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일치의 명목과 교회불화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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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교회일치의 명목과 교회불화의 현실

기쁨의나무 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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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외국인복지관에서 사목하시는 구균하(요나로렌스) 신부님의 글을 페이스북에서 옮깁니다. 말미에 제 댓글도 함께...

 

https://www.facebook.com/Kiunah/posts/10152625080241005?fref=nf

 

긴 글입니다. 한줄 요약하면 한국 그리스도교의 현실이 참으로 유감스럽다는 겁니다. 아직 더 많이 배우고 익혀야 하는 저로서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그리 되지는 않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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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부터 분주했다. 어제 입원을 약속한 이주노동자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안의 시간이 늘 그렇듯 오랜 기다림과 잠깐의 만남이 반복되며 오전이 다 흘렀다. 입원이 결정되었으나 병실이 마땅치 않아 결국 오후까지 남게 되었다. 의료보험의 범주를 넘어선 소위 불법이라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크다. 다행스럽게 대한민국은 아직 이런 이들을 위한 도움의 구조가 남아있다. 의료민영화가 되면 모두 사라지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병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나누었다. 진료와 검사를 위해 병원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 잠깐씩 만났던 직원들과 의료진들 대부분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몇일새 서너번 다녀간 병원이지만 구내식당에서 만난 이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왠지 모를 푸근함.


오후 2시가 넘어서야 겨우 병실을 배정받았다. 무료간병인이 있는 병실이다. 간호사와 환자에 관해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절과 여유가 느껴지는 병원이 얼마만인가! 입원을 꺼려하던 그를 두고 혼자 나오기가 석연치 않던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환자복을 갈아입고 수액을 맞고 있는 그를 뒤로 하고 곧 다시 들릴거라는 말을 남기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순간 병원사목을 담당하는 수녀님 한분이 내가 나선 병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또 병실에 남겨진 그를 부탁하려는 마음에 왔던 길을 되돌아 병실에 들어섰다.

간단한 인사. 이제 은퇴가 얼마남지 않은 듯 보일 정도로 연세가 지긋한 수녀님이다. 그런데 내가 성공회 신부라고 소개하는 순간, 변하는 그의 눈빛과 목소리.
짧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불쾌함이 나를 휘감았다. 단순히 자신과 다른 종교 -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하지만 명백히 틀린 표현이다. 다른 종교가 아니라 천주교인인듣 개신교인이든 성공회교인이든 정교회교인이든 그리스도교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동체의 일원이기에 다른 신앙표현을 하는 이들 일뿐이다. 다른 종교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나 해야 할 말이다. - 를 믿는 이들을 대하는 차원이 아니라 우월한 존재가 열등한 존재를 대하는 듯한 태도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내 신앙의 친정 식구(?)였기에 더 참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손에서 반짝 빛나는 금반지에 새겨진 수도원 고유 문장이 닳아 뭉그러져 보였다. 오랜 수도생활을 짐작케 했다. 그러나 수도생활의 길이와 상관없이 몸에 밴 오만한 태도에 쓴 입을 다시는 수밖에 없었다.

또 한가지 병원사목이 병원에 입원한 그리스도인들, 아니 자신이 속한 교회의 구성원들만을 위한 것인양 새로 입원한 환자들을 구분하는 모습에 명동 한복판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어서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독한 자기 우월감과 타인을 자신의 틀에 맞추려는 모습에 숨이 막혀왔다. 얼마전 다녀가신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천주교회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 한 말씀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집불통 노총각, 노처녀가 되지 말라 하셨던 것 같다. 고집불통이 무조건 우기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교종께서 말씀하신 고집불통의 의미는 평신도들에 대해, 또 다른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나아가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존재적인 우월감을 가지지 말라는 의미라 본다.

아마도 몸에 익숙한 대로 행동했으리라. 그것이 타인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알지 못한채 최선이라 여기고 행동했으리라.

의료진과 직원들에게서 받은 느낌이 한 늙은 수도자가 전해준 느낌과 너무나 달랐다. 내가 그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가식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나 스스로를 돌아본다. 누군가에게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목에 흰 칼라를 차고 스스로 인간보다 나은 다른 존재인양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모두는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 이들이지 그 빛을 사유하고 전유해서는 안된다. 나는 빛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그리스도의 빛이 나를 통해 비추어지는 것이다.

어느 한 교파의 문제라 생각지 않는다.
한국 그리스도교 전체가 어쩌면 이런 자기 우월감으로 나와 다른 이들을 예단하고 한심스러워 하는지도 모른다. 신앙이 깊다한들 신학이 고매하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오늘 일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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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일치문제와 다른 관점에서 보면
독선과 오만에 차 보이는 그 분의 교리적 신념과 태도는
힘든 수도생활을 하는 데에 나름 힘이 되었을 겁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저나 구신부님같은 이는 저 세상 "천국"가기를 포기해야합니다.
하느님 절대사랑의 은총에 힘입으면 우리라고 천국입성이 불가능하겠습니까만,
만일 천국에서 우리를 보면 이런 분들이 얼마나 놀라고 실망하실까요.ㅋㅋ
천주교 신자로 사제로 수녀로 평생 살아온 인생이 사기당한 느낌일 겁니다.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의 우화를 원용하는 거지만 아마도 이 수녀님은
주님께 이렇게 항의할 지도 모르지요. "주님, 구원이 우리 교회밖에도 있다니, 은총이 이런 식이면 제가 미쳤다고 천주교 수녀로 일생을 보냈겠어요?")
주님과의 사랑을 구원으로 알면 좋았을 것을 그만 착각하여
배제하고 독점하는 권리를 구원으로 안 것은 유감입니다.
그러니 저 세상 천국은 이런 독실한 분들께 양보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 하느님나라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 은총의 나라에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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