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구게시판에 우리 성공회의 정체성에 관해 논의가 있곤 합니다.
최근 올라온 글 가운데 깊은 공감이 가는 댓글 하나를 옮깁니다.
전체논의를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skh.or.kr/bbs/view.php?id=Board&page=1&page_num=20&select_arrange=headnum&desc=&sn=off&ss=on&sc=on&keyword=&no=5507&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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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 ( 2008-11-07 21:24 ) [삭제]

우리가 스스로 성공회에 대해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를 어느 지고의 정신으로 상정하고 지켜내야 하는 어떤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사실 성공회 만큼 다방면의 신앙적 주제에 대해서 용인하는 교단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공회의 정신을 Via Media 곧 중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용은 그 스스로 한계를 분명하게 노정하고 있습니다. 자칫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모호하게 하는 측면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성공회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라는 개념을 만든 것 아니겠습니까. 보이는 교회는 완벽하지 않으나 보이지 않는 교회, 즉 머리된 예수님의 몸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인 만큼 정체성이 분명한 어떤 완전체라는 것입니다. 보이는 교회는 분열하고 다양한 주의주장 혹은 다양한 신앙적 양태를 지닐 수 있고 이로 인해 실수를 범합니다. 성공회는 스스로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수하고 바로잡고 다시 실수하는 역사를 반복하면서 전통을 새로 세우고 보이지않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몸된 교회를 지향합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일어날 수 있는 실수에 대한 지적과 오류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전통에 대한 끊임없는 해석을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전통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관용의 정신을 자타에 모두 동시에 대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만 옳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부족한 교회의 지향점에 대해서 지적은 지난한 토론을 통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 즉 보이는 교회의 책임입니다.  

요컨데, '성공회는 이것이다'라는 단정적인 주장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도상, 삶의 자리 한 가운데 성공회는 서 있을 따름입니다. 변화를 용납하는 만큼 급격한 변화 보다는 한걸음 한걸음이 더딘 것입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 중에 '성공회가 개신교냐' 혹은 '성공회가 천주교회를 따라가야 하냐'라는 주장은 그래서 어리석은 단정론입니다. 물론, 급격한 변화에 대해서 한 숨 고르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과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도 성공회적이지 못합니다.  

다른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 성공회에 입교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은 얼마가 지나야 '성공회인'이 되는 것입니까? 누가 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까? 왜 한 세대를 '새신자'로 살고 나서야 겨우 '성공회' 정체성을 획득하는 우스운 결과를 계속 만들어 내는 지 안타깝습니다.  

성공회의 선교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복음주의적 열광주의도 아니고, 고교회적인 전통주의도 아닙니다. 실제 가장 큰 장애물은 새로 입교한 교우를 이방인으로 남겨두는 어리석음입니다. 다른 교단에서 입교한 교우는 큰 결단을 내린 만큼 자의식이 강할 수 있습니다. 뭔가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성공회 교단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염원합니다. 그런 자의식이 상쇄될 때, 좌절될 때 성공회를 다시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완벽하다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신앙적 지향을 가진 교우를 '성공회적'이지 않다는 모호한 말로 상처주는 일을 이제는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만, 성공회사의 지난한 교회사의 과정을 설명해 주고 공교회로서의 자부심을 갖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공회 안의 복음주의 모임도 고교회 전통에 대한 어리석은 공격을 멈춰야 합니다. 전통은 그리 쉽게 바뀔 수 있는 낡고 때묻은 외투가 아닙니다. 이시대 훌륭한 복음전도자이자 성공회 개혁주의자였던 웨슬리 형제도 성공회 기도서로 대표되는 전통을 옹호하였습니다. 그 정신을 본 받아야 합니다.  

성공회는 발전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성공회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람베스 회의로 대표되는 회의도 분열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발전과 일치를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한국의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로마교회도 근본주의적 복음주의도 성공회의 대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로마교회와 복음주의와 함께 성공회는 성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극단적으로 사유화가 불러오는 한국개신교회의 오류를 우리는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맹목적인 교황주의로 치닫고 있는 근본주의 로마교회의 오류를 또한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의 길, 성공회 전통의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실 세계 성공회는 극단적 양단의 사이에서 그리스도교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교리주의로, 교회법으로 굳어져버린 양극단에게 대안, 혹은 윤활유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는 우리가 누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두려워하지도 성가셔하지도 어색해하지도 숨막혀하지도 맙시다.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누립시다. 함께 누립시다. 용납하는 가운데 누립시다. * 

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