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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옮김] 진달래 필때면

                                                  진달래 필 때면..

벌써 양지 바른 산비탈마다 진달래가 피어나고 있습니다. 진달래 하면 잊을 수 없는 게 이영도의 노래 시 <진달래>입니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그날 쓰러져간 젊음 같은 꽃 사태가/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이맘때면 이 노래가 입 끝에 맴돌곤 합니다. 비장함이 느껴지는 이 노래는 사실 4.19 혁명 때 스러져간 젊은 넋들을 기리는 노래입니다.

올해는 4.19혁명 52주년이 됩니다. 그날 185인의 젊은이들이 민주주의의 제단 위에 자신의 몸을 불살라 바쳤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사적인 이익이나 당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 민주, 평등, 정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주장하기 위해 독재정권에 맞서 일어난 그 날은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나 민중운동사에서 영원히 망각될 수 없는 날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 날을 민족의 부활절이라고도 말합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잠시 동안은 몸을 굽히는 듯 보이지만 다음 순간 어김없이 몸을 일으키는 풀들처럼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깃든 사람다운 삶의 꿈은 결코 스러질 수 없다는 사실을 4.19혁명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물론 4.19 혁명은 미완의 혁명입니다. 그 아름답고 멋진 역사의 꿈은 얼마 지속되지 못하고 좌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19혁명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 지금도 우리들 속에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습니다. ‘4월 학생 혁명 기념탑’ 비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1960년 4월 19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 명의 학생 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우는’ 치열함이 사라지지 않은 나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무기력해 보입니다. 거짓과 악의와 추함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땅 속에 묻힌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고, 짓눌렸던 선함은 반드시 솟아오를 것이고, 외면당하고 있던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물들이게 될 날은 반드시 옵니다.

진달래꽃만 보아도 4.19가 떠오르고, 십자가만 바라보아도 부활이 떠오르는 데 어떻게 우리가 낙심할 수 있겠습니까.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상속받은 사람답게, 절망의 땅에 희망을 파종하십시오.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우는 부활의 증인들이 되십시오.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을 안아 일으키십시오. 흙가슴으로 세상의 날카로운 것들을 품어 녹여버리십시오. 이 척박한 세상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삶으로 증언하십시오.

- 김기석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