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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CI(Church Identity)가 필요하다


                             CI(Church Identity)가 필요하다

 성공회(聖公會)는 명품교회(名品敎會)다. 따로 논증이 필요할까?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공감하는 인식이다.

 성공회는 극단에 치우치거나 독선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으며 균형 잡힌 태도로 복음의 가치를 충실히 살고 전한다. 초대교회로부터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종교개혁의 정신을 수용하는 “개혁하는 보편교회”(reforming catholic church)이다. 말씀과 성사의 균형을 이룬 아름다운 전례를 지킨다. 역사적 주교직과 함께 평신도가 참여하는 의회제도를 통하여 신권(神權)과 민주(民主)의 조화를 이룬다. 1억 신자수의 세계교회이면서도 획일도 분열도 아닌 일치의 공동체(Anglican Communion)를 이룬다. 성공회는 관념적이고 교리적인 구원을 전하는 일에 머물지 않고 당대 현실의 인간 삶과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해 헌신하는 교회다. 사실 영어권에 토대를 두고 발전한 성공회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 전파된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교회는 직접 간접적으로 성공회와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와 한국교회 내에서 대한성공회는 현실적으로 소수그룹, 마이너리티다.
비그리스도인들이 상공회의소나 성서공회와 혼동하는 것은 그렇다 해도, 명색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들마저 “혹시 이단(異端)아니냐?”고 되묻기 일쑤다. 좀 유식하다는 사람이 “아, 성공회 알지. 거 헨리 8세가 이혼하려고 만든 교회잖아?” 하는 반응이다. 물론 한국사회와 교회 전반의 교양과 신학 수준이 천박함을 한탄하며 탓할 수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한국사회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대상이고 그 한국교회가 우리가 협력할 형제교회들이라는 것이다. 이 땅의 사람들이 성공회를 잘 모르는 일은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한국사회와 교회를 위하여 극복되어야 할 문제다. 교파로서의 성공회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다. 이 땅을 복음화하는 과업에 성공회적인 고민과 태도를 이해하는 일은 매우 소중한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앉아서 푸념하고 남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가 우리 성공회의 존재와 매력을 알리려고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반성을 전제로 관구와 교구차원에서 대한성공회의 CI 작업을 추진할 것을 강력히 제안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CI란 “Corporate Identity”의 약자로서, 통일된 기업(조직,단체)의 이미지, 문화, 미래의 모습과 전략 등을 일컫는 용어이다. 우리가 이미 여러 기업들의 사례를 경험하며 인지하고 있거니와 CI는 그 기업의 사회에 대한 사명, 역할, 비전 등을 명확히 하여 기업 이미지나 행동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외적으로는 좋은 이미지의 인지도를 높이고 대내적으로 스스로의 존재의의를 인식시키는 것이다. CI는 여러가지 시각적인 요인(Visual Identity)을 기본으로 하지만, 기본이념이나 윤리(Mind Identity), 구체적 활동(Behavior Identity) 등도 복합적으로 포함한다. 

 
이러한 “Corporate Identity”(“Church Identity”)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오늘 우리 성공회의 낮은 인지도를 걱정하는 우리에게 대외적으로 성공회를 알리는 통일된 이미지가 있는가? 오늘 선교에 나서는 우리에게 성공회의 정체성에 기반을 둔 신학이나 교회문화나 선교전략이 있는가? 우리 성공회 사람들 스스로 한국 성공회의 정체성에 관하여 분명하게 정리된 이해가 있는가? 성공회 신자로 살아가는 자부심에 대하여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전문회사에 CI작업을 의뢰하면 적어도 반년 이상의 기간과 1억원 상당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한다.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하지만 참으로 필요한 일이라면, 우리 성공회 내에서 관심과 열정 있는 이들이 함께 힘을 모아 CI 작업에 달려들어 끝까지 이루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 (임종호 사제/ 성공회신문 2008년 2월 3일자 논단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