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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2년도설교초록

2012년 1월 8일 (주의세례주일 /연중1주일) 성찬례 성서정과

2012년 1월 8일 (주의 세례 주일 / 연중1주일) 성서말씀

안티오키아의 루시안 (사제, 순교자, 312년)
 
창세 1:1-5

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2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3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4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5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이렇게 첫날이 밤, 낮 하루가 지났다.

시편 29

1 하느님을 모시는 자들아, 주님께 돌려 드려라. ◯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돌려 드려라.

2 그 이름이 지니는 영광 주님께 돌려 드려라. ◯ 거룩한 빛 두르신 주님께 머리를 조아려라.
3 주님의 목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진다. ◯ 영광의 하느님께서 천둥소리로 말씀하신다.
4 주께서 바닷물 위에 나타나신다. 그 목소리는 힘차시고 ◯ 그 목소리는 장엄하시다.
5 주님의 목소리에 송백이 쩌개지고 ◯ 레바논의 송백이 갈라진다.
6 레바논산이 송아지처럼 뛰고 ◯ 시룐산이 들송아지처럼 뛰게 하신다.
7, 8 주님의 목소리에 불꽃이 튕기고, 광야가 흔들거린다. ◯ 주 앞에서 카데스 광야가 흔들린다.
9 주님의 목소리에, 상수리나무들이 뒤틀리고 ◯ 숲들은 벌거숭이가 된다.
✤ 모두 주님의 성전에 모여 ◯ 한결같이 그 영광을 기린다.
10 주께서 거센 물결 위에 옥좌를 잡으시고 ◯ 영원히 왕위를 차지하셨다.
11 주님의 백성들아, 그에게서 새 힘을 얻고 ◯ 복을 받아 평화를 누리어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사도 19:1-7

1 아폴로가 고린토에 머물러 있는 동안 바울로는 북부 지방을 거쳐 에페소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몇몇 신도들을 만나 2 "당신들이 신도가 되었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바울로가 "그러면 당신들은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하고 다시 묻자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이 때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일러주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죄를 회개한 표시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분 곧 예수를 믿으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5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6 바울로가 그들에게 손을 얹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셨다. 그러자 그들은 이상한 언어로 말을 하고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7 이렇게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마르 1:4-11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하고 선포하였다. 5 그 때 온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에게 와서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7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9 그 무렵에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요르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와 세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에게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1 그 때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예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에 성령을 보내시고 사랑하는 아들이라 말씀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도 세례의 언약을 굳게 지키며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주님의 세례, 우리의 세례
                      -  소명으로 새로워지는 삶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님께 대하여 교리적인 이해를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에, 원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회개의 표시가 되는 세례를 받으신 것일까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 중 한 대답으로 태생 죄인인 우리들과 같은 입장으로 자신을 낮추시려고 그러셨으리라고,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칭송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석이지만 역시 정말 중요한 것은 주님이 받으신 세례의 의미, 주님이 세우신 세례성사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성경과 교회를 통하여 어떤 미덕이나 처세론을 기대하고 배우려는데 지나치게 익숙합니다. 성경의 본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그리스도이시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성경의 목적입니다.

이런 저런 인간적인 도덕덕인 덕목을 갖추셨기 때문에 또는 이렇게 저렇게 인간이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그리스도이신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신뢰하시는 그 절대의 확신 - 그것은 무슨 세뇌적인 교리학습의 결과가 아닙니다- 을 가지고 모든 이를 사랑의 눈길로 측은히 여기며 그들에게 하느님의 현존, 하느님의 주권적인 다스림, 곧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시고 경험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나라를 위한 예수님의 사역은 십자가 사건으로 결집되었고 부활사건으로 완성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바로 그 예수님과의 관계를 우리가 새롭게 맺음으로써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덕적인 덕목을 충족하기 때문에 인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인간적인 도덕적인 요구를 이미 충족하는 수준의 삶을 살지만 그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나 내용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주님께서 직접 세우신 성사로 공경하거니와 성경에서 바로 이 장면, 몸소 세례를 받으시는 일과 마태오 복음서의 마지막에 부활하시어 승천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땅 끝까지 하느님나라를 전하여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당신의 명령을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당부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세례 장면은 바로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사역을 시작하시는 시점의 일입니다. 이른바 공생애의 시작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일은 원죄를 씻어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천국에 갈 자격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요한의 세례는 물론 회개의 표시입니다. 하지만 신앙적인 의미로서의 회개는 단순히 우리 의지를 굳건히 하여 바른생활 사나이가 되어보겠다는 식의 그런 결심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대개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기 일쑤입니다.

회개는 사실 하느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는 일입니다. 우리의 존재가, 우리의 삶이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차원을 얻는 일입니다. 그럼으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며 예수님은 그 세례의 의미에 한 차원을 더 하신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고 징벌을 피하려는 동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의 담지자가 되는 화해가 세례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고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소리가 들려왔다고 전합니다.

신앙생활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와 관계된 사람의 좋은 변화를 위해서 기를 쓰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깨닫게 되는 마지막 결론은 참으로 깊은 차원의 자각이 아니면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의 세례는 바로 가장 깊은 차원의 자각을 통한 변화의 사건입니다.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가 우리 삶의 방향을 바로잡게 하고 영적인 차원을 심화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시는 하느님의 기쁜 음성을 듣습니다. 들으셨어요?^^
우리의 교회력은 예수님의 일생을 따라가며 우리 자신의 변화와 성숙을 이루려는 노력입니다. 주님의 세례는 우리의 세례의 모본입니다. 그것은 소명으로 새로워지는 삶입니다. 주님의 현존이 우리의 전부임을 깨닫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