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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6년도 설교초록

2016년 6월 5일 연중10주일 강론초록 (죽은 이를 살리시는 하느님 / 루가 7:11-17)

 

 

 

 

             죽은 이를 살리시는 하느님 (루가 7:11-17)

 

 

오늘 복음은 나인성에서 과부의 외아들이 죽자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신 이야기입니다. 죽음의 의미와 죽음을 이기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깊이 살필 기회입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서 어김없이 죽습니다. 죽음은 몇 가지 의미가 중첩되어있습니다.

첫째 의미는 개체인 나의 소멸입니다. 죽음은 직면하기 두려운 현실입니다. 뜻밖의 억울한 죽음은 한()을 품은 영혼을 남깁니다.

둘째 의미는 살아남은 이들의 상실과 절망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사별(死別)하면 절망적인 슬픔으로 함께 죽어가게 됩니다.

셋째 의미는 제삼자들이 죽음을 처리하는 태도입니다. 빨리 묻고 잊어서 일상에 복귀하라는 요청 앞에 죽은 이와 유족은 그저 불운하고 불행한 사람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중첩된 죽음의 의미에서 우리를 구해내어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남편을 잃어 과부가 된 이가 또 외아들을 잃은 참담한 장례행렬을 보시고 예수님은 측은한 마음으로 상여에 손을 대십니다. "젊은이여, 일어나라." 말씀하시자 죽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십니다.

 

죽음은 우리 자신의 상실이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 안에서 참된 자신을 되찾는 일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젊은이가 일어나 말을 하도록해주십니다. 죽어서도 할 말을 할 수 있으면 죽음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은 그 아들을 어머니에게 돌려주십니다. 죽은 이의 말을 살아있는 이의 말처럼 충분히 들을 수 있으면 남은 이도 슬픔과 절망에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무참하게 빼앗긴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죽은 이와 산 이가 하나가 되는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타자의 죽음에 무관심한 우리를 또한 구원하십니다. 비통한 슬픔으로 기억하는 죽음은 도리어 그 삶을 긍정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쉽게 처리하고 잊어버리는 죽음은 실상 그 삶을 철저히 부정해버리는 일이 됩니다. 죽음은 삶의 부정이 아니라 완성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죽음에는 반드시 주님의 임재가 함께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죽은 이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로마4:17) 분이십니다. 믿음은 그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모든 죽음 앞에서 좌절하거나 냉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죽음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함께 하시는 지를 늘 살펴야 합니다.

 

문자적인 의미의 소생이 늘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의미의 부활은 죽음의 권세를 꺾으시고 우리를 살려내시는 주님께 우리 삶을 맡기는 일입니다. 믿음 안에서 죽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새로운 생명의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차원에서 주님은 죽은 우리를 살리시어 영원한 생명을 함께 누리게 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