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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옮김] 진리의 열망을 통한 구원 (고전학자 고미숙)

 



 

http://ch.yes24.com/Article/View/22552?pid=130405

오늘날 고전문학은 현대인들이 다시 배우고 알아야 할 지혜가 담겨있다고 하지만 사실, <열하일기>나 <동의보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로 읽어 본 사람 드물 듯 한데요. 고전읽기를 시도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해 볼만한 일은 지성을 통해서 세계와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공부고, 수행이고, 구도이자 진리에 대한 열정이죠. 예전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먹고 살기 힘들고, 가족을 부양한다고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이유가 점점 없어지는 시대가 아닐까요. 어쩌면 전 인류에게 남은 유일한 길은 진리의 구도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것 말고는 차이를 만들어 낼 수가 없거든요.

오히려 전 요즘 부자들이 안됐어요. 어떻게 자기를 표현해야 되죠? 어떻게 해야 이 가난한 사람과 달라져요? 요즘에 달라지는 건 감옥에 가는 거 말고는 없을 것 같은데요(웃음).

부자들이 차별화했던 그 화려한 것이 스마트폰에 다 들어가 버렸잖아요. 그러면 이제 남은 건 진짜로 나만의 고유한 인생을 사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다산과 연암은 학문과 지성을 통해서 자기 인생을 구원한 인물들이에요. 그들 역시 자기 운명의 코스를 바꾸지는 못했어요. 유배지에 가는 걸 막을 수 없었죠. 사람들은 운명을 개척하는 걸 길흉을 바꾸는 거라고 착각해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다산이 유배를 가지 않으려면 주변 인간의 삶이 다 바뀌었어야 했어요. 그것은 불가능하죠. 모든 걸 통달한 사람도 자신에게 오는 인연은 단 하나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걸 어떻게 다른 사람과 다르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달린 거죠. 유배 생활 18년을 현명하게 사용한 것이 다산을 만든 거예요. 누군가는 분통이 터져 죽고 누군가는 사약을 받고 누군가는 폐인이 됐어요. 그러나 다산 정약용은 이때 비로소 학자로 거듭났어요.

연암 역시 그 무엇도 평생의 가난함을 바꿀 수 없었어요. 하지만 연암 자신은 그 가난을 수행의 장으로 삼았죠. 당시에는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됐어요. 누구도 불가능하지 않죠. 이제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 고유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여부는 스스로가 얼마나 진리를 열망하는가에 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