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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옮김) 성소(聖召, Vocation)와 성직(聖職)


    
                   성소(聖召, Vocation)와 성직(聖職)

신앙을 가지는 일은 단순히 어떤 교리에 대해 인식하고 동의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성을 넘어서는 신비한 경험을 통해 초월적 세계의 현실성을 인정하는 일도 아닙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통해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다름 아니라 절대자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이를 따라 사는 일, 곧 소명(召命)에의 응답(應答)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소(聖召) 곧, 거룩한 소명으로 성직(聖職)과 수도직을 존중하는 일에는 좀 더 조심스러운 성찰이 필요합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평신도들보다 더 높은 가치와 수덕(修德)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더 거룩하고 더 존경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당연해 보이는 이런 생각은 실은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살이에서 복음의 가치를 지키는 일에 평신도는 적절히 타협할 수도 있고, 이 때 생기는 불편한 마음을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 의지하여 위안을 얻으면 된다는 식의 합리화로 변질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를 피하려면 성직자와 수도자의 “거룩함”은 평신도의 “거룩하지 못함”과 대조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는 다 거룩합니다. 성직의 거룩함은 하느님의 크신 부르심 안에서 평신도의 거룩함과 일치되고 통합되고 대표되는 거룩함으로 보아야 합니다. 신앙적인 거룩함은 믿음 없는 세속의 가치기준과 구별되는 거룩함이고, 이 거룩함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소명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신자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 성령의 사람으로 이미 구별되어 거룩합니다. 모든 신자는 세상살이에서도 무슨 일이나 하느님께서 맡기시는 거룩한 일로 여기고 거룩함을 지키는 마음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 신자 가운데에서 선별되어 “훈련”과 “시험”을 거쳐 “서품”을 받은 성직자들은 모든 신자들의 거룩함을 보호하고 대표하는 거룩한 직무를 위임 받습니다. 이 성직의 “거룩함”은 개인적인 수덕의 모범에서보다도 복음과 교회와 인류를 위하여 “말씀과 성사”의 전문가로서 참된 헌신과 섬김과 지도력을 보임으로써 드러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