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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3년도설교초록

2013년 2월 13일 재의 수요일(사순첫날) 성찬례 성서말씀

 

2013년 2월 13일 재의 수요일(사순첫날) 성서말씀

/드로테아(순교자, 303년경)

 

요엘 2:1-2, 12-17  또는 이사 58:1-12

1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떨도록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보를 울려라. 야훼께서 거둥하실 날이 왔다.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
2 어둡고 음산한 날, 짙은 구름이 덮인 깜깜한 날, 산들이 까맣게 수도 없이 많은 무리가 덮쳐온다. 이런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천만대에 이르도록 이런 일은 다시 없으리라.
12 "그러나 이제라도, 야훼의 말이다, 진심으로 뉘우쳐 나에게 돌아오너라. 단식하며 가슴을 치고 울어라." 13 옷만 찢지 말고 심장을 찢고 너희 하느님 야훼께 돌아오너라. 주는 가엾은 모습을 그냥 보지 못하시고 좀처럼 노여워하지도 않으신다. 사랑이 그지없으시어 벌하시다가도 쉬이 뉘우치신다. 14 혹시 마음을 돌이키시어 재앙을 거두시고 복을 내리실지 그 누가 알겠느냐? 너희 하느님 야훼께 바칠 곡식과 포도주를 내려주실지 그 누가 알겠느냐?
15 시온 산 위에서 나팔을 불어라. 단식을 선포하고 성회를 열어라. 16 백성을 불러모으고, 거룩한 대회를 열어라. 노인들을 불러모으고 어린이들을 모아들여라. 젖먹이도 오라고 하여라. 신혼 부부도 신방에서 나와 모이게 하여라. 17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를 오가며 야훼를 섬기는 사제들아, 울며 빌어라. "야훼여, 당신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당신의 유산으로 삼으신 이 백성이 남에게 욕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너희 하느님이 어찌 되었느냐?'며 손가락질받지 않게 하여주십시오."

 

시편 51:1-7

1 하느님, 선한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어지신 분이여, 내 죄를 /없애/주소/서.
2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 잘못을 깨끗이 |없애|주소|서.
3 내 죄 내가 알고 |있으|며 ∥ 내 잘못 항상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
4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만 죄를 지은 몸, ∥ 당신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한 |이 몸|입니|다.
벌을 내리신들 할 말이 있으|리이|까? ∥ 당신께서 내리신 선고, 천번 만번 |옳습|니-|다.
5 이 몸은 죄 중에 태|어났|고, ∥ 모태에 있을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습니|다.
6 당신은 마음 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니 ∥ 지혜의 심오함을 나에게 |가르|치소|서.
7 정화수를 나에게 뿌리소서, 이 몸이 깨끗해지|리이|다. ∥ 나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게 |되리|이-|다.
영광이 |성부|와 ∥ 성|자와|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 그리고 영|원히,|아-|멘

 

2고린 5:20-6:10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그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이것은 결국 하느님께서 우리를 시켜 호소하시는 말씀입니다.
21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로부터 무죄 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2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자비를 베풀 만한 때에 네 말을 들어주었고 너를 구원해야 할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우리가 하는 전도 사업이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4 우리는 무슨 일에나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일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난과 궁핍과 역경도 잘 참아냈고 5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잘 겪어냈으며 심한 노동을 하고 잠을 못 자고 굶주리면서도 그 고통을 잘 견디어냈습니다.
6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끈기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성령의 도우심과 꾸밈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능력으로 살고 있습니다. 두 손에는 정의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언제든지 하느님의 일꾼답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고 9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것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또 아무리 심한 벌을 받아도 죽지 않으며 10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 6:1-6, 16-21(또는 요한 8:1-11)

1 "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2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3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그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5 "기도할 때에도 위선자들처럼 하지 마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얼굴에 그 기색을 하고 다닌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17 단식할 때에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18 그리하여 단식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19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20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가지도 못한다. 21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지으신 만물을 극진히 사랑하시며, 죄를 통회하는 모든 이를 용서하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가 진심으로 통회하여 탐욕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온전한 구원을 바라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인간은 이중적인 존재입니다. 성서적인 표현으로 하면 흙으로 지어졌지만 하느님의 입김이 불어넣어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육신으로 살다가 죽는 유한한 생명이지만, 영혼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표현은 영혼이 불멸이어서 죽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는 영이신 하느님 앞에서 영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영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이고 우리 영의 모상이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마에 재를 바르며 “인생아 기억하라,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선언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인생의 허무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렇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선언은 인생의 허무함을 강조하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육신의 한계, 즉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허무함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생을 일장춘몽, 본래 허망한 것이다 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참된 본질은 단순한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그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로서 하느님과의 영적인 교류 속에서 진정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우리는 흙덩이에 불과하다는 이 통찰, 하느님을 떠나서는 우리는 살아있어도 이미 죽은 것과 같다는, 하느님이 아니고는 그 무엇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 하느님 없이는 우리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 통찰이 귀한 것입니다. 동시에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흙덩이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로서 육신의 죽음을 넘어서서, 이기적인 자기를 넘어서서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위대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재를 받으며 기억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하느님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되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 인정받는 백성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앞으로 40일 동안 우리가 계속 되새겨야 할 진리가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이것은 머리로 생각해낸 추상적인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삶을 통해서 실제로 경험하는 하는 진실입니다.

우리가 잘난 체하며 내 뜻대로 인생을 살아보려고 합니다. 지식을 쌓고 돈을 벌고 권세와 힘을 추구하고 명예를 얻으려고 애씁니다. 많은 경우는 그것들을 추구하는 경쟁에서 밀려나 좌절하기도 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겼다하더라도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을 알게 됩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나머지 모든 필요한 것은 아버지께서 채워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말씀들은 억지로 지어낸 훈계가 아닙니다. 인생의 본질이 그러하기에 마땅히 그러해야한다고 말씀 할 뿐입니다.

 

우리 인간이란 흙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동시에 영으로 살림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유한한 육신을 지니고 이 세상의 한계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우리는 반성하고 기도하는 정신, 자기를 초월하는 정신을 가지고 영이신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차원 높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죄의 본질은 이런저런 구체적인 범죄 이전에 하느님 없이 내 뜻대로 인생을 성공하려는 태도입니다. 유혹의 본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대신하여 다른 것을 통해 인생을 누리려는 마음가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화해하여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찬미하올 우리 하느님은 우리와 같이 변덕스런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변함없이 신실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한 해가 바뀌어서 또 우리가 결심을 새롭게 하여서 새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새로움은 하느님께서 날마다 하루의 생명을 새로 허락해주시고
우리가 다시금 시작하려는 노력을 축복해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위태위태한 삶 가운데서도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보장되는 것을 깊이 깨닫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