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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성직자의 정치참여, 주교선출, 성공회영성가


<종교와 평화> KCRP(한국종교인 평화회의) 기고문

한국내의 다종교사회는 그 구조상 아주 복합적이고 미묘한 여러 상황등으로 갈등의 소지를 내포한 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런 갈등 구조를 종교간 대화를 통해 이해하고 해결해나가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에 그동안 가슴속으로만 품고 있었던 이웃 종단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궁금증을 묻고 이를 KCRP(한국종교인 평화회의) 종교간 대화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계신 위원님들과 종단 관계자분들을 통해 속 시원한 답을 듣는다. - 편집자 주-



Q. 성공회에서는 성직자의 정치 참여가 어디까지 가능한가요? 정치적으로 깊이 참여해도 교단 내에서 문제가 안 생기나요?

A. 근자에 한국 성공회의 유력한 성직자가 일선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법규상 성공회의 현직 성직자는 다른 직업을 겸직할 수 없습니다만 그런 행정적인 부분은 도리어 사소한 문제입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정치와 종교와의 바람직한 관계입니다.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그의 사심 없음을 신뢰하고 정치참여 자체를 일종의 예언자적인 자기희생이라고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반대하는 이들은 성직의 존엄을 훼손하고 신자들의 자율적인 정치적 입장에 위해를 주는 일이라고 공격했습니다.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모든 것이 정치이나, 정치가 모든 것은 아니다”는 경구가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정치를 무시할 수 없고 참된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라면 더더욱 정치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종교는 정치가 추구하는 것보다 더 깊은 수준과 높은 차원의 가치문제를 성찰의 주제로 삼습니다.


성공회는 역사적으로 국가와 종교와의 관계를 깊이 고민해왔습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정교분리의 원칙이 확립되었지만 성공회는 이 원칙을 정치와 종교가 영역을 절대적으로 구분하여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서로 역할을 구별하여 각자의 본분에 충실하되 국가의 평화와 복지를 위해 서로 깊이 협력하는 관계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성공회와 성공회 성직자가 세속의 권력을 추구하고 그 권력을 통해서 명망이나 이권을 누리려고 한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부패요 타락일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불의를 바로잡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정치적인 사안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일은 성공회 전통에 크게 벗어나는 일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Q. 성공회에서는 주교를 선출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사전에 혹시 선거운동도 하나요? (이해해주세요. 우문이었습니다.)

A. 성공회는 주교제(主敎制)를 교회의 정체(政體)로 이해해 온 교회입니다. 미국의 성공회는 자신들의 이름을 “영국의 교회”라는 의미의 “앵글리칸 처치(Anglican Church)” 대신에 “주교제(主敎制) 교회”라는 의미의 “에피스코팔 처치(Episcopal Church)”로 부릅니다.

성공회의 주교는 천주교의 경우처럼 상부로부터 임명되지 않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세워집니다. 개신교의 총회장 같은 명예직 성격도 아닙니다. 성공회 주교는 교회의 사부(師父)로서 존경을 받으며 교회내의 인사와 행정에서 직접적인 치리권을 갖습니다.

성공회 주교는 투표를 통해 소속 교구의 성직자원과 평신도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동시에 받은 이가 선출됩니다. 표결 형식이지만 내용으로는 추대에 가깝습니다. 선거기간의 정책대결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역과 인품과 지도력이 검증되고 반영된 결과로 선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공회 안에서도 주교가 되고 싶은 이들이 미리 속마음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고 때로 자기가 존경하는 이를 위해 선거운동에 가까운 일을 하는 이들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교 선거를 앞두고 시작하는 선거운동이라면 교회공동체를 해치는 일이고 지지를 받지도 못합니다. 그런 일은 세상의 정치(선거)와 다를 바 없고, 명예욕에 불타는 성직자라면 그것만으로도 자격이 의심스런 일이 되겠지요. 성공회의 주교가 되기 위한 선거운동이 있다고 한다면 일생 수십 년간 묵묵히 성심을 다해 맡겨진 성직을 잘 수행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Q. 성공회에도 훌륭한 영성가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간략히 소개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세계 성공회는 영국 성공회의 역사와 전통과 많은 부분을 공유합니다. 그 경험의 바탕에는 이른바 “켈틱(Celtic) 영성”의 전통이 있습니다. 자연을 통한  하느님의 은총을 깊이 누리고 찬양하는 바, 오늘날 많이 이야기 되는 생태적인 영성에 가깝습니다. 성공회 영성은 베네딕트 수도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성공회는 천주교회와 중세 역사를 함께 하였으므로 교회의 모든 성인과 영성을 공유합니다. 영국에서 활동했던 이로는 리처드 롤, <무지의 구름>를 쓴 익명의 저자, 노르위치의 줄리앙 등이 있고, 18세기에 감리교회를 태동시킨 웨슬리 신부님도 성공회 영성가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대천덕 신부(R. Archer Torrey 3세/ 1918-2002)님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신부님은 미국성공회 소속으로 한국에 와서 성공회신학원(현 성공회대학교)의 원장으로 일하다가 1965년에  강원도 태백으로 들어가 예수원(Jesus Abbey)을 설립하였습니다. 대신부님은 과학계에서 가설이 실험을 통해 입증되어 진리로 인정되듯이 우리의 신앙도 현실 속에서 직접 시험되고 검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계획을 넘어서서 하느님만을 철저하고 온전하게 의지하는 수도생활 공동체로서 예수원을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원은 “노동과 기도의 일치”, 온 세상을 위한 “중보기도(intercessory prayer, 仲保祈禱)”로 많은 이들에게 감화를 주었습니다.  대천덕 신부님은 성령 충만(充滿)과 충분(充分)을 구분하여 가르치며 올바른 성령론 정립에 힘썼고 또한 토지정의(Land Justice)에 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전파하는 일에 힘을 쏟으며 한국 교회와 사회를 위해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답변: 임종호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보좌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