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옮김] 성소주일 설교 (2012년 4월 29일 부활4주일)

(2012년 4월 29일 부활 4주일)   성소주일 설교

사도행전 4:5-12 / 시편 23 / 1요한 3:16-24 / 요한 10:11-18

 

  대한성공회는 성소계발과 신학교육을 위해 매년 성소주일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성소주일에는 성공회대학교 운동장에 모여서 함께 연합예배를 드리고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바자회를 통해 음식과 특산품을 나누고 수익금을 장학금으로 기쁘게 봉헌해 주셨습니다. 이런 정성과 사랑의 마음이 모여서 지금의 성공회대학교가 있고 지금의 성직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교우 여러분들의 기도와 사랑의 열매입니다. 

 지난 제61차 전국상임위원회에서는 매년 9월에 지켜지는 성소주일이 추석과 대한성공회 설립일 등과 겹치는 관계로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아 성공회대학교 개교기념일인 4월 30일 직전 주일을 성소주일로 지키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여건과 거리상의 어려움으로 매년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아서, 연합예배로 모이지 않는 해에는 아쉽지만 각 교회에서 특별기도와 봉헌으로 성소주일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비록 함께 모이지 않더라도 오늘 만큼은 하느님께서 부르시고 세워주신 성공회대학교와 성소자들을 특별히 기억하고 기도 해주시기 바랍니다.  

성소(聖召)란 무엇입니까? 사전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성직이나 수도생활을 위해서 구별하여 특별히 부르신 것을 성소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소주일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직자들과 수도자들과 성직후보자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시대마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구별하여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을 비롯하여 수많은 판관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사제들 세우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이들 모두 개인적으로는 흠결이 많고 부족한 사람들이었지만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에는 지혜와 능력을 함께 부어주시기에 그 은총으로 이들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서 말씀이 증거 하듯이 제자들 또한 많은 한계와 실수를 드러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순종하여 따랐을 때에 위대한 사도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즉 제자들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길 때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인간적인 부족함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일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는 소중한 하느님의 일꾼이 되었고 복음전파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까지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성소로 부름 받은 사람은 존재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구별하여 세운 직분이 거룩하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성직자들은 주님의 몸 된 교회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이 부르시고 세우신 구별된 직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들을 부르신 이유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능력이 출중하거나 더 지혜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인간적인 매력이나 세상적인 능력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길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릅니다. 사실 성직자들이나 우리 모두가 따라야할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응답하며 그 뒤를 따라가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가 성소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성직자는 특별한 훈련과 헌신을 통해 교우들이 올바르게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이끌어주는 구별된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참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며 우리 모두는 그분의 양떼들이라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복음입니다. 목자는 양들을 알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릅니다. 양들을 부르는 목자의 음성이 곧 성소 아니겠습니까?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가는 것이 곧 소명 아니겠습니까? 성소에 응답하는 삶, 소명을 따라가는 삶은 목자가 양들을 모든 위험에서 지켜주고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성소는 목자에 대한 전적인 신뢰 관계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성소는 하느님의 일방적인 부르심도 아니고 의심하면서 억지로 따라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선한 계획을 믿고 그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하는 것이 성소의 참된 의미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범인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 성서는 착한 목자라고 표현합니다. 왜 예수님을 착한 목자라고 불렀을까요?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모범으로서의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는 직분인지 성서 안에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착한 목자는 일치의 중심입니다. 모든 양들이 일사분란하게 목자의 말을 따라 움직이고 목자는 그 양들이 가야 할 방향을 이끌어줍니다. 양들이 목자를 중심으로 모이지 않고 자기의 유익과 생각대로 각기 제 길로 간다면 그 양은 위험에 빠지거나 길을 잃고 맙니다. 목자를 중심으로 모일 때 양들에게 생산적이고 건강한 무엇이 발생합니다.
  1독서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고 합니다. 건물이 지어지기 위해서는 벽돌들이 많이 필요하지만, 아무리 각개의 벽돌이 단단하고 아름다운 벽돌일지라도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결코 건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바울로 사도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것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온 건물은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여러분도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함께 세워져서 신령한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에페 2:20-22) 우리는 일치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함께 지어져 가는 주님의 거룩한 성전인 것입니다.
  성공회 교회는 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공교회입니다. 이는 주교가 공동체의 일치의 상징이며 그를 통해 하느님의 선한 뜻을 나타내 보이신다는 공동의 믿음에 기반 한 제도입니다. 곧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그 권한과 역할을 주교에게 위임하여 오늘의 교회를 치리하시고, 주교는 또 사제들에게 그 직분을 위임하여 각 교회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교와 사제들의 모습이 불완전할지라도 우리는 그분들이 일치의 중심이 되도록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분들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일치의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나 사회적인 면에서 개개인이 성직자보다 더 우수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그 재능들은 성직자를 중심으로 공동체의 덕을 세우고 성장시키는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성직후보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부족하더라도 그들을 위해서 더욱 기도하고, 그들이 믿음 안에서 더욱 성숙해져서 공동체의 일치의 중심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둘째,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헌신합니다. 목자는 양들이 위험에 처할 때 목숨을 걸고 이들을 지키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삯꾼은 이리떼가 양들을 공격할 때 자기 안위를 위해 도망가지만 착한 목자는 양들의 안전을 위해 맞서 싸웁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의 자녀로 태어나 오랫동안 실제로 목동생활을 했던 필립켈러는 시편 23편을 묵상한 내용으로 <양과 목자>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보통 목동이 양들을 데리고 들로 나갈 때 지팡이와 막대기 두 가지를 가지고 다닌다고 합니다. 끝이 구부러지고 긴 지팡이는 양들이 길을 잘못 갈 때 툭툭 쳐서 바른 방향으로 가게 하기도 하고, 구덩이나 덤불에 빠진 양들을 걸어서 잡아당겨 꺼내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막대기는 허리춤에 차는 한 팔 길이정도의 몽둥이로 양들을 공격하는 야생동물들을 쫒거나 맞서 싸울 때 사용합니다. 마치 어머니의 자애로움과 아버지의 강한 힘처럼 목동은 지팡이와 막대기로 양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소자들이 세상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바랐다면 어려움이 생길 때 삯꾼처럼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성소자들은 개인의 욕망을 포기하면서 양들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상처를 입기도 하고 열악한 환경을 견디어 냅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이들도 지팡이와 막대기로 양들을 돌보고 위험에 맞서 싸웁니다. 성소주일을 맞이하여 이들의 헌신을 격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그것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들과의 관계 속에서 목자의 존재감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성직자나 수도자만 성소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성소자라고 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2독서인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 이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1요한 3:16)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쳐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만큼 사랑하는 착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형제가 아파할 때 치료해 주고, 절망할 때 격려하고, 슬퍼할 때 위로하는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책임입니다. 이를 못 본체 하면 우리는 삯꾼 목자나 다름없습니다. 착한 목자는 말로나 혀끝으로만 사랑하지 않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착한 목자는 우리 안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사랑합니다. 그 양들도 데려와 먹여주고 보호해 주어 참된 목자이신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성소자로서 우리는 사랑과 헌신을 교회 안에만 국한 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충분히 사랑을 나누고 양육하고 성장하지만 그 사랑의 힘을 교회 밖 세상으로 까지 퍼져나가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이라는 양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착한 목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으로 부르심을 받았지 교회안의 샹들리에, 교회안의 설탕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끼리만 화려하고 달콤한 만족감에 빠져 있을 때 울타리 밖에서는 사나운 이리떼가 양들을 물어뜯고 죽이고 있다면 어찌 교회가 착한 목자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성향이나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착한 목자로 부르신 이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결과적으로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서 한 믿음의 가족이 된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을 전제하지 말고 울타리 밖의 양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를 착한 목자로 부르신 하느님은 지극히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누구나 차별 없이 사랑하시며 누구나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울타리 밖에 있는 다른 양들은 사랑의 대상이지 정죄와 비난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도 애초에 울타리 밖에 있었던 양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성소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큰 뜻을 기억하며 감사합시다. 훌륭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우리 교회의 착한 목자로 세워주셔서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고 일치의 중심이 됨을 감사합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거룩한 백성, 왕 같은 사제로 부르셔서 세상을 향하여 착한 목자로 살게 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기억하며 감사합시다. 특별히 대한성공회 모든 교회가 세상을 인도하는 착한 목자로서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도록 하느님의 지혜와 믿음을 구하며 기도합시다.

  지금 미래의 대한성공회를 이끌어 나갈 신학생들이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에서 장차 훌륭한 성직자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훈련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신학수업을 통하여 지적 훈련을, 아침과 저녁의 성무일과 통한 영성훈련을, 그리고 공동체 생활과 교회생활을 통하여 공동체를 이끌어갈 인성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께서는 대한성공회의 앞날을 이끌어갈 성직자와 수도자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훈련받고 있는 신학생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해 주시고, 아울러 보다 많은 성소지망자가 나타나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직자 양성을 위하여 1914년에 세워져 금년으로 개교 98주년을 맞이한 성공회대학교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도가니에서 순금이 단련되듯이 성소지망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 속에서 단련될 수 있도록 성공회대학교의 발전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착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