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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옮김] 하느님을 사랑하기



                                                하느님을 사랑하기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게 하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유일하고 전적인 존재 목적이요 이유이다. 어떤 피조물이든 - 그것이 생명체이든 비생명체이든 - 만들어진 목적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만약 훌륭한 사냥개가 집을 지키고, 면도칼이 토마토 껍질을 깍는데 사용되고, 경주마가 시골농장에서 일이나 한다고 가정해보자. 비록 인간보다 하등 동물이지만 그들이 참으로 행복을 누린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냥개는 숲 속에서 사냥을 할 때, 경주마는 경마장에서 힘껏 달릴 때, 면도칼은 수염을 깍을 때 비로소 최상을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피조물은 창조된 목적대로 주어진 나름의 일을 할 때 최상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위의 면도칼, 경주마, 그리고 사냥개의 경우를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그 의미는 동일하다. 문자 그대로 우리 인간은 창조된 목적대로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때 행복해 질 수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모든 것 위에 하느님께 최상의 가치를 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초월적인 것을 의미한다.

  가족과 친구에 대한 것과 같은 인간적인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최상의 사랑에 종속되어야 하고, 그런 세속적인 사랑은 하느님의 큰 사랑에 이끌리면서 성화되어야 한다. 마치 우리의 겉옷이 우리가 걷는 방향에 따라 함께 따라 가듯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도 하느님께로 향하는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의지에 달린 것이다. 하느님을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그 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오히려 의지로부터 감정으로 흘러 들어가야 한다. 많은 성인들이 창조주에 대해 표현한 기쁨의 고백들은 그 분께 대한 사랑의 감정일 뿐만 아니라 의지의 소산임을 알려 주고 있다.
  그 분의 이름을 말할 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다 하여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은 그 분을 생각할 때 일어나는 감정의 울렁거림이 아니라 그 분의 뜻에다 우리의 의지를 결단력 있게 일치시키고 그 분의 뜻을 우리 삶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대가에 관계없이 그 분의 뜻과 섭리만을 찾고자 하는 것이요, “사랑의 주님! 나는 오로지 당신이 원하는 것만을 원하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이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차원이다. 그렇게 하느님을 우리 삶의 중심으로 삼을 때, 우리의 생활은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내적인 평화를 얻고 행복을 갖게 된다.
  물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생활에서 오는 걱정, 좌절감, 불행 그리고 육체적인 모든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반드시 벗어나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것이 된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세속적인 모든 것들로부터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생활에서 오는 여러 가지 장애, 어려움, 모순들과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이러한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우리에게 동물적인 만족을 줄 수는 있겠지만, 참된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참된 행복은 하느님과의 일치 속에서 얻어지는, 그 분의 강력하고 밝은 사랑이 있을 때 가능하다. 하느님의 사랑이 하나의 일치된 힘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만약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고 우리의 모든 희망과 활동들이 그런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면 우리는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느님의 사랑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우리의 행복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해 위협받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이상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의 뜻을 추구하는 사람의 생활에서는 모든 것이 안정되고 제 자리에 놓이게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참 사제의 길”(레오 트레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