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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신학적 성찰로 “대오각성(大悟覺醒)”을!

성공회신문(2008년 6월 1일자) 논단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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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성찰로 “대오각성(大悟覺醒)”을!  

지난 5월 22일 서울교구 제5대 김근상 주교의 서품식을 보도한 기사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 이날 서울교구 초대 교구장을 역임한 이천환 주교(84)는 "한국성공회의 지난 수년간 상황은 잘못된 이념에 휩쓸려 우리 교회의 이미지가 심히 손상됐다"며 "무지한 세속의 평자들로부터 좌파사관학교로 지칭되는 수치를 두 번 다시 당하는 일이 없도록 대오각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조선일보 2008. 5. 22)>
 

이 시대와 교회에 대한 사랑이 가슴 아프도록 깊이 느껴지는 말씀이다.
다소 당혹스런 느낌도 없지 않으나 연로하신 주교님의 사심 없고 용기 있는 말씀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간절히 당부하신 “대오각성”의 방향과 내용이다. 설교 중에 짧게 언급된 탓에 아쉽게도 그 방향과 내용에 관하여 신학적인 권면이 자세히 제시되기는 어려웠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일체의 대사회적인 관심을 끊고 “영혼구원”에만 매진해야 하는 것일까? “교회성장”을 제일의 과제로 삼고 이른바 “뉴라이트”의 입장을 가져야 할까? 지금까지 이어 내려온, 그리고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할 성공회의 이미지는 과연 어떤 것일까? 성경의 정신과 성공회 전통 속에서는 어떤 원칙과 교훈을 찾을 수 있을까? 향후 더 깊은 논의가 치열하고 정직하고 겸손하게 신학적 성찰과 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논란에 공연히 마음 상할 필요는 없다. 성공회는 무슨 정치단체가 아니라 성서적 신앙과 사도적 계승을 자부하는 정통교회다. 성공회의 정치색을 시비하는 이들에게 성공회가 당연히 정치적으로 특정한 입장이 아님을 해명하는 것은 사실 이미 어이없고 소용없는 일이다. 신앙적 추구가 아닌 부적절한 논의에 휘말려 불필요한 변명을 요구당하는 셈인 것이다.  

그리스도교 복음의 대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전해진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적 사랑이다. 교회의 본분은 이 세상에서 그 복음을 살고 전함으로서 하느님나라를 증언하고 선취(先取)하는 일이다. 한 분 하느님의 사랑의 통치에 모든 인간적 아집과 장벽을 허물고 일치와 평화를 이루는 “하느님나라”와 이를 위한 교회의 사명을 인간들의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좌파, 우파의 기준으로 설명해야 하겠는가? 이주교님의 표현대로 “무지한 세속의 평자”들은 자유로이 성공회를 비평할 수도 있겠다. 자신의 세속적 정치성향을 기준으로 성공회 신자가 되거나 말거나 결정하겠다는 태도는 매우 유감스럽지만 근본적으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거룩한 교회의 책임있는 주체”인 우리 성직자, 수도자, 신학자와 신자들이 스스로 성공회공동체에 관하여 어떤 신학적인 정체성과 비전을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어떤 선교사목을 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정리하고 반성하는 일이다. 이 땅의 양심적 지성인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우리 교회의 구원론, 교회론, 선교신학이 제시되어야 한다. 종종 애매모호한 태도가 성공회의 특징으로 거론되지만 그것이 신학 없고, 원칙 없고, 입장 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솔직한 고민은 이것이다. 오늘 우리 성공회는 과연 복음의 빛으로 우리의 현실과 시대정신을 비추고 있는가? 향후 50년, 100년 후에 우리 성공회는 이 시대 이 사회를 위하여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고 실천하였다고 평가될 것인가? 세속의 눈치를 보며 꿀먹은 벙어리로 지낼 때가 아니다. 다함께 깊은 기도와 신학적 성찰로 “대오각성(大悟覺醒)”할 때이다. (임종호 신부/분당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