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4일 (연중9주간 화 /녹) 성서말씀
1베드1:10-16
10 이 구원은 여러분에게 내릴 은총을 두고 예언한 예언자들이 열심히 찾고 연구하던 것입니다.
11 예언자들이 그 일이 언제 어떤 모양으로 일어날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을 때에 그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성령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12 그들은 자기들이 찾은 진리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이었음을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서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진리는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들에 의해서 여러분에게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천사들도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에게 내려주실 은총을 끝까지 기다리십시오.
14 여러분이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욕심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잘 순종하는 자녀로서 하느님께 복종하십시오.
15 또 여러분을 불러주신 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위에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16 성서에도 "1)내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하게 되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1)레위 14:44-45, 19:2, 20:7.
시편 112
1 알렐루야! 복되어라, 주님을 경외하며 ◯ 그의 계명을 좋아하는 사람,
2 그의 자손은 세상의 영도자가 되고 ◯ 정직한 후예의 축복을 받으리라.
3 그의 집에는 부귀영화가 깃들이고 ◯ 그의 의로운 행실은 영원히 기억되리라.
4 그는 어질고 자비롭고 올바른 사람이라, ◯ 어둠 속의 빛처럼, 정직한 사람을 비춘다.
5 인정이 많고 동정어려 남에게 꾸어 주며, ◯ 모든 일을 양심으로 처리한다.
6 그 사람은 흔들리지 않겠고 ◯ 영원히 의로운 사람으로 기억되리라.
7 주님을 믿으므로 그 마음이 든든하여 ◯ 불행이 온다 해도 겁내지 아니한다.
8 확신이 섰으니 두려울 것 없고 ◯ 마침내 원수들이 망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
9 그는 너그러워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니: 그 의로운 행실은 영원히 기억되고, ◯사람들이 그 영광스런 모습을 우러르리라.
10 이를 보고 악인은 속이 뒤틀려 이를 갈면서 사라지리라. ◯ 악인들의 소원은 물거품이 되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마르 12:13-17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마태오 22:15-22; 루가 20:20-26)]
13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트집잡아 올가미를 씌우려고 바리사이파와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예수께 보냈다.
14 그 사람들은 예수께 와서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진실하시며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아무도 꺼리시지 않고 하느님의 진리를 참되게 가르치시는 줄 압니다. 그런데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께서 그들의 교활한 속셈을 알아채시고 "왜 나의 속을 떠보는 거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다오." 하셨다.
16 그들이 돈을 가져오자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17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경탄해 마지않았다.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우리의 믿음에 성령을 더하여 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옛 생활을 버리고 오직 우리 앞에 약속된 구원의 길을 다 달려서 영원한 기쁨의 면류관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새로운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입니다.
언제요? 세례 받을 때에!
세상이 사로잡은 옛 자아는 죽었습니다. 성령이 내주하는 새 자아로 거듭났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세상과의 분리를 통해서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이미 세상에 대하여 죽은 사람들이 새삼 세상과의 분리를 추구하는 일은 이상한 일입니다.
죽은 사람이 무덤 평수가 좁을까봐 걱정하는 건 한심한 일이겠지요.
그리스도인들 중에 자꾸만 세상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잘 생각해보면 약간 착각과 오해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도대체 무슨 생각, 무슨 실천을 하고 살겠어요?
실제로 아무리 아닌 척해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세상 한 가운데서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권력의 지배 아래 삽니다.
우리가 아무리 신실한 신자라해도 실정법을 어기면 다 국가권력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이 현실을 뒤집어 이해하면 만일 실정법이 잘못 제정되었거나 잘못 집행되거나 잘못 해석된다면 아무리 선한 믿음의 사람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분리되어 살아갈 수도 없거니와 더더욱 그런 분리에서 거룩함의 근거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또 여러분을 불러주신 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위에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성서에도 "내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하게 되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오늘 베드로 첫째 편지의 말씀대로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거룩함이 구별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기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으시고 저 세상에 갈 준비에 대해서만 말씀하셨을까요?
성서를 읽어보시면 터무니없는 소리, 천만에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것은 가상의 존재, 사람들의 상상력이 지어낸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한동안 많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이 고대 그리이스의 신화들이 강조하는 내용과 적지않은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고백을 통해서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선언하시고 드러내신 하느님나라의 일은 멀고 멀고 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먹던 시절에 어느 왕국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지중해 일대의 모든 나라를 점령하여 직할지와 식민지로 삼은 로마제국의 통치 시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교활한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제국의 권력의 올가미에 걸려넘어지라고 세금문제를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진리에 목말라서 던지는 질문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몰라서 지침을 구하는 물음도 아닙니다.
올가미에 걸려들으라고 던지는 질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답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담은 일종의 정답이 아닙니다.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되돌려 던지는 질문,
“너희들이 가지고 다니는 돈, 지금 통용되고 있는 돈에 황제의 초상과 글자가 새겨져있지 않은가? 거기에 하느님의 아들을 자칭하는 황제의 권위가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오직 하느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누가 그 권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러나 정말 황제의 권위가 하느님 보다도 중요할까? 자, 그 문제를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 문제인가? 너희는 참으로 다같이 비겁한 존재들 아니냐? 따지고 보면 이 로마의 식민지 상황에서 그리도 권세를 누리는 당신들이야말로 참으로 이상한 존재들 아닌가? 당신들이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묻고 답해야 할 물음 아닌가?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 이 동전, 재물이라는 가치가 작동되는 질서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하고 누가 인정해 주는 것일까? "하고...
오늘 본문을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하셨으니 정치문제는 정치가가 알아서 하도록 하고 신앙의 문제는 종교인이 알아서 하도록 하는 말씀이다 라고 이해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고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한 것은 아닌가... 그런 쉬운 대답이라면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경탄해 마지않았다.” 는 말씀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대답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입니다.
“카이사르의 권세가 현실적이고 하느님의 권세는 보이지 않지만 그 둘은 차원이 다르다. 너희는 그것을 어떻게 알아 보고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시는 질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당신의 창조질서로 회복하시고 이 세상을 돌보고 이끌어가심을 믿습니다.
이 세상을 하느님의 다스림에서 떼어내서 자신의 속임수, 자신의 가치와 질서로 지배하려는 사탄의 꼬임에 속으면 안됩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자기 완결적으로 자기의 권력으로 유지되고 사람들을 죽이고 빼앗으면서 권력을 행사할 지라도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은 속히 파멸되고 우리 신자들은 저 세상으로 옮겨가야 할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속히 구원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봉헌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지금 이 순간 드리는 성찬례는 바로 우리 자신의 삶과 기도의 봉헌을 통해서 이 세상을 하느님께 되돌려 봉헌하는 일입니다.
오늘 이 성찬례의 자리가 바로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시작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거룩함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초월하시는 관점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가능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기준으로 무엇을 구별하고 차별해서 지킬 수 있는 거룩함이 아닙니다.
우리의 거룩함은 예수님께서 차별을 넘어서 사랑을 선언하시고 실천하신 그 기준으로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이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이 교회의 거룩함을 통하여 이 세상을 거룩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느님의 그 거룩한 부르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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