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의 비전, 성공회 평신도의 소명


성공회는 21세기의 교회입니다.
성공회는 늘 개혁하는 보편교회(Reforming Catholic Church)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의 본령에 충실하면서도 사회적인 변화에 대처합니다.
지킬 것을 소중히 지키는 전통 중심의 교회이면서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은 과감히 개혁하는 개혁적인 교회입니다.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 우리 구원에 필요한 온전한 하느님의 말씀으로 존중하면서 또한 교회공동체가 행하는 합리적 대화와 해석과 이해와 합의를 존중합니다.

가시적인 전례행위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성사(聖事)적인 전통의 교회이면서도 그 성사와 은총의 체험이 복음의 본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과 죽음과 부활과 하느님 나라의 소망과 소명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늘 반성하는 교회입니다.

성공회는 주교-사제-부제의 삼품 성직을 인정하고 성직을 존귀한 것으로 받듭니다. 그러나 성공회의 성직자는 홀로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는 경우가 없습니다. 성공회의 성직자는 교회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위임한 직분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교우들과 함께 교회의 전례와 사목을 감당하면서 비로소 성공회 성직자의 권위는 발휘됩니다.

성공회는 주교단과 성직자들만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성공회는 평신도들이 의회제도를 통해서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열린 교회입니다.

이렇게 성공회는 21세기의 교회가 갖추어야할 여러 가지 바람직한 요소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위해 또한 신앙의 성숙을 위한 새로운 선교적 목회적 패러다임을 요구 받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학력수준이 높아져 가고, 삶의 형태가 다양해진 지금 중앙집권적이고 획일화된 목회방식으로서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성공회의 교우들께는 신앙교육을 충실히 받을 기회가 많지 않았고 선교활동에 필요한 신학교육이나 신앙점검, 방법적 훈련 등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기에 교회 안팎의 많은 일들을 주로 성직자들에게만 맡기고 또 교회성장이 정체된 것도 성직자들만을 탓하며 지내온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평신도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교육과 선교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또한 우리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와 집행구조도 실제적인 복음 선교 사역을 활발히 감당할 수 있도록 개편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성직자와 평신도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서로 섬기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함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위해 힘쓰는 동역자의 관계인 것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는 주종관계나 우열관계가 아닌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 역할의 차이라는 것은 이미 분명해진 사실입니다.

종교개혁의 공헌이란 중세의 성직자에게 독점되어있던 성경을 모든 평신도에게 해방하여 돌려준 것입니다. 성경을 직접 자기나라 말로 읽고 이해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평신도들은 스스로 살아있는 생동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제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현재 성직자에 의해 독점되어 있는 교회의 사역을 평신도에게 해방하여 돌려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공회는 이 새로운 종교개혁의 선두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개혁하는 보편교회로서의 성공회 전통입니다. 성공회는 결코 굳어진 전통에 매달리는 교회가 아닙니다. 제도로서의 교회에 안주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성공회는 이상적인 최선의 교리를 고집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우리 성공회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문제로 제기되는 일들에 대하여 가능한 한 대화하고 기도하고 협력하여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이루어내는 차선을 택하는 입장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값싼 타협이 아니라 귀중한 복음의 실현일 수 있기를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성공회는 스스로 가진 장점을 모두 발휘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사의 균형, 이상과 현실의 균형감각, 진리와 사랑의 조화, 성직자와 평신도의 협력, 전통과 개혁의 조화, 대화와 협력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성공회의 장점으로서 21세기의 복음 선교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성공회는 늘 진리를 향해 열린 신학적 태도를 견지합니다. 따라서 소명의 본질과 교회의 본질, 그리고 평신도의 사명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충분히 교회 현장에 수용할 수 있습니다. 교권으로 닫혀진 교회, 교리로 굳어진 교회는 할 수 없는 일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성공회의 교우님들은 앞으로의 시대에 교회 안과 밖으로 참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성공회는 모든 교우들께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신도로서의 참된 삶을 살도록 교회 안팎의 사역을 되돌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성공회는 그 역사에 비해서는 크지 않은 교세로 인해 부당하게 무시당하고 위축감을 느끼게 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습니다. 한 때는 그 책임이 모두 교구장이나 성직자들에게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점차 시대가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성직자, 수도자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성공회의 교우님들의 각성(깨우침)과 각오(결심)입니다. 헌신하는 평신도들이야말로 앞으로의 시대에서는 참된 희망입니다.

우리가 가진 좋은 전통과 장점들을 깊이 깨닫고 힘차게 일어서고, 함께 기도하고 마음과 힘을 모아 노력한다면 한국 성공회는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온전히 이루어내는 가운데, 의미 있는 성장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에페 3:20)

바로 그분이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선물을 은총으로 주셔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예언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활동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 에페 4:11~13)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필립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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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성공회의 선교적 과제와 평신도의 역할 -송준영(2006.9.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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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의 선교적 과제와 평신도의 역할
- 2006년 서울교구 평신도원 총회 발제문 -

송준영(그레고리 / 분당교회)

<들어가는 말>

“성공회의 선교적 과제와 평신도의 역할”이라는 주제는 이 땅에 성공회의 선교가 시작된 이래 100년 넘게 이어진 주제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우리들의 의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평신도원을 새롭게 출범시키면서 평신도의 역할을 새삼스럽게 다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얼마 전에 성직자원을 구성하고, 이제 평신도원을 구성함으로써 주교님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의 삼위일체 중심축을 완성하였다는 성취감을 자축하는 의미일까요? 저는 그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 성공회는 이 시점 매우 심각한 선교적 정체에 빠져있으며 현재의 교회관리시스템으로는 이 상황을 탈피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이 새로운 자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성공회는 지난 40여 년간 크게 발전한 것은 사실입니다. 3개 교구를 갖는 관구로의 발전, 종합대학 성공회대학교, 100명이 넘는 성직자, 이들은 모두 우리의 발전된 자산들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살펴볼 때 우리는 결코 안도할 입장은 아닙니다. 관료주의적 거대 성직구성을 기본으로 하는 천주교나 평신도의 열성적 선교를 무기로 하는 개신교와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성장세는 크게 뒤지고 있으며 선교의 핵심 에너지도 두드러지지 못한 상태입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이제 남은 대안은 평신도의 역할 증대밖에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평신도원의 출범은 이 소명을 띄고 출범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모임이 우리의 소명만을 다짐하는 하나의 절차로 끝나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제는 무언가 실천의 구체적 프로그램을 논의해야 할 시점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리를 빌어 우리가 항상 뒷전에서 이야기해오던 논의점들을 다음 네 가지 실천적 의제로 묶어 제안하는 바입니다.

<4가지 실천적 제안>

Ⅰ. 대한성공회의 미래를 내다보는 ‘선교 마스터 플랜’의 작성

이것은 단순한 교리적 입장의 천명이나 교회 연구논문의 수준에 그쳐서 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회는 어떤 교단이며 우리의 신앙적 자존심의 뿌리와 본질은 무엇인지, 또 대한성공회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어떤 차별화된 신앙 논리를 갖고 있는지에 관한 신학적, 교리적 정리로부터 시작해 앞으로는 미래의 교회와 차세대 교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선교적 전략을 추진해 갈 것인지 교우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아가 어떤 일정표를 갖고 어떤 교육․선교 시스템을 가동시킬 것인지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려 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코 수월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교구를 비롯해 사목현장의 성직자, 신학대학, 거기에 평신도의 적극적 동의와 역할 속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의 기본적인 연구계획(scope of work) 수립에만도 1년이 걸릴 수 있는 큰 사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구와 성직자와 평신도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지연시킬 일도 아니고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만도 없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할 만한 위치에 와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Ⅱ. ‘선교 거점교회’ 제도의 도입 제안

이것은 대형교회와 개척교회 사이에 선교거점교회를 선정, 선교 역량을 배가시키자는 제안입니다. 현재 서울교구의 영성체 신자수 기준의 교회규모 분포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05년 교구의회자료 참조).

500명 이상 : 1개 교회
200명 이상 : 1개 교회
100명~200명 : 11개 교회
50명~100명 : 15개 교회
50명 이하 : 33개 교회

흔히 효과적인 선교의 최소 단위만 100명~200명의 교회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현실적으로 50명 이하의 소규모 교회의 경우 주일학교나, 학생회, 청년회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기가 쉽지 않으며, 한명의 성직자가 모든 행정적 잡무까지 책임을 지면서 교회 확장을 위한 능동적 선교활동을 펴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사실입이다. 새 신자가 오더라도 충분한 교육을 시키는 것조차 때로는 형식에 그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이의 극복대안으로 거점교회의 설정과 선교인력의 풀(pool)시스템을 제안합니다. 일정한 선교지역 내에 중․대형교회 한 곳을 거점교회로 설정하고 그 거점교회에 한 명의 성직자를 추가로 파송하여, 그 선교지역내의 작은 교회들이 각개로는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회, 학생회 선교, 새신자 교육을 거점교회 중심으로 한데 묶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하고 그 성직자의 급여는 교무구 소속 개교회가 분담하는 형식입니다.

이런 제도는 장기적으로는 청장년 중심의 교회, 문화선교의 기본 단위로 성장할 수 있으며, 각 개척교회에 목표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Ⅲ. 사이버 선교의 활성화 제안

우리 성공회 신자의 경우 선교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한 가지 어려움을 더 겪게 됩니다. “성공회는 어떤 교회인가요?”라는 질문입니다. 지난해 서울교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타교단과의 차이점을 설명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을 미루어 보아도 우리 모두가 실감하고 있는 문제인 듯 합니다.

어쨌든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위해서는 우리의 교리적 특성과 교회사적 배경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모든 신자들이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사이버 선교의 활성화를 제안합니다.

현재도 교구의 홈페이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홈페이지가 선교의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적 연구 자료실로서의 기능(Archives)과 선교․홍보적 기능, 그리고 각 개교회와 입체적으로 연결되고 성공회대학교와도 긴밀하게 자료가 교환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의 개발은 앞으로 청소년 선교와 국제연대 강화의 중요한 받침돌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기에 서둘러야 될 사업이라 생각합니다.

Ⅳ. 가칭 ‘선교종합기획단’의 구성 제안.

아무리 좋은 사업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이를 실천에 옮기는 현실적인 노력과 그 구체적 실행기구가 없어서는 구두선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다음과 같은 종합기획단의 출범을 제안합니다.

○ 조 직

- 성직자와 평신도, 그리고 성공회대학교가 함께 참여하는 10명 이내로 구성, 조직운영은 평신도가 맡는다.

- 기획단은 상근 실무직원 1명과 보조인원 1명을 둔다.

○ 사 업

- 단기적으로는 ① 마스터 플랜의 Scope of work 작성 ② 거점 선교제 실천방안수립

③ 사이버 선교의 실천방안 수립

- 장기적으로는 선교활성화 마스터플랜 용역작업의 주체로서 활동, 기금 및 수익사업을 수행

○ 선교활성화 기금 조성

- 외부 기업체 등으로부터의 기부와 헌금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교회의 사업을 홍보하고 세법 등 관계법 연구 및 인간관계의 개척 등 현실적 사업을 수행.

○ 예 산

- 사이버 선교와 마스터 플랜을 위한 소요 예산은 Scope of Work 수립을 통해 그 규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임.

- 규모가 확인된 단계에서는 헌금과 기금조성 사업을 통해 수행하되 단기업무 수행기간(6월~1년) 동안의 실무인원 인건비(5,000만원 정도)는 평신도원의 별도 헌금으로 충당할 것을 제안합니다.

<맺는말>

우리는 우리 교회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일치 운동의 선구에 서 있으며, 성경 말씀에 충실하여 교회의 이익을 위해 성서를 왜곡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으며,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늘 새로운 것에도 마음을 열어놓는, 그리고 이성을 존중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의 이런 특성은 바로 “미래의 교회”, “변화하는 새 시대의 교회”로 성장하는 필요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자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모든 좋은 것들을 잘 정리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 나아가 이것을 널리 펼쳐 나가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평신도들이 그 맨 앞줄에 서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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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성공회 희망의 주체, 평신도 -임종호 신부(2005.4.1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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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희망의 주체, 평신도

임종호 신부(프란시스.분당교회)

성공회사람들의 성공회 사랑은 참으로 지극합니다. 이제 그 지극한 사랑의 내용을 한편으로는 자랑하고 한편으로는 반성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희망으로 21세기를

우리 성공회는 희망으로 21세기를 맞이하였습니다. 한인주교시대이후 40년간을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성장과 변화가 있었습니다. 성직자도 많이 양성되었고 교회도 많이 개척되었습니다. 성공회대학교도 놀라운 발전을 거듭 하였고 나눔의집, 샬롬의집, 푸드뱅크 등 사회선교도 활발합니다. 알파코스, 113복음화운동, 제자훈련, 성령운동, 성공회영성센터 활동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신앙운동들이 교회 내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주교직은 권위적으로 다스리는 역할보다도 선교활동에서 구심점이 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성직자 청빙제도가 채택되어 본교회들이 나름대로 특성에 맞는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서적인 교회, 성사적인 교회, 열린 교회, 치우침 없는 교회, 합리적이고 깨끗한 교회로서의 성공회의 특징은 앞으로 선교에 더욱 더 강점으로 발휘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국교회 내에서만 아니라 한국사회전체에서 성공회의 인지도와 영향력이 날로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한가닥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인적, 물적 교세로 보면 그다지 성장했다고 자부하기 어렵습니다. 인력이 부족하고 재정이 부족하여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변화하는 사회에 비추어보면 그리고 다른 교단이나 교파의 발전에 비교해보면 우리의 자기만족은 좀 쑥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분명 예전의 모습보다는 대단히 나아진 모습들을 스스로 대견해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정직하게 말해서 우리 성공회가 사회변화를 따라 잡으면서 선교에 매진할 수 있는 내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성직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참된 권위, 곧 복음과 교회에 관해 합의된 “성공회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가 하는 점

사회가 전반적으로 노령화되는 탓도 있겠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젊은이들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기가 어렵고 많은 교회학교가 쇠퇴하고 있다고 듣습니다. 교회개척도 점점 어려워지고, 이미 개척된 교회도 자립교회가 되기까지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성직자가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로인해 성직자공동체가 하나 되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서열중심의 권위의식이 점차 사라지는 것은 한편 좋은 일이고 막을 수도 없는 추세이지만 진짜 문제는 늘어나는 성직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참된 권위, 곧 복음과 교회에 관해 합의된 “성공회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성직자들 간에도 선의의 경쟁이 도입되는 것이 선교에 도움이 되리라는 의견도 있지만 성공회의 공교회성이 심각하게 위협받으리라는 의견이 더 많습니다. 교회성장을 위해서 성공회의 중요한 전통이나 신학 등의 “정체성”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일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양한 신앙운동들도 매우 기뻐할 일이지만,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독단적인 운동이 되면 장차 교회공동체에 “쓴 뿌리”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성직자 청빙제도가 교회성장의 동력이 되리라는 기대는 청빙제 이외의 여러 가지 조건들은 얼마만큼 성숙되어 있고 준비되어있는가를 묻는 물음 앞에 그 소박함을 드러냅니다. 우리 모두가 성공회에 대하여 강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과연 그 자부심을 자신 있게 전할 수 있을 만큼 그 내용을 정리하고 있고 공유하고 있고 실제로 전파하고 있는가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 전체가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즈음에 우리가 교회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부심인 사회선교는 어떤 방향으로 지속될지, 그리고 일반교회공동체와는 어떤 관계 속에서 발전할지도 아직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억지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좀 더 정직하게 논의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가장 깊이 통찰하시는 주교들께서 우리 교회의 사부이시며 책임자로서 불철주야로 애쓰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직자원에서도 이런 문제들을 깊이 공감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각자 담당하는 선교현장에서 소명에 최선을 다함은 물론이요, 공동으로 대안을 세우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연구하고 길을 찾고 있습니다. 평신도 교우들도 우리 성공회가 진정으로 교회다운 교회로서 성장 발전하기를 눈물로 기도하는 줄 압니다. 그러므로 분명 이 문제들은 우리 교회에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볼 일이 있습니다. 수많은 교우들이 우리 성공회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 혹시라도 그 기도의 주된 내용이 주교와 성직자가 각성하여 교회를 위해 무슨 일을 더 열심히 하도록 해주십사하는 것은 아닐까요? 주교와 성직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절대로 필요하고 유익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볼 때 우리 교회의 현실을 타개해나가는 일이 주교나 성직자가 전담해야할 몫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면 이는 교회를 생각하는 진실한 충정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 일은 아님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과 우리가 맺는 “올바른 관계”가 곧 신앙의 핵심

약간 현학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계의 실상은 존재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우리 존재 따로, 하느님의 존재 따로 살피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느님과 우리가 맺는 “올바른 관계”가 곧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속에 있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 됩니다. 갑자기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이처럼 “관계”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존재의 구분이 아니라 관계의 구분입니다. 성공회는 주교의 교회라고 흔히 말하지만 주교는 홀로 주교가 아닙니다. 성직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교우들과의 관계 속에서 주교의 역할이 의미를 갖게 있습니다. 성직자도 홀로 성직자일 수 없습니다. 주교와 교우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직자입니다. 평신도도, “평(平)”신도란 말 자체가 나타내듯, 주교와 성직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상대적인 의미를 갖는 평신도입니다.

모든 관계의 근원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이차적입니다. 일차적인 관계는 성직자, 평신도 모두 구분 없이 하느님의 자녀요 하느님나라의 백성이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도 성직자, 평신도의 구분은 이차적입니다. 일차적으로는 모두가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는 제자요, 복음선포의 증인이요, 사도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을 통하여 세우신 교회와의 관계 속에서도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이차적입니다. 일차적으로는 모두가 함께 하느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인 것입니다.

물론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의미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공동체가 주님의 이름으로 신자 가운데 지도자를 세우고 성직을 서품하였습니다. 그 권위는 교회의 이름으로, 나아가 주님의 이름으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구분은 존재론적인 구분이 아니라 관계의 구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성직자, 교우 우리 모두가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는 제자요, 복음선포의 증인이요, 사도로 교회의 모든 선교 사역에서 평신도는 성직자와 똑같이 주체적인 존재

그러므로 교회가 주교와 성직자(사제,부제)와 평신도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부족한 이해입니다. 주님이 주인이신 교회 안에 주교와 성직자와 평신도가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관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그 관계의 근원이 되는 하느님과 세상에 대한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 함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고,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할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에서 “평신도 사제직(만인사제직)”, “평신도 사도직”, “평신도 사목직”이 중요하게 논의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선교 사역에서 평신도는 성직자와 똑같이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사제직은 근원은 더 이상 구약제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사랑의 희생으로 바치신 구속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곧 구원을 회복시켜주는 사제직은 서품 받은 사제를 통하여 “전례”에서 재현될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가 “평신도 사제”로서 살아가는 세상의 삶 속에서 화해와 일치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사도직의 본질은 주교라는 개인이 독점적으로 물려받은 권리승계가 아닙니다. 복음의 증인으로서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사역, 하느님 나라의 일을 펼쳐야하는 사명은 모든 신자가 주님으로부터 이어받고 있는 사도직입니다. 주교가 계승하는 사도직은 모든 신자의 사도직을 포함하고 있고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직자만이 아니라 모든 교우들이 “평신도 사도”로서 세상에서 전도하고 선교할 사명이 있습니다.

사목직은 단순히 교회 구성원인 교우들을 성직자가 돌보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사목직의 본질은 모든 교우를 장성한 분량의 신자로 세워나가는데 있습니다. 어린 신앙은 자상한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장성한 신앙은 세상으로의 파송이 필요합니다. 모든 교우들은 “평신도 사목자”로서 서로를 세워가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전례의 가치도 성직자가 교우들을 위해 행하는 종교적 서비스가 아니라, 교회공동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와 기도가 본질입니다. 집전자와 회중은 구별되지만, 분리되거나 차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교우가 전례에 있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능동적이어야 합니다. 신학도 성직자나 신학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는 스스로의 신앙경험을 정리하고 반성하는 신학을 이미 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대화는 신앙적인 동시에 신학적입니다. 신자들을 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로 여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태도입니다. 필요한대로 신학적인 교육기회를 자주 마련하고 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소 딱딱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만, 우리 성공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교회다운 교회로서 이 땅에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전통과 거리가 있는 타 교단의 지엽적인 제도나 특정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비전은 우리 가운데서 생겨납니다. 바로 우리 평신도 교우들이 교회와 선교에서 스스로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가를 깨닫고, 그에 걸맞는 신앙과 신학과 헌신과 교육과 훈련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성공회의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평신도의 중요성은 신학적으로나, 교회 전통 속에서나 이미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평신도는 성직자에게 단순히 전통적인 사목의 대상이 아닙니다. 성직자와 함께 보다 더 근원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사도직과 사목직을 나누어질 파트너입니다. 천주교처럼 일사불란한 교회조직에 의지하기도 어렵고, 개신교처럼 담임목회자의 개인적인 카리스마가 통하기도 어려운 우리 성공회로서는 평신도의 역할이 참되게 교회 안팎에서 가능하도록 의식의 변화, 제도의 개선, 교육의 강화를 꾀하는 길이 교회성장의 가장 중요한 길이라고 사료됩니다. 실제 현실로도 “성직자 청빙제도”가 이미 관구 법규에 규정이 된 것도 교회의 주체로서의 평신도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교우들 모두가 신앙의 기본에 충실할 때 그 속에서 진실한 현실성, 참다운 성공회 교회의 비전이 생겨날 것

하지만 과연 우리의 평신도들은 우리 성공회의 비전을 세우고 이루어내는 주체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까요? 자칫하면 모든 이야기가 현실성 없는 공허한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 아닐까요? 저는 확신합니다. 현실성은 어디서 생겨날까요? 우리 교우들 모두가 신앙의 기본에 충실할 때 그 속에서 진실한 현실성, 참다운 성공회 교회의 비전이 생겨날 것입니다.

“부제님,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성서묵상)를 하면서 이런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신부님, 관상기도를 삼년 째하고 있는데 살아계신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쁨이 놀랍습니다.” “주교님, 교구 행정을 위해서 이런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교회위원님, 이제 해도 되고 안하면 그만인 식으로 일하지 말고, 해서 좋고 해야 되는 일은 꼭 함께 힘 모아 실천해봅시다.” 교우들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런 말씀들이 나누어질 때, 바로 이 가운데 우리 교회의 희망은 숨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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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비아메디아, 주님 가신 그 길

-성공회제자아카데미, 우리의 길을 우리가 걸어서

임종호 신부(프란시스∙분당교회)

왜 성공회 사람들은 미적지근한 신앙에 안주하는 것처럼 보일까? 왜 성공회는 성공회라는 이름과 선교활동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까? 과연 우리 성공회는 분명한 복음의 내용, 선교의 방향을 알려주고, 그 실천을 독려하고 있는 것일까? 왜 성공회는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밝히고 안내하지 않는가? 어째서 성공회 사람들은 이런저런 불만과 비판을 중얼거리기만 할 뿐, 직접 나서서 힘을 모아 그 과제를 해결해내는 경우가 드물까? 계속 이대로라면 과연 성공회에 어떤 희망이 남아 있을까? 이런 인식과 대안을 두고 답답한 마음으로 아파해 본 분들이 기꺼이 참여하시고 이제 새로운 빛을 보았다고 이구동성을 말씀하는 대상이 바로 <성공회 제자아카데미(일명 비아메디아, Via Media)>라는 이름의 교육과정입니다.

1. 성공회 제자아카데미의 지향

서울교구장 주교님은 제자아카데미의 필요성, 즉 이 과정의 목적지향을 세 가지로 정리해주신 바 있습니다. 첫째로 신앙생활이란 우리 자신이 주님의 사랑과 진리 안에서 내적으로 “변형”되는 과정임을 이해하고 이를 위한 영성생활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은총을 따라 내적 변형을 이루지 못하면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상황에 따라 변덕스런 믿음 밖에는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둘째는 평신도의 중요성을 깨닫는 일입니다. 모든 평신도가 교회의 참된 주체로서 깨어나서 그런 동기와 각오와 태도로 일하지 않으면 성공회는 소망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성공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정리하는 일입니다. 성공회는 교파적인 독선이 거의 없습니다만, 그것이 성공회가 아무런 신학도 입장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신앙과 신학과 실천을 분명히 정리하고 내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내세우려는 동기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장점을 통해 주님과 교회와 세상을 바로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그 전에 먼저 우리 스스로 성공회 교우인 것에 떳떳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공회 제자아카데미는 이러한 지향을 가지고 영적인 변형을 위해 영성생활과 성경읽기를, 또한 평신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평신도신학과 신자생활에 대한 강의를, 그리고 성공회 정체성의 인식을 위해 성공회 역사와 신학에 대한 강의를 나눕니다. 그저 강의를 듣는데서 그치지 않고, 소그룹 단위로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함께 나누는 과정을 통해서 실제적인 생활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도록 기획된 점이 특징입니다.

2. 성공회 제자아카데미의 준비와 시작

그동안 많은 분들이 성공회의 현실을 걱정하며 이런저런 신앙활동을 펼쳐왔고 적지 않은 기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의 진정한 영적성숙을 이루는 일에서, 또 교회 공동체내에서 성직자와 다른 교우들과 협력하여 일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성공회 공동체의 전통과 현실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일정한 한계를 보여준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점을 인식하며 서울교구 선교교육원과 서울주교좌성당은 성공회 신자들에게 꼭 필요하고 알맞은 교육 과정을 새롭게 모색하며 이를 위해 서로 협력하여 가능한 인적, 물적 자원을 모두 모아서 <성공회 제자아카데미>라는 이름의 과정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외부에서 도입하는 프로그램이 아니고, 이미 정리된 내용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도 아니어서 강의 과목과 강사, 강의 내용과 수준, 진행 방법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고민하였는데 열 명이 넘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성공회의 내일을 위한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여기고 조건 없는 열성을 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찬양에 필요한 악보집도 따로 편집하여 정식으로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마련하였고 강사들도 각자 강의를 준비하고 사전에 리허설을 통해 그 내용과 수준을 점검 받았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일이어서 나름대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갖춘 상태에서 교육을 시작하지 못하고,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동안 적지 않은 피드백을 통해 시행착오를 바로 잡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몇몇 분은 이를 날카롭게 지적도 하셨고 물론 죄송스런 일이었지만, 우리 현실은 단 번에 다 갖추어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적, 물적 토대가 너무도 취약하여서 아무리 불평과 비판을 해도 해결책을 내놓는 일과는 별개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가는 것이 편하고 좋은 걸 모르지 않지만, 우리 성공회의 길은 우리가 찾고 만들어 가는 길입니다. “길을 찾는 것이 바로 길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비아메디아>란 남이 만들어준 길, 밖에서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마음과 힘을 모아 그렇게 길을 찾아가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3. 성공회 제자아카데미의 과정과 열매

32주의 두 학기 과정, 매주 수요일 저녁 3시간을 온전히 비운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 30만원의 비용을 부담하며 아직은 준비가 완벽해 보이지 않는 느낌도 참아가며 49명(졸업 39명, 수료 10명)의 교우들이 일 년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과정을 마치며 많은 분들이 성공회 신자로서의 일생을 통하여 참으로 의미 있는 교육 내용을 경험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을 알차게 할 수 있는 영성생활의 방법들을 배운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공회의 신앙과 전통에 대하여 넓고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음을 좋아하셨습니다. 교육과정 동안 서로 대화하고 기도하며 깊어지게 된 교우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도 큰 보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교우들이 다른 교파나 단체의 잘 나가는 강사들은 아니지만, 우리 성공회의 성직자들이 진솔하면서도 진지하게 우리의 고민을 나누며 우리 성공회의 문제를 정리해 가는 것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함께 섬김이로, 강사로 참여했던 성직자, 수도자들도 그동안 혼자서는 다루기 어려웠던 신앙의 주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정리하며 이해를 깊게 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며, 무엇보다 참여하는 교우들의 열심과 성실을 통해서 교회공동체의 미래를 밝게 보게 된 것에 감사했습니다.

교육과정이 진행될수록 이 과정이 일회성으로 그치게 되어서는 너무나 아깝다는 인식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여한 교우들 모두 스스로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깊어졌습니다.

4. 이어지는 성공회 제자아카데미

사실 여러 교회의 여러 신자분들이 모이시면서 제자아카데미에 대한 기대가 다양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분은 교육을 마쳤을 때 곧 교회에 돌아가서 이런저런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매뉴얼화 된 내용과 자격증을 원하셨습니다. 반면 어떤 분들은 단지 성공회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수준에서 만족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각자의 기대에 따라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나 다음 과정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달랐습니다. 물론 향후에도 성공회 제자아카데미가 계속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성공회의 경험과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번 한 번의 교육으로 수료자들이 교회공동체에서 그 신앙 수준과 자격을 인정받고 보장받으리라는 기대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수고와 정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졸업생들의 어떤 자격과 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문제는 좀 더 교구 차원에서 연구할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정리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교우들의 수준과 적성에 맞는, 그리고 현장의 교회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과정은 제자아카데미의 후속심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인정되었습니다. 제자아카데미를 마친 교우들은 이 후속과정에 적극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체 기본과정으로서의 성공회 제자아카데미는 계속 이어가되 좀 더 간결하고 분명하게 필요한 과목을 조정하고, 이미 수료한 이들이 봉사자로서 참여하여 섬기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졸업생 모임도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공회 제자아카데미의 수료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비전과 같은 영성을 가지고 성공회의 발전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비아메디아 신앙운동>을 이어가기로 하였습니다.

5. 감사와 기대

그리하여 2007년도에도 성공회 제자아카데미는 계속 됩니다. 강남∙중앙교무구는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부터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서부교무구는 매주 목요일 간석교회에서 따로 진행됩니다. 그만큼 확대되고 발전한 것인데 여기에는 성공회의 앞날을 위한 서부교무구 성직자들과 교우들의 기도와 결단이 중요했습니다. 15주씩 두 학기 일 년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해 실제로 교육과정에서 먼저 그 부담을 말한 쪽은 참여하신 교우분들이 아니라 강의와 준비를 맡은 쪽이었습니다. 그만큼 교우들의 목마름이 절실하고 기도가 간절했고 나눈 은총이 풍성했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이번 교육에 참여하신 교우들께 진심으로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성공회 제자아카데미는 아마도 공식적인 권위를 갖는 최초이며 최선인 평신도 지도자 제자 훈련과정일 것입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신앙의 교양강좌가 아닙니다. 성공회와 한국교회의 앞날을 책임질 평신도 지도자로서, 평신도 사도(제자)로서의 사관학교 과정입니다. 성공회 제자아카데미를 마치신 분들, 그리고 제자아카데미에 관심과 지원을 계속하시는 평신도 여러분들이야말로 성공회의 희망이요 실력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공회의 튼튼한 뿌리가 되어야 하고 성공회의 굳센 줄기가 되어야 하고 성공회의 풍성한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제자 아카데미의 남은 과정, 그리고 앞으로 선교적인 필요에 따라 계속 준비되는 후속 과정을 잘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교회공동체와 세상 속에서 맡기신 일을 기쁘게 함께 잘 감당함으로써 주님께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라 칭찬받는 복된 신앙생활이 되시길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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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