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성공회 “자유주의자” francis 인데요, 몇 말씀 더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무슨 “자유주의자”는 아니고요, 그냥 자유를 좋아하는 성공회 신자일 뿐입니다. 그저 자유로이 신앙적인 고민을 이리 저리 생각해보고 그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러면 꼭 어떤 이들이 나서서 “그건 자유주의 신학이야”, “그건 인본주의야” 라고 다분히 비난 섞인 어조로 흥분하며 말씀하시더라구요. 솔직히 저는 무지무지 기분 나쁘고 억울합니다. 아니, 인간이 생각도 맘대로 못하나요? 그러면서 무슨 인간이래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무조건 “믿어야” 좋은 신자라구요? 생각하는 인간도 못되면서 무슨 신자가 된대요? 더구나 성공회 신자가 “자유롭게 생각하는 일”을 못하면 천주교인이 하겠습니까, 장로교인이 하겠습니까, 순복음교회교인이 하겠습니까? (다른 교파의 신자분들이 대체로 아무 생각없다는 뜻이 아니라 성공회는 자신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신자들의 다양한 생각에 매우 너그러운 자세를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도 “한때^^” 무조건 믿는 믿음이 좋은 믿음이라는, “신실한 신부님들의 다분히 불성실한 안내”^^에 따라 열심히 교리를 믿으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아무리해도 도저히 문자 그대로는 “믿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더라구요. “아,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는 힘든가 보다” 하고 좌절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공부와 생각을 계속하다보니, 천만에 말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하여 “살아가는 일”이지, 무슨 믿어지지 않는 “교리”를 어거지로 문자 그대로 믿는 척 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아무리 언어를 뛰어넘는 신앙적 경험이라할지라도 인간의 언어를 통하여 소통될 때에는 반드시 인간의 “해석”이 불가피하게 개입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공회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 해석의 가능성을 “이성”이라는 신앙적 권위로 확보해두고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무런 의심 없이 모든 교리가 척척 믿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분들은 그냥 그렇게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시면 되지요. 하지만 저처럼 잔머리가 발달해서 도무지 의심이 가시지 않는 사람은 그냥 그런 의심을 그대로 가지고 하느님께 나가는 게 최선이더라구요. 그러니 이를 막지는 마시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분이 교리가 문자 그대로 믿어지시는 것은 그 분 스스로 잘나서가 아니라 주님의 은총으로 그리 된 일이라고 고백하시지 않나요? 저 같은 자가 교리가 문자 그대로 믿어지지 않는 것 역시 제가 못나서가 아니라 또 다른 주님의 은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너그러이 대해주시면 안되나요? 성서의 권위를 부정한다든 둥, 그리스도교 기본진리를 부정한다는 둥 그런 오해는 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너나 잘 하세요.” 라는 냉소적인 말도 있지만, 아니 자기가 믿음이 좋으면 감사할 일이지, 왜 남이 믿음이 약한 것, 또는 나와 다른 것을 공격하지요?
아니, 교리를 안 믿으면서 어떻게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었느냐구요? 그것은 제 책임도 있지만 “대충^^” 세례를 준 교회의 책임도 크지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신앙”이란 것이 본래 “고백”인데 뭐 그냥 제가 믿는다고 말하면 아, 진짜로 믿는가보다 하고 세례를 주시는 것이지, 신부님이 제 머리 속을 들락날락 거리며 정말로 믿나 안믿나 알아보고 세례를 주실 수는 없었겠지요? 제게 있어 세례는 제 믿음을 검증하는 최후의 심판대가 아니라, 제 믿음 생활을 시작하게 해주는 은총의 샘이었슴니다. 잘못된 세례였다 해도 어쩌겠어요. 성사는 뭐 집행된 그대로 효력이 있다고 하지 않아요?(이 논란 가능한 심오한 주장도 일종의 교리이지요^^) 저는 사실 교회공동체의 다른 사람의 세례가 “진짜”인가 아닌가 별로 의심 안하고 지내고, 또 다른 사람도 저를 의심할 거라는 생각도 별로 없습니다. 제가 교리를 사실대로 못 믿는다고 해서 저를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성공회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분은 아무도 없다고 뻔뻔하게 생각하고 주장합니다.
<대체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문자적의미를 애써 축소하거나 변용하는데에 열심을 보입니다. 가령 삼위일체교리나 십자가 부활사건, 동정녀탄생등의 역사적 진실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미명하에 수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엄밀히 말한다면, 기독교 신앙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라고 하시는데...
저를 포함하여 그 어떤 할 일없는 사람이 스스로 “날나리” 신자가 되기 위해서 일부러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하고 추종하겠습니까? 현대인으로서 어떻게 지적인 분열없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연스럽지만 치열하고 은혜롭지만 고통스런 모색을 계속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슨 00 주의자로 평가받고 싶은 생각은 정말 없습니다. 서로를 무슨 00주의자로 공격하는 것은 쌍방간에 상대적인 평가가 그칠 수 없는 끝없는 소모전입니다. 저 같은 자를 “자유주의자”로 공격하는 이들은 곧 자신은 “근본주의자, 문자주의자”임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일이지요. 저는 이른바 “자유주의자”들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 그들을 비판하는 “근본주의자”들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양 쪽의 주장을 신중히 생각해보고 제 입장을 가지게 된 것인데 저는 성서를 “‘해석” 하는 일이 성서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인 교리를 재해석한다고 해서 그것이 “기독교 기본진리”를 부정한다고도 전혀 생각되지 않았구요.
저는 분명히 예수님이 나의(우리의) 구세주(그리스도)이신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아무리 부처님이 지혜롭고 자비로우셔도 나의 그리스도는 한 분 예수님 뿐입니다. 전통적인 교리인 삼위일체교리, 십자가 부활사건, 동정녀 탄생 다 믿어요. 그러나 “문자” 그대로는 “잘 안 믿겨”요. 그래도 “그냥 잘” 믿는다고 말하겠어요. 그럼 저는 뭔가요? 자유주의자인가요, 아닌가요? 제 믿음이 기독교 신앙인가요, 아닌가요? 그 걸 누가 판단하나요? 아니 왜 판단하지요?
제 입장을 말한다는 것이 하다보면 꼭 다른 입장을 공격하는 것처럼 되네요.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인가요... 죄송합니다, 마무리를 대신하여 저는 “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일에 열성적인 분들에게서 꼭 자문을 구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1. 정말 아무런 지적인 의심이 없이 늘 행복하세요? 믿음과 열정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솔직히 저는 정상적인 고등교육을 통해 과학문명의 세례^^를 받으신 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단순한 중세적인 교리지식을 “객관적이고 불변하는 계시”로서 철썩같이 믿을 수 있는지 궁금한 것입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나요? 그러니까 무슨 체험 같은 것을 하면 그렇게 되나요, 아니면 원래 아무런 의심도 안들고 모든 것들이 믿어지나요?
2. 다른 믿음이나 다른 종교에 대해서 왜 그리 불편해하시고 공격적이신지요? 그들로부터 직접적으로 구체적으로 무슨 신체, 자유, 물질, 명예에 피해를 입으셨는지요? 아니면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들이 바로 “사탄의 세력”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러시는 것인지요? 제 생각에는 “수준 있는” 다른 믿음이나 종교는 나름대로 인간다운 삶, 인간다운 세상을 위해서 열심히 애쓰고 있지 않나요? 정말 문제는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의 가치를 추종하게 만드는 대중매체 같은 것이 더 심각하지 않나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말에 대한 심각한 반응은 “다른 종교는 절대로 구원이 없다(그런데 그걸 모르니 참 불쌍하다)”는 사실 판단인가요, “다른 종교에는 절대로 구원이 없어야 한다(그런데 그걸 주장하다니 매우 위험하다)”는 당위적인 주장인가요?
죄송합니다만, 여건이 허락되시는 분은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 >교리주의와 대립되는 용어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젬러인데, 그는 성서를 엄격한 역사학적 입장에서 연구한다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신학이란, 정통주의신학에 반대하여 인간의 주체적인 사고와 활동을 적극 인정하는 신학을 가리킨다. 형식면에서는 그리스도교 해석의 궁극적 권위를 성서에 두지 않고, 이성에 둔다는 의미에서 성서의 권위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는 입장을 취한다. 성서 그 자체에 대해서도 자유스러운 검토를 가한다. > >내용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교의 중심교리인 속죄론(贖罪論)에 대한 새로운 해석인데, 이도 역시 종래의 교리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종래의 속죄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속죄적인 의의를 부여하는 데 대하여, 자유주의신학은 오히려 인간의 주관적인 정신상태의 변화에서 속죄적인 의의를 인정하고, 예수는 단지 뛰어난 종교적 인격자라고 생각한다. 이 신학은 종교사학파(宗敎史學派)에 의한 그리스도교의 역사적·비평적 연구와 서로 호응한다. 19세기 자유주의신학의 뿌리는 슐라이어마허의 신학과 헤겔 철학에서부터 비롯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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