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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열등감을 넘어선 대화와 실천으로! (성공회신문논단 2009.5.4)

                          
                                   열등감을 넘어선 대화와 실천으로!

한국 성공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상대적으로 적은 신자, 선교사업을 하기에 늘  부족한 재정,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소망하고 현실을 이끄는데 힘이 되지 못하는 산만한 신학, 전통에 대한 이해와 배려 없이 추구되는 개혁들,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 다음 세대가 거의 사라져 가는 교회, 향상되어야 할 성직자의 자질, 보장되어야 할 성직자의 복지, 높아져야할 평신도의 수준, 마련되어야 할 평신도 직제와 교육... 하나하나 짚어 보면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저를 포함하여 우리 성직자, 신자들의 마음 깊이 자리한 열등감, 콤플렉스입니다.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적절한 열등의식은 자기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고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콤플렉스는 단순한 정서의 문제가 아닙니다. 냉정히 살펴보면 모든 개인과 집단이 어떤 사태를 판단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객관적 지식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결국 자신들 내면의 콤플렉스라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성장”을 말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콤플렉스를 안고 그것을 추구하는데 있습니다. “성공회정체성”을 고민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문제는 콤플렉스 속에서 그것을 모색하는 데서 생깁니다.

콤플렉스는 우리가 당당한 주체로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시선과 가치판단을 빌어 우리의 문제를 다루게 되고 결국은 우리의 몸부림은 누군가의 “흉내”를 내는 데 머물게 됩니다.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나를 인정해주는 더 큰 권위를 빌리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콤플렉스는 우리 자신을 분열시킵니다. 그동안 성공회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 논의가 발전되어 현실화되지 못합니다. 원인은 논의에 참가하는 이들조차 자기 콤플렉스를 넘지 못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오해하는 데서 생깁니다. 주어진 과제를 위해 자신의 변화와 헌신을 기쁘게 결심하는 게 아니라 대화 중에 “자기 콤플렉스”라는 상자를 뒤집어쓰고 자기방어를 하는데 힘을 다 써버립니다. 당연히 참된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자신을 열지 못하는데 다른 이와 소통이 될 리 없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여기저기 불평불만만 무성하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함께 마련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주님의 복음은 달리 표현하면 “콤플렉스로부터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서로를 용서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콤플렉스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음을 뜻합니다. 세례성사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옛 자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완전하심, 하느님 사랑의 절대성은 우리들을 비교하고 차별하지 않으시고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무한한 은총을 베풀어주심으로 나타납니다. 성체성사는 우리의 참된 양식이 세상의 가치평가가 아니라 주님의 절대적 사랑임을 의미합니다.

성공회의 선교를 고민할 때에 우리가 가진 콤플렉스를 우선 드러내고 벗어나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에 힘입어 그 일이 가능해야 그 다음의 모든 일이 실제로 가능하고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모든 반성의 기준을 참된 우리 것으로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논의는 철저히 성서에 바탕을 두어야하고, 교회전통을 돌아보아야 하고, 서로 소통하는 이성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콤플렉스를 깨는 일이 우리가 새로워지는 일이고 우리가 새로워져야 비로소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9. 4. 27/ 임종호/ 분당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