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묵상

(옮김) 검은돌일까? 흰돌일까?

임종호 2011. 8. 24. 11:18
 
검은돌일까? 흰돌일까?

옛날에 부자에게 큰 빚을 진 상인이 있었다.
어느날 부자가 상인을 찾아와 빚을 안 갚으면 감옥에 가두겠다고 협박했다,
상인이 선처를 호소하자 부자는 한가지 제안을 했다.
마침 상인의 집 마당에는 흰 돌과 검은 돌이 많이 깔려 있었다.

부자는 자기의 주머니에 흰 돌과 검은 돌이 한 개씩 들어 있는데,

상인이 흰 돌을 꺼내면 빚을 모두 탕감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검은 돌을 꺼내면 상인의 딸을 자기에게 시집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부자는 아름다운 상인의 딸을 탐내고 꾀를 쓴 것이다.
부자의 주머니 속에는 검은 돌만 두 개 들어 있을 게 뻔했다.
그러니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의 제안에 응하면 딸을 빼앗길 것이고, 제안에 응하지 않는다면 감옥에 갇힐 판이었으니까.
그때 괴로워하는 아버지 곁에 있던 딸이 아버지에게 부자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망설이는 아버지 대신 딸은 부자에게 제안을 받아들일 테니 돌을 자신이 꺼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부자는 좋아라 하며 허락했다.
딸은 보일 듯 말뜻 미소를 짓고서 부자의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자마자 바닥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그리고 는 부자에게 정중히 이렇게 부탁했다.

"어머! 죄송해요. 너무 긴장해서 그만 돌을 놓쳐 버렸네요.
제가 떨어뜨린 돌이 흰 돌인지 검은 돌인지 알 수 없게 되었으니 당신의 주머니 속에 있는 돌을 보여 주시겠어요?"
부자는 꼼짝없이 주머니에서 검은 돌을 꺼내야 했다.
지혜로운 딸의 기지로 상인은 빚을 모두 탕감 받을 수 있었다.

- <내 마음의 방은 몇 개인가>, 손병일,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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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시 무상급식 정책 주민투표의 경과를 보며
공식적인 투표거부가 의사표현의 방식이라는 입장은 처음 듣는 생소한 주장이다.    
투표 문안의 두 가지 정책이 다 마음에 안들 때면 가능한 것인가? (실제로 그렇다는 말도 있고...)
내 상식의 단순함을 반성하며 한 수 배운다. 

타산지석으로 성공회적인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공동체의 합의를 중시한다는 입장에서는 물론 같지만 
모든 일을 다수결로 처리하는 것이 만능인 것처럼 여기는 태도가 나는 마땅치 않다.
그동안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일관되이 모든 문제를 "표를 모아 해결하자"는 성직자도
실제로 경험했다. 하지만... 
양자택일의 결과 보다도 (둘 다이거나 둘 다 아니거나 할 수도 있으니...)
계속 대화하며 그 합의의 과정과 그 토론의 내용을 중시하는 일이 성공회의 방식이 아닐까?

문득 옛 이야기가 생각나서 검색하여 다시 읽어본다.
검은 돌일까, 흰돌일까...
이번 정책 투표의 결과가 어떠하든 간에...
나온 것이 검은 돌이든 흰돌이든...
(그 진정한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모든 사람의 마음과 소원을 다 아시며 은밀한 것이라도 모르시는 바 없으신 하느님께서
좋은 이들의 좋은 뜻을 선한 결과로 이루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