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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옮김] 나눔의 집 영성

 

http://walkingprayer.tistory.com/21

춘천 나눔의집 블로그에서 옮깁니다.



나눔의집 영성 

 

1. 우리는 예수와 복음을 몸으로 사는 부활의 증인이고자 한다.

나눔의집은 종교와 관련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지만 나눔의집의 뿌리에는 예수와 복음을 몸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눔의집 가족들은 삶의 궁극적 목표와 희망을 예수와 복음에 두며 예수와 복음에 대한 기억을 생활화하려고 합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과 초대에 기꺼이 몸으로 응답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꿉니다.

 

- 사업과 활동에 대한 신앙적 근거

나는 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직업의식인가, 연민인가, 동정인가, 정의감인가, 목적의식인가, 나는 왜 가난한 이웃과 관계 맺으려 하는가.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교사인가, 후원자인가, 문제해결사인가, 자선가인가, 친구인가, 나는 이웃에게 다가가는 일이 하느님께 다가가는 일이라고 믿고 있는가, 이웃과 나누어야 할 가장 궁극적 가치가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가. 내가 나누어야 할 사랑의 목표가 그리스도 예수가 그러했듯이 그들의 벗이 되는 일이라고 믿는가. 내 활동의 동력의 근거가 우리에게 내려 온 가없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어야 함을 나는 믿는가. 나는 나의 활동을 통해서 하느님과 이웃을, 참 사람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만나고 있는가. 나는 나의 활동을 통해서 복음적 가치와 하느님의 현존을 증거하려고 하는가, 자기 성과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가.

 

- 하느님 활동방식에 대한 자기 개방

나는 내 활동을 통해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하느님의 길인가, 자기 확장의 길인가, 나는 나의 무력함과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 들여 인정하고 하느님과 벗들의 도움과 조언을 향하여 자기를 개방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선택과 결단에 앞서 하느님과 이웃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경청하며 깊이 묵상하고 있는가.

 

-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체험과 이에 대한 증거

나는 나의 활동과 만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하고 있는가. 하느님께서 일으키는 사랑의 바람과 그 사랑에 새롭게 태어나는 자기 자신과 가난한 이웃들을 만나고 있는가. 자비와 은총, 화해와 해방, 치유와 자유의 하느님을 만나고 있는가.

 

 

2. 우리는 기도(묵상)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이제 어디에도 ‘서 있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모든 학교는 市場에서 생존하기 위한 ‘속도와 경쟁과 자기 확장’을 훈련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분석과 종합과 판단이라는 합리적 이성의 감옥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으며 어디에도 아름답고 정의롭고 거룩한 것에 대한 ‘놀라움과 경외(敬畏)와 찬양하는 법’을 가르치는 道場은 없습니다. 어디에도 비참하고 불의하고 병든 세상에 대하여 아파하고 분노하고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스승은 없습니다. 어디에도 존재의 깊이와 용기, 하느님과 마주하기 위한 기도와 예배의 지혜를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나눔의집은 ‘서 있는 사람(기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꿈꿉니다. 무수한 유행과 정보, 기술과 지식의 단편들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깊은 눈길로 세상을 응시하고 인생과 세계의 초월적 지평과 근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꿈꿉니다. 모든 예술과 철학과 종교의 뿌리에는 놀라움과 경외, 찬양하는 능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그 근원의 하느님을 찾아가는 엄숙한 걸음입니다. 나눔의집은 그 걸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꿈꿉니다.
 
 

- 기도와 묵상, 성서 읽기의 생활화
 
나는 내 생활과 활동의 기본적 양식을 어디에서 얻는가. 나는 나의 가장 가까운 벗을 누구하고 생각하는가. 나는 누구의 소리와 마음에 가장 예민한가. 나에게 늘 다가오시고 내안에서 말을 건네시는 하느님을 향하여 나의 귀는 열려져 있는가. 나는 그 여린 소리를 듣기 위해 얼마나 나의 마음과 귀를 비우고 있는가. 나를 비우지 못하도록 채우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 실천활동과 프로그램에 임하는 본원적 식별
 
내가 모든 프로그램과 사업 속에서 일관되게 관철시키고자 하는 내용과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들을 이웃들의 상황과 관심과 처지에 맞게 전달하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가. 나는 이웃들의 요청에 얼마나 예민하게 열려져 있으며 그 요청에 대한 복음적 응답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 나눔영성 운동의 전개

나는 내 활동을 통하여 만나는 관계들을 근원적인 관계로 성숙시키고 그곳에서 위로와 격려와 믿음을 키워가기를 바라는가. 나는 이웃과의 관계를 궁극적으로 어떻게 발전시키고 성장시키기를 원하는가.

 

 

3. 우리는 노동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원리와 법칙은 효율성과 경제성의 있습니다. 가장 적은 투자로 가장 높은 이윤을 산출하여야 한다는 사고가 자본주의적인 경제활동과 교육의 기저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사람의 노동을 ‘상품화’시키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노동력의 가격을 높이기 위하여 서로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교육과 직업의 목적은 ‘비싼 노동력의 깃발’이며 삶의 깊이와 풍요는 그 깃발 아래 짓눌려 신음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노동’은 계속되는 하느님의 창조활동의 파트너와 매개가 아니라 시장경제의 교환물로 ‘상품화’되었고 사람은 자기노동으로부터 소외되어 자기 노동을 여가를 즐기기 위한 고역스러운 준비로 생각하거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노동’이 사람의 깊은 곳에 각인된 하느님의 형상을 꽃피우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가장 커다란 축복이며 은총이라는 복음의 가르침을 믿습니다.
 
우리는 노동이 참사람으로서의 자기실현을 위한 ‘길’이며 세상을 계속 새롭게 창조해 가시는 하느님의 창조활동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허락된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진실을 믿습니다. 우리는 노동과 노동하는 사람의 신성함을 증거하고 회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꿈꿉니다.

 

- 인간 노동에 대한 신학적 관점 / 교육과 지역운동에서 노동에 대한 관심

노동은 인간 삶의 한 영역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기초이다. 노동은 사람이 오늘도 지속되고 있는 하느님의 창조사역에 참여하는 방식이며 사람이 사람되는 생활의 기초이다. 노동을 통하여 우리는 세상과 사람들 사이에 사랑으로 육화할 수 있으며 세상에 살아가는 생명을 떠받드는 섬김에 구체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특히 역사와 생활의 가장 중요한 기초를 이루는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노동, 집을 짓는 건설노동자들의 노동, 옷을 만드는 의류노동자들의 노동은 그 노동이 가지는 가치에 비하여 사회적으로는 역전된 평가와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는 사회와 주민들이 이 같은 바닥 노동에 정당한 평가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직업은 자기를 사회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생활양식이며 그곳에서의 자긍심은 삶의 보람과 일치한다. 우리는 노동을 경쟁과 차별의 양식으로, 노동을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문화나 구조에 대하여 반대하며 협동과 연대의 노동, 공동체적 노동, 생명의 노동을 지향한다.
 
특별히 우리가 일상 활동과 교육활동에서 올바른 노동관과 직업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며 실제로 그 같은 가치가 현실화될 수 있는 공동체를 건설하고 양육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가난한 사람의 노동과 삶에 대한 이해 / 예수와 제자들, 천막노동자 바울로

바닥 노동은 말 그대로 모든 노동 가운데 인간의 생활과 삶을 가장 직접적이며 정직하게 떠받치는 토대이다. 먹을 것, 입을 것, 살 집을 만드는 노동은 바닥노동이고 바닥 사람들의 노동이다. 그러나 시장과 자본의 논리는 바닥을 주변화시키고 억압적 체계에 종속시켜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예수와 아버지 요셉이 목수라는 사실, 많은 제자들이 어부였다는 사실, 그리고 회심한 바울로가 천막을 깁는 노동을 하며 살았고 자기 노동을 통하여 생계를 유지하며 복음을 증거하고 선교하라고 하였던 충고에 주목한다.
 
노동과 기도의 일치를 강조하였던 베네딕트의 영성과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의 바닥노동 속에서 숨쉬고 자라는 그리스도교적 영성의 맥을 잇고자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바닥노동이 지니는 신앙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를 회복하도록 돕고 가난한 사람들이 바닥노동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일궈가는 사람들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사역에 참여한다.
 
우리는 특별히 나눔의집에서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체험을 통하여 바닥사람들을 보다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해 노력하며 바닥노동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과 문화에 대하여 연구하고 가난한 이웃들이 처한 비인간적이고 반복적인 상황을 인간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4. 우리는 공동체로 살고자 한다.

우리는 죄가 이기심과 탐욕에 근거하며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공동체형성에 있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믿으며 갈수록 더해가는 공동체의 해체와 인간의 파편화에 반대하며 복음이 가르치는 공동체의 원형을 건설하는 일에 힘쓰고자 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관심하여 공동체를 통하여 우리와 가난한 이웃들의 인간적 성숙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기에 앞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며 공동체를 통한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공동체에 비추어진 자기처럼 정확한 거울은 없습니다. 나눔의집은 협동과 연대와 사랑이 참사람 됨을 실현하고 성장시켜 가는 구체적 길이고 방법이라 믿으며 공동체로 살아갈 것을 꿈꾸는 사람이고자 합니다.

 

- 회심과 공동체

회심은 자기를 초월하는 만남의 시작입니다. 회심은 이기적인 자기 너머에 있는 해방된 자기, 공동체적인 자기, 참자기를 만나는 문이다. 우리는 회심한 사람들의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징표가 사랑이며 사랑을 통한 화해와 관계의 회복이라는 성서의 증언을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회심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과 공동체 형성의 길이 다른 길이 아니며 하나의 길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사랑을 통하여, 노동을 통하여, 학습을 통하여, 친교를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공동체를 건설하기를 희망한다. 우리 스스로 공동체적인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적인 사람으로 성숙되어 가기를 기도한다.
 
특별히 가난한 이웃과 하느님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일과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과 생활 속에서 그 공동체룰 이루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 나눔의집 공동체운동의 뿌리(협동조합, 소모임, 주민조직 등)

우리는 나눔의집에서 만나는 사람들, 가정결연 가족들, 봉사자들, 협동조합 가족들, 활성가들, 신앙공동체 가족들, 임대아파트 주민들, 청소년 동아리들, 생활공동체, 실업자사업단… 이 모든 공동체들 속에서 하느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드는 일에 우리의 마음과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는 여러 토양을 준비하고 물줄기들을 열고 하느님께서 그 물줄기를 타고 오실 수 있도록 예비하고 준비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바치기 원한다.

 

- 소모임 조직과 운영에 대한 연구

우리는 각 사람이 활동가이든 봉사자이든 신자이든 저마 어떤 형태의 소모임에 속하여 있기도 하고 소모임을 조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임이 하나의 조직으로서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와 생명체로 성장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하고 그 구성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하고 그 구성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자신이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를 종종 잊은 채 활동하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공동체운동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공동체이든지 살아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공동체 운영에 대한 부단한 연구와 기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5. 우리는 투쟁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크고 거대한 물고기일지라도 죽은 물고기는 흐르는 물결에 떠내려 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고 연약한 물고기일지라도 살아있는 물고기는 항상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생명의 몸짓과 운동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고통과 억압, 빈곤과 소외가 존재론적이고 사회구조적인 죄의 결과라고 믿으며 이 같은 죄스러운 현실과 싸우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실존과 역사와 현실의 한복판에서 복음적 가치와 진실이 꽃피고 빛나는 세상을 가로막는 모든 유혹과 죄에 대하여 투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꿈꿉니다.

 

- 복음을 지키기 위한 죄(실존과 구조, 환경)와의 투쟁

분노가 없는 사랑은 정의를 잃을 수 있고 사랑 없는 분노는 화해를 잃을 수 있다. 때문에 반복음적인 세상에서 복음을 지키고 전하기 위한 노력에는 반드시 용서와 투쟁이 동반된다. 그리고 용서와 투쟁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는 연민의 눈물에서 시작되지 않는 분노를 경계하듯이 정의로운 분노가 제거된 사랑도 경계한다. 이웃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나눌 수 있는 마음 밭을 가꾸는 일과 불의와 죄 앞에서 용기있게 투쟁할 수 있는 마음을 가꾸는 노력은 하나의 길이다.

 

 

6. 우리는 가난하게 살고자 한다. 

복음이 가르치는 ‘가난’은 소유를 향한 외적 포기와 하느님을 향한 내적 귀의를 의미합니다. 나눔의집은 이처럼 끝없이 새로운 소유를 통해서 만족해하고 소유에 의지해 살고자하는 모든 우상의 유혹을 거부하고 복음적 진리를 향한 헌신으로 자기 존재를 투신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꿈꿉니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계급적 갈등과 이념적 갈등, 생태계의 위기의 중심에는 ‘탐욕스러운 집착’의 뿌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눔의집은 그 뿌리를 근원적으로 자르는 ‘자발적 가난’을 예수의 모범에서 배우고 따르고자 합니다.
 
나눔의집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편드시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사랑하며 그들 속에서 하느님 나라 공동체를 만들어 가신 예수를 따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우선적인 관심과 사랑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육화(肉化)와 비움의 신앙을 예수의 가난에서 배우며 가난한 사람‘처럼’ 살지 않고 가난한 사람‘으로’ 사신 예수, 소유의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비우는 용기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신 십자가를 따라 살고자 합니다.
 
우리는 삶의 진실과 아름다움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가난의 자리’라고 믿으며 탐욕스러운 죄의 결과로 초래된 빈곤의 뿌리를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일은 자발적 가난을 통한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와 투쟁이라고 믿습니다.

 

- 육화 / 속에 들어가 사는 것(복음적 사랑의 완성)

가난은 재물과 소유와 권력에 대한 외적 포기와 하느님과 진리를 향한 내적 귀의를 의미한다. 가난은 자신을 낮추어 비천한 자리에 오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은 ‘비움과 육화’의 모범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삶을 통하여 완성되었고 우리는 그 모범을 따라 살고자 한다.
 
육화는 같은 조건과 자리에 자기 존재를 위치 지우는 일이다. 삶의 온갖 불안정, 근심과 걱정, 바램과 희망, 분노와 인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함께 나누고 만나는 것을 의미하며 그곳에서 ‘함께 사는 친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199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