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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교리이야기

믿음의 의미, 교회의 자리

 

 

                                       믿음의 의미, 교회의 자리

 

기도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는 인공지능은 가능할까요? 하느님께서 내 편에서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십사 요청하는 일이 기도라면 논리와 계산이 가능한 슈퍼컴퓨터도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참된 기도는 몸을 지니고 구체적 삶의 현실을 사는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절대로 머리로, 논리로, 생각으로, 환상으로 지어내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존재와 실천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몸으로 겪는 구체적 삶의 현실이 있기에 우리 기도가 시작됩니다. 또 자기를 넘어서 절대자에게 자기를 내어맡기는 영적인 도약으로 우리 기도는 마무리됩니다.


성공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일을 무지무지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 정치와 종교의 지배체제 가운데 사시면서도 세상의 논리와 가치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느님의 영에 온전히 일치하여 사셨다는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기반입니다. 믿음은 그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뒤따름으로써 예수님과 일치되어 사는 일입니다. “몸으로 세상을 살며 동시에 영으로 하느님나라를 살아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일입니다. 신자들은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에 사로잡혀 하나가 됩니다. 성경을 통해 판단할 기준을 얻고, 성령을 통해 실천할 힘을 얻습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이루고 있음을 늘 기억하고 확인하고 실천합니다.


우리 믿음이 이런 의미일 때 교회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교회는 어디에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우리 마음 속에? 우리들 사이사이에? 교회제도에? 성당건물에? 모두 답이 되기도 하지만 제일 좋은 답은 “교회의 자리는 이 세상 한 복판과 하느님나라가 겹치는 영역이다” 라는 답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그 겹치는 경계에서 교회를 시작해서 그 경계의 영역을 넓히며 하느님나라를 넓혀가라는 주님의 당부를 소명으로 받습니다.

성공회의 신앙생활은 종교적 취미생활이나 낭만적인 사교생활이 아니고 사후복락을 위해 보험을 드는 일도 아닙니다. 삶의 현실에서 치열한 “영적투쟁”을 수행하는 일입니다.(에페6:12) 그리스도인이 ‘땅밟기’를 하고 축마의식을 하는 게 영적투쟁이 아닙니다. 그런 건 말 그대로 푸닥거리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적투쟁은 세상의 논리와 가치와 지배구조에 대하여 하느님의 사랑의 통치 곧 복음서에 제시된 하느님나라의 새로운 논리와 가치와 섬김을 대립시켜 분별하고, 하느님의 편에서 늘 일상의 삶을 살아가라는 요청입니다. 우리 영혼의 구원은 이 영적투쟁에서 예수님께서 이끄시는 하느님나라의 편에 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와 부활의 걸어 영광에 이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이루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을 이루어, 명령받고 위임받은 대로 이 땅에 하느님나라를 확장해갑니다. 교회는 천당과 지옥사이가 아니라, 이세상과 저세상 사이가 아니라, 바로 인간욕망을 토대로 한 속된 세상과 저 하느님사랑에 기반한 하느님나라 사이에 존재합니다.

“세상도 가고 세상의 정욕도 다 지나가지만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1요한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