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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서울교구 성직자원의 활동 - 책임과 과제 (이재복신부)


서울교구 성직자원의 활동 - 책임과 과제 -이재복 신부(2005.3.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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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구 성직자원의 활동 - 책임과 과제

이재복 신부(멜기세덱∙서울교구 성직자원 총무/산본교회)

1.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세 주체

세계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진정한 주인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

그런데 현실의 교회, ‘눈에 보이는 교회’는 사람(하느님의 백성들)과 건물(성당과 부속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잘 가꾸어진 건물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래도 역시 우리 교회에서는 ‘사람의 소중함’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모두 함께 한 분이신 하느님을 참된 태도로 따르며 그 분과 일치하는 것이야말로 구원에 이르는 바른 길일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들, 교회의 사람들은 크게 보아 성직자들과 교우(평신도)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성직자들은 다시 주교들과 일반 사제 · 부제들로 나뉜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교들과 사제 · 부제들과 평신도, 이렇게 세 주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따라 전국의회는 교구장 주교들과 성직자 대의원과 평신도 대의원으로 구성되어 있고(대한성공회 관구 헌장 제20조), 예를 들어 서울교구의회 역시 교구장주교와 보좌주교로 구성하는 주교원, 사제와 부제로 구성하는 성직자원, 평신도 대의원으로 구성하는 평신도원으로 이루어져 있음(서울교구 법규 제19조)을 우리가 알고 있다.

현실교회의 성숙과 변화와 개혁은 결국 이 세 주체 곧 주교(주교원)와 평신도(평신도원)와 일반 성직자(성직자원)가 자기 역할을 다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2. 성직자원은 무엇인가?

성직자원(院)은 글자 그대로 ‘사제와 부제들의 모임’이다. 교회의 사부이시며 일치의 상징인 주교들(주교원)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평신도들(평신도원)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처럼, 성직자들(성직자원)도 소중한 하나의 주체이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 주신 사도적 실천을 함께 수행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들을 섬기며 이끌어야 하는 사목자들인 성직자들과 그 모임인 성직자원의 역할을 새롭게 살펴보고, 스스로의 책임과 사명을 거듭 다짐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성직자원은 전국성직자원과 각 교구성직자원 두 가지가 있다. 여기에서는 교구성직자원 그것도 서울교구의 성직자원에 대한 내용으로만 한정하여 말하고자 한다.)

성직자원은 교구의회나 교무국 등을 대신하는 조직은 아니다. 성직자원이 다른 공식적인 기구들을 함부로 대신해서는 안 된다. 다만 성직자들이 공동연구와 토론 등을 통하여 ‘성직자들의 전체적인 합의’를 도모해나가는 하나의 ‘선한 도구’이고자 한다.

서울교구 성우회는 성직자들의 임의적인 친목모임이다. 이에 비하여 성직자원은 교구 법규에 근거하여 있는 공식적인 기구로서 성직자들의 사목활동과 선교정책 등을 연구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조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서울교구 성직자원은 왜 ‘상설적인 활동’을 하고자 하는가?

대한성공회 관구 헌장 제52조(원별 회의)에 따르면 “전국의회 폐회 기간 중 주교원, 성직자원, 평신도원 회의를 따로 개최할 수 있”고, 예를 들어 서울교구 법규 제20조(원별 회의)에 의하면 “각 원은 필요에 따라 원별 회의를 개최할 수 있다.” 이 조항들은 성직자원의 활동을 상시적(常時的)으로 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당연히 주교원과 평신도원의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동안 서울교구의 성직자원은 교구의회가 열린 때, 그것도 성직자원 의장과 교구상임위원들을 선출하는 때 정도만 극히 한시적(限時的)으로 기능해 왔다.

성직자원 모임을 상시적으로 했는가 하는 점만이 중요한 것은 물론 아니다. 모임을 자주 여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다. 문제는 ‘성직자원이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중요한 주체로서 책임과 역할과 기능을 바르게 해 왔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성직자원이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사목활동과 선교정책 등에 관한 공동의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고, 교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과 주장들을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수렴하여 건강한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면, 성직자원은 상설적(常設的)으로 움직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상설적인 활동을 하지도 않고 또 활발하고 건전한 의사소통을 하지도 않은 채 그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4. 상설적인 활동의 시작 - 성직자원 제1차 총회

우리 서울교구 성직자원은 지난 2004년 10월 12일에 많은 성직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제1차 총회를 개최함으로써 상설적인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이것은 지난 2년 동안 서울교구의 성직자들이 자발적으로 ‘성직자포럼’을 꾸준히 진행하여 온 자연스런 결과였다.

‘오늘의 교회와 사제직의 위기 - 사제의 리더쉽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선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성소 개발’, ‘성직자원의 역할과 위상’, ‘우리는 어떤 교회를 지향하는가?’, ‘농촌교회 현실과 교회론’, ‘나눔의집 선교론’, ‘현재 우리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관하여’, ‘현 단계 우리 서울교구가 처한 상황과 제언’, ‘주교 선출에 즈음한 서울교구 성직자 정책포럼’, ‘서울교구 성직자원 총회 준비를 위한 발제’, ‘바람직한 성직자 인사제도에 대하여’ 등을 주제로 했던 성직자포럼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교훈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 교회(교구)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과제들을 바르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성직자들이 각성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둘째, 성직자들의 분명한 사목철학 정립과 활력 있는 사목활동 그리고 교회(교구)의 미래지향적인 선교정책 수립을 위하여 공동의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고 아울러 다양한 의견들을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수렴하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셋째, 교회의 한 주체인 성직자들이 보다 책임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하여 성직자원을 상설화해야 한다.

현재 서울교구 성직자원은 의장(전삼광 신부∙수원교회)과 각 그룹을 대표하는 성직자 등 모두 11명의 운영위원들이 ‘성직자원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다달이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고 있고, 또 성직자포럼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5. 성직자원의 활동 목적

서울교구 성직자원의 활동 목적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모든 성직자들이 늘 스스로를 갱신하고 활력 있는 사목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끎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바른 성직자상을 확립해 나간다. 둘째, 모든 성직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연구하고 토론하며 실천하는 문화를 진작시킨다. 셋째, 성직자들이 솔선하여 선교정책의 대안을 책임 있게 마련하고 실천함으로써 교회(교구)의 성숙과 변화와 발전에 기여한다.

이러한 목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지금 성직자원은 성직자포럼을 운영하는 특별위원회, 미자립교회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특별위원회, 바람직한 성직자 인사제도를 연구하는 특별위원회 등 세 개의 특별위원회를 두어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특별위원회의 활동을 펼쳐나갈 것이다.

6. 성직자원의 전망

지난 시기를 되돌아볼 때 우리 성직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공동으로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선교정책의 대안을 내놓고 그것을 책임 있게 실현해 본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성직자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성직자들의 공동책임성을 담보하는 데 부정적으로 기능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성직자들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교회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전가했던 측면도 더러는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우리들의 과거를 또 다시 답습할 필요는 없다. 성직자들이 책임져야 할 일은 성직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성직자들이 뼈저리게 각성하고 자신을 먼저 복음화하면서 교회와 세상을 복음화해야 할 것이다.

성직자원은 성직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교회의 중요한 한 주체임을 더욱 확신하도록 이끌면서 그 주체로서의 책임과 역할과 사명을 일깨우는 기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성직자원은 앞으로 주교원, 평신도원과 함께 나란히 서서 교회공동체를 떠받치는 하나의 주춧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원의 이러한 자각과 활동은 우리 교회 전체가 선교지향적인 공동체로 탈바꿈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리라고 믿는다.

7. 소중한 보물들을 찾고 가꾸기

서울교구 성직자원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성직자원은 우리 안에 이미 있어 온 조직이다. 전혀 새로운 또 하나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었지만 그동안 유용하게 활용되어 오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교회공동체 안에는 성직자원 말고도 ‘숨어 있는 소중한 보물들’이 더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아직도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고 있고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른 교회와 다른 교단과 다른 종단의 좋은 점들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이미 보듬고 있는 우리 교단의 보물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우리 성공회라는 깊고 맑은 우물을 놓아둔 채 왜 다른 우물들을 찾아 헤매야 하나?

우리 성공회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아주 귀한 보물 가운데 하나는 민주적인 대의제도라고 배웠다. 그런데 민주적인 대의제도는 말 그대로 의사결정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순수한 의미에서의 대의(代議)가 실현되어야 한다. 주교들은 주교원에서, 평신도들은 평신도원에서, 성직자들은 성직자원에서 각각 민주적인 의견 수렴과 공개적인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주교원은 주교들의 의사를, 평신도원은 평신도들의 의사를, 성직자원은 성직자들의 의사를 교구의회나 전국의회에서 대의(代議)해야 한다.

주교원과 평신도원과 성직자원이 제각각 따로따로 자기주장만을 고집하자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세 개의 각 원(院)이 저마다 민주적으로 수렴된 자기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가지고 있을 때 오히려 우리의 교구의회나 전국의회는 훨씬 더 활발한 토론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화원(花園)은 다양한 꽃을 가지고 있어야 화려하고 눈부시다. 한두 가지의 꽃만으로는 결코 아름다운 정원을 가꿀 수 없다. 우리 성공회교회는 예쁘고 소중한 꽃들을 많이 지니고 있는 공동체라고 믿는다. 이제는 그 숨어 있는 보물들을 조심스레 길어 올려 마음껏 피어나게 하자. 주교원과 평신도원과 성직자원이 함께 손 맞잡고.

8. 성직자원의 과제

성직자원이 상설적으로 활동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과제들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성직자원의 활발한 활동은 교회공동체가 선교적인 공동체로 변화해가는 데 분명히 기여하리라고 믿는다.(주교원과 평신도원의 활동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직자원은 성직자들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는 집이요 마을(院)이다. 성직자들 외에는 아무도 성직자원을 책임질 수 없다. 각자의 현장에서 열심히 사목활동을 하는 가운데 틈틈이 따로 모여서 부지런히 연구하고 토론하며 각자의 사목철학을 더 깊게 다지고 교회의 생산적인 선교정책을 풍성하게 다듬고 실천해야 한다.

이제 서울교구는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앞두고 있다. 성직자원은 그 ‘변화’가 더 복음적이고 더 선교지향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힘쓰고자 한다. 주님께서 일러 주신 진리의 길을 따라 교회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걸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