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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에게

성공회대학교 총장 이취임식에 다녀오며



 

신부님,

시간이 나시면 읽어주세요. 그다지 깊은 이야기는 없으니 그러려니 해주시구요.

제 넋두리 비슷한 건데 그래도 신부님이 읽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성공회대학교 총장 이취임 예배에 다녀왔어요.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평판의 이00 신부님께서 새 총장으로 취임하시고

13년간 부총장, 총장으로 일하신 양00 신부님께서 이임을 하시는 자리죠.

피츠버그홀 앞 마당에서 학생들이 뭔가 자리를 마련하고 있었어요. "이사회는 응답하라" 라나...

젊은 시절에 부당한 일에 문제를 제기하고 싸우는 것은 자연스럽고 소중한 경험이지요.

새총장의 인선이나 향후 발전계획에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고 느끼는가봐요.

하지만 뭔가 구체적이지 않고 특별히 몇몇 아이는 참 예의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학생으로서 직원들에게 "왜 반말을 하느냐, 우리가 내는 돈으로 월급받지 않느냐"는 고함은

좀 치졸한 거 아닌가 드는 생각은 제가 이미 나이가 들어 기성세대가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그들이 과연 학교에 얼마만한 애정을 가지고는 있는 것인지,

어쩌면 자기 스스로에 대한 깊은 존중과 사랑(자중자애)은 가지고 있는 것인지 좀 걱정스러웠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으면 그리 목소리를 높일까 생각도 되지만

이취임식의 예배 자리에서 마음 먹고 분위기를 흐려보겠다는 뜻은 일단 불쾌했습니다.

 

"기본에 충실하자!" 는 모토로 이00 총장신부님은 대학을 이끌어가시겠다고 하십니다.

무엇에 구애받음이 별로 없는 대신 그만큼 자기 자신을 잘 아시는 겸손한 분이시니

지혜와 용기로 사람들의 생각과 도움을 잘 모으고 나누어서

앞으로 4년 동안 그 누구보다도 더 좋은 결실을 얻어가시길 기도합니다.

 

양신부님의 모습은 많은 느낌을 줍니다. 13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죠.

사실상 대학에서 일하기 위한 준비기간인 유학기간까지 포함하면 

정말 자신의 청춘을 모두 바쳐 성공회대학교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김주교님의 축사 표현에 따르면 양신부님을 축하해야 한다고,

너무 지친 양신부님이지만 스스로는 일을 회피하지 못하는 성품이므로

이사회가 나서서 잠시 쉬시도록 기회를 드리게 되었노라고...

양신부님은 그동안 입은 은총과 많은 이들의 사랑과 도움에

거듭거듭 깊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그저 사랑하는 양신부님이 두 분이었더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한 분은 지금처럼 열심히 대학행정을 위해서 일하시고...

한 분은 쉬엄쉬엄 이생각 저생각 하시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이런대화 저런대화를 나누시며

교회의 우리 도반들에게 도움도 주고 도움도 받으면서 지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양신부님께 묻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고

내 생각과 경험을 들려드리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양총장님"은 너무너무 바쁘셨죠.

그 분의 노고를 위로하고 감사하면서도 저는 양신부님의 "희생"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그 희생이 그 분의 보람과 기쁨이기도 할터이니 제가 뭐라 할 일은 분명 아니죠.

저는 분당교회에서 8년 7개월, 주교좌교회에서 2년 7개월을 보냈으니

저도 준비하는 기간까지 포함하여 청춘을 교회사목으로 보낸 셈이죠.

 

신부님, 읽으시기에 너무 지루하죠. 미안합니다.

하고 싶은 진짜 말은 이거예요. 우리들 신앙인, 특별히 성직자들에게는

일을 많이 하고 잘해서 업적을 남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역시 자기의 "도"를 이루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죠.

평가나 평판보다도 자기의 "도"를 전하고 남기는 일이 참 보람이요, 사명인 것같아요.

(그 도가 개인적인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공동체를 통해 이루게 되는 도여서

더 어려운 일이지만요.)

신부님과 저의 사목도 그저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통해 복음의 "도", 구원의 도를 이루는 "과정"이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양신부님의 일대신 양신부님의 도에 관심을 더 가지고 그 분을 배려했으면 좋겠어요.

 

참 모두들 말씀들을 너무 잘하시대요. 존경스럽고 부러웠습니다.

그것도 다 각자 오래 닦은 내공의 힘이겠지요.

 

아 참, 예배끝나고 장00 인권위 상임위원과 인사를 나누었어요.

몇십년만인가봐요. 혹 저를 알아보려나 했더니 기억을 하네요.

제가 89년도 사목신학원에 입학했을 때 그 이는 학부에 다녔었는데

한동안 "고상한" 이야기가 꽤 잘 통하던 사이였던 것 같아요.^^

제가 개인적인 이유로 신학공부를 포기한다고 말했을 때,

"아니, 이런 속물이었나?" 하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던

그 이의 실망과 경멸 어린 눈길을 한동안 기억했어야 했었죠.

다 지나간 추억이지만 저는 그만큼 그 이가 마음이 맑았다고 생각해요.

그 이는 그 뒤로 올곧게 열심히 잘 살아서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 일을 맡기겠다"는

칭찬을 들은 셈인데 진심으로 고맙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쓸데없는 이야기에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해요.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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