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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에게

쫑알공주 도희체

 

 

신부님, 장례식장에 다녀와서 트윗을 보니 "도희야 그곳에서나마 행복하렴..."

"도희야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실 거야" 는 글이 있네요.

도희라는 아이가 11살의 나이로 올 봄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구요,

도희아빠는 그 아이의 글씨로 "쫑알공주 도희체" 라는 이름의 폰트를 만들어

배포하며 도희와 도희와 같은 아이들과 부모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2092610134121483&outlink=1

 

앞에서 말씀드린 죽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고 돌아왔는데...

도희아빠가 자신의 딸을 기념하기 위해서 연 블로그를 보며

http://dohhee.tistory.com

마구 눈물을 흐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도희아빠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공주야, 조금 전에 엄마랑 오빠랑 아빠랑 모여서 기도했어. 도희를 위해서, 도희와 함께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매일 기도하고 있어. 너희들이 하늘 나라에, 그 분의 품 안에 있다는 것을 믿어. 그렇다고 슬픔이 없어지거나 옅어지는 건 절대로 아니야. 절대로 그럴 수가 없는 거야. 가끔 어떤 분들은, 엄마아빠에게 좋은 말로 위로하신다며, 하나님 품 안에 있다는 것을 너무 강조하기도 해. 틀린 말씀은 아니고, 위로의 말씀이긴 해도, 엄마아빠의 슬픔은 어쩔 수 없어. 삶은 교리라는 틀로 쉽사리 맺었다 풀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특히 자식을 잃은 이 끔찍한 일을 교리로 극복하라는 건, 또다른 고통이란다.

 

실은 성공회가 <별세자를 위한 기도>를 드리는 것을 아시고 오셔서

딸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말씀하고 상담을 청했습니다만,

저 역시 원론적인 답 이상으로 그 분을 위로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사랑한 만큼 슬프고 사랑한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지요.

십자가는 위로할 일도 위로받을 일도 아니고 견디고 견디며 그 견딤을 함께 견뎌야 하는 일일까요?

위로해야 하는 당위와 위로할 수 없는 무능 가운데, 저는 눈물로 무언의 답을 함께 나눌 뿐입니다.

 

그래도 미소 지으며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것과 

눈물 흘리며 울 수 있다는 것에 인간으로서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죽음의 운명이 분명하여 슬퍼하는 우리에게... 

"이제 심오한 진리 하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하신

바울로 사도의 말씀은 죽음을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로 받아들이도록 일깨웁니다. 

도희아빠의 사랑으로 도희는 새로운 생명으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수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갑니다. 

 

하느님, 도희를 자애로우신 당신의 품에 안아주시고 편히 쉬게 하소서.

도희아빠와 엄마, 유족들의 마음에 함께 하시어 당신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와 지혜로 위로하시고

사랑으로 지켜주소서.

당신 안에서 사랑으로 다시 만날 소망을 지금 허락하시고 강복하소서.

 

신부님도 기도해주시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