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호 2011. 9. 9. 16:34

                                             제사(祭祀)와 예배(禮拜)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이면 “제사문제”로 여전히 갈등을 빚는 일이 많습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유교식 제사 방식을 효에 대한 의례로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개의 개신교 신자들은 제사가 일종의 우상숭배이므로 절하는 일조차 거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대한성공회의 입장은 별세기념성찬례 또는 별세기도(성공회기도서 381쪽), 추도예식(기도서 806쪽)을 권장합니다. 전통적인 제사방식도 위패(位牌)나 지방(紙榜)등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일이 중점이 아니라면 부모나 조상을 기억하며 절을 하는 등 효(孝)와 예(禮)를 표하는 일은 신앙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형식이 “제사냐, 아니냐” 보다도 그 실제적인 내용들을 이해하고 식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유교식의 조상제사는 효(孝)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가족공동체의 하나됨을 도모하는 일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우리의 문화와 정서에 뿌리를 내린 계승할 만한 전통입니다. 하지만 그 전통의 그림자 곧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속적인 이해, 말하자면 비그리스도교적이고 비신앙적인 이해는 바로잡혀야 합니다. 가령 조상이 죽으면 귀신이 되기에 그 귀신을 달래고 섬기는 태도로 제물과 예를 바쳐야 한다는 의미라면 이는 극복해야 마땅한 이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핵심은 창조주(創造主)로 고백되는 하느님께서 먼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위해 절대적(絶對的)인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는 이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우리를 위해 우리 곁에 오신 성자 하느님이십니다.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변덕스럽고 두려운 신을 달래려는 의도로 제물을 드리는 제사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신의 절대적인 은총과 사랑을 기억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는 예배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산 이와 죽은 이가 함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따라서 조상을 기억하는 제사의 형식도 가장 바람직한 것은 하느님 앞에 교회공동체로 모여서 함께 별세기념 의향으로 드리는 감사성찬례입니다. 우리 모두의 생명, 우리 모두의 삶, 우리 모두의 죽음이 다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은 모두 다 신앙 안에서 서로 깊이 나누어야할 삶의 진실들입니다. 우리들 사이의 그 어떤 생각과 느낌도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보다 클 수가 없습니다.

명절은 하느님 앞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서로 마음을 열어 이해하고 격려하는 기회입니다. 참된 화해를 이루고 소망을 다짐하며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귀한 섭리로 이루어진 가족 공동체로서 허락받은 삶을 깊이 감사하며 어려운 처지의 형제자매들도 돌아보는 복된 추석명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