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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성공회 교우의 변명

성공회게시판에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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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성공회 "자유주의자"의 변명
글쓴이 :  francis (2007.6.10 - 19:51)  
안녕하세요!

또 공연한 분란을 일으키는 글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만... 오래 미루다가 올려봅니다.

게다가 익명이어서 죄송합니다만, 이름을 걸고 책임져야할 정도의 대단한 글은 아니오니,
그저 너그러이 글 내용 자체에만 관심을 가져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얼마전 이 게시판 저 아래의 글들에서 성공회의 정체성에 대하여 약간의 논란이 있었습니다.

저는 굳이 따지자면 소위 “자유주의”의 신학적 입장인 듯합니다. 자유주의를 공격하는 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에 대한 “비평적 접근”을 인정하고,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공회를 배우면서 “성서, 전통, 이성”이라는 신앙적 권위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말도 좋아합니다.
제 입장은 성공회 전통 안에서는 이른바 “광교회(Broad Church)”의 입장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뭐, 어떤 입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저의 신앙경험 안에서는 이른바 “예전적”이고 “성사적”인 전통과 이른바 “복음주의적”인 전통 또는 “오순절적(성령운동)” 전통이 전혀 상충되지 않고 모두 은혜로운데, 왜 많은 이들은 두 입장이 서로 배타적인 것처럼 여기며 서로를 공격하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가령 아래와 같은 글을 읽게 되면 참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심정이 되곤 합니다. 이하의 제 글은 이러한 저의 입장에서 비평을 드리는 것입니다. 글 쓴 분들의 신상에 대하여는 전혀 아는 바 없고, 그 분들의 인격에 대하여는 전혀 공격의 의도가 없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성공회 공동체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밝히고 싶을 따름입니다. 좀 긴 글이 될 것 같은데... 관심 있는 분들만 마음 편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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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인용입니다.)

최회장  ( 2007-05-24  14:54 ) [삭제]    
너희들 잘 들어라
너희들이 성공회를 얼마나 안다고 까부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희들처럼 근본없는 좌파 뻘갱이 사제와 소수 좌경세력들이 성공회에서 판치는게 싫다.
너희들 떠나가라. 그리고 딴데가서 영판 이상한 교회도 아닌 진보동맹이나 맹글어라.
어디 성공회로 굴러와서 속이 넙으네 좁으네 떠들고 난리이냐.
니덜이 세운 성공회 아니다. 딴데가라.
성공회는 좌파, 불색잡기들, 근본도 모르는 이상한 종교집단의 놀자판이 아니다.
성공회대학의 신부같지도 아닌 이상한 교수들이 이 교단을 망친다.
주$$같은 이도 미국서 살아라. 괜시리 한국와서 이상한 미국의 동성애놀음 퍼뜨리지 말고.
너희들 없었어도 성공회 잘 돼왔다. 어디 교회서 염불하고 목탁칠려고 하는가?
어디서 남색질하는 것들이 거룩한 교회를 망가트리려하는가 내 말이 틀렸는가

바우로  ( 2007-05-24  14:55 ) [삭제]    
맞다 맞다 최회장님 속 시언합네다.

세례 요한  ( 2007-05-26  08:11 ) [삭제]    
최 회장님의 글 동의합니다.
최 회장님은 우리 성공회에서 세례 요한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 성공회는 정말이지 기독교라기보다는 짭뽕 종교에 집합체 그 자체 입니다.

성공회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은 성서와 전통 과 이성를 중심으로 이 세 가지 정신이 서로의 긴장 관계에서 지금 까지 우리 성공회만이 가지는 장점으로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성서와 전통은 없고 이성만이 발달하여 경험만으로 성서를 해석하여 기독교의 기본적인 전통도 없고 성서가 말하고 있는 기본 적인 진리도 자기 자신들의 이성으로 해석하여 기독교 자체의 기본 진리마저도 송두리체 흔들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소위 자유주의, 인본주의, 포스트 마든 주의, 공산주의 등의 물들어 휴머니즘으로 표현하여 그럴싸한 말장난으로 사람들을 현혹하여 기독교에 기본 진리에서 눈을 어둡게 하는 바알 선지자와 같고 거짓 선지자와 같은 일을 일삼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에 샌프란시스코의 있는 신학교 들은 모든 종교는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교 입니다. 그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포기해야 졸업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주장하면 속이 좁으니 학문의 깊이가 없느니 너무 편협한 생각이니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니 하여서 졸업장을 주지 않습니다. 성공회 대학역시 성서와는 동떨어진 말장난으로 강의하는 교수들의 의해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하나 세례요한처럼 나서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선골이니 진골이니 하면서 정치 싸움이나 하고 있는 현실이 지금의 우리 성공회 입니다. 요즘 기독교회에 개혁연대인가 먼가 하면서 떠들어 대는데 정말 개혁이 필요한 곳은 우리 성공회 입니다. 마치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처럼 자신의 몸이 섞어 문드러져 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교회에 대해서만 개혁을 외치고 있습니다. 옛 말에 병은 자랑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 성공회가 우리의 단점과 약점을 공개하고 들어 내놓고 서로 개혁의 길을 찾아가야만 합니다. 왜 우리의 잘못된 부분은 이곳에 올리면 안 되고 하는 그런 게 어디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개신교보다 더 개혁이 필요한 곳이 우리 성공회 입니다.
최 회장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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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제 비평입니다.)

우선 드릴 말씀은 사제를 “좌파뻘갱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참으로 경망스러운 일이라는 점입니다. 사제는 교회 공동체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신품성사(예식)를 통하여 서품한 이들이 아닙니까? 정말 사제가 되기에 문제가 있다면 서품식장에서 용감하게 손을 들고 반대해야 합니다.(물론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너무도 당연하게 사제 중에는 신앙의 본질을 “십자가 대속을 통한 죄로부터의 구원”이라는 복음주의적인 것으로 이해하시는 분도 있고, “하느님 나라에의 참여”라는 사회 선교적 차원으로 이해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사제의 특정한 입장 때문에 그 사제를 비판하려면 정말 신중히 예의를 갖추고, 엄밀한 개념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비록 나와 다른 입장이라 하더라도 그 사제는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엄연히 교회 공동체의 사제이고, 나는 아니어도 다른 수많은 교우들이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뻘갱이”라는 표현은 아무런 진지한 함의를 포함하고 있는 않은 그저 “욕”입니다. 마치 어떤 사람을 “개자식”이라고 표현하면 그 사람의 유전자가 개의 유전자와 일치한다는 진지한 의미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뭔가를 말씀하시려면 가령 “기독교사회주의자(우리 사제님들 중 스스로 00주의자를 자처하는 분은 없는 것 같지만^^)”와 같이 내용이 있는 개념을 사용하여야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최회장”이라는 이 분의 다른 표현들은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제 얼굴이 붉어질 정도여서 넘어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분을 두고 세례요한과 같은 예언자라고 추켜 올리시는 “세례 요한”이란 분도 있더군요. 저는 참으로 민망하고 민망했습니다.

이 분의 글을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아마도 “복음주의자”를 자처하실 듯 한 입장이신데, 성공회의 현실에 대하여 답답함을 느끼시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급한 가운데 줄을 너무 잘못 서신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성공회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의를 얻어내려면, 절대로 “최회장” 같은 분의 막말을 옹호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어디서 굴러온 것”으로 말하면 제가 알기로는 바로 필명 “세례 요한”님을 포함한 이른바 “복음주의” 또는 “성령운동” 계통의 분들이 제일 먼저 해당되는 게 아닐까요?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성공회의 전통은 “고교회 전통”에 가깝습니다. 초대 한인주교께서 교단 내에 “성령운동”을 금지하는 교서를 발표한 것이 불과 이십수년전입니다.

“이성”을 문제 삼으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거의 아무런 “이성”의 “해석”이 전혀 없다시피 오로지 “성서를 성서로 받들며” (열심히 읽지는 않고 그저 모셔 두어서 문제이지만^^) 지내온 것이 지난 우리 한국성공회의 역사입니다. 이른바 “전통”만이 유일한 가치였습니다. (물론 아무런 반성이나 비판없이 그저 물려받은 대로의 관행을 이어가는 것이 전통인 줄로 잘못 알아왔지만요.)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이제는 성서와 전통은 없고 이성만이 발달하여 경험만으로 성서를 해석하여 기독교의 기본적인 전통도 없고 성서가 말하고 있는 기본 적인 진리도 자기 자신들의 이성으로 해석하여 기독교 자체의 기본 진리마저도 송두리체 흔들고” 있는 이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바로 성공회의 “성서”나 “전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개신교의 “이성”을 신봉하는 이들입니다. 바로 필명 “세례 요한” 같은 분들이지요. (죄송!^^)

“기독교의 기본진리”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복음서가 공연히 한 개가 아닌 네 개 입니까? 바울로 사도의 서신서가 예루살렘 출신의 정통 사도들을 향하여 끝없이 논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의 기본진리”가 그리도 단순하여 영국성공회는 에드워드 6세에서 메리여왕을 거치며 불필요하지만 불가피한 순교자를 양산하였습니까? 기독교의 기본진리가 단순하다면 왜 감리교는 성공회를 떠났고, 청교도(장로교)는 신대륙으로 목숨을 걸고 떠났습니까?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자신들만이 파악하고 독점한 것처럼 주장하는 능력이 바로 “세례요한”같은 분이 마구 휘두르는 근본주의적 자기주장인 “이성”의 힘입니다. 마땅히 그런 “이성”의 잘못된 사용은 철회되어야 합니다.

성공회가 말하는 신앙의 권위로서의 “이성”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경험하거니와 성경으로도, 전통으로도 해결되기 어려운 현실의 실제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교회의 유일한 선택은 “기도”입니다. 그 “기도”는 “하느님은 내 편”이라는 자기 주장이 아니고 자기 최면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느님 앞에 겸손히 자기를 돌아보는 반성의 능력입니다. 물론 그 반성은 성서와 전통에 기반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그 반성을 상대방과 나누는 소통의 능력, 대화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단순한 인간적 결정을 최대한 미루고, 성령께서 이끌어주시는 지혜로운 해결을 인내로이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기도”를 신앙의 권위로 객관화 시키면 “이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상은 제가 스스로 정리한 제 주장입니다. 제 소박한 생각 이상의 더 이상 권위 있는 근거는 없답니다.^^)

“세례요한”님은 말씀하길 “소위 자유주의, 인본주의, 포스트 마든 주의, 공산주의 등의 물들어 휴머니즘으로 표현하여 그럴싸한 말장난으로 사람들을 현혹하여 기독교에 기본 진리에서 눈을 어둡게 하는 바알 선지자와 같고 거짓 선지자와 같은 일을 일삼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누가 그런 일을 일삼고 있나요? 저는 나름대로 신학공부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만, (그렇지요? 그래도 제 글이 나름대로 신학적이지 않습니까? ^^) 솔직히 저는 자유주의의 주장을 진실로 공부하고 싶습니다. 가령 “성서비평”을 철저히 공부하고 싶은데 실력도 없고 시간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영국성공회의 19세기 사람 “F.D. 모리스”라는 분이 “기독교사회주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위대한 사상가라는 말은 얼핏 들었지만 그 분의 책은 한 줄도 읽은 바가 없고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인본주의라구요? 저는 진실로 르네상스이후의 서구문명의 휴머니즘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정말 아는 게 없거든요. 기회만 되면 정말 공부하고 싶습니다. 와, “포스트 모던” 도 아니고 “포스트 마든”이라^^... (영어 좀 하시는 분인 듯^^) 저도 포스트 모더니즘에 좀 관심이 있었는데 너무 공부할 내용이 방대하고 다양해서 그만 포기했더랬습니다. “공산주의”라고요? 저는 그저 “누군가 “평등- 정의- 어쩌구” 얘기하는데 내 맘에 안들면 “빨갱이”라고 공격하면 된다“는 것 말구는 제대로 “사회주의”를 공부한 바도 없고 경험한 바도 없습니다. 저만 멍청해서 그런 것일까요? “세례요한”님 같은 분들은 예전에 그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고 한마디로 가치없는 “인본주의(휴머니즘)”이라고 평가를 내렸는데요...

솔직히 “세례요한”님과 같이 자칭 믿음이 좋으신 분들은 너무 잘난 척 하는게 아닐까요? 서양문명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루는 위대한 지적 성취, 사회적 경험에 대하여 너무나 경솔히 대하는 것은 아닐까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신학교 운운”은 따지고 보면 정말 무례하고 비겁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하기야 “세례요한” 같은 분들이 주장하는 “기독교의 기본진리”란 전혀 신학교에 유학하여 비싼 돈내고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고, 이른바 “4영리”정도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저도 분명 성공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성공회대학교가 우리 교단의 성직자를 배출하는 신학교로는 여러가지로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성서와는 동떨어진 말장난으로 강의하는 교수들” 때문이라기보다는 “교회 공동체로서의 성공회”를 충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이들이 성공회의 성직후보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회의 전통을 잘 밝혀서 그 전통이 성공회 공동체를 통하여 생생하게 현재성을 가지도록 하여서, 교우들이 복음을 살고 전하는 일에 진실로 도움이 되도록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공회가 좋습니다. 한국에는 성공회보다 큰 교회가 많구요, 성공회보다 뜨거운 교회도 많구요, 성공회보다 진보적인 교회도 많습니다. 제게 성공회의 어떤 내용이 자랑인가 하면요, 저는 성공회의 신앙적인 고민이 늘 실제적이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이 언제나 현실적이서 좋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저는 구체적인 제 삶의 고민을, 제 구원의 문제를  오로지 “성공회”를 통해서 온전히 해결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저의 고민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고민 중 일부입니다. 전부가 아니라요. 이 점이 중요하죠. 저와 다른 이의 다른 내용, 다른 수준, 다른 방향의 고민은 나름대로 소중하고 나름대로 다른 교회를 통하여 구원을 받겠지요. 하지만 고유한 저의 고민에 대하여 성공회는 너그럽고 친절하고 강력했다는 말씀입니다.

제 고민은 제가 이른바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무슨 “체험”이 없어서도 아니고, 헌신하는 선교사가 못되어서도 아닙니다.
제 고민은 제가 진정한 자유를 허락받은 존재로서 그 자유를 기꺼이 순종으로 바꾸어 하느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제게 허락된 이성과 감성과 의지를 모두 선용하여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우리의 현실, 우리의 삶에 대하여 머뭇거림 없이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고백하고 전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분열된 감성, 분열된 지성, 분열된 의지가 아니라, 진실로 자유롭고 정직하고 행복하게. 은총과 진리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저 같은 “자유주의자”는 지금 대한성공회를 통하여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무엇이 정말 문제일까요? 한국 성공회를 통한 “최회장”님이나 “세례 요한”님의 비전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도대체 어떤 내용의 구원을 새삼 성공회 사람들에게 보장하시려고, 그렇게도 공동체에 해가 되는, 불필요하게 위험한 공격을 주위도 안돌아보시고 감행하시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 성공회는 결코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지 않습니다. 갑자기 다른 전통에서 “굴러 들어온”^^ 이상한 것들을 접하다보니 잠시 알레르기가 돋았을 따름입니다.
중요한 것은 빨리 그것들을 소화해내서 더욱 건강한 몸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지체로서의 본분을 잊고, 전체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홀로 자기 증식을 거듭하여, 다른 지체를 공격하는 것을 우리는 “암”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암적인 존재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지금 입에 발린 말로 “사랑한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만,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마침내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은 진실로 고백할 수 있겠습니다.
“저의 사랑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안에서 사랑합니다.”
“저의 독단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 안에서 우리는 하나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