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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3년도설교초록

2013년 1월 1일 (거룩한 이름 예수 /화) 성찬례 성서말씀

 

 

2013년 1월 1일 (거룩한 이름 예수 /화 /백) 성서말씀 / 신정 /세계평화를 위한 기도일

 

민수 6:22-27

22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3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말로 복을 빌어주라고 하여라. 24 '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주시고, 25 야훼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주시고, 26 야훼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면 내가 이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

 

시편 8

               
1 하느님, 우리의 주여!   * 주님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 주님의 영광 기리는 노래, 하늘 높이 퍼집니다.   * 어린이, 젖먹이들도 노래합니다.
2 이로써 원수들과 반역자들을 꺾으시고   * 당신께 맞서는 자들을 무색케 하셨습니다.
3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5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6 손수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 모든 것을 발밑에 거느리게 하셨습니다.
7 크고 작은 온갖 가축과   * 들에서 뛰노는 짐승들 하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물길 따라 두루 다니는 물고기들을   * 통틀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9 하느님, 우리의 주여!   * 주님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갈라 4:4-7       

4 그러나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5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을 구원해 내시고 또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습니다. 6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당신의 아들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상속자인 것입니다.

 

루가 2:15-21

15 천사들이 목자들을 떠나 하늘로 돌아간 뒤에 목자들은 서로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사실을 보자." 하면서 16 곧 달려가 보았더니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고 과연 그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다. 17 아기를 본 목자들이 사람들에게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이야기하였더니 18 목자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 일을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19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 20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보고 한 것이 천사들에게 들은 바와 같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째 되는 날은 아기에게 할례를 베푸는 날이었다. 그 날이 되자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준 대로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본기도>영원하신 성부여,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성자께서는 우리 구원의 표지로 예수라는 이름을 받으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를 위하여 율법에 순종하신 성자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이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선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오늘은 2013년 1월 1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구분하여 이름을 붙였습니다.
의미를 부여한 거지요.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바퀴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온 것이죠. 새롭다지만 사실은 원점이네요.
참된 새로움은 원점에서의 새출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어디쯤 가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우리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이라도 의식하고 있는 걸까요?
지금 내 인생의 목적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요?
행복한 느낌이 인생의 목적일까요?
지금 내 생활의 목표를 세우고 살고 있는 것일까요?
내집마련, 자녀교육, 자녀출가, 노후생활.... 그것이 전부일까요?
이제 내일 우리가 세상의 삶을 마감하고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면...
내가 일생 추구한 인생의 목적을 무엇이라고 정리할까요?
지금 내가 계획하는 삶의 목표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오늘은 거룩한 이름 예수 축일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말로는 요수아, 여호수아, 곧 “야훼가 구원이시다”,“야훼가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천사는 예수의 잉태를 전하며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고 예언합니다. 그 천사의 말을 따라 오늘 성탄후 여드레 되는 날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이름지은 것이지요.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그 이름 예수, 곧 하느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의 실현이었습니다.

죄에서 구원한다는 말은 좀 이해가 필요한 말입니다. 우리 기도서의 신앙의 개요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죄는 하느님의 뜻 대신에 우리의 뜻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며, 하느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를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질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참된 자유를 상실하므로 죄의 영향아래 놓이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일이 “예수를 전능하신 성자로 믿고 그 분께 우리의 해결할 문제를 청탁하고 해결 받아 행복하게 사는 일”이라고 저도 굳게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성경과 교회가 전하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뭘까요?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일은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예수님의 청탁을 받는 일”입니다.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는 일”이지요. “네 뜻을 내려놓고 나와 함께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보지 않겠니? 이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이 펼쳐지기 위해서 너의 존재, 너의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단다. 세상의 유혹과 핍박에 좌우되며 사는 대신 말씀과 성령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면 된단다. 그것이 참된 자유와 복, 하느님의 마음과 일치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해줄 거야!”

우리의 뜻을 내려놓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어렵냐하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선택을 의지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의 지배를 받는 일입니다. 우리는 “법”으로 대표되는 제도, 체제 속에서 “적당히”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율법은 물론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뜻을 포기하지 않으면 율법도 얼마든지 우리의 뜻을 실현하는 데 -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적당히”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성서의 증언이고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로는 이런 점들을 중요한 구원의 문제로 짚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태어나시어 율법의 지배를 받게 되셨는데... 그 마지막 결과가 십자가에 처형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결과로 우리가 율법의 지배를 벗어나 성령을 받은 사람들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 축일에 이런 점들은 놓치지 말아야 할 주제입니다.

하지만 좀 어려운 주제이고요, 이 성찬례 설교에서 나누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오늘 성찬례를 마치고 애찬을 나누실 때에 이 주제를 깊이 대화하실 수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먼저 댁으로 돌아가시더라도 이런 물음들을 깊이 묵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우리의 구원은 율법을 따라 사는 삶에서 오는가 아니면 성령을 따라 사는 삶에서 오는가? 오늘 우리의 교회는 율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가 성령을 따르는 사고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가? 무엇보다 나는 율법을 지켜 축복을 받는 일을 기도하고 있는가 나의 영이 성령으로 가득하여 하느님의 일을 감당하기를 기도하고 있는가?”

자, 오늘 우리들의 이름은 무슨 의미일까요?
무수히 불려온 우리들의 이름은 우리 자신에게 무슨 의미일까요? 사실 별로 의미가 없지요? 이름보다 직함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지만...  실은 그것도 덧없는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우리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불러주시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이름 자체가 아니라 우리 이름을 불러주시는 그 분의 따뜻한 사랑이 중요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우리들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이름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한다는 강박을 벗어나도 좋습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한 이름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 그 이름을 실현하는 것이지요. 예수의 이름이 실현되었듯이 우리들 그리스도인의 이름도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요! 아니, 그것은 이미 실현되었고 장차 완전히 실현될 것입니다.

새해가 시작하는 이 아침에 우리는 "예수"라는 이름을 기억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의 원점”으로서 그 이름을 되새기며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를 주님의 사랑으로 축복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