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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2년도설교초록

2012년 1월 29일 (연중 4주일) 성서정과 및 강론초록

2012년 1월 29일 (연중 4주일 /녹) 성서정과 및 강론초록

신명 18:15-20

15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나와 같은 예언자를 동족 가운데서 일으키시어 세워주실 것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16 이것은 호렙에서 대회가 열렸던 날 너희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 청을 드렸던 바로 그것이다. '나의 하느님 야훼의 소리를 다시는 직접 듣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 무서운 불을 다시는 보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17 야훼께서는 옳은 말이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이렇게 일러주셨다. 18 '나는 네 동족 가운데서 너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키리라. 내가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주리니, 그는 나에게서 지시받은 것을 그대로 다 일러줄 것이다. 19 그가 내 이름으로 하는 말을 전할 때 듣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친히 그에게 추궁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말하라고 시키지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시편 111

1 알렐루야! 정직한 이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 내 마음 다 쏟아 주님께 감사하리라.

2 주께서 하시는 일들 하도 장하시어 ◯ 그 일들을 좋아하는 사람, 모두 깊이 생각한다.
3 그 하신 일 영광스럽고 찬란하여 ◯ 그 정의는 영원히 남으리라.
4 그 놀라운 일들을 기념토록 남기셨으니, ◯ 주께서는 자비롭고 인자하시다.
5 맺으신 계약을 길이 잊지 아니하시고 ◯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6 뭇 민족의 땅을 그들에게 유산으로 주시고 ◯ 그 위력을 당신 백성에게 보여 주신다.
7 하시는 일은 정의와 진리이시며 ◯ 그 모든 법은 진실 그 자체이시니,
8 영원히 흔들리지 않도록 ◯ 진실과 정직으로 제정되었다.
9 속전을 내어 당신 백성을 구해 내시고: 영원히 지킬 계약을 맺으셨으니, ◯ 그의 이름 두렵고도 거룩하여라.
10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원이요: 그대로 사는 사람이 슬기를 깨치나니, ◯ 주님 찬송 영원히 올려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1고린 8:1-13

1 이제는 우상 앞에 놓았던 제물에 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다 지식이 있다."고 여러분은 말하는데 사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향상시켜 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십니다.

4 우상 앞에 놓았던 제물을 먹는 문제가 나왔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세상에 있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또 하느님은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5 남들은 하느님도 많고 주님도 많아서 소위 신이라는 것들이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다고들 하지만 6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느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이고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7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교우들은 아직까지도 우상을 섬기던 관습에 젖어 있어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을 때는 그것이 참말로 우상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양심이 약하기 때문에 그 음식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합니다. 8 음식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가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안 먹었다고 해서 손해될 것도 없고 먹었다고 해서 더 이로울 것도 없습니다. 9 다만 여러분의 자유로운 행동이 믿음이 약한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0 지식이 있다는 여러분이 우상의 사당에 앉아 제물을 먹고 있는 것을 믿음이 약한 사람이 본다면 그는 양심에 꺼리면서도 용기를 얻어 가지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11 그렇게 되면 믿음이 약한 그 사람은 여러분의 그 지식 때문에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죽으시지 않았습니까?
12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결국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넘어뜨린다면 나는 그를 넘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절대로 고기를 다시 입에 대지 않겠습니다.

마르 1:21-28

21 예수의 일행은 가파르나움으로 갔다.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듣고 놀랐다. 그 가르치시는 것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23 그 때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 하나가 회당에 있다가 큰소리로 24 "나자렛 예수님,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십니다." 하고 외쳤다.
25 그래서 예수께서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하고 꾸짖으시자 26 더러운 악령은 그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켜놓고 큰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27 이것을 보고 모두들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이것은 권위 있는 새 교훈이다. 그의 명령에는 더러운 악령들도 굴복하는구나!"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28 예수의 소문은 삽시간에 온 갈릴래아와 그 근방에 두루 퍼졌다.

<본기도> 살아계신 하느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의 연약한 본성을 주님의 은총으로 도우시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크신 은총과 영광을 깨닫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으로 이제와 영원히 사시며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악령(惡靈)을 추방하는 주님의 권위 (마르 1:21-28) 

C.S. 루이스는 사람들이 악마에 관하여 갖기 쉬운 잘못된 태도 두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를 믿되 불건전하게 지나친 관심을 쏟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성공회 교인 숫자보다 더 많은 무당들이 성업^^중입니다. 케이블방송마다 한가지 이상 귀신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습니다. 귀신의 세계는 그만큼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며 온갖 사이비 이단의 못자리 노릇을 합니다. 우리는 악마와 악령의 존재에 대해 바른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이 악령을 쫓아내시는 이야기는 오늘의 본문을 포함하여 수없이 많습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이 영험한 무당이셨다”고 표현하면 분노하고 상심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단순한 무당(엑소시스트)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악령추방은 단순한 축귀의 일화가 아니라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느님나라를 이루시는 매우 본질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현대인의 지성을 자랑한다고 해서 악령의 존재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정신병 같은 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악령은 실재합니다. 문제는 그것의 본질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슨 푸닥거리로 몰아내는 “귀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령은 성령을 대적하는 존재입니다. 성령을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악령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체험하고 고백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악령도 경험하고 대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존재론적으로 하느님과 악령이 같은 수준으로 대립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한 분 하느님의 주권만이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주권을 거슬러 사람들을 속이고 이 땅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한 존재가 있습니다. 성경의 전통은 그들을 “타락한 천사”라고 표현합니다. 에페소서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하느님을 대적하는 영적 세력과의 투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이나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악령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악령의 본질은 그 외양의 험상궂음이 아니라 그 양심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데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괴한 이미지는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 의식을 과장하여 악령의 이미지에 투사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습니다. 종종 연쇄살인범들이나 전범들을 통해서 평범하고 착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인간 안에 얼마나 흉칙한 악령이 들어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는 “신통한” 악령이지만 악령은 악령입니다. 악한 것과 선한 것의 식별은 지식의 많고 적음이나 수준 문제가 아닌 것이지요. 모든 지식, 최고의 지식을 가지고도 악할 수 있습니다. 악한 것은 그래서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영혼이라고 표현하면 흔히 우리는 죽은 후에 남는 인간의 혼령, 귀신이나 유령과 비슷한 존재를 떠올립니다. 육체에 깃들었다 분리되는 희끄무레한 에테르나 플라즈마 따위 실체를 영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영혼이라는 개념은 완전한 한 인간의 존재와 관계성을 포괄하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영혼에 대하여, 곧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에 대해 성경은 다양한 이야기와 표현을 전합니다. 그런데 성서가 전하는 “영적”이라는 표현의 가장 현실적인 의미는 놀랍게도 “양심적”이라는 것과 가깝습니다. 우리 영혼의 수준과 상태는 우리의 관계와 판단, 곧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실을 좌우하는 “양심”으로 드러납니다.

너무 시시하다구요? 뭔가 신비하고 황홀하고 기적적이고 엽기적인 일을 경험하는 영적인 차원이 따로 있다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신기한 일들은 대체로 속임수일 가능성이 크고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본질적인 중요성에서 부차적입니다. 가장 본질적인 영적인 문제는 지옥을 눈으로 보고 와서 간증한다는 일 따위가 아니라 “은밀한 것이라도 모르시는 바 없으신” 하느님 앞에 우리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로 판가름납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신자의 참된 영성입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모두 기괴한 외양을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비된 양심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부적절한 행실을 통해 우리는 그의 상태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양심이 마비되면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귀찮은 간섭으로 여기게 됩니다. 

양심이 불필요한 것처럼, 무가치한 것처럼 운영되는 세상이 바로 악령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지금 우리의 양심이 하느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도록 그렇게 작용을 합니까? “이것저것 알 게 뭐냐, 나 하나 잘 살면 그만이지”하는 마음으로 양심을 무시하는 풍조가 일반적이라면 지금이 바로 악령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양심을 마비시키는 그 악령을 추방하여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도 마음에 찔림이 없다면, 즉 양심에 가책이 없다면 그는 스스로 참 불행한 인간이고 결국 다른 이에게도 불행을 조장하는 인간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악령을 몰아내는 예수님의 권위는 “새로운 교훈”의 권위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이 땅에 이루어 가시는 “하느님나라”의 권위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하신 일, 십자가와 부활의 사랑과 진리를 통해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 땅에 실현되어갑니다. 주님의 영, 사랑과 진리의 성령은 우리의 양심을 회복시켜 이 땅에 구원받은 영혼의 나라, 회복된 양심의 나라를 이루어 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악령이 아니라 성령에 사로잡혀 주님의 몸인 교회공동체를 이루어 하느님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