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학이야기- 신앙체험의 정리와 반성/성공회이야기

서울교구 성직자 실천강령 (이재복신부)


서울교구 성직자 실천강령 - 기도하여 주십시오 -이재복 신부(200507017. 2면)

http://www.agl.or.kr/view.php?id=plan&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5

서울교구 성직자 실천강령 - 기도하여 주십시오

이재복 신부(멜기세덱∙서울교구 성직자원 총무/산본교회)

서울교구 성직자 실천강령

우리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의 모든 성직자들은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직을 수행하기로 결심한 말씀의 선포자요 성사의 집전자이며 교회와 세상을 섬기고 보살피는 목자들이다. 우리는 하느님 선교의 동역자로서 스스로를 복음화하면서 세상을 복음화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는 일에 한 마음으로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다음과 같은 우리들의 실천강령을 선언하고 이를 성심으로 지키고자 한다.

1. 우리는 날마다 기도하고 영적 체험을 깊게 하면서 하느님의 진리를 탐구하며 신학적인 훈련에 정진한다.

2. 우리는 교회의 쇄신과 성숙을 위하여 헌신한다.

3. 우리는 성직자 상호간에 영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며 공동체적인 일치와 나눔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한다.

4. 우리는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중용과 포용과 합리적인 조화의 정신을 존중하면서 교회일치를 향한 노력에 앞장선다.

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자신을 비우고 사회적인 약자를 돌보며 민족의 통일과 세계의 평화에 기여한다.

6. 우리는 생명을 억압하는 교회 안팎의 모든 불의와 폭력과 전쟁을 거부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한다.

7. 우리는 성직자로서 삼가 언행을 신중히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정결하고 청빈한 생활을 함으로써 윤리적인 모범을 보이고, 겸손한 태도로 교우들과 이웃을 섬긴다.

1. ‘강령’이라는 낯선 말

보통 ‘강령’(綱領)이라 하면 정당(政黨)과 같은 조직체의 무슨 정치적인 정책이나 이념 따위를 선언하고 선전하는 것만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따르면 강령은 ‘일의 근본이 되는 큰 줄거리’ 혹은‘정당이나 사회단체 등이 그 기본 입장이나 방침, 운동 규범 따위를 열거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강령은 정당과 같은 정치적인 조직체만이 가질 수 있는 전유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미 오래 전부터 기자들은 기자들대로 자신들의 ‘윤리강령’ 혹은 ‘실천강령’을 가지고 있었고 또 의사들이나 교사들도 이와 비슷한 것들을 표방하여 지키려는 노력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교계 안에도 벌써 자신들만의 강령이나 강령에 준하는 것을 만들어서 스스로의 신앙과 의지, 건설적인 행동 방침 등을 천명하고 있는 다양한 신앙적인 단체들, 신심단체들이 있기도 합니다.

2. 성직자 실천강령을 왜 만들었는가?

서울교구 성직자 실천강령의 전문(前文)에도 드러나 있듯이 성직자들은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직을 수행하기로 결심한 말씀의 선포자요 성사의 집전자이며 교회와 세상을 섬기고 보살피는 목자들”입니다. 성직자라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말씀의 선포자로서, 성사의 집전자로서 그리고 교회와 세상을 섬기고 보살피는 목자로서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명을 온 정성을 다하여 실행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부제성직 서품식과 사제성직 서품식 때 하느님과 교회공동체 앞에서 엄숙하게 약속한 내용들을 성심껏 지키는 것도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서울교구의 대다수 성직자들은 물론 성직자로서의 사명과 약속을 최대한 성실하게 준수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말미암아 충분하지 못했던 점들도 한편으로는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교구 성직자원(聖職者院)이 스스로 실천강령을 제정하여 지키려는 것은 그동안의 ‘충분하지 못했던 점들’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성직자로서 하느님께로부터 분부 받은 사명을 성심껏 이루지 못했다, 성직자로서 교회공동체와 세상을 향하여 응당 실천했어야 하는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성직자 실천강령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3. 성직자 실천강령을 제정하기까지

서울교구 성직자들은 지난 2003년에 ‘서울교구 성직자포럼 운영위원회’를 자발적으로 구성하여 ‘성직자포럼’을 계속 진행하여 왔습니다. 지금까지 성직자포럼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주제)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오늘의 교회와 사제직의 위기 - 사제의 리더십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선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성소 개발’, ‘성직자원의 역할과 위상’, ‘우리는 어떤 교회를 지향하는가?’, ‘농촌교회 현실과 교회론’, ‘나눔의집 선교론’, ‘현재 우리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관하여’, ‘현 단계 우리 서울교구가 처한 상황과 제언’, ‘주교 선출에 즈음한 서울교구 성직자 정책포럼’, ‘서울교구 성직자원 창립총회 준비를 위한 발제’, ‘바람직한 성직자 인사제도에 대하여’ 등등.

우리 서울교구 성직자들은 자발적으로 연구하고 발제하고 함께 토론하면서 우리 교회 안에 해결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들과 과제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들 중에서도 우리 성직자 자신들의 반성과 각성과 변화가 대단히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교구의 성직자들은 성직자들 자신의 책임 의식을 더욱 분명히 하고, 나아가 교회공동체를 향하여 조금 더 대안적인 주체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성직자원의 상설적(常設的)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을 한 다음 지난 2004년 10월에 ‘서울교구 성직자원 제1차 총회’를 열었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서울교구 성직자 실천강령’을 제정하였고, 지난 6월 28일에 열었던 서울교구 성직자원 제2차 총회에서는 실천강령을 더 섬세하게 다듬어서 총회에 참여한 성직자들의 동의를 얻고 통과시켰습니다.

4. 사목자의 신앙고백 - 실천강령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한 것처럼 우리 성직자들에게도 더 근본이 되는 것은 아마 신앙고백일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교회공동체와 세상을 향하여 어떠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훨씬 근원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가령 우리들의 대표적인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는 니케아신경이나 사도신경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신앙고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하겠다.’라고 하는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신앙고백은 우리의 믿음을 포괄적으로 고백하는 근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신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실천하는 부분에서는 좀 막연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근본적인 신앙고백에 터를 잡고 있는 실천강령이 필요합니다. 실천강령을 통하여 우리는 신앙고백을 더욱 구체적으로 구현해 갈 수 있습니다.

성직자들은 성직자원을 통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것도 일반 다른 사회단체와 비교해 볼 때 매우 고유하고 특수한 공동체입니다. 성직자원 - 성직자 공동체가 신앙고백에 근거한 실천강령을 자발적으로 제정하여 스스로 지키기로 결심한 일은 사실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성직자들이 더 깊은 신앙을 고백하면서 이 실천강령을 성심껏 지켜나갈 수 있도록 교회공동체 가족 여러분들께서는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성직자들이 실천강령을 정성껏 지킨다면 그것은 곧 하느님께는 영광이 될 것이요 동시에 우리 교회와 세상에는 아름다운 빛과 소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이 실천강령을 지키는 것은 우리 교회의 새로운 선교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5. 소극적인 인정에서 적극적인 의지로

사실 서울교구 성직자 실천강령을 유심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에 무슨 유별난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그리스도교의 성직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사명과 책임들이 정리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예를 들어 실천강령 7조(“우리는 성직자로서 삼가 언행을 신중히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정결하고 청빈한 생활을 함으로써 윤리적인 모범을 보이고, 겸손한 태도로 교우들과 이웃을 섬긴다.”)의 경우만 하더라도 너무나 당연한 내용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것이지.” 하고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당연한 것이지만 꼭 실천해야 해.”라고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는 것은 실제의 삶에서 매우 다른 결과를 빚어내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당연한 것마저 실생활에서 놓치거나 빠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합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성직자라고 하여 당연한 것을 잘 지키지 못하는 때가 어찌 한 번도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서울교구 성직자원 총회에서 실천강령을 스스로 제정하고 이를 자발적으로 밝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더욱 성심껏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하나의 적극적인 의지 표명입니다. 부디 하느님께서 우리 성직자들의 정성어린 의지를 기꺼이 받아 주시고 이끌어 주시기를 빕니다.

6. 살아 있는 실천강령이 되기를

아무리 훌륭한 신앙고백문이라 할지라도 그 신앙을 실제로 고백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실천강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천하지 않는 강령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천궁행하지 않는 순간 그것은 사문화(死文化)되고 맙니다.

교우 여러분들께서는 성직자들의 실천강령이 죽은 문서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성직자들 스스로의 다짐과 노력이 우선 중요하겠습니다만, 교우 여러분들의 기도와 지지와 격려가 없다면 성직자들은 오히려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성직자 실천강령이 성직자들을 겨누는 칼이 되어서도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성직자들을 심판하는 하나의 잣대가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성직자 실천강령은 누가 제정하라고 하여 제정한 것도 아니고 또 누가 공개적으로 밝히라고 하여 밝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리어 성직자들을 힘들게 하는 역작용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주 안타까운 일입니다.

7.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직자 실천강령을 잘 지켰다고 하여 올바른 성직자이고 반대로 잘 지키지 못했다고 하여 그릇된 성직자라고 한다면, 그것은 ‘율법주의’와 다를 바 없는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오직 믿음에 의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다만 우리 성직자들은 그저 달려가야 할 길을 달려갈 뿐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필립 3:12-14)

거룩하신 주님, 저희 성직자들을 바른 길로 이끄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