하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민족교회”라는 성격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다양한 신앙적 흐름을 모두 감싸 안았던 것이다.
비아메디아(Via Media)는 "극단을 배제한 중용"이라고 번역된다. 어중간한 중간 타협점을 중도로 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른 입장들을 그 입장의 위치대로 배려하되 모두를 통합하려는 노력이다. 그것은 입장들 간의 타협의 산물이 아니라 더 큰 상위(메타)적인 목적아래 전체를 아우른 결과인 것이다. 가장 복음적이고 가톨릭(보편적)인 교회, 동시에 가장 구체적이고 지역적인(민족적인) 교회를 함께 추구하는 것이 그 상위의 목적에 해당한다.
우리 또한 우리가 이 땅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할 일이다. 신앙의 기초와 신학적 연구를 든든히 하는 일에 우리 성공회 성직자, 교우들의 관심과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본래 사명을 기억하는 일, 참으로 교회다운 교회가 되려는 노력에 헌신하는 길이 곧 성공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길인 것이다. (2008. 12. 21 성공회신문 논단원고 / 임종호 신부/분당교회)

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