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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3년도설교초록

2013년 6월 16일 (연중 11주일) 성서말씀

 

 

2013년 6월 16일 (연중 11주일) 성서말씀 / 리처드

리처드 (치체스터의 주교, 증거자, 1253년) / 북한 입석. 강대울성당 축성

 

열왕상 21:1-21

1 그 후에 일어난 일이다. 나봇이라는 이즈르엘 사람이 포도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원은 사마리아를 다스리고 있는 아합의 별궁 근처에 있었다.
2 어느 날 아합 왕이 나봇을 만나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원은 내 별궁 근처에 있으니 나에게 양도하게. 그것을 정원으로 만들고 싶네. 그 대신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원을 마련해 주지. 만약 그대가 원한다면 그 값을 시가로 따져서 현금으로 계산해 줄 수도 있네."
3 그러나 나봇은 아합 왕의 청을 거절하였다.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이 포도원을 임금님께 드릴 수는 없습니다. 천벌을 받을 짓입니다."
4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선조의 유산이란 이유로 요구를 거절하자 아합 왕은 침울한 심정이 되어 별궁으로 돌아가 자리에 누워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음식도 들려고 하지 않았다.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들어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상심이 되시어 음식까지 물리치십니까?"
6 왕이 말하였다. "내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란 자에게 그의 포도원을 시가대로 팔거나, 아니면 다른 포도원과 바꿔달라고 하였소. 그런데 그자가 포도원을 내놓지 못하겠다는 것이오."
7 그러자 그의 아내 이세벨이 말하였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답게 처신하십시오. 제발 일어나셔서 기분을 돌리고 음식을 드셔요. 내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당신께 선물로 드리리다."
8 그 여자는 아합의 이름으로 밀서를 써서 옥새로 봉인하고 그것을 나봇이 살고 있는 성읍의 시의회에 나봇과 한자리에 앉아 있는 원로들과 지방 어른들에게 보냈다.
9 그 밀서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단식을 선포하고 백성들 앞에서 나봇을 상석에 앉힌 다음,
10 무뢰배 둘을 그 맞은편에 앉혀 나봇이 하느님과 왕을 욕하였다고 고발하게 하여라. 그리고는 그를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서 죽여라."
11 나봇이 살고 있는 그 성읍의 시의회에 나봇과 동석하는 원로들과 지방 어른들은 이세벨이 밀서에서 지시한 대로 하였다.
12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백성들 앞에서 나봇을 상석에 앉힌 다음,
13 무뢰배 둘로 하여금 그와 마주앉아 나봇을 고발하게 하였다. "나봇은 하느님과 왕을 욕하였습니다." 그들은 나봇을 성 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죽인 다음,
14 이세벨에게 나봇을 돌로 쳐죽였다고 보고하였다.
15 이세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보고를 받고 아합 왕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팔지 않겠다고 한 그 포도원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16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소유였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하여 내려갔다.
17 이 때 야훼의 말씀이 디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내렸다.
18 "일어나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내려가거라. 그는 지금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그 곳에 내려가 있다.
19 가서 그에게 야훼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전하여라. '네가 사람을 죽이고 그의 땅마저 빼앗는구나.' 또 야훼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전하여라. '나봇의 피를 핥던 개들이 같은 자리에서 네 피도 핥으리라.'"
20 아합 왕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 원수야, 또 나타났구나!"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당신은 목숨을 내던져 가며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21 엘리야는 계속하여 야훼의 말씀을 전하였다. "나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나는 네 후손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아합의 가문에 속한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씨도 없이 죽이리라.

 

사무하 11:26-12:10, 13-15

 
26 우리야가 전사했다는 전갈을 받고 그의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곡을 했다. 27 곡하는 기간이 지난 다음, 다윗은 예를 갖추어 그 여인을 궁으로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그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다윗이 한 이 일이 야훼의 눈에 거슬렸다. 1 야훼께서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떤 성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2 부자에게는 양도 소도 매우 많았지만, 3 가난한 이에게는 품삯으로 얻어 기르는 암컷 새끼 양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 새끼 양을 제 자식들과 함께 키우며, 한 밥그릇에서 같이 먹이고 같은 잔으로 마시고 잘 때는 친딸이나 다를 바 없이 품에 안고 잤습니다. 4 그런데 하루는 부잣집에 손님이 하나 찾아왔습니다. 주인은 손님을 대접하는데 자기의 소나 양은 잡기가 아까워서, 그 가난한 집 새끼 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5 다윗은 몹시 괘씸한 생각이 들어 나단에게 소리쳤다. "저런 죽일 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 6 그런 인정머리 없는 짓을 한 놈을 그냥 둘 수는 없다. 그 양 한 마리를 네 배로 갚게 하리라."
7 그 때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사울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8 나는 네 상전의 딸과 아내들까지 네 품에 안겨주었다. 나는 온 이스라엘과 유다의 딸들까지 너에게 주었다. 그래도 모자란다면 어떤 여자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9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나를 얕보며 내 눈에 거슬리는 짓을 했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죽였다. 암몬 군의 칼을 빌려 그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10 네가 이렇게 나를 얕보고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으니, 너의 집안에는 칼부림이 가실 날이 없으리라.'
13 "내가 야훼께 죄를 지었소." 다윗이 이렇게 자기 죄를 고백하자 나단이 말하였다. "야훼께서 분명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임금님께서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14    그러나 임금님께서 야훼를 얕보셨으니, 우리야의 아내가 낳게 될 아이는 죽을 것입니다."
15 나단은 이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야훼께서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아준 아이에게 중병을 내리셨다.

 

시편 5:1-8

1 주여! 아뢰옵나니, 귀를 기울이소서. ◯ 내 한숨짓는 까닭을 알아주소서.
2 나의 왕, 나의 하느님이여! 당신께 기도드리는 이 소리, ◯ 살려 달라는 애원, 모른체 마소서.
3 주여, 당신은 아침에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시기에 ◯ 이른 아침부터 제사 올려 당신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4 당신께서 사악을 좋아하실 리 없사오니, ◯ 악인을 반기실 리 또한 없으십니다.
5 거만한 자를 당신께서는 참고 보지 못하시고 ◯ 악한 짓 하는 자 모두 미워하십니다.
6 거짓말장이를 멸하시며 ◯ 피에 주린 자, 사기치는 자를 역겨워하십니다.
7 오직 나는 주님의 크신 사랑만을 믿고 주님의 집에 왔습니다. ◯ 주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향하여 엎드립니다.
8 주여! 원수들이 지켜보고 있사오니 ◯ 이 몸에서 죄를 벗겨 주시고, 당신 길을 내 앞에 터 주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또는 시편 32

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 죄의 허물 벗겨진 이여,
2 복되어라, 주께서 잘못을 묻지 아니 하시고 ◯ 그 마음에 거짓이 없는 이여.
3 나, 주님께 아뢰지 않으려 했더니 ◯ 온종일 신음 속에 뼈만 녹아나고
4 밤낮으로 당신 손이 나를 짓누르시니 ◯ 이 몸은 여름 가뭄에 풀 시들듯 진액이 다 말라버렸습니다.
5 그리하여 당신께 내 죄를 고백하고 ◯ 내 잘못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 “주여, 내 죄를 고백합니다”하고 아뢰었더니, ◯ 내 잘못 내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6 당신을 굳게 믿는 자 어려운 때에 ◯ 당신께 기도 하리이다. 
¶ 고난이 물결처럼 밀어 닥쳐도, ◯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리이다.
7 당신은 나의 은신처, 내가 곤경에 빠졌을 때 건져 주시어 ◯ 구원의 노래 속에 묻히게 하셨습니다.
8 나는 너를 가르쳐 네 갈 길을 배우게 하고 ◯ 너를 눈여겨보며 이끌어 주시리라.
9 부디 철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마라. ◯ 재갈이나 굴레라야 그들을 휘어잡는다.
10 악인들에게는 고통도 많겠으나 ◯ 주님을 믿는 이는 한결같은 사랑 속에 싸이리라.
11 의인들아, 기뻐하여라. 주님께 감사하며 즐거워하여라. ◯ 마음이 바른 사람들아, 모두 기뻐뛰어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갈라 2:15-21

 
15 우리는 본래 유다인이고 이른바 '이방 죄인'은 아닙니다.  16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는 길이 율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7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우리 자신이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가 죄를 조장하시는 분이란 말입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18 만일 내가 전에 헐어버린 것을 다시 세운다면 나는 스스로 법을 어긴 사람이 될 것입니다. 19   나는 이미 율법의 손에 죽어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일이 될 것입니다.
 
루가 7:36-8:3
 
36 예수께서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37 마침 그 동네에는 행실이 나쁜 여자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예수께서 그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신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왔다. 38 그리고 예수 뒤에 와서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맞추며 향유를 부어드렸다. 39 예수를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속으로 "저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에 손을 대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며 얼마나 행실이 나쁜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40 그 때에 예수께서는 "시몬아, 너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 선생님,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41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을 진 사람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이 두 사람이 다 빚을 갚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돈놀이꾼은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은 "더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겠지요." 하였다. 예수께서는 "옳은 생각이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을 계속하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아주었다. 45 너는 내 얼굴에도 입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맞추고 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다. 47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죄는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49 그러자 예수와 한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인데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하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5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1 그 뒤 예수께서는 여러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는데 열두 제자도 같이 따라다녔다. 2 또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자들도 따라다녔는데 그들 중에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 3 헤로데의 신하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돕고 있었다.

 

<본기도> 주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의 은총을 온 세상에 가득히 부어주셨나이다. 비옵나니,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올바른 관계를 이루어주는 용서와 사랑 (루가 7:36-8:3)

 

온갖 무신론이 목소리를 높이는 시대, 누구도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복음의 내용이 더욱 더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이란 본인과 교회와 세상을 위해서 전혀 쓸데가 없습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제 교회가 믿고 세상에 전하는 복음의 기쁜 소식이 왜 기쁜 소식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오늘 성서의 말씀들은 이 점을 밝혀주시는 내용들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바울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율법을 통해서냐, 예수를 통해서냐의 문제입니다.

하느님을 경험하는 세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권능- 율법- 사랑”의 세 차원입니다. 에집트의 노예살이를 벗어날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일 먼저 경험하고 의지했던 것은 “하느님의 권능”이었습니다. 에집트의 군대를 물리쳐 죽음을 벗어나고 굶주림과 목마름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권능에 힘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거룩함이 없었습니다.

권능보다 높은 차원이 율법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해 “하느님의 법”이 주어졌습니다. 이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된 자부심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율법으로도 구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깨우침이 누구보다도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고 자부하던 바울로를 사로잡았습니다. 율법준수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근거는 될 수 있지만,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지요.

권능과 법보다 차원이 높은 것이 사랑이고,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구원의 길입니다. 바울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참된 하느님, 곧 사랑으로서의 하느님을 경험하고 이렇게 회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율법에 비추어 행실이 나쁜 것으로 정죄된 여자가 주님을 향한 깊은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 사랑에 관심이 없고 율법을 통한 정죄에만 관심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구원은 자기를 내세워 자신이 올바르다고 인정을 받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를 비워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한 길입니다. 우리 사랑이 냉랭하다면 우리는 더 깊이 주님의 은총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

 

<강론초록2>

                                    용서가 곧 사랑 (루가 7:36-8:3)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란 표현은 전하는 이들의 열심만큼 오해의 가능성도 큽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보내주고, 아니면 지옥으로 보낸다”는 것처럼 들리기 쉬운데 이는 복음의 핵심이 아닐 뿐 아니라, 하느님의 참된 사랑과 진리를 바로 나타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하느님은 인간의 약함을 정죄하며 상벌하는 신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신 아버지로서 우리가 자녀로서 성숙하여 서로 사랑하고 죄를 피하고 악을 이기며 복된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과 가르침,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를 의지하고 순종하며 사는 삶과 그 삶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도 예수님과의 일치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이웃들과 올바른 관계를 살아가도록 이끄시고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정확한 의미는 예수님을 믿는 삶은 곧 지극한 기쁨과 만족과 행복이 보장되는 삶이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삶은 참으로 저급하고 불만스럽고 고통스런 삶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삶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모두 힘이 연약하고 지혜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 의지해서 힘과 지혜를 얻으면 더 강해지고 더 완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동기로 예수를 믿으면 그만 문제가 생겨 버립니다. 신앙은 세상의 힘과 세속의 지혜를 통해서 내 욕망을 채우고 내 에고를 강화하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뜨거운 마음이어도 그런 신앙은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인데 우리가 구하는 것은 여전히 “이 세상 것들”이라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올바른 관계를 사는 일과 완벽한 존재가 되는 일을 혼동하면 안됩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에 철저하고 제물을 바치는 일에 완벽하다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리 없습니다. 머리 속에 무조건 받아들인 교리를 떠받들고 집착하는 일을 칭찬하실 리도 없습니다. 신앙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피조물로서 연약하고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닙니다. 본래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한 상태로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의지하고 인간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도리어 문제는 내가 그 부족함을 못 견디고, 밖으로 강한 힘을 얻어 완벽해져서 다른 인간을 조종하고 심판하고 싶은 욕심에서 생깁니다. 그런 욕심은 결국 자신의 위선과 남을 향한 정죄로 나타납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위선이 아니라 겸허입니다. 정죄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입니다. 성령의 지혜는 하느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세주를 보내신 것과 이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도리어 은총의 기회가 됨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 죄를 깊이 깨닫고 통회하는 만큼, 그 큰 죄를 감싸 안고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누리는 만큼, 우리는 우리와 똑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다른 사람들을 진정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죄의 문제는 곧 용서의 문제, 사랑의 문제입니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합니다. “네 죄는 용서받았다”는 주님의 말씀은 “너는 이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는 선언입니다. ✠

 

<강론초록3>

                                    용서가 곧 사랑 (루가 7:36-8:3)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전도문구가 있습니다. 전하는 이들의 대단한 열심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은 오해의 소지가 큽니다. 자칫 교회에 다니면 천당에 보내주고, 아니면 지옥으로 보낸다는 것처럼 들리기 쉬운데 그래서는 하느님의 참된 사랑과 진리를 올바로 나타내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죄를 이기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단지 우리를 상주고 벌하시는 능력과 권한 때문에 그리스도이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과 가르침,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와의 올바른 관계가 어떤 삶인지를 보여주셨고, 우리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살아가도록 이끄시고 함께 하시고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정확한 의미는 예수님을 믿는 삶은 곧 지극한 기쁨과 만족과 행복이 보장되는 삶이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삶은 참으로 저급하고 불만스럽고 고통스런 삶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란 하느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마땅한 본분을 다하며 사는 일입니다. “올바른 관계”는 우리의 “회개”와 주님의 “용서”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모두 잘못을 저지르며 삽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잘못, 곧 죄는 우리를 걸어서 옥죄이는 올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억압하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려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반대로 죄를 통해 우리에게 악한 영향을 끼치려는 것이 사탄의 계략입니다. 성경은 사탄을 참소자, 고자질쟁이라고 말하는 데, 이는 사탄이 우리를 유혹할 뿐 아니라, 일단 그 유혹에 걸려들면 그것을 과장하여 물고 늘어지면서 완전히 낙심하고 절망하여 모든 구원의 가능성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들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둔감한 자에게는 죄를 죄가 아닌 것처럼 여기게 하고, 민감한 자에게는 죄로 인해 모든 것이 끝장난 것처럼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가 죄인인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지혜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세주를 보내신 것과 이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도리어 은총의 기회가 됨을 깨닫습니다. 우리 죄를 깊이 깨닫고 통회하는 만큼, 그 큰 죄를 감싸 안고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누리는 만큼, 우리는 우리와 똑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다른 사람들을 진정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죄의 문제는 곧 용서의 문제, 사랑의 문제입니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합니다.” “네 죄는 용서받았다”는 주님의 말씀은 “너는 이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는 선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