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초록/2013년도설교초록

2013년 4월 16일 (부활3주간 화) 성서말씀

 

2013년 4월 16일 (부활3주간 화) 성서말씀

 

사도 7:51-8:1

51 이교도의 마음과 귀를 가진 이 완고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당신네 조상들처럼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52 당신들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나 있었습니까? 그들은 의로운 분이 오시리라고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지만 이제 당신들은 바로 그분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53 당신들은 천사들에게서 하느님의 율법을 받고도 그 규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54 의회원들은 스데파노의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올라 이를 갈았다.
55 이 때 스데파노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아, 하늘이 열려 있고 하느님 오른편에 사람의 아들이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외쳤다.
57 그러자 사람들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스데파노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어
58 성밖으로 끌어내고는 돌로 치기 시작하였다. 그 거짓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에게 맡겼다.
59 사람들이 돌로 칠 때에 스데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데파노는 이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1 사울은 스데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시편 31:1-5, 18

1 주여, 당신께 이 몸 피하오니, 다시는 욕보는 일 없게 하소서. ◯ 바르게 판정하시는 하느님, 나를 구해 주소서.
2 귀 기울여 들어 주시고, 나를 빨리 건져 주소서. ◯ 이 몸 피할 바위와 성채 되시어 나를 보호하소서.
3 당신은 정녕 나의 바위, 나의 성채이시오니 ◯ 주, 그 이름의 힘으로 나를 이끌어 데려 가소서.
4 당신은 나의 은신처시오니 ◯ 나를 잡으려고 숨긴 그물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5 진실하신 하느님, 나의 주여, ◯ 이 영혼 당신 손에 맡기오니 건져 주소서.
18 거만하여 업신여기며: 무죄한 사람을 거슬러 함부로 말하는 저 거짓말쟁이 ◯ 그들의 입을 틀어막으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요한 6:30-35

30 그들은 다시 "무슨 기적을 보여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1)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가 그들을 먹이셨다.' 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1)칠십인역 시편 78:24(출애 16:15; 느헤 9:15 참조).
3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가 너희를 먹인 사람은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진정한 빵을 내려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이시다.
33 하느님께서 주시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며 세상에 생명을 준다."
34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선생님, 그 빵을 항상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본기도> 은혜로우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새로운 기쁨과 사랑을 베풀어 주셨나이다. 구하오니,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새 힘을 얻어 부활하신 주님을 선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아멘!

 

사람은 빵을 먹어야 삽니다. 흔히 “살기 위해서 먹는 지, 먹기 위해서 사는 지” 구분이 안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먹는 일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물론 빵을 안먹어도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빵을 먹고 만들고 나누는 모든 일에 하느님의 뜻을 담아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그가 먹는 것에 좌우됩니다. 그가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먹는 것을 조심하지만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금식도 하셨지만 “먹보요 술꾼”이라는 비난도 받으셨습니다.
금식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함이고, 애찬도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함이지요.
바울로 사도도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 모든 것을 다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 말씀하지요.

 

우리 가족은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소위 말해서 엥겔 지수가 몹시 높습니다.^^
그나마 제가 책을 좀 많이 사는 편이어서 엥겔지수를 좀 낮추고 있습니다.
책은 정신의 빵이지요.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이는 빈약한 정신을 조심해야 합니다.
책이 정신의 빵이라면 성찬은 영혼의 빵입니다.
성찬례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이는 스스로 피폐한 영혼이 아닐까 조심해야 합니다.

절박한 생존이 중요한 줄 알면 식량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행복한 생활이 중요한 줄 알면 식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중요한 줄 알면 성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이 성찬례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 곧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시라는 것은 정말 의미가 깊고 깊은 놀라운 비유입니다.
약간 불경스러운 느낌이지만 이렇게 여쭈어보겠습니다.
매일 매주 성찬례에 드시는 “생명의 빵”이 소화가 잘 되세요? 소화가 잘 되고 있다면 저와 여러분의 영혼이 기쁨과 생기가 넘치고 건강할 것입니다. 우리는 점차 우리가 먹는 것,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실을 바꾸어 갈 것입니다.

빵을 먹고 일을 해서 다시 빵을 만들어 내야 생존과 생활이 이루어집니다.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이루었다는 것은 모두가 지체로서 주님의 한몸을 이루었다고 표현되지요? 우리가 성체를 영하는 일은 이미 주님의 몸을 이룬 우리가 다시금 주님의 몸을 먹어서 사랑과 능력을 얻게 되는 일로 표현됩니다.

 

우리는 “생명의 빵”을 먹고 기운을 얻어서 다시 “생명의 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오병이어”의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께 감사함으로 바쳐지는 삶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세상에서 굶주린 수천 수만명을 배불리 먹이시기 위해서 우리들을 “오병이어”로 삼아 감사의 기도로 봉헌하시고, 우리들의 삶을 쪼개어 나누심으로서 그리 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 쓰임 받는 것이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의 비전입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관념과 언어로 전해지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개인 개인이 머리 속에서 “정보”나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대상이 아닙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우리 각 사람들을 당신의 몸의 지체로 삼아주시고 하나가 되게 하시는 실제적인 현존입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당신의 몸을 사랑과 진리로서 “먹이시는” 존재가 되십니다. 우리에게 먹혀지심으로 우리의 본질을 이루어 가시는 “생명의 빵”이신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서 “영원한 생명”으로 배부른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과 사랑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가, 정확히는 교회를 이루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향해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인 “생명의 빵”으로 전해져야 합니다.
온 세상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과 사랑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리도록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전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으니 나는 이제 죄가 없다고 굳게 믿고 “긍정적인 신념으로” 행복하게 살다가, 죽은 후에 주님의 심판장에서도 죄가 없다고 인정되어 영혼이 천당에 들어가서 영원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식의 구원이야기는 절대로 “신약성서”의 본질적인 메시지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나 혼자 믿음이 좋아서 안 죽고 오래 오래 잘 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상상으로 지어낸 소박한 소망입니다. 결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시기까지 온 삶으로 가르치고 보여주고 알려주신 그 복음의 정수가 아닙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시니 믿음으로 그 빵을 먹는 사람은 “하늘의 차원”의 삶, 곧 “영원한 생명”의 삶을 오늘 여기 이 세상에서부터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성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고, 우리가 하느님과 일치 될 때에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과 자연과 누리게 되는 깊은 상통과 친교의 차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생명의 빵을 먹어서 생명이신 주님과 하나가 되는 일이 신비로운 구원입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전해주시는 예수님의 일에 우리도  제자로서 함께 할 수 있음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성찬례를 통하여 언제 어디서든지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현존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현존은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현존은 그 주님의 현존을 깨닫고 고백하는 바로 우리들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고 전해지게 됩니다. 그러려면 바로 우리와 우리의 교회가 세상에 “생명의 빵”으로 알려지고 느껴져야 하는 것이지요.

 

생명의 양식은 썩어 없어질 양식과 대조를 이루는 표현입니다.
세상은 어리석습니다. 세상은 “썩어 없어질 것”들을 독점하여 생기는 힘을 가지고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 착각에 빠져있습니다.
교회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생명의 빵”으로 나누어야 참된 평화와 행복이 가능하다고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세상은 썩어 없어질 존재들이 썩어 없어질 것들을 더 누리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서로 미워하고 끝내는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제 정신이 아닙니다.
교회는 형제애를 가지고 우리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기만 해도 세상의 고통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음을 보여주어 합니다.
우리 성공회가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한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지요.
우리 성공회는 “생명의 빵”을 먹어 얻게 된 “영원한 생명”을 세상에 잘 전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찬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생명의 빵”을 먹은 이들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진리 그 자체인 “생명의 빵”을 잘 소화시켜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실에서 주님의 생각과 말과 행실이 느껴지도록 살아가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참으로 영적인 진리와 사랑에 목말라 한다는 것을 느끼시나요?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주님의 영적인 진리와 사랑, “생명의 빵”을 잘 전해주어 그들의 굶주림을 벗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도 우리와 함께 생명의 빵으로 배부르고 생명의 빵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의 빵으로 변화되어가는 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