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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1년도설교초록

2011년 4월 10일 (사순5주일) 감사성찬례 성서정과


2011년 4월 10일 사순 5주일 성서말씀

에제 37:1-14

1 야훼께서 손으로 나를 잡으시자 야훼의 기운이 나를 밖으로 이끌어내셨다. 그래서 들 한가운데 이끌려 나가보니 거기에 뼈들이 가득히 널려 있는 것이었다. 2 그분이 나를 그리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들바닥에는 뼈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모두 말라 있었다. 3 그분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것 같으냐?" 내가 "주 야훼여, 당신께서 아시옵니다." 하고 아뢰니, 4 그분이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마른 뼈들아, 이 야훼의 말을 들어라. 5 뼈들에게 주 야훼가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리라. 6 너희에게 힘줄을 이어놓고 살을 붙이고 가죽을 씌우고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야훼임을 알게 되리라.'"
7 나는 분부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다. 내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뼈들이 움직이며 서로 붙는 소리가 났다. 8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뼈들에게 힘줄이 이어졌고 살이 붙었으며 가죽이 씌워졌다. 그러나 아직 숨쉬는 기척은 없었다. 9 야훼께서 나에게 또 말씀하셨다. "숨을 향해 내 말을 전하여라. 너 사람아, 숨을 향해 내 말을 전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숨아,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죽은 자들을 스쳐 살아나게 하여라.'" 10 나는 분부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다. 숨이 불어왔다. 그러자 모두들 살아나 제 발로 일어서서 굉장히 큰 무리를 이루었다.
11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다. 뼈는 마르고, 희망은 사라져 끝장이 났다고 넋두리하던 것들이다. 12 이제 너는 이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 땅으로 데리고 가리라. 13 내가 이렇게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무덤에서 끌어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야훼임을 알게 되리라.
14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려내어 너희로 하여금 고국에 가서 살게 하리라. 그제야 너희는 나 야훼가 한번 선언한 것을 그대로 이루고야 만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야훼가 하는 말이다.'"

로마 8:6-11

6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

7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느님의 율법에 복종하지도 않고 또 복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원수가 되고 맙니다. 8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9 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10 비록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이미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은 살아 있습니다.
11 그리고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신 당신의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죽을 몸까지도 살려주실 것입니다.

요한 11:1-45

1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가 사는 베다니아 동네에 라자로라는 병자가 있었다. 2 앓고 있는 라자로는 마리아의 오빠였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린 적이 있는 여자였다. 3 마리아와 마르타는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앓고 있습니다." 하고 전했다.

4 예수께서는 그 전갈을 받으시고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으로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아들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 예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고 계셨다. 6 그러나 라자로가 앓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서 더 머무르시다가 이틀이 지난 뒤에야 7 제자들에게 "유다로 돌아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이 "선생님, 얼마 전만 해도 유다인들이 선생님을 돌로 치려고 하였는데 그 곳으로 다시 가시겠습니까?" 하고 걱정하자 9 예수께서는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낮에 걸어다니는 사람은 세상의 빛을 보기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10 그러나 밤에 걸어다니면 빛이 없기 때문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하시며 11 이어서 "우리 친구 라자로가 잠들어 있으니 이제 내가 가서 깨워야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12 그러자 제자들은 "주님, 라자로가 잠이 들었다면 곧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13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라자로가 죽었다는 뜻이었는데 제자들은 그저 잠을 자고 있다는 말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14 그래서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라자로는 죽었다. 15 이제 그 일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내가 거기 있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 곳으로 가자."
16 그 때에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가 자기 동료인 딴 제자들에게 "우리도 함께 가서 그와 생사를 같이합시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 보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난 뒤였다.
18 베다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오리밖에 안 되는 곳이어서 19 많은 유다인들이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마르타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타는 마중을 나갔다. 그 동안 마리아는 집 안에 있었다.
21 마르타는 예수께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주실 줄 압니다." 23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24 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5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26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타는 27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이 말을 남기고 마르타는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귓속말로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고 일러주었다. 29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달려갔다.
30 예수께서는 아직 동네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타가 마중 나왔던 곳에 그냥 계셨던 것이다. 31 집에서 마리아를 위로해 주던 유다인들은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그가 곡하러 무덤에 나가는 줄 알고 뒤따라 나갔다. 32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곳에 찾아가 뵙고 그 앞에 엎드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예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34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들이 "주님, 오셔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36 그래서 유다인들은 "저것 보시오. 라자로를 무척 사랑했던가 봅니다." 하고 말하였다. 37 또 그들 가운데에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라자로를 죽지 않게 할 수가 없었단 말인가?" 하는 사람도 있었다.
38 예수께서는 다시 비통한 심정에 잠겨 무덤으로 가셨다. 그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 39 예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자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그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
40 예수께서 마르타에게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하시자 41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2 그리고 언제나 제 청을 들어주시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여기 둘러선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43 말씀을 마치시고 "라자로야, 나오너라." 하고 큰소리로 외치시자 44 죽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45 마리아를 찾아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본기도>
생명의 하느님, 성자 예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에게 성령의 참 자유를 주시어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일생 거룩한 생활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죽음이냐, 믿음이냐 (요한 11:1-45)

죽음은 두려운 신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호흡을 잃고 차디찬 시신을 변하는 일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좌절입니다. 그것이 나 자신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님은 가슴 서늘한 진실이요 받아들이기 어려운 두려움입니다.

죽음을 모면하게 해준다는 부적과 푸닥거리가 성행합니다. 영생교를 만들어 사기치던 교주는 감옥에서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의학기술의 발전을 기대하며 냉동인간이 되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입니까?

오늘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라자로가 죽을 뻔한 위기상황을 예수님의 도움으로 모면했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도리어 예수님은 사랑하는 친구 라자로가 죽기를 기다리신 후에 선언합니다. “라자로는 죽었다. 이제 그 일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내가 거기 있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곳으로 가자.”

그리고 마르타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 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는 말씀입니다.
라자로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라자로야, 나오너라!” 한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은 주문이나 부적이 아니고, 초자연적 “뻥”도 아닙니다. 불행을 모면하고 행운을 누리는 일이 목적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아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그 일, 그 사랑 안에서 살고 죽는 일입니다.

믿음은 죽음을 모면하는 일이 아니라 도리어 죽음을 대면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셨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마르타, 마리아와  우리들의 소박한 믿음이지만, 예수님은 그보다도 더 깊은 차원의 믿음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예수님은 죽은지 나흘이나 된 라자로의 시신을 두고 마르타에게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있든 죽어있든 하느님은 우리를 “살리시는”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덕분에 살아있고 하느님을 모시고 살아가며 하느님 안에서 영원하리라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은 라자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죽이자고 결의합니다. 그들은 “살리시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체제유지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살리시는 하느님”을 전하는 예수님을 보란듯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리하여 결정적인 “부활사건”이 일어납니다. 죽음의 문제는 생명연장이나 생명소생이나 영혼불멸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살리시는” 분임을 믿고 경험하고 실천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그 “죽음”을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입니다. 그리하여 “부활이요 생명”이 되신 것입니다.✠

<강론초록2>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실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저는 많은 이들의 마지막 길을 떠나보내 드렸고, 그 영혼의 안식을 위해 기도를 바쳐드렸으며, 남은 이들을 위해 죽음에 대하여 설교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저는 프란시스 성인의 경지처럼 “나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내 형제 죽음이여”라고 죽음을 정답게 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은 여전히 만나고 싶지 않은, 낯선 얼굴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인의 목소리도 웃음도 따스한 손길도 사라집니다. 생기가 사라진 시신은 굳어지고 썩어지며 어두운 땅에 묻히거나 불꽃 속에 스러져 재로 변합니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요? 죽은 이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죽음이 별로 무섭지 않다는 이도 꽤 있습니다. 그들을 부러워하다가 문득 어쩌면 그들은 삶 자체도 별로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겁 없음이 삶과 죽음의 참뜻을 통찰한 때문이 아니라 고작 아무 생각 없는 무신경함에 가까운 것이라면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이들일 것입니다.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만큼, 삶을 귀하게 여기고 주님을 의지하게 됨을 감사합니다. 아마도 제가 죽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의지하는 일에 게을렀을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새록새록 이 말씀의 능력과 사랑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우리의 삶과 죽음, 운명의 모든 것을 다 하느님께 내맡기기로 하였습니다.

어린 아기의 생글거리는 웃음을 보며 물어봅시다. “아가야, 너는 도대체 어디서 왔니?” 그리고 이제 구십을 넘기신 노인께도 여쭈어보십시다. “어르신, 이제 세상을 떠나시면 어디로 가시게 됩니까?” 도대체 그 누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유일한 답은 우리의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믿음만이 우리가 주님께로 와서 주님께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생명의 완전한 주관자이시기에, 우리의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 주님은 이 믿음을 두고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셨습니다. 주님,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부활을 소망하게 하옵소서! ***

<강론초록3>
                                            영이 살아있어야 생명입니다

우리는 예외없이 죽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죽음을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낯선 것으로 여겨 멀리 하고 그 실상을 부인하려고합니다. 삶을 만끽하는 자리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로 금기이지요.

그러나 죽음은 삶의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은 달리 말하면 하루 하루 죽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부인하고 회피하는 것보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것이 결코 체념이나 굴복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죽음은 우리를 압도하는 절대적 권세일 수 없습니다.  “죽음도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권능을 확신하므로 의연하게 죽음을 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 스스로를 육신의 존재만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로 깨닫는 일이기도 합니다.

“비록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이미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은 살아 있습니다”(로마8:10).

육신이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것보다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영이 살아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있다는 것은 영이라는 실체가 불멸이라는 영혼불멸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다는 것, 즉 우리가 성령을 모시고 산다는 것, 곧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이고 그 때에는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이 우리를 죽음에 버려두지 않고 다시 살리시리라는 것을 믿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