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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이 시대의 요셉이 되어라! (대림4주일 설교)



 




2013. 12. 22 (대림4주일)/ 이사7:10-16, 로마1:1-7, 마태1:18-25

 

 이 시대의 요셉이 되어라!

 

불교 신자들은 인사할 때 “성불 하십시오”라고 인사를 합니다. 불교의 궁극 목표인 큰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라는 말입니다. 번뇌를 넘어 해탈에 이르시라는 덕담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런 인사가 있습니다.

성찬례 때 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인사를 합니다. 이 말은 곧 우리 안에 “‘임마누엘’이루어지기를 빕니다.”라는 말입니다. “주님과 하나가 되십시오.” 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인사인지 모르겠습니다. 불교 신자가 성불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주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할 때 주께서 주시는 축복과 평강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운데 임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치유되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참된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영원 생명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임마누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임마누엘이 어떻게 우리 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약혼자였던 마리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기를 갖게 된 것을 알고 남몰래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문제만은 법대로 할 수는 없었습니다. 법대로 하기에는 너무도 마리아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은밀히 파혼하려고 마음먹었던 것 같습니다. 이 결단은 요셉이 마리아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요셉에게 명령합니다. 지금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아내로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처구니없는 제안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천사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자신의 현실, 자신의 자존심, 다 접어두고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분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모든 일”이란 말이 눈에 뜁니다. 이 일 때문에 임마누엘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서가 말하는 이 일이란 어떤 일일까요? 물론 성서 전체를 보면 마리아와 요셉의 순종이지만, 마태복음은 요셉의 순종입니다. 

루가 복음은 마리아가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요셉이 주인공입니다. 아기를 잉태한 마리아도 중요하지만 그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한 요셉의 순종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임마누엘”의 예언이 완성되려면 마리아의 순명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요셉의 순종도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마태와 루가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사할 때마다 임마누엘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가야할 신앙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와 요셉의 순명을 통해 비로소 임마누엘 약속이 성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어떤 여인입니까? 예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한 여인입니다. 마리아는 지금 천사가 제안한 이 선택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인지 알았습니다.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는 결코 갈 수 없는 길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수락하는 순간 마리아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요셉도 그리고 가족도 친구도 다 포기해야만 합니다. 또 여자로서의 순결과 체면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간음한 여인으로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라는 한 아기를 이 땅에 때어나게 하기 위하여 이 모든 고난을 감내해야만 하는 선택한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2천 년 전 예수의 어머니로만 남아 있을까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서는 소설책이거나 동화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서를 지금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마리아는 2천년에도 있었고 오늘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2천 년 전 마리아를 통해 오늘 이 시대에 존재하는 마리아를 찾아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안에는 수많은 마리아가 있습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이 시대의 마리아라고 생각합니다.

도봉교회에 있을 때, 의정부 교도소에 가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도봉교회 교우님이 선교하시는 곳인데 몇몇 사람이 돈을 모아 푸짐한 음식과 선물을 준비해서 그들과 함께 성탄을 축하했습니다. 비록 한 때 실수로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지만 그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이들이야 말로 이 시대의 마리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가끔 안나의 집 수녀님들을 생각합니다. 안나의 집은 평균 연령이 75세가 넘습니다. 때문에 일 년 내내 수족을 쓰지 못하는 할머니들이 한두 분 정도는 늘 계십니다. 그런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할머니를 씻기고 그들을 보살피는 수녀님들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울 때가 있습니다. 사실 저도 이런 일을 해보았지만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난 자식도 하기 어려운 일인데 일 년 내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왜 수녀님들이 이런 곳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로 예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고, 그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이 시대의 마리아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볼 수 있는 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의 헌신입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하고 보듬는 그들의 헌신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 이들은 마리아입니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기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있는 저들이야 말로 오늘의 마리아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던지 생명질서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이 시대를 사는 마리아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정말 많은 마리아가 있습니다. 오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얼마 전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가 그렇고, 인술을 펼치다 별세하신 장기려 박사야 말로 오늘의 마리아입니다. 요즘 국가 정보기간이 불법적으로 대선에 관여한 것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사실 국가 기관이 대선에 불법으로 관여하게 되면 민주주의의 근본 질서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목소리도 이 시대의 마리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예언자로 수도자로 봉사자로 살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주변에는 언제나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것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는 사람들을 돕겠다고 자선냄비 앞에서 추위를 이기며 종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올해도 작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헌금을 했다고 합니다. 비록 작은 정성이지만 이 곳에 헌금을 할 수 있는 그 정성, 바로 오늘의 요셉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자신은 그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있다면 그가 바로 오늘의 요셉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처음에 임신한 마리아를 보고 요셉이 어떻게 하려고 했습니까?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겠다는 말입니다. 파혼을 하면 요셉은 마리아에 대하여 그 어떤 의무도 가질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게 되면 달라집니다. 그 순간부터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했습니다. 마리아와 함께 모든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의 기쁨은 임마누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는 임마누엘이 이루어집니까? 요셉이 기꺼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했을 때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마리아에게 요셉이 필요합니다.

 

교우 여러분이 우리는 이 땅의 마리아를 위해 요셉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서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실천해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도자로 혹은 선교사로, 노숙자와 장애자를 위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그리고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을 위해 자신을 바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개발에 밀려 죽어가고 있는 환경을 살리기 위해, 사회의 정의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 자신을 바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요셉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박성광 신부님께서 노숙자를 위해 겨울 헌옷을 모아달라고 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노숙자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고 있는 박 신부님이야말로 이 시대의 마리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위해 헌옷 하나 모아주는 행위가 바로 오늘의 요셉이 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들의 요셉이 되어 줄 때 비로소 임마누엘의 역사가 이 땅에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인사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마리아가 되고 요셉이 될 것을 서로 격려하는 인사입니다. 우리가 서로 마리아와 요셉이 되어 줄 때 그리스도의 평화와 그리스도의 생명은 이 땅위에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성탄을 맞이하는 사람들, 먹고 마시며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이 시대의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여 이 땅에 임마누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

이 말씀은 2천 년 전에 요셉에게 한 말씀이 아니라 바로 오늘 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기꺼이 요셉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임마누엘 성탄을 만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 (성공회 안중교회 관할사제 최은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