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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3년도설교초록

2013년 7월 9일 (연중14주간 화) 성서말씀

 

 

 

2013년 7월 9일 (연중14주간 화) 성서말씀

 

창세 32:23-33

23  바로 그 날 밤, 그는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야뽁 나루를 건넜다. 24  그들을 데리고 개울을 건넌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냈다. 25  그리고 야곱은 혼자 뒤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나타나 동이 트기까지 그와 씨름을 했다. 26  그분은 야곱을 이겨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를 다치게 되었다.
27  그분은 동이 밝아오니 이제 그만 놓으라고 했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복을 빌어주지 않으면 놓아드릴 수 없다고 떼를 썼다. 28  일이 이쯤 되자 그분이 야곱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
29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이 말을 듣고 30 야곱이 말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십시오." 그분은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야곱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31  야곱은 "내가 여기서 하느님을 대면하고도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불렀다.
32 그가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브니엘을 떠날 때 해가 떠올랐다.
33 이스라엘 사람이 오늘날까지 환도뼈 힘줄을 먹지 않는 것은 야곱이 환도뼈를 얻어맞아 그 힘줄이 상했기 때문이다.

 

시편 17:1-8

1 주여, 들으소서 이 몸의 죄없음을 밝혀 주소서, ◯ 이토록 울부짖는 소리 모르는 체 마옵소서.
✤ 이 애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 이 입술은 거짓을 모르옵니다.
2 “너는 죄없다” 판결하소서. ◯ 당신의 눈은 결백한 사람을 알아 보십니다.
3 내 마음을 샅샅이 캐 보시고: 밤새도록 심문하고 불로 달구어 걸러보셔도 ◯ 무엇 하나 나쁜 것이 내 입에서 나왔습니까?
4, 5 남들이야 무얼하든지 이 몸은 당신의 말씀을 따라: 그 험한 길을 꾸준히 걸었습니다. ◯ 가르쳐 주신 길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6 하느님, 대답해 주시리라 믿고 당신을 부릅니다. ◯ 귀를 기울이시어 나의 말을 들어 주소서.
7 당신께로 피하오니, 한결같은 그 사랑을 베풀어 주소서:  오른손으로 잡아주시어 ◯ 나를 치는 자들의 손에서 건져 주소서.
8 당신의 눈동자처럼, 이 몸 고이 간수해 주시고 ◯ 당신의 날개 그늘 아래 숨겨 주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마태 9:32-38

32  그들이 나간 뒤에 사람들이 마귀 들린 벙어리 한 사람을 예수께 데려왔다.
33  예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자 벙어리는 곧 말을 하게 되었다. 군중은 놀라서 이스라엘에서는 처음 보는 일이라면서 웅성거렸다.
34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저 사람은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35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36 또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37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38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

 

<본기도> 주 하느님, 우리를 위해 헤아릴 수 없는 좋은 것을 준비해 두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을 향한 사랑을 부어 주시어, 세상 무엇보다 먼저 주님을 사랑함으로 우리 소원보다 넘치는 주님의 은총을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는 뉴스를 듣습니다. 새로운 소식입니다. 오늘은 어떤 새로운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이번 주에는 아시아나비행기사고 뉴스가 모든 소식을 덮었습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소셜네크워킹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온갖 정보와 이야기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졌고 실시간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라는 기준, 진실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우리 사회는 마귀들린 벙어리와 같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말, 당연히 들어야 할 말들은 거의 없고 마귀들린 벙어리 같은 답답한 소리만 웅웅거립니다.  

복음은 굳뉴스,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하는 것들이 어떻게 기쁜 소식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하느님의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그 용서를 통해 우리에게 허락된 삶을 거절하지 말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기쁜 소식은 우리가 보다 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살아야 복을 받는다는 소식이 아닙니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보면 오늘 1독서 야곱의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야곱은 그러나 삶의 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과 씨름했습니다. 하느님의 용서란 그런 수준의 삶의 용기를 가진 이에게 허락되는 축복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열심히 계명을 지키고 봉헌을 바치면 그  댓가로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이 아닙니다.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런 상식이 기쁜 소식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무슨 거래를 하실 필요가 전혀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행복 자체를 기뻐하시지, 우리가 바치는 어떤 것을 기뻐하실 만큼 뭔가 부족한 분이 아니십니다. 

복음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용서를 받게 된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머리 속으로 예수가 구세주 하느님이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죄값을 다 치르셨음을 믿고, 하느님께 떳떳이 “하느님, 저 이제 예수님이 죄값을 다 치루어서 자유에요. 약속한 성공과 천국을 주세요.” 말할 자격이 생긴다는 말도 안되는^^ 소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용서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되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일을 먼저 원하시고 몸소 이루어가신다는 뜻으로 예수님께서는 그 구원을 “하늘나라"로 표현하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는 선포로 시작하셨고, 일생 그 “하늘나라”의 일을 세상에 나타내보이시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는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주 공간 어딘가에 천상 낙원, 파라다이스가 있다는 정보를 예수님이 알려주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파라다이스에 들어갈 입장권을 예수님께서 예약제로 판매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그 파라다이스의 주인으로 알아보는 이들에겐 공짜 입장권을 나누어준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지나치게 과장되고 불경한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표현이 점잖고 신학적으로 근사해게 설명을 한다해도 이런 내용을 신앙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불행한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이들이 이런 신앙을 그리스도교의 복음이라고 오해하고 착각합니다. 외람되지만 장담합니다. 바울로 사도의 표현을 빌자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해도 이런 거짓 복음을 전한다면" 나는 복음서를 근거로 논쟁을 할 것이고 제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그 논쟁을 지켜보시면 지혜로운 우리 주교님께서는 저를 옳다고 편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너무 심각하지 마시고 좀 웃으며 들어주세요.^^

 

예수님의 “하늘나라”를 전하는 일은 이 땅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살만해서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이에게 “그런데 죽은 후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죽은 후를 위해서 보험을 드세요. 예수를 잘 믿으면 천국갑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이 아니고는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이들, 그 하느님이 거짓 우상이 아니고 참 하느님이어만 하는 이들, 곧 “목자없는 양같이 시달리고 허덕이는 군중”들에게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그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하느님 사랑의 왕국”에 살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늘나라의 일은 마귀 들려 말못하는 벙어리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시는 일입니다.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치시어 삶을 살게 하시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여 부자되는 일 아니고, 저 세상 복락을 약속하는 일도 아닙니다.
이 세상의 현실에 대하여 하늘나라의 가치와 차원을 제시해주는 일입니다. 이 세상은 당연히 여기는 차별과 억압과 관행을 하느님 보시기에 그럴 수 없다고  뒤엎는 일입니다. 하느님나라를 외면적인 환경으로 보장해주는 일을 넘어서 우리를 그 사랑의 왕국을 살아갈 수 있는 인격이 되도록 변화시켜가는 일입니다. 고난과 인내와 나눔과 친교를 통해서 개인적, 이기적, 물질적 욕망을 버리고 성령에 의지하여 살아가도록 하는 일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 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기 어려운 처지의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부름받고 보냄받는 추수할 일꾼들입니다.
추수할 것이 많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복음을 종교적 서비스로 대체하여 팔면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사리라고, 속된 말로 장사가 되리라고 하는 의미일 수 없겠지요. 이른바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과연 어떤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까 걱정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추수할 것이 많다는 것은 이 세상을 하늘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참으로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삶의 현실 속에서 하늘나라를 필요로 합니다. 하늘나라는 하늘에서는 이미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대로 하늘나라는 “이 땅에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땅위에서 마귀의 권세, 속임수와 죽임의 권세를 사랑으로 꺽어야 합니다. 그 일을 기도하고 그 일을 실천하는 일이 “추수할 일꾼”인 우리에게 맡겨진 일입니다. 그 일은 특정한 인물이나 직분이 감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기도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하느님, 우리를 위해 헤아릴 수 없는 좋은 것을 준비해 두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을 향한 사랑을 부어 주시어, 세상 무엇보다 먼저 주님을 사랑함으로 우리 소원보다 넘치는 주님의 은총을 받게 하소서.”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우리 삶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일입니다. 그 기쁨과 감사로 서로서로를 용서하고 배려하고 돕고 나누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