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중창단 2집< 사제들의기도 2- 내 마음이 주를 찬양하오며> 라는 음반을 소개드렸는데요,
내친김에 사제중창단 1집도 소개를 드립니다.

<사제들의 기도 1- 내 본향 가는 길>이라는 1집은 2004년 겨울 창단공연 실황과 성공회 성가중에 별세성가를 편곡하여 녹음하여 총 2장의 CD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조마조마하며 과연 우리 실력으로 창단공연이 가능할까? 하고 대성당 무대에 섰던 일이 생각납니다.
더더욱이 우리가 그 어려운 녹음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다행히 많은 교우님들이 너그럽게, 기쁘게, 격려하고 기도하며 호응해주셔서 이제껏 사제중창단이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별세성가 CD는 다소 무거운 주제의 노래일 수 있으나 별세한 교우가 있을 경우 빈소에서 들으면 매우 위로가 됩니다. 평소에 들어도 나쁘지 않은데 제 생각에는 이 성가 CD를 오래 들으시면 하늘나라를 가시는 준비로 매우 훌륭하다고 판단됩니다.  이 성가를 자주 들으면 들을 수록 죽음이 두렵지 않고 편안하고 기쁜 일로 생각되는 신비를 느끼실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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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Jukebox|jk360000000023.mp3|01. 330.괴로운 인생길.mp3|hk360000000031.mp3|02. 331.내본향 가는길.mp3|hk360000000030.mp3|03. 334.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후.mp3|hk360000000029.mp3|04. 336.마리아의 아들.mp3|hk360000000028.mp3|05. 339.우리와 함께 살다가.mp3|jk360000000022.mp3|06. 351.야훼 나의 목자.mp3|jk360000000021.mp3|07. 354.주는 나의 목자시니.mp3|ik360000000029.mp3|08. 390.기쁨이 넘치는.mp3|ik360000000028.mp3|09. 399.내주의 보혈은.mp3|ik360000000027.mp3|10. 401.만세반석 주님께.mp3|jk360000000020.mp3|11. 527.내 주를 가까이.mp3|ik360000000026.mp3|12. 568.저 높은 곳을 향하여.mp3|ik360000000025.mp3|13. 573.십자가로 가까이.mp3|hk360000000027.mp3|14. 340.세상 떠난 주님의 종.mp3|ik360000000030.mp3|15. 570.주안에 있는 나에게.mp3|autoplay=0 visible=1|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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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제중창단 priest choir> 이
"사제들의 기도 2 -  내 마음이 주를 찬양하오며" 라는 2집 성가음반을 냈습니다.
불초한 저도 제1 테너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제1집이 창단공연 실황녹음과 우리 성가 중 "별세"를 주제로 한 노래들을 담았다면
제2집은 우리 성가 중 많은 교우들이 애창하는 곡들을 골라 실었습니다.

물론 전문가적인 재능과 역량에는 훨씬 못미치는 아마추어의 한계가 드러납니다만,
주님을 찬양하는 영적인 기쁨을 교우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은 깊고 큽니다.

모쪼록 많이 들어주시고 널리 전해주셔서
문화선교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소명으로 바쁜 시간을 기꺼이 쪼개
부끄러운 실력을 공개한^^ 신부님들을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음악지도 원학연 선생님, 반주 이혜원선생님, 녹음음반작업 김철희선생님
주교좌성당, 성가수녀원, 후원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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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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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중창단 부산교구초청 공연소감
- 내가 ‘백마강’을 부르는 까닭

지난 2007년 11월 8일(목) 오후7시 30분, 성공회 사제중창단의 부산교구초청 (정기)공연이 있었다. ‘가을음악회’란 이름으로 성공회 부산교구 성직자원이 공들여 마련한 자리였다. 대청동 주교좌성당에서 부산교구 성경원 신부님, 이사라 사모님, 이성호 신부님, 감리교 방영식 목사님이 함께 감동적인 노래를 들려주셨고 우리 중창단도 해체의 위기를 넘어 정기공연을 하게 된 기쁨으로 열심히 노래했다.

성공회 가족이라면 아는 이야기지만 부산교구의 선교 상황은 매우 어려운 편. 한자리에 모이기조차 힘든 상황에 기쁘고 행복한 웃음이 귀했던 부산교구의 성직자와 교우님들을 위한 귀한 자리였다. 처음 자리에 앉으신 교우들의 표정은 “아니, 저 분들이 지금 음악회를 오셨는가, 무슨 법정에 오셨는가” 생각될 정도로 대체로 굳어있었다. 음악의 힘은 그런 긴장을 풀고 편안한 기쁨과 하나됨을 가져다 준다. 앵콜을 청하시는 박수의 손길에는 이미 사랑과 행복이 가득 묻어서 전해진다. 멀고 고단한 연주 여행이었지만 중창단원 모두 큰 보람으로 기억되는 공연이었다.

윤종모 주교님, 황외달 (성우회장)신부님, 김동규 신부님 외 부산교구 신부님들과 교우님들의 초청과 환대에 감사드린다. 바쁘신 가운데도 함께 하시어 우리 중창단의 성공적인 공연을 이끌어주신 원학연 지휘자선생님과 이혜원반주자님의 노고는 그저 우리 주님께 보고드릴 뿐, 우리가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

공연 후 다른 단원들이 공연 분위기와 중창단 수준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노래로 사료됨으로 앞으로는 절대로 순서에 넣지 말자고 결의했다는 그 ‘백마강’을 또 부르게 되었다.





뭐, 들으시는 분이 흥겨운 것은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어떤 분은 무슨 사제중창단이 거룩한 성당에서 ‘뽕짝’을 부르는가고 불편해 하실지도 모르고, 사실 노래가 듣기 좋아서보다도 그저 사제가 부르는 ‘백마강’이어서 그 어울리지 않는 미묘한 느낌에 반응이 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백마강’을 애창하는 이유는 나름대로 변명의 여지가 있다. 대부분의 전통가요가 ‘쉬움’을 빙자하여 가사와 음률에 ‘말초적 감각’을 섞는데 반해 이 ‘백마강’은 비장한 역사의식으로 가득한 노래다. 정확히 작곡연대는 모르겠으나, 일제시대에 이 ‘백마강’을 부르고 듣는다고 가정해보자. 계백장군이 삼척 검을 뽑아 처자식을 베고 오천결사대와 더불어 황산벌에서 죽어간 그 충정을 노래하는데 어찌 망국의 설움과 함께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반성이 없겠는가?

성공회의 어려운 선교여건과 교세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계백과 오천결사대를 떠올린다. 나는 과연 기꺼이 님사랑 조차 끊고 결사의 각오로 성직을 수행하는가? 자못 퇴폐적인 느낌이 드는 ‘삼천궁녀’ 때문이 아니라, 오늘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오천결사대’ 때문에 나는 기꺼이 ‘백마강’을 부른다고 하겠다.

“백마강에 서린 백제의 한” 이라는 제목의 좋은 글을 소개드린다.


http://blog.daum.net/son13601/852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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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 서린 백제의 한

반만년의 우리 역사 중에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가슴에 한을 남기고 있는 나라의 멸망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백제일 것이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나라와 신라의 기습에 무너졌던 백제의 멸망은 우리에게 가장 뼈저린 슬픔을 전하고 있다.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를 중심으로 백제 멸망의 흔적은 한 많은 유적으로 남아 전하고 있는데,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비성과 낙화암, 정립사오층탑, 고란사, 자온대, 백마강, 조룡대, 황산벌, 기벌포, 등이 그것이다.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가 화려했던 문화를 유적과 유물로 보여주고 있다면, 백제 멸망의 한을 간직하고 있는 부여의 유적들은 아직도 흐느껴 우는 당시 백제인들의 슬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제 멸망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지금까지도 슬픔을 간직한 것이 있다면 마땅히 백마강이 될 것이다. 백마강의 원래 이름은 백강(帛江)이었다. 급류가 없이 조용히 흐르는데다가 비단을 길게 펼쳐놓은 것처럼 흰색을 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런 백마강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낙화암보다 성흥산성이 더 적합하다. 날씨가 아주 맑은 가을날 서해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부여에서 서남쪽으로 10킬로 정도 떨어진 성흥산성에 올라서 동남쪽을 바라보면 강의 이름이 왜 백강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부여에서 내려오는 강의 모습은 흰 비단을 굽이굽이 펼쳐놓은 것 같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모습은 영낙없이 비단을 펴놓은 모양이다. 이 강의 이름이 지금처럼 백마강이 된 것은 조선후기 우암 송시열에 의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부여를 아끼고 사랑했던 그는 부여의 여러 유적에 새로운 이름을 많이 붙였는데, 자살바위라는 의미 간직했던 부소산성의 바위절벽인 타사암(墮死巖)은 예술적 아름다움이 깃든 낙화암으로 바꿨으며, 백강은 백마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낙화암은 삼천궁녀가 몸을 던져 목숨을 버린 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며, 백마강은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호국룡이 된 무왕을 낚았다는 전설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 흰말을 좋아했던 무왕의 성정에 비추어 만들어진 전설이기는 하지만 소정방이 백말을 미끼로 용을 낚았다는 바위가 지금도 조룡대(釣龍臺)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무왕과 관련된 전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져서 우리들에게 슬픔을 더해준다.

백말미끼에 낚여 올라온 강 속의 용은 소정방이 낚싯대를 채치는 바람에 조룡대에서 동쪽으로 2킬로 정도 떨어진 용전리라는 마을에 떨어진다. 용이 떨어진 곳이라고 하여 지금도 이곳의 지명이 용전(龍田)이다.

용전리에 떨어져서 죽은 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썩는 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그래서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용의 시체를 들어서 북쪽으로 던졌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의해 던져진 용의 시체는 공주 구리내(계룡산 옆이다)에 떨어졌다고 한다.

구리내에 떨어진 용의 시체가 또다시 썩는 냄새를 풍기자 이번에는 공주 사람들이 용을 들어서 다시 부여로 던졌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부여로 온 용은 용전리 옆에 있는 물이 가득한 논실에 놀다가 또 그 옆에 있는 사근다리에서 삭았다고 한다.

그런 다음 사근다리 옆에 있는 거무내에서 검은 용으로 변하여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는 전설이지만 이것은 의자왕이 공주로 피난 갔다가 맹광이(혹은 만광이)라고 하는 못된 점쟁이에 의해 다시 잡혀오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근다리는 맹광이라고 하는 점쟁이가 살던 집터인데, 소정방의 꾀임에 넘어가서 의자왕의 행방을 알려주었던 사람의 집이다. 당나라 군대가 돌아간 후 백제 사람들은 맹광이를 때려죽이고, 그 집을 헐어버린 다음 연못을 팠다고 하는데, 지금은 세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서리서리 서린 백제 멸망의 한은 전설이나 시 등을 통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구구절절이 전해지고 있는데, 특히 조선조의 사대부 시인들이 한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백제에 대한 통한과 그리움은 정말 가슴을 찢는 듯하다.

우리 민족의 이러한 전통은 현대사회에 와서는 현대시와 더불어 유행가로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유행가를 살펴볼까 한다. 유행가 중에서 백제의 한을 정말 구구절절하게 노래한 유행가는 허 민이란 가수가 부른 “백마강”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에게는 “백마강달밤”이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백마강”은 백제의 한을 표현한 노래로서는 최고가 아닌가 한다. 무거우면서도 한을 보여 주는듯한 가락과 가수의 애절한 목소리는 수중고혼이 된 삼천궁녀의 혼백이 일어날 것 같은 착각을 줄 정도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아 --아 달빛 서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아주 짧은 가사지만 이 속에는 백제 멸망의 한을 간직한 것들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은 호국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던 무왕의 죽음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고란사의 종소리는 백제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고란사에서 울리는 쇠북종소리를 듣기 위해 낙화암 건너편 강변에서는 10만 중생이 모였었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이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건너편에서라야 낙화암과 고란사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낙화암의 그늘 속이란 표현에서는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자살바위였던 타사암(지금의 낙화암)으로 가서 꽃잎처럼 떨어졌던 궁녀들의 절개를 노래하면서 그들의 혼백을 위로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최고의 절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노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픈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간다. 성충과 흥수 같은 충신들이 당나라 군대는 기벌포에서 막고, 신라의 군대는 탄현에서 막으라는 충고를 무시했던 의자왕은 결국 오천결사대로 황산벌을 지키지만 수적 열세로 패하여 몰살한 사연도 노래한다.

이러한 사연들을 담고 있는 가사가 바로 “백마강”노래의 2절이다.

황산벌에 말없는 달밤아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메어 울면
계백장군 삼척검은 님 사랑도 끊었구나
아 --아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불러보자 오천결사대

지금의 황산벌은 그냥 버려져 있는 상태다. 백제의 마지막 전쟁터임를 알리는 전적비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데다가, 계백장군의 사령부였던 마을과 군량미를 저장했던 황산성, 몰살한 오천결사대의 시신을 함께 장사지냈다는 시정골 등도 그냥 버려져 있다.

이와 같이 진정한 유적들은 버려두면서 부여의 궁남지 옆에는 오천결사의 기념탑이 버젓이 조성되어 있다. 오천결사대의 기념탑을 세우려면 당연히 황산벌에 세워야 할 것인데, 부여에 세운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 수 없다.

노래에는 나오지 않지만 황산벌과 함께 대단히 중요한 유적지를 든다면 소정방이 들어온 기벌포를 꼽는다. 백마강의 하류인 이곳은 장암면에 속하는데, 장암이란 바위에 올라가면 서해바다에서 백마강으로 들어오는 것은 개미 한 마리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요충지이다.

이 유적의 상태는 더욱 가관이다. 장암 꼭대기에는 모회사의 굴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서 있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바위 자체도 높은데다가 그 위에 엄청난 크기와 높이를 가진 굴뚝을 세웠으니 문화재청의 유적관리가 어떤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부여의 백제 유적은 백마강을 중심으로 하여 여섯 개 정도의 작은 문화권으로 나누어서 각각의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한다면 부여의 백제 문화는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을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필자가 제시하려는 여섯 개의 문화권을 대략 살펴보면, 첫째, 당나라 군대를 막아야 했던 군산만 지역의 기벌포를 중심으로 장암, 장암산성, 장암가 등을 최대한으로 살려서 유적관광지로 개발한다.

둘째, 의자왕의 배를 머물게 했던 백마강변의 유왕정을 중심으로 불망비, 원당산(당나라를 원망한다는 의미, 최근에 유왕산으로 고쳤다), 망배산, 유왕정 등을 중심으로 유왕제 등의 축제문화를 활성화시킨다.

백마강변에 서 있는 유왕정, 강을 따라가면서 우는 백성들이 소리가 시끄러워서 소정방이 배를 세우고 마지막 이별을 하게 했던 곳이다. 강을 마주보고 있다.

셋째, 사비성과 낙화암, 정림사, 정사암 등을 중심으로 하는 부여 중심지의 유적관광지를 개발한다.

넷째, 부여 남쪽에 있는 서동유적지인 미륵사, 궁남지와 서동모집터, 서동이 선화공주를 데리고 놀았다는 왕포천 등을 개발한다.

다섯째, 황산벌과 계백장군 묘를 중심으로 소문화권을 형성하고 오천결사대의 기념비도 이곳으로 옮겨서 역사학습현장으로 만든다. 이와 함께 신라군을 막으라고 했던 식장산(食藏山)을 중심으로 한 탄현(炭峴)유적지 개발을 본격화 한다.

여섯째, 조룡대와 관련이 있는 유적지로 용전리, 호롱바위(백제의 서적을 숨긴 곳), 구리내, 논실, 사근다리, 거무내, 맹광이방죽(점쟁이가 살았다는 집터) 등을 설화유적 중심지로 개발함과 동시에 능산리 고분군과 연계하여 현장 학습지로 한다.

이렇게 한다면 부여의 유적과 역사는 새롭게 살아날 것이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는 우리나라 최고의 유적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백마강’이란 유행가를 중심으로 하여 백제 멸망의 유적의 보존과 개발 등에 대한 전망으로 써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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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성공회 사제중창단>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저는 <성공회 사제중창단>에서 세컨 테너파트를 맡고 있습니다.

거의 9개월 동안 못 모이다가 최근 다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쉽지않은 상황속에서 몇몇 신부님이 다시 희생적인 결단을 해주셨구요,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지휘자 원학연선생님, 부지휘자 박성희선생님, 반주자 이혜원선생님이 계속 지도해주십니다. 단장은 이경호 신부님, 총무는 김태욱 신부님, 우리들만의 연습시 제1지휘자 원순철 신부님, 지도사제 김근상신부님, 1st Tenor 원순철, 최수재  2nd Tenor 김대원,  임종호 Bariton 김동한,  이선우 Base 이경호, 김태욱 (신부님)이 멤버입니다.

사제중창단은 늘 열려있습니다만  사제중창단 멤버가 되려면 음악적 재능과 함께 사목자로서의 참여여건과 원만한 협력을 이루는 자기희생정신^^이 필요합니다. (외모와 재력도 중요하다는 소수의견도...^^) 그래서인지 지난 1월 멤버 결원이 생겼을 때 성공회신문에 단원모집광고까지 냈었지만 아무도 자원한 이가 없어서  긴 공백기간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제중창단은 매주 1회의 연습을 통해 2004년도부터 년 1회 총 3회의 정기공연과 1차례의 해외(일본)초청공연 그리고 여러차례 교계 내외 행사에 찬조출연을 하였습니다. 창단공연과 별세성가를 녹음한 1집 앨범이 CD로 발매되어 많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목자들이 사목이나 열심히 하지 무슨 한가한 활동이냐고 흘겨보시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서운한 일입니다. 초창기에 제가 사제중창단 까페에 올려 다른 신부님들의 공감과 호응을 받았던 글을 다시 올려 봅니다. 지금 다시 읽어도 제 생각은 별로 변함이 없습니다. 올해 중으로 2집 앨범을 계획 중인데 많은 기도와 후원을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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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동안 사제중창단을 통해 일취월장, 괄목상대, 향상진보^^의 기량을 갖추게 된 저 임프란시스입니다. 이점 당연히 무지무지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그러나 주제파악의 대가인 저로서는 솔직히 스스로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기에 모 신부님처럼 자신만만할 수는 없습니다.^^

연습은 배움의 기쁨과 더불어 늘 저의 한계를 절감하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은 이 일이 사제로서, 선교와 교회문화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일이라는 믿음 때문이었고, 현실적으로 교구 성직단내에서 저를 대신할 인재가 쉽게 찾아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실은 음악에 미친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음악의 영역에서만큼은 분명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음악에 미쳐야 마땅할 만큼의 재능을 지닌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가끔 혼자 흥얼거리고, 대부분은 다른 이의 빼어난 음악을 듣는 데서 기쁨을 누리는 편입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저는 우리 중창단이 넓은 의미로 "선교"에 이바지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저는 노래 부르기를 즐기고자 해서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노래부르기를 더 배워서 전문가가 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일선에서 사목을 하면서 우리 교회의 대부분의 교우들이 우리 성가책의 성가중 2/3 이상을 제대로 들어본 기억 조차 없고, 불러본 경험은 더더욱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조금 음악적인 감각을 타고 났다면 우리 교우들에게 성가를 아름답게 들려주고 싶고,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우리 성공회 성가 중에서 저는 좋아하는 노래가 참 많습니다. 저는 "주옥같다"고 하고 싶은데 많은 교우들이 도통 알아주질 않습니다. 대체 들어보길 들어 봤어야죠... 악보 보고 아는 실력들은 더더욱 아니고...

그러므로 저는 우리 중창단이 우리 성가를 우선적으로 소화하고 보급하는 역할을 했으면 어떨까 합니다.

음악이란 무지무지 고급스런 예술이지요. 엄청난 투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 공연에도 참 많은 수고와 도움이 필요했지요. 제가 이번 공연 시디를 많이 만들어 돌린 것도 음악예술이 "일회용"으로 사라지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코 나 잘났고 우리 잘났다고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척박한 교회문화에, 전문가와 대중이 단절되기 쉬운 음악문화에 작은 울림이 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원히 아마추어일 것입니다. 지난 공연 때에 그렇게 큰 무대에서 노래하기는 제겐 난생 처음이었죠^^ 그러나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비어있는 피리로서 주님의 입김을 전할 수 있기를! 우리를 통해 성령의 울림이 있기를! 우리는 그저 정확히 운지되는 피리처럼 음을 내되, 진정한 감흥은 주님의 감동으로 이루어주시기를! ...

저의 개인적인 희망은 우리 사제중창단이 올해중으로 가령 사순절-부활절 성가 모음, (상장례용) 별세 성가 모음, 대림-성탄 성가모음 가운데 한 부문이라도 녹음해서 보급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공연도 좋고 , 해외공연은 더욱 좋지만, (실은 공연 자체보다도 공연을 준비하면서 점차 음악적으로 하나되어가는 기쁨이 정말 큰 것을 알았습니다. )

저는 어쨋든 노래 잘하는 사제가 되기보다는, 사제로서 사랑과 소명을 가지고 노래하고 싶습니다.

횡설수설, 죄송합니다. 새해에도 더욱 높아지고 깊어지고 넓어지고 맑아지고 고요해지는 영혼으로 살아가시길 기원드립니다. 건강과 평안을 빕니다.
 (2005. 1. 9)

이하댓글^^

  김대원 횡설수설이라니요.... 감사합니다... 죄송하구요.... 자칫 잊고 지났을 이야기 다시 되새겨 주었습니다.... 중요한 사업이지요 2005-01-10 11:16:48 
  김태욱 신부님 말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잊었던것을 다시 일깨워 주셨습니다. 한번 해보지요 알아보겠습니다. 가능한지 우리의 역량과 비용 기타 등등 2005-01-10 14:47:17 
  최수재 저도 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여러가지로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합니까? 2005-01-12 17: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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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