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삿포로에서 듣보고 생각하며 (옮김)

원본출처: http://user.chol.com/smarty/bbs/bbs.php?page=&id=jakob&db=mainbbs&s_category=&s_type=&s_keyword=&p=view&uid=8

삿포로에서 듣보고 생각하며
김 동소(대구가톨릭대 교수, 국어학)


■일본 성공회 성당
온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똑같은 하느님을 믿고 있다. 20억 이상의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12억 이상의 이슬람교 신자들, 그리고 2천만 명 정도의 유대교 신자들. 그들은 각각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신자들은 '야훼' 또는 '여호와', 이슬람교 신자들은 '알라'라고 부른다지―동일한 유일신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일신은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할 것'을 가장 큰 계명으로 주신 분이다. 그런데 그 '사랑'을 가장 큰 계명으로 주신 분을 믿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서로를 미워하며 싸우는 것일까? 더군다나 그들이 믿는 종교 때문에 서로를 무자비하게 죽이고 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세계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절반은 하느님을 주로 '야훼'라고 부르는 로마 가톨릭교(동양식으로는 천주교) 신자들이고, 나머지는 주로 '여호와'로 부르는 프로테스탄트(한국식으로는 개신교) 신자들이다. '야훼(Jahveh)'나 '여호와(Jehovah)'나 똑같은 대상의 명칭이고, 이것은 어떤 이름의 모음(母音)을 바꿔 넣는 히브리어의 언어적 기교에서 비롯되어 달라진 이름일 뿐인데, 이 이름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반목과 미움이 있어 왔던가!

각설하고, 나는 할아버지 때부터 천주교를 믿어 온 집안에서 자랐다. 어른이 될 때까지만 해도 천주교 아니고는 구원도 희망도 없는 것으로 교육받았고, 또 그렇게 믿어 왔다. 천주교 신자 수가 전세계에서 단일 종교 교파로는 가장 많은 것을 알고서 나의 종교에 대한 긍지는 더욱 커졌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 연민의 정까지 가졌었다.

그랬는데, 이 곳 삿포로에 와서부터 나는 성공회 성당에 나가 미사(이곳 말로는 聖餐式)와 기도회(이곳 말로는 禮拜會)에 참례하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몇 번 성공회 성당을 찾은 적이 있긴 했지만, 여기 와서 이렇게 본격적으로 성공회로 가는 이유는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숙소로 머물고 있는 홋카이도 대학 게스트 하우스인 포푸라 관(Poplar House) 바로 옆에 성공회 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곳 삿포로에 와서 천주교 성당엘 세 군데 가 봤는데, 두 군데는 너무 멀어서 지하철을 타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걸어서 20분쯤 걸리는 프란치스코회 성당은 일본에서는 드물게 미사 참례자가 많아 정이 붙지 않았다. 천 명이 넘는 신자들이 몰려 미사를 하는 한국 천주교 성당 같은 분위기보다 좀 소박한 곳을 찾고 있었는데, 이곳 성공회 성당이 딱 마음에 들었던 것이라 할까…….

이 곳 성공회 성당의 정식 이름은 '삿포로 그리스도 교회(札幌キリスト敎會)'. 주교좌(主敎座) 성당인데도, 주일 미사 참례자는 가장 많았던 지난 부활절 날(4월 11일) 180명, 평소 주일 미사는 30명 정도. 그리고 미사는 평일은 물론 주일날도 한 번(아침 10시 반)밖에 없고, 상주하는 성직자도 주교님 한 분과 곧 사제가 될 성직 후보생 한 사람뿐이다. 기도회가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5시 반에 있는데, 여기 참석자도 늘 서너 명뿐. 이래 가지고 교회가 유지될까 염려스럽기도 했는데, 그래도 지난 부활절 날 헌금 들어온 것을 보니까 이것 저것 합해서 210만 엔 정도 되었고, 보통 주일날도 20만 엔 정도가 되어서 좀 놀라웠다. 대구의 내가 나가던 성당은 신자가 8천 명이나 되는데도 주일 헌금과 교무금(개신교의 십일조)을 합해 매주 8백만 원 정도였으니까……. 일본 성공회 신자들이 헌금에 적극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회 성당의 분위기와 예식은 천주교의 그것과 크게 다른 바 없다. 다르다면 우선 성당 안 중앙에 십자가(그것도 예수의 몸이 없는 개신교식 십자가)가 한 개 있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성상도 성화도 없다는 점. 천주교 성당이라면 필수적으로 있을 14처(예수의 고난과 죽음 과정의 14개 사건) 그림도, 성모상을 안치해 둔 곳도 없다. 그러나 성체를 모셔 둔 감실과 제단은 천주교와 같아서 나에게는 친숙했고, 또 한국 성공회 성당과는 달리 제단의 방향이 신자들 쪽으로 향해 있어서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의 방식으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했다. 로마 교회의 바티칸 공의회 결정이 성공회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된다. 10년 전, 중국의 애국 교회 성당에 갔을 때에도 제단이 신자 쪽으로 돌려져 있음을 보고 감명을 받은 일이 생각났다.

성체 분배 역시 바티칸 공의회 이후 방식으로 사제가 신자들의 손에 얹어 주는데, 전신자가 성혈과 함께 배령하는 양형 영성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성공회 신자도 아니고 해서 영성체는 안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자 회장 되는 분이 상관없으니까 영성체를 하라고 자꾸만 권하기에 나도 성체와 성혈 모두를 배령했다. 성혈 배령은 사제가 성작을 신자 입에 대어 주어 마시게도 하고, 신자가 먼저 받은 성체를 자기 손으로 성혈에 찍어 배령하기도 했다. 성공회 교리서에는 로마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를 모두 지키고 있다고 되어 있는데, 아무리 둘러 봐도 성당 안에는 고해소가 보이지 않고 고해 성사를 보는 사람도 없었다.

성공회라고 하면 고등학교 때 세계사 시간에 배운 대로 영국 헨리 8세(1509∼1547)의 이혼 문제로 로마 교황과 결별을 고한 후 만들어진 교회로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그랬고, 많은 한국인들이 이 성공회에 관해서 다소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성공회 사제들이 결혼도 하고, 결혼한 사제가 주교도 될 수 있게 된 데다가, 최근에는 동성애자 신부가 주교로 서품되었다는 보도도 있어서, 보수적인 천주교 신자들은 성공회를 마치 타락한 교회처럼 바라보는 면도 없지 않았다. 그랬는데, 얼마 전부터 나는 이 성공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로 영국 교회가 로마와 분리된 것은 사실이지만, 영국은 이미 그 전부터 반 로마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나라였다. 14세기에 옥스퍼드 대학의 석학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는 로마 교회의 명령을 무시한 채,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여 유포시켰고, 이로 인해 그는 그 추종자들과 함께 체포·처형되었다. 그 후 위클리프의 후계자였던 윌렴 틴들(William Tyndale, 1492∼1536)은 독일에서 성서를 영역하여 영국으로 밀수해 들여왔고, 영어 성서는 로마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널리 읽혀 영국민의 성서에 대한 지식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의 국왕 헨리 8세는 틴들을 체포해 처형하고 마르틴 루터를 격렬히 비판했기 때문에 로마로부터 '신앙의 옹호자'라는 칭호를 얻기까지 했으나, 이 시기 영국에 널리 퍼져 있던 로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파악하고, 자신의 이혼 문제도 생겼기 때문에, 로마를 등진 후 스스로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되었으며 마침내 틴들이 번역한 영어 성서를 공인하게 된다. 그리고 영국민 사이에 퍼진 '성서로 돌아가자.'는 이념과, 이 무렵 등장한 캘비니즘(Calvinism)과 퓨리터니즘(Puritanism)의 도입으로 영국 교회는 소박하고 경건한 생활, 평등주의와 인권의 존중, 신앙의 자유와 노동의 신성함 등을 표방하는 윤리적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영국 교회는 성공회(Anglican Church)라는 이름으로, 영국의 국내 종교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했다. 이 '성공회'라는 이름은 이 종교에서 신앙 신조로 삼고 있는 니케아(Nic aea) 신경(信經)의 'Credo in unam sanctam catholicam Ecclesiam(하나이요,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나는 믿습니다.)'에서 따온 말이다. 현재 영국민의 60%가 성공회의 세례를 받고 있고, 전세계에 38개의 관구, 1만2천 개의 교구와 1만7천 명의 성직자, 4천5백만 명의 신자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는 1859년 미국으로부터 선교사가 와서 포교를 시작하였고, 1908년 현 릿쿄[立敎] 대학의 전신인 릿쿄 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세를 확장해 와서 현재 11개 교구와 5만6천 명의 신자를 갖게 되었는데, 일본의 개신교 신자가 58만 명, 천주교 신자가 42만 명, 그리스 정교가 3만 명인 것과 비교해서 결코 작은 그리스도 교회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내가 무엇보다도 이 성공회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는 이 교회의 시노드(Synod) 제도 때문이다. 과거에는 영국 교회도 모든 의사 결정을 'Convocation'이라고 부르는 성직자 회의에서 행했지만, 현재는 성직자와 같은 수의 평신자들이 참여하는 시노드에서 모든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교구의 모든 일, 교구장, 즉 주교를 선출하는 일에까지 평신자들이 참여하여 한다는 말이다. 또 여성 성직자를 임명하여 로마 교회의 심기를 건드리기는 했지만, 이런 사고의 전환이 바로 현대 민주주의의 발상지이며, 인간 존중의 온상인 영국다운 발상임을 알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부산의 어떤 수녀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수녀원의 원장 수녀님이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교회는 왜 여성 사제가 나오면 안 되나요? 우리 수녀원에서는 4년에 한 번씩 모든 수녀들이 모여 수녀원장을 선출하고 있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모든 수녀들이 새 원장 수녀 앞에서 절대 순종을 서약합니다. 우리 교회도 전 신자들이 모여 성직자를 선출하고, 이렇게 하여 여성 사제도 나오게 된다면, 얼마나 역동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느냐 할지 모르나, 성공회가 체질 변환을 하고 난 후 훨씬 많은 신자를 얻게 되었고, 전에 없는 교회 발전을 이룩한 것을 생각한다면 헛소리만도 아닐 것이다. 서울의 성공회 대학이 최근 신학 대학에서 일반 대학으로 전환한 후 급상승하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4월 29일은 일본에서는 '녹색의 날'이라 부르는 공휴일인데, 이 날부터 일본은 한 주일에 걸친 황금 연휴가 시작된다. 이 '녹색의 날'은 지금은 식목일처럼 되어 있으나, 이전의 덴초세쓰[天長節]라는 전 일본 국왕 쇼와[昭和]의 생일을 이름만 바꾼 것이다. 윤 봉길 의사가 의거를 행한 것이 바로 이 기념식장에서였다. 그런데 이 날 내가 나가는 성공회 성당에서 두 분의 새 사제 서품식이 있었다. 홋카이도[北海道] 교구의 모든 성공회 사제 19분이 모여 서품식을 공동 집전하는 보기 드문 행사에 참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제단 중에는 말로만 듣던 성공회 여사제가 두 분이 있어서 또 한 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정식 신자도 아닌 나보고 영성체를 하라고 권하는 것은 신자 회장의 일시적인 과잉 친절에서 나온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신자든 아니든, 죄인이든 선인이든, 적어도 교회를 찾아온 사람이면 누구나 하느님의 한 백성으로 보는 평등주의의 발로였던 것이다. 아마도 유대교 식의 선민 의식을 철저히 깨뜨리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남자든 여자든 모두 하느님의 사랑 받는 피조물이니까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여자가 못 한다는 법이 없다는 생각도 그들은 가지고 있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