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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3년도설교초록

2013년 7월 23일 (연중16주간 화) 성서말씀

 

 

 

2013년 7월 23일 (연중16주간 화) 성서말씀 / 대서, 중복

 

출애 14:21-15:1

21 모세가 팔을 바다로 뻗치자, 야훼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바람을 일으켜 바닷물을 뒤로 밀어붙여 바다를 말리셨다. 바다가 갈라지자
22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걸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주었다.
23 이집트인들이 뒤쫓아왔다. 파라오의 말과 병거와 기병이 모두 그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섰다.
24 새벽녘에 야훼께서 불과 구름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자 이집트 군대는 갈팡질팡하였다.
25 또한 야훼께서는 그들의 병거 바퀴들을 얽어놓아 꼼짝도 못하게 하셨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버려두고 도망가자. 야훼께서 이스라엘 사람들 편이 되어 우리 이집트 군대를 치신다." 하고 소리쳤다.
26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이집트인들과 그들의 병거와 기병들 위에 물이 도로 덮이게 네 팔을 바다 위로 뻗쳐라."
27 모세는 팔을 바다 위로 뻗쳤다. 날이 새자 바닷물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집트인들은 물결을 무릅쓰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야훼께서 이집트인들을 바다 속에 처넣으셨다.
28 물결이 도로 밀려오며 병거와 기병을 모두 삼켜버렸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바다에 들어섰던 파라오의 군대는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
29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주었다.
30 그 날, 야훼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이집트 군대로부터 건지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인들이 해변에서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31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께서 그 큰 팔을 펴시어 이집트인들을 치시는 것을 보고 야훼를 두려워하며 야훼와 그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다.
1 그제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러 야훼를 찬양하였다. "나는 야훼를 찬양하련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다.

 

시편 105:37-44

37 그리하여 당신 겨레는 금과 은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 한 사람도 낙오한 자가 없었다.
38 이집트인들은 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 그들이 떠나는 것을 기뻐하였다.
39 하느님께서는 구름을 펼쳐 덮어 주시고 ◯ 밤에는 불로 비추어 주셨다.
40 먹을 것을 구하면 메추라기를 몰아다 주시고 ◯ 하늘에서 양식을 내리시어 배불리셨다.
41 바위를 열어서 샘물을 솟게 하시고 ◯ 그 물은 내를 이루어 메마른 땅을 적셨다.
42 당신의 종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 거룩한 말씀을 아니 잊으시고
43 당신 백성을 발걸음도 가볍게 빠져 나오게 하시며, ◯ 뽑으신 그 백성이 기쁜 노래 부르며 나오게 하셨다.
44 그리고는 여러 민족의 땅을 빼앗고, ◯ 그 종족들이 일군 땅을 물려주셨다.

 

마태 12:46-50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마르코 3:31-35; 루가 8:19-21)]
46 예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와 말씀을 나눌 기회를 찾고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밖에 서서 찾고 계십니다." 하고 알려드렸다.
48 예수께서는 말을 전해 준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물으셨다.
49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우리로 하여금 죄의 욕망을 다스리게 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나이다. 구하오니, 우리가 이 변화 많은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의 마음과 뜻을 하늘에 두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성경에서 약자의 대명사는 과부와 고아입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은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울타리입니다.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개인이 아무리 강해도 별게 아니지요. 편들어 줄 사람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가족은 가장 확실한 자기편입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죽음의 극복도 실은 자기를 기억해주는 이들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가족은 가장 확실하게 믿을만한 이들이지요. 가족이 확대되면 부족이 되고 부족이 커지면 민족이 됩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가족이 커져서 열두 부족이 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습니다.

오늘 1독서의 말씀은 그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바다를 건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다.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느님께서 하느님은 왜 이집트인들은 치시고 이스라엘 사람은 건지셨을까요? 하느님은 민족들을 편애 하시는 불의한 분이실까요? 성서에서 하느님이 잔인하신 분이심을 읽고 그런 하느님을 못믿겠다고 고민하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시면 그게 아닙니다. 문제는 하느님이 아니고 인간들입니다.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부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음과 울부짖음이 하느님께 들렸는데 이집트인들은 아무도 귀기울여 들은 사람이 없습니다.
권력자든 하수인이든 착한 백성이든 모두가 그저 그러려니하며 양심에 둔감했습니다.

옛날 일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사회도 잘 살펴보십시오.
우리 사회에 따뜻한 마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고 낮선 사람들 대하는 이들이 점점 적어지는 분위기입니다. 권력을 탐내는 정치인들, 기득권자들은 기대할 것도 없을 정도지만, 착하고 순하고 평범하다할 이들인 우리는 외국인근로자들, 이주여성들, 다문화가정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요?

오로지 이스라엘 민족이 선택받은 민족이어서 구원을 받을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의롭고 착한 사람이었을까요? 그것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중에도 동족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 모세를 열받게 했습니다. 
좀 더 잘 먹고 편히 사는 것이 관심사일 뿐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이 보장해주는 풍요를 의지하려는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고통스런 현실에 하느님께서 먼저 움직이셨습니다.
모세를 불러서, 이집트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사람에게 행하는 모든 일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느님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존재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이제는 한 사람의 노인이 된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의 해방을 부탁하십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보이는 예수님의 언행은 뜻밖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예수님의 효심 때문에 성모 마리아의 청을 더 잘들어주시리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신학적으로는 억지스러운 것이고 일종의 오해입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공감이가고 실제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없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출가자의 모습입니다. 신앙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마리아와 형제들이 짐짓 서운했을 만큼 불효자의 태도를 보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부모봉양을 잘하는 효도를 가르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나라를 위해서 가족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고 가정을 깨뜨리는 믿음을 가르치시는 걸까요?

그럴리는 없습니다.  진정한 가족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실 때 성립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다면,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형제로 여겨 대접했다면, 파라오가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 질서의 근원임을 깨달았다면, 오늘 갈대바다의 죽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도 실은 신앙의 가족으로 표현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하는 대가족입니다.
우리의 인척관계를 가지고 패밀리처치, 가족교회라고 이해하는 일은 넘어서야 합니다.
함께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한 가족으로 초대받았으므로
우리는 가족교회입니다.

동물은 육적인 가족을 이룹니다. 생식 즉 번식이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본능적인 모성애로 무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생존이 더 중요해서 새끼를 잡아먹기도 합니다.

인간에게도 적지 않게 동물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뇌, 저 깊은 곳 한편에는 파충류의 뇌가 숨어있다지요.

그러나 인간은 인간의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지어졌고  하느님의 숨결을 통해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성서는 전합니다. 인간의 가족사랑은 본능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합니다. 생존을 위해 가족을 희생하는 동물적인 수준으로 떨어져서도 안됩니다. 그런 경우는 없다구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대부분 가족사랑은 가족이기주의입니다.

약간 과장하면 북한동포들을 도저히 변화가능성이 없는 악의 화신들로 몰아가는 우리들은 생존을 위해 가족을 희생하는 동물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악한 권력자들이 자기 체제를 유지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판단을 일삼는 것이 문제입니다.하느님의 눈길로 보면 북한 체제에서 신음하고 울부짖는 모든 이들은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그들을 위해 오직 하느님만이 하느님이시라는 계시를 받는 "모세"가 우리 시대에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영적 가족의 맏형입니다. 나를 위한 예수님으로 아는데 머물지 말고 우리 모두의 형제애를 이끌어가시는 큰 형님으로 알아야 합니다. 큰 형님 어감이 어째 불편하고 불경스럽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신앙인들이 현세의 이익을 위해 예수를 믿는 일에 머문다면 세상사람들이 볼 때에 예수님을 예수 패거리의 큰 형님으로 보여지게 하는 셈입니다. 그야말로 불경스러운 신성모독이지요.

하느님 아버지의 부족함 없는 사랑 안에서... (우리는 부모의 사랑조차 부모의 자기중심성을 못벗어나고 때로 편애함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사랑도 충분히 믿지 못하게 됩니다.)
형제 자매 서로 사랑을 나누는 기쁨으로 이 세상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