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기쁨, 임마누엘의 은총이

이 땅 우리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마태 1:21)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가2: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 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요한1:14)

 

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2017년 12월 9일자 성공회신문 906호 사설

 교구 의회 대의원의 사명과 책임

 지난 11월 26일 대한성공회의 세 교구는 교구 의회를 마무리했다. 뚜렷한 선교 비전이 부족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동안 어지러웠던 교회의 중심을 잡고 서로 격려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그런데 회의 전반에 걸쳐 긴장감이 느껴졌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성공회의 주교직과 교구 의회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 서로 다른 이해가 드러났다. 간단히 말해서, 교회 사목과 선교 정책을 결정하는 권위가 주교직에 위임되어 있느냐, 아니면 교구의회 대의원의 합의로 세워지느냐의 문제가 미묘하게 부딪친 것이다.

대한성공회 헌장의 <교리와 전례와 관한 기본 선언>을 살펴보자. “대한성공회는 역사적인 교회로 사도직을 계승하며, 교회가 전통적으로 계승해 온 3성직(주교, 사제, 부제)을 교회의 기본 성직직제로 한다. 주교는 성서의 가르치심과 성교회의 규칙에 따라 교회의 사부로서의 권위를 가지며, 교회의 바른 신앙을 지키고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는 권한을 가진다.” 성공회 전통에서 교회의 권위는 주교직으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성공회는 주교와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하는 의회제도를 통해서 모든 일을 논의하고 결의한다. 교구의회의 권위는 신자의 주권을 모은 때문이 아니다. 평신도와 주교와 사제와 부제가 모두 함께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고 그 권위를 나누어 가지기 때문이다.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신자들이 대표를 세운 회의가 모든 일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성공회 전통이 아니다. 장로회 또는 회중교회의 전통이다. 성공회는 교구장 주교가 교회의 신앙 전통과 교구 의회에서 위임 받은 권위로 교구의 사목을 통할한다. 만약 주교직의 권위가 교구의회가 부여한 것이라면 그 교구의회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대의원들이 모여서 다수결로 부여했다고 답한다면 대의원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역시 신자들이 다수결로 부여했다고 말한다면 신자들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개인 신자들이 성서에 근거하여 자신의 믿음과 체험에서 권위가 나온다고 답하게 된다. 문제는 바로 이런 논리가 개신교 대형교회가 ‘목회자 세습’ 등을 결정하고 합리화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교회의 권위를 자신이 세운 권한에서 찾는 태도가 수많은 잘못의 뿌리가 된다. 성공회가 이런 논리를 거부함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주교직은 권위의 바른 위임과 수행으로만 바로 선다. 교회 전통과 교회공동체가 주교에게 위임한 사목적 권위를, 다시 주교는 합당한 직제와 질서 안에서 신자와 성직자에게 위임한다. 한 교구의 직무사제인 성직자는 주교직에서 사목의 권위를 나누어 받는다. 같은 주교직을 통해 신자는 세상 속의 사도직을 나누어 받는다. 보편사제인 신자의 제자직이다. 이렇게 위임 받은 권위로 현장에서 사목을 수행하며 거둔 경험과 지혜를 모으고 평가하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 교구의회의 목적이다.

의사(議事) 진행과 회무(會務) 처리로 대의원들의 역할이 끝나지 않는다. 의결(議決)한 내용과 과제를 지역 교회에 생생하게 전달해야 한다. 교구장 주교의 권위는 성직자와 신자 대의원을 통해서 교구 곳곳 사목의 현장에서 존중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주교를 통해 나눈 성직자와 신자 대의원의 소명과 책임이 지역교회에서 지속될 때 모두의 권위가 바로 세워지고 풍성한 선교의 결실을 거둘 수 있다. *

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2017년 11월 11일자 성공회신문 제904호 사설

선교를 위해 하나 되는 교구의회
 
교회력으로 한 해의 수확을 거두고 미래를 계획하는 시기이다. 11월에는 교구마다 의회를 열어 지금까지 사목 성과를 평가하고 새해의 사목 계획을 세운다. 서울교구는 새 교구장의 승좌를 계기로, 산적한 교구 행정 현안을 신속히 정리하고 내실있는 선교를 향해 신학과 체제를 정비하고 있다. 대전교구는 성직자와 신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신자교육을 강화하여 교회의 영성과 사목 역량을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산교구는 성직자와 신자가 하나 되어 ‘교회다움’을 회복하여 ‘교회의 다음’을 이어가려 애쓰고 있다. 통상 보고사항 처리와 사업계획 승인에 대부분 일정을 썼던 관행을 넘어서 정직한 현실 분석과 선교 대안을 고민하는 의회가 되리라는 기대가 아주 크다. 좀 더 선교를 위해 더 일치하여 알찬 결실을 맺는 교구 의회가 되도록 교회의 개념에 관한 신학적 성찰을 제안한다.

 

성공회가 말하는 교구(敎區, Diocese)는 한 주교가 관할하는 지역을 뜻한다. 이 교구가 교회의 기본 단위라는 인식이 성공회의 전통이고 신앙이다. 많은 신자는 한 사제가 관할하는 본교회(옛 전도구)가 훨씬 더 와닿는 교회의 단위라 생각한다. 교구가 교회의 기본단위라고 하면 생소하게 들린다. 역사에서는 행정 관리에 유용한 교구를 생각한 적이 있지만, ‘교구=교회'라는 말에 담긴 정말 중요한 핵심은 교회가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번된(보편적) 교회”라는 사실이다. 성공회 전통은 교구로 하나인 교회가 우리의 신앙 고백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교구장 주교는 교구로 하나인 교회의 사목을 통할하는 지위와 권한을 갖는다. 주교의 권위는 개인의 권력행사가 아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사명에 따라 사목(司牧)을 실천하는 일이다. 개별 교회가 모인 연합의 대표로 주교를 세운 것이 아니라, 애초에 교구 단위의 선교를 위해 마련된 주교의 자리를 이어오는 것이다. 주교직을 주교 개인의 독점적 권위로 이해한 오랜 관행은 심각한 왜곡이다. 마찬가지로 주교직을 단순히 상징적인 기능으로 이해하는 일도 큰 오해이니 바로 잡아야 한다. 교구가 교회의 기본 단위이듯 교구장 주교는 실제로 교회를 통할하며 무한책임을 지는 ‘순교 일순위의 사도 계승자’이다.

성공회의 의회제도는 관구에 따라 운영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 목적은 교구장 주교를 도와서 선교를 계획하여 다짐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아울러, 주교의 치리와 사목이 독선으로 흐르는 관행을 방지하도록 돕는다. 주교의 사목은 교회 공동체 신자 전체를 위해 펼쳐지고, 교회공동체 전체를 통해서 현실화되어야 한다. 교구 의회는 하나인 교회의 선교와 사목 수행에 필요한 일을 함께 식별하고 논의하며 기도한다. 주교와 성직자원과 평신도원을 구분한 취지는 분리된 개별 조직이 각자의 이해 관계를 주장하라는 뜻이 아니다. 한 교회 안에서 주교의 가르침과 감독, 성직자의 성실한 사목, 신자의 기쁨과 헌신을 드러내려는 뜻이다. 각기 다른 삶의 자리와 전문성을 반영하여 숙고하고 이를 다시 합하여 최선의 식별을 하라는 요청이다.
 
세 원(院)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각자의 주장만 관철하려 한다면, 교구 의회는 생산적인 선교 정책으로 힘을 모으기 어렵다. 성공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이다. 성공회 선교는 이 정체성 안에서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확인하여 실천하는 일로만 가능하다. 올해 교구 의회가 불필요한 갈등과 힘 없는 관행을 넘어서길 바란다. 오직 복음 전파와 선교 실천에서 모두 하나가 되는 교회로 나아가자.

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2017년 8월 26일자 성공회신문 제899호 사설

 

성공회의 위기를 깊이 성찰하고 회개하자

 

몇 년 사이에 부쩍 성공회가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교회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전해진다. 그런데 정작 그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차분히 살피는 자리는 충분했는지 되묻게 된다.

위기의 본질에 관한 성찰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성찰이 충분하지 않으면 정서적 불안감만 더 커지게 된다. 각자의 사명과 책임을 전제로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서로 남을 탓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수준을 넘기 어렵다.

신앙의 관점에서는 위기 자체가 아니라. 그 위기를 성찰과 회개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정해진 기준으로 나와 남을 정죄하는 일보다도, 위기 앞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기준을 함께 깊이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위기를 맞아 깊이 성찰하고 회개하면 회복과 갱신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성공회의 위기가 몇몇 인물의 잘못과 탐욕 때문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이제부터 그런 이들은 배제하고 치리와 운영을 잘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동체의 전체적 역량과 인식이 그런 잘못과 탐욕에 무능하고 무감각하다면 이는 정말 심각한 일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함께 깊은 성찰과 회개의 운동에 나서서 교회의 목적과 기준과 수단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성공회의 위기를 살필 때, 역할과 권한을 맡았던 이들에게 이유와 책임을 묻는 일은 당연하다. 분명한 비판이 있어야 마땅하고, 필요하면 비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의 치리와 운영에 관한 권한과 책임은 개인의 도덕성에 의지하는 수준을 넘는 문제다. 교단과 교구로서 운영하는 합리적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다. 동시에 우리 모두의 신앙과 영적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개별적 정죄에 머물지 않는, 교단 차원의 영적인 회개와 사역의 갱신이 필요하다.

교회 구성원의 대화에서 성공회의 위기가 성찰과 회개의 태도로 다루어지기 바란다. 신앙인의 대화가 수다나 뒷공론의 수준일 수 없다. 대한성공회가 위기라고 ‘누가’ 말하고 있는가? ‘무엇을 근거로’ 들고 있는가? ‘우리 자신’은 성공회를 이룬 지체로서 이 위기에 어떤 ‘책임’을 느끼고 있는가? 무슨 ‘대안’을 고민하고 있는가? 비판은 진중하고, 비난은 신중해야 한다. 함께 생각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성찰하고 소통해야 한다.

성공회의 여러 지표가 대체로 어두운 것은 사실이다. 사회적 영향력의 쇠락, 출석신자와 헌금액수의 감소. 신자 구성의 노령화, 다음 세대의 공백, 전입자의 정착률 저하 등등. 무엇보다 크고 시급한 과제는 신뢰가 깨지고 약해진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다. 교회위기의 원인과 이유를 살피고 대안을 말할 때에, 우리 각자의 책임과 각성과 결단의 내용이 꼭 들어있어야 한다. 각자의 진정한 성찰과 회개가 서로의 신뢰 회복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앙인과 신앙공동체의 성장과 발전은 언제나 위기상황에서 은총에 힘입은 성찰과 회개를 통해 이루어졌다. 성경과 교회역사의 증언이다. 위기를 깨닫는 일은 정직하고 지혜로운 일이고, 그로 인해 불안과 갈등에 사로잡힐 이유는 없다. 깊은 성찰과 회개를 통해서 서로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함께 교회를 새로 일으켜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2017년 7월 23일자 성공회신문 제897호 사설

 

비둘기처럼 양순하고 뱀처럼 슬기로운 교회

 

한국성공회의 교세는 크지 않다. 하지만 사람과 돈이 적다고 교회가 교회답지 못할 것은 없다. 대한성공회는 작은 교단임에도 독특한 영성과 활발한 사회선교로 한국교계와 사회에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작년과 올해에 걸쳐 서울교구의 사회선교현장과 임대사업에 과오와 의혹이 생긴 여파로 성공회의 자부심이 안팎으로 꺾이고 위축되는 상황이어서 많은 이들의 걱정과 상심이 크다. 무엇이 문제의 핵심일까? 몇 사람의 도덕적 일탈이 이유라면 차라리 해법이 간단하다. 그런데 문제가 한국성공회가 교회공동체로서 신뢰할 만한 수준인가에 관련된다면 이는 좀 더 깊고 정직한 성찰이 필요하다.

여전히 한국성공회에는 중도(Via Media)신학, 성육신(Incarnation)신학, 전례(Liturgy)와 성사(Sacrament)신학, 주교직과 의회제도(Episcopal and Synodical) 등 물려받은 자산이 풍요롭다. 작년 올해 불거진 사건 사고들은 성공회 신앙의 방향과 내용이 잘못된 탓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조직체의 의사결정과 집행과정이 합리적이지 않고 투명하지 않은 때문으로 파악된다. 이른바 경영적인 측면에서 조직운영이 위태로운 상태인 것이다. 신앙으로 살피면 교회는 하느님께서 몸소 세우시고 이끄시니 그 성장발전과 생멸을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모두 각자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현실 조직체로서의 교회 운영은 기도하고 예배하는 일과는 또 다르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와 집행구조가 있어야 하고 모든 일에 권한과 책임의 소재가 명확해야 한다.

우선 의회와 상임위와 각종 연수와 워크숍으로 모일 때마다 현안 토의와 병행하여 한국성공회의 목적과 목표에 관하여 확인이 필요하다. 교회의 사명 실현을 위하여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성공회 교단은 어떤 목적을 가지는가? 선교현장의 시공간 조건 속에서 분명하게 구체화된 목표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목표달성을 위한 각 지체들의 실천을 어떻게 끌어낼 것이며 그 일이 목표에 맞게 수행되고 있는 지 점검하고 평가할 기준은 무엇인가? 목적과 목표와 실행방도와 점검기준 등을 늘 살피고 세우고 고치고 공유해야 한다.

교회다움은 신앙의 명분을 선명하게 내세우는 것으로 다 되지는 않는다. 우선 교회공동체가 운영되는 기준이 합리적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 나아가 진정한 상호존중, 상호배려, 상호책임의 소통으로 최선의 식별과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즉 교회의 갈등해결의 방식과 능력이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 세상 물정을 모른 채 이상적 계획만 내고 결국 현실성이 뒤떨어져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면 이는 자랑이 아니라 허무맹랑한 일이 된다. 교회는 주님의 당부대로 비둘기처럼 양순하되, 뱀처럼 슬기로워야 한다.(마태10:16) 집짓기를 시작하기 전에 완공할 능력을 셈해봐야 하고, 전쟁을 치르기 전에 승산을 따져보아야 한다.(루가14:28이하)

발생한 사태의 본질을 교회가 파악하고 수습해 가려면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신앙의 관점과 공동체 신학의 관점, 그리고 조직 경영이라는 각각의 관점을 뒤섞지 말아야 한다. 각 관점을 구분해서 합리적인 논의와 결정을 해가야 한다. 의혹을 토대로 한 비난, 심정적인 공감과 동정, 예언자적 명분을 앞세우는 비판, 화해와 용서를 강조하는 태도가 다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두 잠깐씩 멈추어야 한다. 그 어떤 판단과 결정이라도 대한성공회가 이 땅에서 교회의 사명을 이루는 데에 어떻게 유익을 끼치겠는가를 깊이 살펴야 한다. 우리가 공유한 목적과 목표와 기준에 비추어 서로를 배려하며 대화하고 최선의 결과를 생각하며 판단해가야 한다.*

 

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