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상식적이어야 한다.

법리도 양심도 상식에 가까워야 한다.

몰상식한 인간이 법리를 내세우며 많은 이의 삶의 상식을 우롱한다면 그 자격은 누가 어떻게 부여한 것일까?

 

과학은 가설과 실험으로 법칙을 객관화하며 동시대 상식의 수준을 높인다.

철학은 과학의 뒤를 따라 세계관 가치관을 추구한다.

철학이 삶의 상식에 무관하면 결국 쓸데없는 짓이 되고 만다.

법학이 삶의 상식에도 못미치면 어디에 쓸까?

법리와 양심이 일부 전문가가 독점할 성질인가?

과학과 철학을 바탕으로, 상식의 수준을 높이고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 모두에게 공개되고 공유될 수단이 되어야 한다.

 

중세의 성직을 이어받고 있는 성공회의 사제로서

이 개독교의 시대에 스스로 한 가닥 합리화를 해본다.

성공회는 자고로 좋은 신앙은 몰상식이 아니라 상식 수준을 높이는 일이라고 믿어왔다.

성서와 전통과 이성이 다 그 일에 근거가 되고 도움이 된다고 합의한 것이다.“

교회개혁자들의 오직 믿음!” 이란 주장도 실은 개인의 주관적 신념과 망상이 그리스도교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리라.

근거없는 권위가 횡행하는 시대에, “상식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이하 알라딘의 책소개를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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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81845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프레드 로델 (지은이) | 이승훈 (옮긴이) | 후마니타스 | 2014-01-20 | 원제 Woe Unto You, Lawyers! (1939)

 

부족 시대에는 주술사가 있었다. 중세에는 성직자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법률가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자신들이 갈고닦은 특수한 지식의 권위를 지켜 내기 위해, 기술적 수법에 뻔뻔하고 그럴듯한 말장난을 첨가해, 인간 사회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영특한 무리들이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그 직업적 속임수가 문외한들에게 발각되지 않게 숨기고, 당대의 문명사회를 자기들의 방식대로 운영하던, 사이비 지성의 독재 체제가 존재했다. - 21

 

이 모든 것은 일상적인 사실이지, 허공에 있는 추상 관념이 아니다. 그리고 법이란 단지 이런 수많은 사실들을 어떤 방법으로 다룰 것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요점은 추상적인 법적 관념들은 땅으로 내려오기 전까지는 전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땅으로 내려와서, 물리적 사실에 적용되면, 관념은 단지 하나의 말(word)이 될 뿐이다. 법률가가 열심히 서술하고, 정당화하며, 밥벌이로 삼는 말 말이다. 법률가는 언제나 그들이 말하고 사용하는 법의 원칙이 간단하고, 구체적이며 비법률적인 문제들을 복잡하게 말하는 방법 이상의 그 무엇이라고 믿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그래서 고() 올리버 홈스 판사는 다음과 같이 말해 실질적으로 업계의 반역자가 되었다. ˝일반 개념이 개별 사건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 28, 29

 

법이란 학문 세계의 킬리루(killy-loo bird). 아일랜드 신화에 의하면, 킬리루새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고 지나쳐 온 곳에만 흥미가 있는 까닭에 뒤로 날기만을 고집하는 새다. 그리고 법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나갈 때는 어색한 날갯짓으로 머뭇거리며, 그 눈은 지나쳐 온 곳에 변함없이 고정되어 있다. 의학, 수학, 사회학, 심리학과 같은 대다수 학문의 목적은 앞을 내다보고 새로운 진리, 기능, 유용성에 다가서는 데 있다. 오직 법만이, 자신의 오랜 원칙과 선례(precedents)에 끊임없이 집착하며, 구태의연을 덕으로, 혁신을 부덕으로 삼는다. 오직 법만이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을 고쳐 변화하는 세계의 필요에 부응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항하고 분개한다. - 44

 

[출판사 제공 책소개]

 

1. 법률가들의 전성시대

 

부족 시대에는 주술사가 있었다. 중세에는 성직자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법률가가 있다.”

 

본문 첫 구절을 여는 이 문구는 이 책의 핵심 주제를 가장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있는 묘사이자,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기도 하다. 주술사, 성직자 그리고 법률가들. 아마도,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 가운데 하나는 이들이 모두 언어’, 그것도 세상사의 이치와 운영 규칙을 전달한다는 언어를 다루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점일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그들이 다루는 언어는 오직 그들만이 해석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어려운 언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부족 시대에는 주술사들이, 중세에는 성직자들이 세상사의 이치와 모든 길흉화복에 대한, 그리고 인간의 운명에 대한 해석을 독점할 수 있었다.

 

법률가들이 보통 사람들의 삶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의 범위를 넓혀 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영역만 보더라도, 국회의원 가운데 법조인이 차지하는 비율 또한 꽤 높다. 16(국회의원 정원 273) 41, 1754, 1859명이 금배지를 달았다. 전체 국민 가운데 0.034%밖에 되지 않는 법조인들이 국회의원의 15~20%를 차지하며, 출마자 대비 당선율은 17대는 41.2%, 18대에서는 48.7%에 달한다.” _<법률가의 탄생>(후마니타스, 2012) 보도자료 중에서

 

오늘날 우리의 문명사회(우리의 정부, 기업, 사적인 삶)를 운영하는 이들은 바로 법률가들이다. 저자인 프레드 로델의 말을 빌리자면, 대부분의 의원들은 법률가다. 그들은 우리의 법률을 만든다. 대통령, 주지사, 장관, 그들의 참모와 비서는 거의 모두 법률가다. 이들은 우리의 법률을 관리한다. 모든 판사는 법률가다. 그들은 우리의 법률을 해석하고 집행한다. 말하자면, 법률가가 관여하는 곳에 권력분립의 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오늘날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14.3%)을 가진 직업군은 법률가들이다. 현 정부에서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여당 대표 역시 모두 법조인들로 채워져 있다. 이쯤 되면, 우리의 정부는 인민의 정부가 아니라 법률가들의 정부라 해도 무색할 지경이다. 정치권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최근의 언론 보도를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 부과 최고 상한액(매월 7,810만 원) 이상의 월급을 받는 봉급자가 법무 법인인 김앤장에만 148명으로 국내 최대 재벌 기업인 삼성전자(62)나 현대자동차(14)보다도 훨씬 많다고 한다. 정치인이 되고 싶다면, 법률가가 되는 것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역시 법률가가 되는 것이 가장 성공 확률이 큰 셈이다. 가히 법률가들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2.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는가

 

오늘날에는 새로운 지식이 광범위하게 생산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각 분야별로 전문적 지식이 축적되고, 새로운 발견과 논리에 따라 전문적인 용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점에서, 오늘날에는 법률가들만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 역시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전문용어들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보다, 법률가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거나,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의사들 역시 전문 지식을 연구하며, 전문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지만, 그들은 환자에게 당신이 어떤 병에 걸렸으며, 당신의 몸의 어떤 부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법률가들은 그렇지 않다.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현상이나 대상을 발명한 경우, 이에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법률가가 다루는 사건들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보통 사람들은 흔히 벌어지는 일들과 사건을 법률가들의 입을 빌려 들을 때에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법이 그렇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법률가들이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하는 열쇠를 조심스럽게 감추어 두는 한, 일반인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자신들이 갈고닦은 특수한 지식의 권위를 지켜 내기 위해, 기술적 수법에 뻔뻔하고 그럴듯한 말장난을 첨가해, 인간 사회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영특한 무리들이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그 직업적 속임수가 문외한들에게 발각되지 않게 숨기고, 당대의 문명사회를 자기들의 방식대로 운영하던, 사이비 지성의 독재 체제가 존재했다.”

 

더욱 큰 문제는, 법률가들이 이 같은 언어의 독점을 통해, 이를 문명사회를 운영하는 최고의 운영 원리로 삼고, 이를 최고의 수익을 보장하는 사업 수완으로 사용하게 될 경우에 발생한다. 정치적 결정 사안을, 사법적 판단으로 치환하고, 사회적 행위자들의 타협을 법률적 판단에 종속시키며, 법률과 헌법에 대한 해석을 독점할 때, 그들은 이 사회를, 이 문명을 운영하는 최고의 자리를 독점하는 셈인 것이다. 만약 법을 해석하는 일이 법률가들의 배타적 영역이 되면, 민주주의는 반드시 위협받게 되어 있다. 주술사들이 독점하던 신탁은 이성의 언어로 대치되고, 성직자들이 그 해석을 독점하던 라틴어(성경)는 자국어로 번역되었지만, 법률가들의 언어는 오늘날에도 좀처럼 개선의 움직임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은 전문 지식에 대한 법률가들의 독점, 일반인들의 무관심, 과학적 학문으로서의 법이라는 신화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법률가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는지를 신랄하고 재치 있게 보여 준다.

 

3. 법률가들, 법의 전달자인가, 입법자인가

 

찰스 에반스 휴스가 연방 대법원장이 되기 한참 전에 (법률가들에게서는 거의 살펴볼 수 없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다음과 같은 비밀을 불쑥 누설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헌법 아래 있다. 그러나 헌법이란 법관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나라의 최고의 법은 무엇인가? 누구나 쉽게 알고 있듯이, 그것은 헌법이다. 그런데 헌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법률가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다. 하지만 이것이 오늘 우리가 대면하는 현실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예컨대 우리는 관습 헌법도 우리나라의 헌법임을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입을 통해 배우지 않았던가. 말하자면, 헌법에도 위계와 서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헌법전에 자구로 쓰여 있는 헌법이 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법률가들이 이것이 헌법의 의미다라고 말함으로써 효력을 발휘하는 헌법이 있다. 그리고 또 그 위에, 헌법에 문서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법률가들이 보기에 존재한다고 하는 관습 헌법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나라의 최고의 법인가?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헌법이다. 그런데 헌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법률가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

 

흔히 법률가들은 스스로를 법의 입이라고 일컬으며,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권력도 없다고 주장한다. 오직 법리에 따라서만 사건을 해석을 하며, 재판의 결과는 선행하는 판례와 법조문의 내용을 적용한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관련해서, 사람들은 법치주의란 인간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가 실현되었을 때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창조물인 법은 반드시 인간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 사실, ‘법의 지배라는 용어 그 자체는 수사적인 표현일 뿐이다. 법은 지배할 수 없다. 지배는 행위이며, 법이 직접 행위를 행할 수는 없다. 법 역시 판사들이라는 현실의 사람들을 통해 해석되고, 운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천사들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천사라면, 법도 정치도 불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법률가들이 모두 천사들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왜 우리는 판사들이 을 실행하는 것 외에 어떤 이익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들의 결정 권한이 자의적이지 않고, 또 그들의 독립성이 결정의 공정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법률가들에게 법에 대한 해석의 독점권을 계속해서 부여해야만 하는가? 앰뷸런스 변호사, 기획 소송(예컨대 음원이나 사진 등과 같은 저작권상의 문제를 지적하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무작위 소송을 벌이는 일) 전문 변호사, 브로커?해결사 검사, 막말 판사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 책은 법의 입을 자처하는 법률가들이 어떻게 법을 자신들의 자의적 논리에 따라 해석해 왔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사실상의 입법자가 되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 준다.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전 세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국에서는 최고의 법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판결은 가장 현명하고 최고로 개명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구성원은 칭송받는 법조계의 모범이며, 섬세한 법적 논리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정의를 훌륭하게 다루는 방법에도 정통해 있다. 그 권한 또한 방대하다. 단 한 표 차이로 아홉 명의 법관은 시장, 지사, 주 의회, 대통령 그리고 미국의 나머지 모든 법관이나 법원이 내린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 심지어 연방헌법과 수정 조항에 직접 표명된 인민의 의지조차도 연방 대법원이 헌법의 문언을 해석함에 따라 무효화될 수 있다. 검은 법복을 걸친 아홉 명의 그 거룩한 손바닥 위에 국가의 모든 기구가 놓여 있다.”

 

4. 정치의 사법화

 

이 책이 처음 출간(1939)될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여파로 매우 심각한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새롭게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는 뉴딜 입법을 통해, 기존의 자유방임적 경제체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주의 정책을 취하게 된다. 이에 맞서 연방대법원을 필두로 한 보수 진영은 뉴딜 법안에 대한 위헌 판정을 통해 루스벨트 행정부의 개입주의적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제동을 걸고 나오게 된다. 이 책은 바로 소위 보수적 사법부의 시대라 불리던,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 사법부가 법의 이름으로 개입해 이를 뒤엎었던 시기에 쓰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보수적 사법부의 시대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진보적 사법부의 시대를 전제한다. 사실, 이런 말 자체 역시 역설적이다. 법원의 구성원이 바뀌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 법에 대한 해석이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이 사회를 운영하는 기본 원리이자 규칙인 법의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간에 말이다.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전 세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국에서는 최고의 법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판결은 가장 현명하고 최고로 개명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구성원은 칭송받는 법조계의 모범이며, 섬세한 법적 논리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정의를 훌륭하게 다루는 방법에도 정통해 있다. 그 권한 또한 방대하다. 단 한 표 차이로 아홉 명의 법관은 시장, 지사, 주 의회, 대통령 그리고 미국의 나머지 모든 법관이나 법원이 내린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 심지어 연방헌법과 수정 조항에 직접 표명된 인민의 의지조차도 연방 대법원이 헌법의 문언을 해석함에 따라 무효화될 수 있다. 검은 법복을 걸친 아홉 명의 그 거룩한 손바닥 위에 국가의 모든 기구가 놓여 있다.”

 

정치의 사법화 문제는 이 같은 사법부의 정치적 편향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의 사법화의 문제는 그것이 바로 정치와 민주주의의 작동 영역을 지극히 협소한 영역으로 국한시킨다는 점이다. 민주적 경쟁과 결정의 논리를 사법적 판단의 잣대에 맡기는 순간, 나아가 그와 같은 사법적 판단의 권한을 법률가들이 독점하는 순간, 정치와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며, 모든 정책과 결정 사항들은 전문가들, 다시 말해 법률가들의 수중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인민의 의지를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정치적 책임과 결정의 원리를 무기력하게 하기 위해 나타난다. 사법부가 그런 가공할 만한 무기가 될 때, 대표와 책임 그리고 민주적 경쟁 원칙은 무기력해지고 민주주의는 위협을 받는다. 이 책의 저자인 로델은 뉴딜 입법 당시 연방대법원으로 대표되는 사법부가 이 같은 정치의 사법화를 어떻게 주도했는지, 이를 위해 헌법과 법률을 어떻게 자의적으로 재단하며, 자신들의 전문용어와 법리로 치장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문명사회(우리의 정부, 기업, 사적인 삶)를 운영하는 이들은 바로 법률가들이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법률가다. 그들은 우리의 법률laws을 만든다. 대통령, 주지사, 장관, 그들의 참모와 비서는 거의 모두 법률가다. 그들은 우리의 법률을 관리한다. 모든 판사는 법률가다. 그들은 우리의 법률을 해석하고 집행한다. 법률가가 관여하는 곳에 권력분립의 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통치 권력은 오직 법률가에게 집중되어 있다. 어떤 연구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의 정부는 인민의 정부가 아닌 법률가의 정부. 사업가가, 아무리 대사업가라 하더라도, 우리의 경제체제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 또한 법률가의 일이다. 법률가는 매번 회사가 설립되고, 주식이나 채권이 발행되고, 물품이 인도되거나 상품이 판매되고, 거래가 성사될 때마다, ‘자문과 지시를 한다. 정교하게 짜인 산업과 금융의 모든 체계는 법률가들이 만든 저택이다. 우리는 모두 그 저택에 살고 있지만, 그것을 운영[관리]하는 것은 법률가다. 우리들의 사적인 삶에서조차 법률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서는, 집을 사거나 아파트를 빌릴 수 없고, 결혼이나 이혼도 할 수 없으며, 자녀들에게 재산을 남길 수도 없다. 법률가들이 만든 미궁과도 같이 복잡한 의례와 형식을 통해 안내를 받아야 한다.”

 

5. 어떻게 할 것인가? 법률가-법관 vs 일반인-법관

 

판사들 소송을 관리하는 무리들(gens maniant des proces) ? 은 법전의 교의와 지식에 대한 시험을 치른 것이지, 상식이나 정직에 대한 시험을 치르지는 않았다. 도처에서 정의는 탐욕과 어리석음, 사회적 특권, 공허한 법 형식들에 희생되었고, 그 결과 범죄보다 더 범죄적인 유죄 판결을 양산했다.” _비앙카 마리아 폰타나, “몽테뉴 <수상록>에 나타난 법의 지배와 사법개혁의 문제)”,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후마니타스, 2008)

 

사실, 제일 어려운 문제다. 이 책의 저자인 로델이 이 책을 썼을 당시나,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비판의 지점이 되어 왔던 부분 역시 이와 관련되어 있다. 법률가들을 모두 없애자니! 법원을 모두 위원회로 대체하자니! 법률가-법관(예컨대 법 전문가들만이 대법관이나 판사들로 임용되는 것)을 일반인-법관으로 대체하자니! 사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제롬 프랭크 판사가 지적하듯, 법원을 전문가들의 위원회로 바꾼다 한들, 그 위원회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으며(실제 역사에서도 그 사례가 많으며), 법관을 없앤다고 해도, 소송 당사자들은 여전히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의 독재하에 남아 있는 것은 마찬가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해석에 대한 법률가들(법 전문가들 혹은 법조인들)의 독점을 규제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에 대한 고민을 이제 시작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사회적 타협 기구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분쟁에 대한 조정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법의 이름으로 어느 일방을 다시 처벌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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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2017년 1월 21일자 성공회신문 885호 사설

 

                  성공회 사목을 위한 성공회 신학을 공유하자

 

2017년 대한성공회 전국 성직자 신학연수가 2월 1일(수)부터 3일(금)까지 서울주교좌교회에서 진행된다. “종교개혁 500주년, 재해석을 통한 성찰과 전망”이 주제다.


이번 기회에 성공회의 정체성에 관하여 더욱 더 깊어진 이해가 공유되기를 기대한다. 세계성공회는 잉글랜드 교회개혁의 경험을 공유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개신교의 일파로 좁혀 보지는 않는다. 성공회는 서방교회의 유구한 전통을 지켜가는 입장에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반영했다. 동방교회의 신학도 배우며, 과학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고, 각 지역에 알맞은 교회가 되기 위해 애쓰며 발전해왔다. 따라서 성공회는 신교냐 구교냐를 묻는 프레임을 넘어선다. 전례적이면서 복음적이고, 선교적이면서 사목적인 교회인 것이다.

 

대한성공회의 신학연수는 이러한 성공회의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성공회의 사목을 위한 내용이 주가 되어야 한다. 개신교계에서 종종 이루어지는 ‘목회성공을 위한 세미나’ 류와는 성격이 다르다. 단순히 최신 정보, 유용한 프로그램을 소개받는 일에 머물 수 없다. 마땅하고 옳은 명분을 확인하거나, 서로 위로하고 덕담을 주고받는 일도 본질이 아니다. 성공회는  개별 교회가 독자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사목할 수 있는 개신교회와는 정체(政體)와 직제(職制)가 다르다. 성공회는 주교제 교회로서 교구가 교회의 단위이다. 한국성공회는 세 교구가 한 관구로서 연합하여 일치를 지향한다. 성공회의 전통을 따라 이 땅에서 이 시대의 선교와 사목을 맡은 한국 성공회의 주체성을 깊이 고려하는 신학연수가 되길 바란다. 정체성은 밖에서 주어지는 규정과 평가에도 일부 영향을 받지만, 그 주체가 어떤 목적, 목표, 지향으로 선교와 사목을 하는가 하는 고민을 통해서 분명하고 확실하게 된다. 한국 성공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신앙과 교리의 문제, 행정과 제도의 과제를 살피는 일에는 성공회 성직자, 성공회 신학자들의 충정어린 연구와 발표가 중요하고 유용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애초부터 교회공동체가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에 관한 고백이다. 이 고백은 개인적으로 체득하여 홀로 수행하는 내면의 어떤 경지 따위가 아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교회공동체의 고백에 참여하게 하고, 더욱 깊이 이해하고 경험하고 확산시키려고 하는 증언(證言)이다. 이번 신학연수에서 주제를 발표하는 이들은 성공회의 선교와 사목을 위해서, 성공회의 성직자를 설득하여 변화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해야 한다. 참여하여 듣는 성직자들도 마음을 열고서 기꺼이 설득되고 변화하려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변화의 의도와 의지가 진정하지 않으면, 참된 소통이 어렵고, 결국은 가르침과 배움이 불가능하게 된다.

 

지극히 타당한 내용이어도, 성공회 사목을 맡은 성직자의 생각과 실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는 책자나 인터넷 등 다른 통로로 주고받는 편이 효율적이다. 전국의 성직자가 함께 모이는 신학연수는 성공회 사목현장에서 생겨나는 과제와 물음을 함께 나누는 자리여야 한다. 성공회의 정체성을 선교와 사목의 관점에서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마당이어야 한다. 신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성직자들의 눈빛과 가슴에 성공회 사목의 비전과 열기가 뜨겁게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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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2016년 11월 12일자 성공회신문 사설

 

선교정책을 생산하는 의회

 

오는 11월 26일(토)에 서울교구는 제52차, 대전교구는 제65차 교구의회를 소집한다. 부산교구는 11월 25일(금)~ 26일(토)에 제46차 교구의회를 연다. 교구의회의 본연의 역할을 살피기 위해서 성공회의 정체(政體)와 의사결정과 집행의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각 교구는 교구장주교가 다스리는 하나의 독립된 선교조직으로서 교구의회의 결정에 따라 교구의 운영에 관한 제반문제를 처리한다.(헌장 제56조) 주교제를 근간으로 삼은 성공회가 이해하는 교회의 단위는 교구(敎區)다. 교구장주교는 교구를 대표하고, 통할(統轄)한다. 다만, 천주교와 정교회와는 달리 대의제(代議制)인 의회제도를 통하여 주교의 직무를 제한하는 동시에 보완하고 있다. 교회공동체의 의사결정이 주교원, 성직자원, 평신도원의 합의로 이루어진다. 대한성공회는 교구장이 교구 사목을 통할하되, 교구의 운영은 교구의회의 결정에 따라 교구의 사무관리를 통해 집행되는 것이다.

헌장 제11조는 교구장주교의 직무를 6개 항으로 열거한다. 1. 교구를 대표하며 교구의 사목을 통할한다. 2. 교회의 신앙과 사도적인 교훈 및 공교적인 진리를 수호한다. 3. 교구에 적용되는 모든 법규와 규정을 공포한다. 4. 교구내 성당축성 및 견진성사와 신품성사를 베푼다.(이하 생략) 이 교구장주교 직무가운데 2항 이하의 내용은 자명하고 분명하다. 그런데 1항의 직무는 ‘교구의 사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내용이 채워진다. 제30차 전국의회 선교선언문에서 선교적 상황의 어려움을 적시했거니와, 이를 극복하려면, 교구장주교의 사목은 ‘관리지향’에서 ‘선교지향’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

헌장 제60조는 교구의회의 기능을 11개 항으로 열거하고 있다. 1. 교구의 선교 정책 심의 의결 2. 교구법규의 제정과 개정 3. 교구 사업 및 결산보고 접수, 사업계획 및 예산 승인 4. 교구 내외에 파송할 교구대표 및 임원 선임 5. 각 교회, 교구 소속 기관 및 단체의 보고 접수 6. 소속기관의 사업보고, 계획 및 예결산 승인 7. 교구장 주교 후보 및 보좌주교 후보 선출 (이하 생략) 이 가운데 2항 이하는 통상적이고 절차적인 내용에 가깝다. 교구의회는 2항 이하의 내용을 의안으로 처리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런데 정작 1항의 선교정책을 심의 의결하는 일에는 얼마나 시간과 공력을 들이는가를 짚어볼 일이다. 3항의 ‘교구 사업 및 결산보고 접수, 사업계획 및 예산 승인’과 1항의 ‘선교 정책 심의 의결’은 구별되어야 한다.  선교 정책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일(1항)과 그 의결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교구 사업 계획과 예산을 통하여 실행이 되고, 그 실행 결과가 보고되는 일(3항)이 일관성 있게 연결되어야 한다. 선교정책 입안을 교구의 사무관리에 위임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교구의회가 선교정책의 주체가 되어, 상설화된 논의구조를 통해서 적극 의안을 마련하고, 신학적 소통을 통해서 심의하고 그 실행까지를 점검해야 한다.

교구의회를 앞두고 “기도를 통해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자”는 다짐은 마땅하고 소중하다. 이 때 기도가 저마다 속내를 감추는 침묵의 카르텔로 오인되면 곤란하다. 기도는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며 서로 정직하게 드러내고 함께 진지하게 풀어내는 공동식별의 과정이다. 교구의회를 통해서 교회의 발전을 위한 선교정책이 참된 기도를 통해 깊이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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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성공회신문 2016년 10월 29일자 제879호 사설

 

'인구 절벽'과 '신자 절벽'

 

한 사회의 정치경제적 전망에 대해서 여러 가지 분석과 대안이 가능하다. 인구학(人口學)의 관점에서,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소비와 생산의 흐름이 급격히 정체되며 생기는 사회경제적 위기를 ‘인구 절벽’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현상이 이미 심각하고, 쉽게 돌이키기 어려운 현실이므로, 잘 살펴 적절한 선택을 하는 일이 그나마 최선이라는 것이, 『정해진 미래』라는 책의 주장이다. 

우리 성공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선교 126주년의 역사는 첫 한국인 주교의 설교집 제목인 '한국땅의 십자가', '정의의 십자가', '평화의 십자가', '통일의 십자가'가 상징하는 바, 이 땅의 참된 교회가 되려는 노력이었다. 경제개발과 민주화의 요구에 부응했고, 한국 관구로서 독립한 이후 많은 성직자를 길러내며, 성공회대학교를 발전시키고, 나눔의 집을 시작으로 사회선교를 펼쳐왔다. 교회를 여럿 개척하고, 교단 내에 복음주의 운동과 영성운동을 열고, 이제는  평신도사역자 양성과 여성선교, 해외선교에까지 힘을 미치게 되었다.

갖은 노력으로 이룬 결실도 적지 않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하느님의 선교에 신실하게 참여하고 있지만, 동시에 가족주의와 국교회적인 전통에 갇힌 한계를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사회참여와 사회선교를 통해서 젊은 세대의 기대를 받고 있지만, 한편 신앙의 열정과 분명한 고백이 약하다는 평도 있다. 적은 교세로도 한국사회와 교회에 큰 영향력을 가진 모범적 교회이지만, 선한 뜻을 펼치기에 힘이 부치는 것도 사실이다. 장점과 강점은 자부심을 가지고 살려가고, 단점과 약점은 겸손하게 인정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어떨까? 현재로선 답이 없다. 10년, 20년, 나아가 30년, 50년 후에 우리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교회의 미래에 관한 진지한  염려와 대안의 모색은 현재 정리된 문서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까지 성직자와 신자가 최선을 다해 사목과 선교를 해왔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현재 신자 구성이 노년층이 많고 청년과 청소년층이 적은 불균형 상태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노년층이 많이 전도되거나 유입된 때문이 아니다. 청장년 시기에 교회를 세워 지켜온 이들이 그대로 노령화하고, 새로이 교회에 참여하는 젊은 세대는 적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우리 교회도 사회의 '인구 절벽'과 마찬가지로 ‘신자 절벽’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전례와 선교를 위해 봉사할 인력과 재원이 부족하여 활력을 잃게 되고, 현상유지 수준의 관리에 머물다 쇠퇴할 위험이 크다. 

현재 각 교구별로 다양하게 선교의 영역을 넓히며, 선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선교를 위한 성직자 인사와 재정 관리’에 관해서도 논의에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그러한 노력과 논의의 진정성과 적실성은 ‘성공회의 교인이 더 늘어나고 더 젊어질 가능성’을 어떻게 고려하는가로 알 수 있다. 기존의 교회와 교우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수준으로는 새로운 세대를 얻어 교회의 미래를 이어가기가 어렵다. 교회신앙의 신학적 정리, 전례의 일치와 개혁, 목회적 돌봄의 강화, 성직자와 신자사역자 양성 등 우리의 모든 노력은 ‘교회 밖에서 새로운 세대를 얻어서 성공회 신자로 양육한다’는 목적을 반드시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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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