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소신

비만유감(肥滿有感)

임종호 2014. 9. 16. 11:50

 


 

비만유감(肥滿有感)

 

우리 가족은 먹기를 즐겨하는 때문에 모두 둥글둥글한 모습들입니다. 저도 본래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에너지를 많이 써서 마른 체형이었는데 결혼 후에는 체중이 불기 시작해서 지금은 비만 상태입니다.

청년시절의 멘토이신 류모신부님께서는 제가 사제가 되고서도 체중조절을 못하는 것을 보시고 호되게 나무라셨습니다. “모름지기 수신(修身)은 모든 실천의 시작이고, 몸은 정신의 근원이 되고, 무릇 사제는 다른 이들을 진리로 이끌기 위한 구도자요 수행자인데 마흔도 안된 자가 몸이 그래서야 어찌 사제라 하겠는가!”
“죄송합니다, 스승님. 대오각성해서 몸을 추스르겠습니다.” 해야 정답인데, 저도 이젠 머리가 컸다고 반발했습니다. “신부님, 말씀하신 내용은 선비정신이지 복음은 아닙니다. 복음은 있는 그대로 삶의 현실을 긍정합니다. 예수님의 별명도 먹보요 술꾼 아니었습니까?” 대노하신 신부님을 떠나며 살을 빼고 다시 뵙기로 했는데 10년이 넘은 아직도 찾아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후로도 체중조절에 별로 의욕이 없었습니다. 곰곰이 살펴보니 제 마음 안에 삶에 대한 의욕과 비슷한 크기로 죽음에 대한 충동이 있었습니다. 망가지고 싶은 마음, 살기 싫은 마음이 폭식과 게으름의 원인이 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제 겉모습에 대해서만 관심합니다. 비만상태가 되고 보니 다른 이의 시선과 충고가 몹시 불편하고 도움이 안됨을 알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이에게 기껏 “살 좀 빼라”는 인사를 받으면 고맙기는 커녕 불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올 2014년 사순절이 시작되며 “무른 마음”을 먹었습니다. “굳은 결심”을 하면 작심삼일이 될 터이니까요. 오후 5시까지 열심히 먹고 이후로는 먹는 즐거움을 다음날로 미루자! 사순절이 지나 부활을 맞으며 “어디 아프냐”는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약간의 체중감량에 성공한 거지요. 다시금 제 마음을 살핍니다. 여전히 죽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은총을 의지하여” “죽고 싶은 마음을 견디며” 살아보자는 믿음이 훨씬 더 커져있음을 발견합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