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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2년도설교초록

2012년 7월 29일 (연중 17주일) 성찬례 성서정과



 

2012년 7월 29일 (연중 17주일) 성서말씀 / 성 마리아와 마르타

 

사무하 11:1-15

1 해가 바뀌는 때가 왕들이 싸움을 일으키는 때였다. 그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에게 자기 부하 장교들과 이스라엘 전군을 맡겨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을 무찌르고 마침내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
2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침대에서 일어나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3 다윗이 사령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니, 사령은 돌아와서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 바쎄바인데 남편은 헷 사람 우리야라고 보고하였다.
4 다윗은 사령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다가 정을 통하고는 돌려 보냈다. 여인은 마침 부정을 씻고 몸이 정결한 때였다.
5 바쎄바의 몸에 태기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자기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렸다.
6 그러자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헷 사람 우리야를 자기에게 보내라고 하였다. 요압이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냈다.
7 우리야가 당도하자 다윗은 요압과 병사들의 안부를 묻고 싸움터의 형편도 알아보고 나서
8 집에 돌아가 푹 쉬라고 하였다. 우리야가 어전에서 물러나올 때 왕은 술상까지 딸려 보냈다.
9 그러나 우리야는 집으로 가지 아니하고 대궐 문간에서 근위병들과 함께 잤다.
10 다음날 다윗은 우리야가 집에 돌아가 자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우리야에게 물었다. "그대는 먼 길에서 돌아온 몸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집에 내려가 보지 않았는가?"
11 우리야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온 이스라엘 군과 유다 군이 야영 중입니다. 법궤도 거기에 있습니다. 제 상관 요압 장군이나 임금님의 부하들도 들판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만 집에 가서 편히 쉬며 먹고 마시고 아내와 더불어 밤을 지내다니,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12 다윗은 "그럼 오늘은 여기에서 지내도록 하오." 하며 우리야에게 내일은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우리야는 그 날도 예루살렘에서 묵었다.
13 다음날 다윗은 우리야를 불러들여 한 식탁에서 먹고 마시게 하여 그를 흠뻑 취하게 만들었다. 우리야는 그 날 저녁에도 어전에서 물러나와 집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근위병들과 함께 잤다.
14 날이 밝자 다윗은 요압 앞으로 편지를 써서 우리야에게 주어 보냈다.
15 다윗은 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야를 가장 전투가 심한 곳에 앞세워 내보내고 너희는 뒤로 물러나서 그를 맞아죽게 하여라."

 

시편 14

1 어리석은 자들, 제 속으로 이르기를 ◯ “하느님은 어디 있느냐?”말들 하면서,
✤ 썩은 일, 추한 일에 모두 빠져서 ◯ 착한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2 주여, 하늘에서 세상 굽어보시며: 혹시나 슬기로운 사람 있는지 ◯ 하느님 찾는 자 혹시라도 있는지 두루 살피지만
3 모두들 딴 길 찾아 벗어나서: 한결같이 썩은 일에 마음 모두어 ◯ 착한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4 언제나 깨달으랴. 저 악한들, ◯ 떡 먹듯 내 백성 집어 삼키며, 주님은 부르지도 않는구나.
5 하느님께서 옳게 사는 이들과 함께 계시니 ◯ 저자들은 겁에 질려 소스라치리라.
6 비천한 자들 생각을, 너희가 비웃지만 ◯ 주께서 그들을 감싸 주신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은 시온에서 오리니: 잡혀 간 당신 백성을 주께서 데려 오실 때, ◯ 야곱은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은 기쁘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에페 3:14-21

14-15 나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에게 이름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 드립니다. 16 넘쳐 흐르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의 힘을 돋우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17 그리고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가 사실 수 있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써 18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19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21 하느님께서 교회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요한 6:1-21

1 그 뒤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예수를 따라갔다. 그들은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기적을 보았던 것이다. 3 예수께서는 산등성이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자리잡고 앉으셨다. 4 유다인들의 명절인 과월절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5 예수께서는 큰 군중이 자기에게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사올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것은 단지 필립보의 속을 떠보려고 하신 말씀이었고 예수께서는 하실 일을 이미 마음속에 작정하고 계셨던 것이다. 7 필립보는 "이 사람들에게 빵을 조금씩이라도 먹이자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8 제자 중의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는 9 "여기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10 예수께서 그들에게 "사람들을 모두 앉혀라." 하고 분부하셨다. 마침 그 곳에는 풀이 많았는데 거기에 앉은 사람은 남자만 약 오천 명이나 되었다. 11 그 때 예수께서는 손에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달라는 대로 나누어주시고 다시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하여 나누어주셨다. 12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난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조금도 버리지 말고 남은 조각을 다 모아들여라." 하고 이르셨다. 13 그래서 보리빵 다섯 개를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제자들이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14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 하고 저마다 말하였다. 15 예수께서는 그들이 달려들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피해 가셨다.
16 그 날 저녁때 제자들은 호숫가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호수 저편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저어갔다. 예수께서는 어둠이 이미 짙어졌는데도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으셨다. 18 거센 바람이 불고 바다 물결은 사나워졌다. 19 그런데 그들이 배를 저어 십여 리쯤 갔을 때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배 있는 쪽으로 다가오셨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은 겁에 질렸다. 2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 하시자 21 제자들은 예수를 배 안에 모셔 들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배는 어느새 그들의 목적지에 가 닿았다.

 

<본기도> 은혜로우신 하느님,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과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을 주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말씀이며 영원한 생명의 양식임을 깨닫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주님은 어떻게 우리를 먹이시는가? (요한6:1-21)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기자가 동행취재하여 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 성령강림을 통해 세워진 교회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회상하고 정리하면서 쓰여진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합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20:31)”

그러므로 성경에서 주님의 기적 이야기는 무슨 현장중계도 아니고, 그저  전해지는 일화(逸話)도 아닙니다. 오로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더 정확히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베푸시고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가를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이를 읽는 우리도 그저 “그 때 그런 신기한 일이 있었군”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그와 같은 주님의 기적을 어떻게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 요한복음은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기적이 다만 이천 년 전에 있었던 단 한번뿐인 지나간 사건이라면 사실 생각보다 별로 대수로운 것이 아닙니다. 참 신기하고 대단하다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말입니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신기하고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평범한 상식과 자비와 사랑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중요한 까닭은 그 자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이 이야기가 바로 예수님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분이셨는가를 알려주며,  동시에 21세기의 우리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영원히 참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복음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살리시는  분이심을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그 진실을 깨닫고 감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보여주신 것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그 사랑과 자비는 우리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을 감사하고 그것을 기꺼이 서로 함께 나눔으로써 이 세상에 골고루 전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그 일에 헌신하며 기쁨과 행복과 보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신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구원사역을 영원한 현재의 일로 기념하도록 제정하신 것이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때 그 사건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눈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잔치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쪼개서 많은 사람을 먹이고 살리시는 생명의 빵이 되심을 우리는 경험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강론초록2>

                                      생명의 빵 (요한6:1-21)

 

 빵의 문제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합니다. 빵이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식(衣食)이 족(足)하고서야 예절을 안다” 라는 말도 있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이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어떤 현자는 말하길 “내가 배고픈 것은 경제적인 문제이지만 내 이웃이 굶주리는 것은 내게 영적인 문제이다”라고 갈파한 바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여주신 까닭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바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의 빵>이심을 깨닫도록 하려는데 있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그런데 간혹 지금 우리도 그런 태도를 보이거니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준다는데 혹하여 예수를 왕으로 모시려 들었습니다. 정작 중요한 <영적인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빵>이십니다. 세상의 빵은 생존경쟁의 빵입니다. 나누면 적어지기에 우선 내가 먼저 먹어야 하고, 나를 위해 독점해두고 다른 사람이 굶주리는 것을 태연해하며, 내 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를 죽이는 것도 마다않는 죽음의 빵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빵은 사랑과 감사와 나눔의 빵입니다.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빵입니다. 자기의 살과 피를 사랑으로 내어주는 빵이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의 빵을 먹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으리라 하십니다. 실제로 성체성사로 알려주신  주님의 그 사랑을 우리 모두가 온전히 우리 삶에서 실천한다면 이 세상에 굶주림과 전쟁은 사라질 것입니다.

“돌로 빵을 만들라”는 사탄의 유혹에 대하여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성경말씀을 인용하신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 자체이신 분으로서 자신의 전부를 생명의 빵으로 우리에게 내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미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받아 모시는 우리의 삶이야말로 참된 구원의 삶임을 기억하고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사랑과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