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묻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까?  

 NAME : 성공회신자 [115.*.☆.62] | DATE : 2010-07-12 14:45:59 |   HIT : 152   
 
세계성공회 협의회가 미국,카나다 성공회를 성공회공동체에서 제재하는
처사에 한국과 일본의 주교들이 반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알고 싶습니다.
불과 몇해전의 주교님께서
성공회는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하셨는데,
무엇이 이러한 입장의 선회를 가져왔는지 궁금합니다.

반대를 하는 것과 제재를 하는 것이 물론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압니다.

그러나 현시점의 세계성공회의 결정은
오히려, 더 존중되면서, 그 결과를 주목할 일이지,
그 문제의 중심에 있지도 않으면서,
어찌보면, 오히려 동성애를 조장하는 듯한 오해를 살 수 있는 결정을
그렇게 경솔히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한국의 주교원은 무슨 근거로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까?

동성애 문제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공동체 차원의 토론이나 의견수렴을
거치시기나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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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후2 (115.*.☆.62)  
주교원의 잘못된 결의를 규탄합니다.
이 결정이 철회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대한성공회의
존립을 위태하게 하는 것이며, 이는
교회를 수호하고 교리를 지킬
주교들의 직무를 태만히 함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러한 졸렬한 결정이 철회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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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관구게시판에 올라온 글과 댓글입니다.
여기에 “내가 잘 아는 그리스도인 하나가” 답변을 달았기에 옮겨놓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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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사실 맞습니다. 왜 거듭 묻습니까?  
 
NAME : 상식과소신 [59.*.☆.215]   |   DATE : 2010-07-12 22:20:39 |  HIT : 104 

왜 자꾸 거듭 물으세요?

사실이라고 관구 소식란에 실려있구 저 아래서도 이미 그 의미가 설명되어있구만요...
다시 옮깁니다.

<2010년 한일성공회 주교합동회의에서 합의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2.     세계성공회 공동체 문제

관구 내의 자체적 사목상황 때문에 성공회 공동체에서 특정 관구를 제외시키는 것은

성공회의 전통 및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내년 세계성공회 관구장 회의에 미국과 캐나다성공회 관구장을 참석시키지 않겠다는 ACC 입장에 한국과 일본성공회가 함께 부당하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로 합의하다. >

동성애를 용인하는 문제와 별개로

일사분란한 권력구조와 의사결정 권한을 독점하는 바티칸의 성격이 아니라
상호존중, 상호책임을 원칙으로 하는 콤뮤니언(공동체)의 성격을 갖는 세계성공회가
특정 관구가 선교상황에 입각하여 내린 결정을 이유로
아예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 배제하기로한 결정은
성공회의 전통에 어긋나며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의
주교원 결정이라는 설명이 이미 있습니다. 
이는 대한성공회의 자랑이면 자랑이지
부끄러움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느낌으로

"나는 동성애가 싫어요"  외치실 수는 있지만
제가 볼 때 이번 주교원의 결정은
동성애 문제 자체와는 다른 내용과 차원의 결정으로서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내친 김에 동성애에 대한 제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개인적으로는 동성애란 말만 들어도 약간의 혐오감이 들지만
신앙적으로는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보고
회개하여 동성애를 벗어나야만 구원받을 수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성경을 존중하는 신자이지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의 답을
그 분의 크신 자비와 사랑에 기대어 구하고 싶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질타하신 것은
스스로 거룩하다는 이들의 위선과 정죄였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이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것을 저는 기억합니다.
"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저는 다수의 동성애자 무리들로부터 존중받는 한 이성애자이고 싶습니다.

동성애를 조장하다니요...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이 동성애 경향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먼저 힘들어 하고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그럼에도 그 경향성을 부인하고 부정할 수 없는 이들입니다.
동성애 문제는 무슨 관음증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성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의학과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성정체성의 문제, 성적 지향성의 문제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동성애란 조장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저 같은 이성애자는 돈 줄테니 동성애관계를 유지하라고 해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미국 성공회의 결정은
무슨 동성애를 조장해야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사회속에 교회안에 이미 존재하는 동성애자를 사목적인 판단에서
이성애자와 같은 수준으로 인정하겠다는 결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그 판단에는 과연 동성애자들이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사회와 교회에
얼마나 어떻게  해롭고 악한 인간들인가 하는 경험적인 고려도 들어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선한 동성애자"는 "악한 이성애자"보다 훨씬 지내기 편한  이웃이 아닐까요?
"건전한 동성애자"는 "문란한 이성애자"보다 훨씬 문제없는 이웃이 아닐까요?
예전에 어떤 미국 수좌주교께서 "우리도 성찰과 식별과정을 가졌다 .
우리는 동성애자들에게서도 성령의 빛를 보았다"는 취지로 하신 말씀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성공회신자님께서는 혹시 우리 주교님들의 결정에 힘입어

없던 동성애자들이 갑자기 이 땅에 마구 생겨나서
대한성공회로 몰려올까봐 걱정하시는 것인가요?
기존의 신자들이 대한성공회의 "타락"에 실망해서
모두 교회를 떠나버릴까봐 걱정하시는 것인가요?

도대체 이번 주교원의 결정이 어째서

대한성공회의 존립을 위태하게 하는 것인지 저로서는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혹 시간이 되시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신고
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최근 대한성공회 관구 홈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았습니다. 

<2010년 한일성공회 주교합동회의에서 합의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
2.  세계성공회 공동체 문제 
관구 내의 자체적 사목상황 때문에 성공회 공동체에서 특정 관구를 제외시키는 것은 성공회의 전통 및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내년 세계성공회 관구장 회의에 미국과 캐나다성공회 관구장을 참석시키지 않겠다는 ACC 입장에 한국과 일본성공회가 함께 부당하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로 합의하다. ...>

개인적으로 한일 주교원이 합의한 인식에 공감하는 것은 저 역시 이 문제에 대하여 약간의 신학적 고찰을 해보았고 이를 지난 2009년도에 성직자 웍샵과 평신도대의원 웍크샵에서 나누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짧은 견해가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모색도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자 할 뿐입니다. "불확실한 길을 불완전한 안내자를 따라 걷는다"는 성공회의 길을 함께 가는 우리는 더욱 더 주님의 자비와 은총에 의지해야 하리라는 생각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서 관련된 주제에 관하여 한글로 쓰여졌거나 번역된 글을 알고 계시면 소개해주시거나 링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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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회계약>에 비추어 보는 대한성공회의 일치와 선교

1. <성공회계약>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제게 <성공회계약 Anglican Covernant> 문건은 낯설고 버겁고 불편합니다. 아마도 저와 평신도 대의원 여러분을 포함하여 대한성공회의 모든 이들에게 거의 공통적인 느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뭔가 절실히 와 닿지도 않는 주제이기도 하고 그동안 심도 있는 설명이나 논의의 기회가 많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계성공회는 대한성공회에게도 2010년까지 이 <성공회계약>에 관한 결정을 회답해주기를 요청하고 있고 2년마다 열리는 관구의회 시점 때문에 이번 의회에서 논의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성공회 계약>의 발단이 미국 성공회의 동성애자 주교 서품에서 비롯된 세계 성공회의 일치 문제인 것은 다들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신앙인의 입장에서 교회가 동성애를 용인하는 것을 찬성하는가 반성하는가를 대답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저 역시 한동안 단순하게 “당연히 동성애는 반대(동성애를 용인하고 동성애자의 결합을 축복하거나 동성애자를 성직에 서품하는 일은 성서와 교회전통에 비추어 볼 때 인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동성애 문제가 각 교구의 선교적 독립과 자치를 전제로 하는 세계성공회의 일치를 해치는 계기가 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의 입장이 대한성공회의 주교님들이 표명하는 견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따라서 성공회계약은 찬성, 더 논의하는 것은 골치아픈 일”이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공감하시겠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 소박한 견해인 것 같습니다.

사실 잘 살펴보시면 이 성공회계약서는 직접적으로 동성애 문제를 언급하지도 않습니다. 이 성공회계약에 대한 검토는 단순히 동성애를 찬성 반대하는 문제로 초점을 좁히면 우리로서는 얻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성공회계약>의 논의에는 “역사적 주교직의 친교를 바탕으로 하는 성공회공동체의 전통”과 “그 전통이 복잡다단해지는 선교 상황 속에서 가지는 의미와 한계”, 그리고 “성공회의 신앙적 권위의 재확인 문제”가 얽혀져 있다고 생각됩니다.

동성애 문제 자체가 긴급한 주제가 아닌 우리로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우리 대한성공회가 어떠한 구원론과 교회론과 선교론을 가지고 어떻게 일치를 이루며 선교를 실천하는지를 되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한성공회의 교회론과 구원론과 선교론은 우리의 <헌장 및 법규 서문>과 <교리와 전례에 관한 기본선언>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2. 대한성공회 헌장및 법규 서문, 교리와 전례에 관한 기본선언

대한성공회는 헌장 및 법규의 서문과 교리와 전례에 관한 기본선언을 통하여 스스로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한성공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서, 세계에 있는 모든 성공회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하나이고, 거룩하며, 공번되고, 사도적인 전통을 계승하는 교회이다. 대한성공회는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평화를 증거하여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이 하느님의 은혜와 섭리에 의하여 구원받도록 기도하고 실천하며, 다른 기독교 형제 교회들과 일치를 도모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바탕을 둔 한국인의 교회로 성장하고자 한다.

대한성공회는 이 나라가 영원히 번영하여 마침내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를 보존하는 하느님의 나라로 변화되도록 기원하고 노력하며,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서 모든 차별과, 장벽과, 분열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느님이 주신 선교의 사명을 다 하고자 한다. (...) 이제 대한성공회는 세계의 모든 성공회와 형제된 교회로서, 그 믿음과 전통을 함께 나누며, 자주, 자립, 자전의 정신을 바탕으로 1992년 4월 21일 제 11 차 전국의회에서 대한성공회의 새로운 헌장과 법규를 제정, 공포함으로 독립관구임을 선포했으며...

대한성공회 전국의회에 회집한 모든 주교와 성직자 및 신자 대표는 대한성공회의 신앙과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교리와 전례에 관한 기본선언을 채택한다. 이 선언을 채택함에 있어서,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 나타난 바와 같이 우리가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함을 우리의 신앙의 본질로서 고백한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거룩한 공교회의 한 가족이 됨을 믿는다. 우리는 모든 기독교의 전통이나, 관습을 따르고 해석함에 있어서, 우리의 뜻대로가 아니라 성신의 사랑과 인도하심에 따라 행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성공회 공동체의 신앙과 직제를 바탕으로 모든 교회와 협동해 나가고, 무엇보다도 교회 분열 이전의 초대교회의 공동체적 신앙 고백과 일치의 원칙을 회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립하시고 그의 사도들을 통하여 전승하신 기독교 신앙과 직제로서, 이 세상 끝날 까지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인 은혜이다.

우리는 이 땅에 그리스도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고 참 신앙을 실천하여 이 역사에 하느님의 나라를 구현하고자 이 선언이 영원히 계승되기를 바라면서, 교리에 관한 기본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대한성공회는 신약과 구약성서를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고, 이 말씀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사항을 가르침으로써, 신앙의 법칙이며 근본적인 모본임을 선포한다. 또한 제2경전을 생활의 모범과 도덕의 교훈으로 삼는다.

둘째, 대한성공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에 의하여 계승된 믿음의 전통(사도신경)과, 교회 분열 이전의 에큐메니칼 공의회가 채택한 믿음의 보편적 진리(니케아신경)들을 우리의 신앙의 근거로 존중하고, 이 민족의 화해와 구원을 위한 믿음을 그리스도의 삶을 통한 고난과 가르침에서 구한다.

셋째, 대한성공회는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립하시고 교회를 통하여 계승하도록 명하신 성세성사(세례)와 성체성사를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규례에 따라 실행한다. 이외에 동서교회가 성사로 지켜온 견진, 고해, 신품, 혼배 및 조병 성사를 존중한다.

넷째, 대한성공회는 역사적인 교회로 사도직을 계승하며, 교회가 전통적으로 계승해 온 3성직(주교, 사제, 부제)을 교회의 기본 성직직제로 한다. 주교는 성서의 가르치심과 성교회의 규칙에 따라 교회의 사부로서의 권위를 가지며, 교회의 바른 신앙을 지키고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는 권한을 가진다.

대한성공회는 하나의 교회가 되기 위하여, 대한성공회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공도문과 규례에 따라, 주교에 의하여 합당하게 권위를 받은 이에 의하여 모든 성사를 집행하고, 전례의 일치를 도모하여야 한다. 교회는 주교의 사목아래 성서의 증인이며 수호자가 되어야 하고, 모든 성직자와 신자는 그의 사목적 권위에 순응하여야 한다. 대한성공회는 세계의 모든 성공회와 성사의 상통을 하며, 동시에 한국의 문화와 전통에 적합한 전례와 법식을 제정하는 권한과 교리를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이 기본적 선언을 변경하고자 할 때는 헌장 및 법규의 개정절차에 따라 승인된 개정(안)을 세계성공회의 모든 나라 관구장주교에게 보내어 대한성공회와 그 나라 교회와의 상통관계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아야 한다.


3. 역사적 주교직의 현실적인 의미들

위의 교리에 관한 기본선언은 실상 우리가 세계 성공회의 일치 기준인 시카고 람베스 4개항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을 확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의 일치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제안하는 그 내용들은 또한 서로 다른 교회와의 다름과 같음과 친교를 식별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성공회의 제안과 노력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운동으로 발전되었거니와 현실 교회들의 차이는 크게 교리적인 차이와 직제적인 차이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교리적인 일치를 통해서 교회의 일치를 확인하려는 노력은 성서, 신경, 성사에 대한 존중을 요청하고 확인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는 것은 주로 직제의 문제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교리적인 일치가 직제적인 일치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직제의 문제가 더 일치의 걸림돌이 됩니다. 그 이유는 단지 직제의 기득권을 고집하는 이들의 복음의 본질에 대하여 불충실하기 때문일까요? 그것이 아니라면 왜 구태여 성공회가 직제에 있어서 역사적 주교직을 내세우는 것일까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1) 전통을 이어가려는 노력

성공회가 교회의 정체(政體)로 내세우는 “역사적 주교직”은 실제로 교회일치의 장애가 되어왔습니다. 장로제도나 회중제도를 교회 정체(政體)로 택한 개신교와는 말할 것도 없고 대표적인 주교제(실은 교황제) 교회인 천주교와도 사도계승의 확실성에 대한 견해차이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주교의 주장에서 경험하는 사도계승의 정통성 문제를 성공회는 감리교에 대하여 주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신학의 발전에 힘입어 역사적 주교직만을 성서적인 것 또는 초대교회적인 것으로 주장하거나 안수에 의한 승계를 본질적인 것으로 주장하는 일은 점차 양보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공회는 왜 교회 정체로 역사적 주교직을 택하고 고집하는 것일까요?

역사적 주교직은 전통을 존중하고 이어가려는 노력을 포함합니다. 주교제는 문헌적 근거를 갖는 가장 오랜 교회 정체(政體)입니다. 주교직은 여러 가지 전통들의 기원과 발전에 밀접하게 얽혀있습니다. 이 때의 전통은 성서의 권위에 의해 최소화되어야 하는 부정적인 부가물들이 아닙니다. 도리어 성서와 복음의 본래적인 증언을 오늘에까지 운반해주는 역사적인 경험과 반성들의 총화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서에서 추출한 “순복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사실 그런 복음은 없습니다), 교회 이천년의 역사를 통해서 경험하고 축적되어 신앙적으로 성찰한 “전통의 복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전통의 가치를 흔히 “거인 위에 무등을 탄 난쟁이”라는 인상적인 표현으로 하게 되는 것을 기억합니다.

(2) 공동체의 신앙적인 일치

역사적 주교직이 현실적으로 교회일치의 장애가 된다는 말은 역설입니다. 본래 역사적 주교직은 교회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성공회는 교회공동체의 일치를 주교직이라는 교회의 직제를 통해서 확보하려 합니다. 이는 실제 성공회의 탄생과 발전과정에서 확인되는 일입니다. 중세 천주교 이후 주교직의 실태는 교황(수위)권에 의해 왜곡되어 이에 대한 비판이 거셌습니다.  그러나 성공회는 로마 교회와 단절하면서도 대륙의 개혁파들과는 달리 주교직을 유지하였습니다. 성공회 내 청교도(퓨리탄)는 계속하여 주교직의 폐지를 시도하여 실제로 성공회 안에서 성공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공회가 다시 주교직을 회복하여 온 것은 그것이 잉글랜드 안에서 하나의 교회 공동체를 유지하고 다스리는 일에 매우 현명하고 현실적인 선택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이미 볼 수 있듯이, 교회 안에서 생겨나는 신앙의 다양성은 본래적이고 불가피한 성격이 있습니다. 그 다양성을 분열이 아닌 일치의 상태로 조정하고 이끄는 일이 주교직의 본래 역할인 것입니다.

(3) 전례와 선교의 중심으로서의 역사적 주교직

성공회의 주교직은 성공회가 전례적인 교회, 성사적인 교회라는 성격을 유지하는 일과 본질적으로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연스런 통념처럼 생각하듯, 신자들의 집합으로서의 교회공동체가 전례라는 종교적 기능을 나중에 덧붙여 행하는 것이라는 이해는 실제로는 교회의 본질과 어긋나는 일종의 오해에 가까운 견해입니다. 성경과 초대교회사를 살펴보면 도리어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포함하는 전례 행위를 통하여 교회공동체가 그 내용과 형식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습니다. 교회가 세례공동체라는 점, 그리고 “성찬이 교회를 만든다”는 신학자 앙리 드 뤼박의 표현을 떠올려 봅니다. 주교직과, 교회의 사목을 위임받은 사제직은 교회를 형성하는 이 전례- “말씀과 성사”의 담당자로서 중요했던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적인 인식을 전달하여 동의하는 신자들 얻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교회의 본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 속에서 삶으로 살아내고 펼쳐내는 일이라고 할 때에 그것은 전례와 분리될 수 없는 일입니다.

전례의 본질이 곧 세상에서의 우리들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봉헌하고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 곧 변화된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심으로써 다시금 거룩해진 존재로서 세상에 파견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례는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교회공동체로서 마땅히 행하도록 맡겨진 자기 정체성 확인입니다. 전례를 통하여 우리는 부르심을 따라 이룬 하느님의 백성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깨닫고 그것에 참여하며, 우리의 삶을 거룩한 산 제물로 봉헌하게 됩니다. 전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이끕니다. 전례는 선교의 사명에 파송 받는 일이 되고 선교는 전례를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주교직과 사도계승의 의미는 개인에게 전해지는 신비로운 자격이 아니라 교회공동체가 함께 이어받는 사도들의 선교적인 증언과 실천에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복음을 살고 전하는 신자 공동체의 각 성원들은 역사적 주교직의 사도적 계승의 내용들 - 곧 사도들이 경험하고 전했던 하느님의 창조와 계약과 구원의 선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언 사역에 온전히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교회의 선교 행동이며, 이 선교 행동을 교회가 일치된 몸으로 지속하기 위한 도구가 바로 주교직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교회의 선교를 향한 일치 안에서 주교직이 요구되는 것이지, 선교를 뺀 "교회의 일치"만을 위한 주교직은 아닌 것을 기억해봅니다.


4. 다시 <성공회계약>의 논점들을 살펴보며

(1) 성공회가 역사적 주교직을 포함한 삼품(三品)성직을 교회의 직제로 삼은 까닭에 동성애자 주교의 서품이 평신도 동성애자의 존재나 (주교의 위임을 받은) 사제직에 동성애자가 서품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들 합니다. "주교의 직무는 교회에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섬기고 돌보며 교회를 바르게 감독하고 일치를 이루어가며 역사적인 사도직을 지켜가는 것"(성공회 기도서, 360)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해는 같은 논리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실상 성서와 전통에서 근거를 발견하기 어려운 여성 사제, 그리고 여성 주교의 서품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논점이라고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물론 동성애를 죄악이나 질병이 아닌 성적 지향의 문제로 용인하는 일은 따로 논란이 되는 문제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많은 분들은 동성애란 단어만 들어도 혐오스럽고 마음이 불편하실 지도 모릅니다. 동성애의 용인문제는 아직도 여러 가지 주장과 판단이 분분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식별은 동성애 문제는 흔히 사람들이 노란색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성적 취향(趣向)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의학과 사회학의 전문가들이 객관화시켜 다루는 성적 지향(志向) 문제입니다.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곧 동성애자들의 자기정체성)을 죄악으로 볼 것인가, 질병으로 볼 것인가, 인정할 수 있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볼 것인가에서 의견이 갈립니다. 교회공동체가 이 동성애문제를 다룰 때에 선교신학에 비중을 둘 것인가 교리신학에 비중을 둘 것인가도 중요합니다. 미국성공회의 경우에 동성애자 용인문제는 교회 안에서 교리적인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위해 시작된 문제라기보다는 실제로 사회에서 용인되기 시작한 동성애자들을 교회가 어떤 입장으로 대할 것인가 하는 현실 선교문제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분명히 죄와 불법으로 규정되는 아프리카의 선교 상황에서는 교회의 입장이 또 다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  그러나 중요한 논점은 주교직의 직무에서 동성애자가 배제되어야 할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직무에서 여성 주교가 배제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도 마찬가지 맥락의 물음인 것 같습니다. 요점은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일에 대한 선교적인 지평에서 그 주교직이 이해될 때, 기도서의 주교 직무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2) 전통적인 신앙적 가치와 선교적인 실천이 부딪히면 신앙적인 식별의 과제가 생깁니다. 이것은 곧 신앙적 권위의 문제입니다. 교회공동체가 신앙적인 분별을 할 때에 어떤 권위가 필요한 것일까요? 이른바 성서와 전통과 이성의 역설적인 긴장관계를 대신하여 어느 한 가지의 권위로 환원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요? 전통과 이성에 비해 성서의 권위가 우선적이라는 주장은 성공회 신학의 초석을 놓은 리처드 후커의 본뜻으로 주장되기도 합니다. 이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고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성서는 해석을 불가피하게 요청합니다. 그 해석의 문제를 <성공회 계약>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일까를 생각해봅니다.

  성공회 전통의 신학 방법인 성서와 전통과 이성의 방법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의회를 통한 주교직의 행사입니다. 신앙적인 식별을 <성공회 계약>에 의지하자는 발상이 자칫 “오직 성서” 또는 “관구장의 권위” 등의 선언을 내세워 전통적인 신앙적 식별을 대신하는 분위기를 조장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3) 세계성공회는 앵글리칸 콤뮤니언(Anglican Communion)으로서 세계적인 교단입니다. 그러나 세계 성공회는 역사적 주교직의 수평적이고 대등한 친교 안에서 일치와 상통을 드러내는 친교의 공동체(코뮤니언)이지, 어떤 제도나 법적인 문서에 따른 단일한 기구(천주교와 같이)가 아닙니다. 

   친교의 공동체(코뮤니언)은 하느님의 선교라는 공동의 지평 안에서, 각각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과 상황에서 그 지역 공동체가 그 선교적 사명을 수행하도록 돕고, 그 실천에서 서로 배우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 상호 친교를 통해서 서로 도전하고 도전받으며 배우고 자라는 것이 코뮤니언이며, 이것이 최소한 성공회가 발전시켜온 선교의 몸으로서 교회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런데 만일 <계약문서>의 서명이 세계성공회의 일치를 보장해주는 장치가 된다면, 이 때의 일치는 천주교의 교황제도나 개신교의 (이른바 종이교황으로 비판될 수 있는 ) ‘오직 성서만으로’의 주장이 시도하는 획일적인 일치와 어떤 다른 차별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다소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5. 다시 우리 서울교구의 현실로 돌아오면

(1) 저를 포함한 우리 대한 성공회 공동체는 <성공회 계약>에 서명하느냐 마느냐는 문제를 어떤 차원으로 고민하는 것일까요? 이 계약에 있는 성공회 선교의 이해, 성공회의 본질적인 특징, 성공회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발견하고 있는 것일까요? 소박하게 이해하여 동성애 문제로 인한 교회의 분열을 막으려는 좋은 의도로 나온 문서이고, 우리와 별 상관 없다고 여겨지는 문제이기도 하니, 대세에 따르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일까요?

(2) 우리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사목적인 논란들이 있을 때 (성직자의 설교에 대한 신자들의 불만과 도전, 신경의 사용 여부 혹은 대안적인 신앙 고백 사용 여부, 교회와 사회의 관계 등에 대한 이견)이 존재할 때, <성공회 계약>은 우리 교회의 일치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선교라는 측면에서 <계약 문서>가 주는 도전이 있는가 하면, <계약 문서>는 어떤 의견이 대세를 이루면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그 선교적인 목표와 결정이 나왔든 무시할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때, 우리의 주교직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가 궁금해집니다. <성공회 계약>이라는 문서에 기대야 하는 것일까요? 신자와 성직자들과 친교를 이루면서 복음의 가치와 사도적인 가르침과 그 선교 활동의 빛에서 합의된 융통성 있는 지도력을 보일 것인가요? 이런저런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3) <성공회계약>에의 서명문제는 아직 우리에게 절실하게 와 닿는 문제가 아니니 적당히 처리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가령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다수결로 그저 찬반 가부를 결정하면 되는 문제일까요? 현실적으로는 의회를 통해서 그런 결정방식으로 처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전에 더 깊은 신학적인 숙고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사후에라도 더 깊은 이해가 요청되는 것은 아닐까요? 서명을 하든 아니하든 간에 이 <성공회계약>이 반영하고 있는 성공회의 사도적, 전례적, 선교적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우리의 신학적인 이해와 응답을 요청하며 중요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4) 역사적 주교직의 전통 안에 있는 한국 성공회는 과연 교회 내의 신앙적인 일치를 위해 어떤 권위에 의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느님의 선교라는 지평에서 나오는 신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깊은 숙고와 성찰이 부족한 채로, 의회를 통한 다수결로 그 권위가 세워지는 것일까요? 이렇게 되면 신앙적인 식별이 아니라, 어떤 입장에 따른 편가르기, 표모으기 같은 세속적인 정치 행태로 변질되는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마도 그것은 우리 교회의 권위, 주교직의 권위를 참되게 세우지는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성공회가 이해하고 발전시켜 온 역사적 주교직은 하느님의 선교를 위해 하느님의 백성을 바르게 섬기며 함께 하나되어(일치하여) 선교의 일꾼이 되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 선교의 지평 속에서만 우리 교회의 공동체성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5) 좀 더 구체적으로, 이를 위해서 우리 교구는 그 선교를 위한 일치의 도구인 주교직 안에서 농촌 교회 같은 작은 교회, 그리고 도시 교회나 큰 교회가 서로 상통하는 관계에 있으며, 이를 진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를 물어보게 됩니다. 상황과 조건이 열악한 교회를 감당하는 일이 선교적인 봉사의 기쁨이 되기보다 내키지 않는 부담감으로 여겨진다면 가슴 아픈 일일 것입니다. 
도시에서는 전통적인 전도구 개념이 무너진 후에 교회의 입지나 교우들의 교회 출석이 어떤 기준인가 부터가 애매모호해진 현실입니다. 주교직은 이러한 개별 교회들의 상통과 일치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점들을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일이, 우리가 세계 성공회의 일치를 위한 문서에 서명하여 일치를 추구한다는 명분보다도 더 중요하고 실제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6) 성공회는 우리 교회의 공동체 생활과 일치를 전례와 선교라는 틀에서 이해해 왔고, 주교직은 그 틀 속에서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일치를 도모하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전례와 우리의 선교를 위해서 어떤 연구와 시도를 해 온 것일까요?
  선교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다른 형제 교단들, 즉 천주교, 정교회, 개신교 등과 나눌 수 있는 부분과, 우리가 그들에게 전하며 도전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주교직의 지도력 안에서 발전시켜온 것일까요? 다른 교단들의 성과와 반성을 통해서 되돌아 보건대, 지금 우리가 세우는 양적 성장이라는 목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하느님의 선교에 사심없이 복무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주교직에 깃든 선교와 전례를 통한 교회의 일치를 무시하고서라도 우선 달성해야 할 사명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그저 절박한 현실적 생존의 문제일까요? 역사적인 주교직이 담고 있는 전례와 선교의 공동체로의 일치에 대한 전망과 그 내용의 튼튼한 구축이 수량적인 지표보다 우선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7) 물론 이런 물음들에 대하여 간단하게 대답하는 일은 쉽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습니다. 좀 더 신중하게 인내하고 기도하며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노력이 소중한 물음들입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이끌고 열어가시는 선교의 지평에 따라서 지역 공동체의 주교직 안에서 일치를 이루며 펼쳐가는 선교의 사명이 우리 대한성공회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우리의 헌장법규, 우리의 신앙과 직제에 이미 충분히 담겨져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종호/ 분당교회, 선교교육원 평신도교육담당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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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예전 어릴 적 어느 노신부님께 죄를 고백했었다. 그 죄목 중에 "자위(마스터베이션)"을 한 것도 포함되었는데
신부님이 보속을 주실 때 말씀하시길 "그건 죄가 아니라네" 하셨다.
잠시의 당황과 오랜 평안을 주신 신부님께 감사! ^^

내가 이제 사제로서 비슷한 상담을 받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일이 그 순간 하느님을 잊게 한다면,
그리고 계속 하느님을 두려워 피하고 싶게 한다면
그건 죄가 맞다네.
그러나 그 죄와 자네 힘으로 씨름하지는 마시게.
그 죄를 통해 하느님께 더욱 용감하게 나아가시게.
그 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자네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걸 믿어야 한다네.
그 은총의 힘을 신뢰하는 게 그 죄를 이기는 가장 좋은 길이 될걸세.

가장 나쁜 일은 그 죄의식에 매달려 자네의 젊음을 낭비하는 일이라네. 하느님께서 자네에게 기대하시는 더 큰 사랑과 기쁨의 삶에 관심하다보면 자네의 죄 조차도 자네 삶의 한 부분임을 자연스레 알게 될게야."

성령의 빛 아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죄'가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또한 그 죄 가운데 하느님께서 용서 못할 죄가 또 어디 있을까? 모쪼록 우리의 죄가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의 죄가 삶의 자유와 기쁨과 행복이라는 열매를 갉아먹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전통적으로 인간이 '죄'를 다루는 방법은 자세하게 규정을 만들고 어기는 자들을 '정죄'하여 '죄인'을 처벌하는 것이었다. 때로 약하고 어리석은 '죄인'을 흉악한 '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영혼에서 육체를 분리^^하기도 한다.
실은 예수님도 인간들의 그런 '정죄' 절차를 따라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었던 것!

하지만 죄를 다루는 예수님의 새로운 방법은
겸손으로 씻고 은총과 진리에 말리고 사랑에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그일을 '용서'라고 하시며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함부로 '정죄'하지말고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하기 위하여 기꺼이 당신의 귀한 피를 흘리셨다.


이 나라 대학교수님들 중 '깨어있'다는 분들께서 동성애를 '사회악'으로 '규정'하여
특별한 서명운동을 벌이신다는 기사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어찌되었든  '차별금지'라는 선해보이는 명분을 용감하게 '반대'하는 그 발상과 논거가 "의미심장하여서"^^ 참고할만한 자료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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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차별금지법안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해 주길 바랍니다.

작년 7월에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무총리에게 올해 3월까지 입법추진을 권고한 차별금지법안에는 동성애 확산을 조장하는 동성애차별금지조항이 있습니다. 첨부된 차별금지법안을 보시면, 2조에 ‘성적지향’을 차별금지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4조6항에 성적지향을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안에 따르면 동성애란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 구별, 제한, 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할 수 없으며, 고용, 주거시설 이용, 교육, 정책의 집행 등에서 차별할 수 없습니다.(2조) 또한 동성애란 이유로 교육기관에의 입학, 편입을 제한․금지하면 안 되고, 전학․자퇴를 강요하거나 부당한 퇴학 조치를 해서도 안 됩니다.(21조) 특히 교육내용, 생활지도기준에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포함해서는 안 되며,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교육내용에 포함하거나 이를 교육하는 행위가 금지됩니다.(22조)

위와 같은 법안이 발효되면, 동성애가 이 사회에 확산되는 것을 막을 길이 전혀 없게 됩니다. 학교에서 동성애를 나쁘다고 가르칠 수 없으며, 동성애로 물의를 일으키는 학생을 징계할 수 없고 기숙사에서 나가게 할 수 없으며, 그 학생을 불러서 동성애를 하지 않도록 상담하고 권고조차 할 수 없게 되며, 만약 그러한 상담이나 징계를 하면 법에 의해 오히려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차별금지법안이 만들어지면, 중고등학교 내에서 동성애가 떳떳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을 길이 전혀 없기에,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동성애는 비윤리적이며 비정상적이라는 목소리를 내어서 이 법안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봅니다. 뜻을 같이 한 몇 분의 발기인들이 성명서와 반대 이유를 작성하여서 서명을 받고 있사오니, 꼭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월 31일까지 서명을 받아서 국무총리, 관계 기관, 정당 등으로 성명서와 서명명단을 공문형식으로 보낼 생각입니다. 하시는 모든 일들이 형통하길 빌면서 이만 줄입니다.

발기인 일동 드림

강신후(서울대), 강영무(동아대), 권영헌(한양대), 길원평(부산대), 김상현(부산대), 박재형(서울대), 손권(부산대), 안승국(부산대), 이강래(고신대), 이국행(전북대), 이웅상(명지대), 이은일(고려대), 장현봉(목원대), 전광식(고신대), 전진우(인제대), 조성표(경북대), 현창기(한동대) (가나다 순)

※ 첨부 : 성명서, 반대 이유, 서명교수 분포 및 명단

별첨 1

성명서 - 동성애확산을 조장하는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을 반대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입법권고한 차별금지법안의 차별금지대상에서 성적지향(동성애)을 삭제하라. 동성애는 윤리도덕에 어긋난 성적행위로써 결코 용납되어질 수 없는 사회악이다.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은 동성애를 개인적인 성적지향으로 간주하고, 동성애 확산을 막으려는 모든 건전한 노력을 금지시키며 오히려 처벌하는 망국적인 법안이다.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은 동성애확산을 조장하여서 결혼율의 감소, 저출산문제, AIDS의 확산 등의 사회병리현상을 심화시킨다.

비정상이며 윤리도덕에 어긋난 동성애를 정상으로 공인하는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을 반대한다.

2007. 3. 2.

서 명 자 일동

별첨 2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을 반대하는 이유

(1) 동성애는 윤리도덕에 어긋난 사회악이다.

남자가 남자와 성행위를 하고, 여자가 여자와 성행위를 하는 동성애는 윤리도덕에 어긋한 성적행위로서 결코 용납되어질 수 없는 사회악이다. 남자와 여자의 몸의 구조를 보더라도 남녀가 합하여 성적결합을 하는 것이 마땅한 자연의 순리이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항문성교를 하면 에이즈와 같은 병도 잘 전염된다. 동성애는 행동으로 옮겨진 비윤리적이며 비정상적인 성적 죄악이기에, 당연히 사회적 비난을 받으며 억제되어져야 한다.

(2)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은 동성애를 정상으로 공인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입법추진을 권고한 차별금지법안에는 성적지향(동성애)을 차별금지대상에 포함시키고, 성별, 장애, 인종, 피부색 등과 동등한 의미로서 차별을 금지하려고 한다. 즉, 성별, 장애, 인종, 피부색 등이 차별을 받을 근거가 될 수 없는 정상인 것처럼, 동성애도 차별을 받을 수 없는 정상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정상적이며 비윤리적인 동성애를 정상으로 인정하고, 그러한 인식을 강제력을 갖고 강요하는 것이다.

만약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이 통과되면, 동성애를 비정상이라고 주위사람들에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처벌을 받게 된다. 최근에 영국의 목사가 동성애는 죄임을 표현한 성경말씀이 적힌 인쇄물을 배포했을 때에, 동성애를 차별했다는 이유도 체포되었다. 그러므로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은 비정상인 동성애를 정상으로 공인하고,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보는 일체의 행위를 오히려 처벌하는 망국적인 법안인 동시에, 윤리도덕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법안이다.

(3)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은 동성애 확산을 막으려는 모든 건전한 노력을 금지시킨다.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은 교육내용과 생활지도기준에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포함하지 못하게 하며,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교육내용에 포함하거나 교육하는 행위를 금지시키고 있다.(22조) 따라서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이 발효되면, 기독교이념으로 세워진 학교라 하더라도, 동성애를 나쁘다고 가르칠 수 없으며, 동성애로 물의를 일으키는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숙사에서 나가게 할 수 없으며, 그 학생을 불러서 동성애를 하지 않도록 상담하고 권고조차 할 수 없으며, 만약 그러한 상담이나 징계를 하면 법에 의해서 오히려 처벌을 받게 된다.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은 동성애를 정상으로 간주하기에, 동성애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동성애를 하지 않도록 권면하며 동성애 확산을 막으려는 일체의 건전한 노력을 법으로 금지시키고 처벌을 한다.

(4)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은 동성애 확산을 조장한다.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은 동성애 확산을 막으려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시킴으로서, 동성애 확산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도록 만든다.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이 발효되면, 동성애를 우호적으로 표현하는 영화, 동성애자들의 성적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비디오 등의 문화제작물들이 더욱 많아지고, 언론매체도 동성애를 옹호하는 내용만을 소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언론과 문화들은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서 동성애의 확산을 부추기게 된다. 동성애는 동성애에 먼저 빠져 있는 사람에 의해서 은밀하게 전파되는 속성을 갖고 있기에, 동성애자의 숫자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증가되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기숙사에서는 동성간의 단체숙식이 보편화되어 있기에, 동성애 확산이 급속히 진행될 수도 있다. 법에 의해서 동성애가 보호를 받고, 교육에서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가르치고, 문화는 동성애를 하도록 유혹할 때에, 청소년들 사이에서의 동성애 확산은 더 이상 피할 길이 없다고 본다.

(5) 동성애가 사회에 확산되고 나면, 피해자가 생기며 사회병리현상들이 심화될 수 있다.

동성애자의 숫자가 그 사회에 어느 정도 이상으로 많아지면, 더 이상 억제할 수가 없고 강력한 압력단체가 되어서 법과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기에, 지금이 동성애가 확산되지 않도록 노력할 시기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일부 진보적인 인권단체에서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고려한다면서 동성애를 공인하고 동성애 확산을 부추기며 사회문제화하려고 한다.

동성애가 사회에 확산되고 나면, 건전한 동성간의 우정도 의심을 받고 학창시절에 깊은 우정관계를 맺는 데에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동성애의 확산은 결혼율의 감소, 저출산문제, AIDS의 확산 등의 사회병리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동성애는 중독성이 강해서 한번 경험하고 빠지게 되면, 끊고 빠져 나오기가 매우 어렵다. 알코올, 마약 등과는 달리 동성애는 두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기에, 한 사람이 빠져나오려고 해도 상대방이 쉽게 허락하지 않으면 계속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자녀가 동성애에 빠지지 않으려면 동성애를 아예 경험하지 않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동성애를 은밀하게 유혹하는 동성애자의 숫자가 적어야 한다. 일단 동성애자가 그 사회에 많아진 후에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없으며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동성애의 유혹에 시달리게 되며 동성애를 강요받는 피해자들도 생기게 된다.

(6) 동성애차별금지법안 제정에는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이 만들어지고 나면, 동성애를 나쁘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기에, 더 이상 동성애가 정상인지 혹은 죄악인지에 대한 논의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안의 차별금지대상으로는 성별, 장애, 인종, 피부색과 같이 아무런 윤리적 논쟁의 소지가 없는 것만을 포함해야 한다. 만약 동성애와 같이 윤리적 논쟁의 소지가 있는 것을 차별금지대상에 포함하려면, 일반 국민들과 함께 동성애를 정상으로 보아야 하는지 혹은 비정상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국민의 대다수가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이 만들어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실정이기에, 입법과정에서는 반드시 토론회, 공청회, 설문조사 등의 방법으로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야 하며,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만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을 찬성하는 이유에 대한 반론

(1) 동성애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인정해 주어야 한다.

동성애가 선천적인 요인에 의해서, 즉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서 형성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분명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 학자들에 의하여 동성애가 선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닌가하고 추정하는 가설들이 학술적으로 연구되고 있을 뿐이다.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도박중독 등과 같은 사회악에 빠진 사람들을 조사해 보면, 그러한 사회악에 빠지기 쉬운 성격이나 경향을 지닌 사람들이 있으며, 또한 그러한 성격이나 경향이 선천적인 요인에 의한 경우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한 성격이나 경향이 선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결과로 나타난 사회악을 죄가 아니라 정상이라고 합리화 할 수는 없다. 사람의 행동은 동물과는 달리 본능이나 경향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으며, 사람에게는 본능이나 경향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는 의지와 절제력을 갖고 있기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본능이나 경향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동성애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동성애 자체가 성적 쾌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본다. 동성 간의 성관계에서도 이성 간의 성관계와 비슷한 정도의 쾌감을 준다. 알코올, 마약, 도박 등에 중독되는 이유가 그것들을 경험했을 때에 느끼는 쾌감 때문인 것처럼, 동성애로부터 얻는 쾌감이 동성애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로부터 쾌감을 얻었고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해서, 선천적으로 동성애 경향을 타고 났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대부분의 일반인들도 동성에 의한 성기자극을 하면 쾌감을 느끼게 되어 있다. 즉, 동성애로부터 얻는 쾌감의 대부분도 이성애에서처럼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육체의 성기가 불완전하든지, 혹은 육체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중간상태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기형아로서 예외에 속한다. 이러한 예외를 갖고 일반화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하고 있는 논의는 정상적인 사람이 동성애를 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육체적으로는 분명히 남자 또는 여자로서 정상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남자와 여자의 중간상태이거나 동성애를 하도록 태어났다고 주장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분명한 과학적 근거가 없는 추론에 불과하며, 정상적인 사람이 동성애에 빠진 것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기 위하여 고안된 논리라고 본다.

(2) 동성애는 어린 시절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형성된 심리적 질병으로서 치료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동성애 뿐만아니라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도박중독 등과 같은 사회악이 형성되는 과정에, 어린 시절의 환경적 요인에 의한 영향도 있었을 수 있다. 그러한 후천적 요인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지은 죄악을 주위 환경이나 부모님 탓으로만 전가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본다. 어린 시절의 환경이 성격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행동은 자신의 의지 하에서 결정되는 것이기에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물론 동성애자들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가정환경을 살펴봄으로서, 동성애자들의 심리적 상태를 이해하고 동성애에서 빠져나오도록 권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동성애를 죄가 아닌 심리적 질병으로 보는 견해는 동성애에 대한 윤리도덕적 문제의식을 약화시키며, 동성애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환경의 피해자로 인식케 함으로서 그들에게 동성애를 끊어야한다는 결단을 촉구하기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동성애가 잘못된 죄악이며, 또한 철저히 자신의 책임임을 통감해야만,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서 동성애를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동성애는 개인의 성적 자유에 속하기에, 마음대로 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동성애는 개인의 성적 자유에 속하기에, 동성애를 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마음대로 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의 윤리도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위험한 생각이라고 본다. 개인의 자유도 사회의 기본질서를 유지하는 윤리도덕의 테두리 안에서 허용되는 것이지,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하도록 허용하면, 좋을 것 같지만 사회의 윤리도덕은 금방 무너지게 되고 동물적인 사회로 변한다.

특히 성적인 죄악을 허용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죄악된 방향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서 포르노를 제작․배포하는 것을 허용하면, 더 많은 포르노가 제작․배포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포르노를 보게 된다. 따라서 성적인 죄악은 반드시 윤리도덕의 테두리에 의해서 규제되고 억제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동성애자들을 처벌하고 감옥에 가두자는 뜻은 아니고, 동성애를 공인하고 합법화하여서 얼마든지 떳떳하게 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4) 동성애자들을 정죄하기 보다는 긍휼히 여겨야 한다.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며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죄는 분명히 지적해 주어야만, 죄를 회개하고 새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동성애를 끊고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떤 분은 동성애는 끊을 수가 없기에 할 수 없이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동성애를 끊기가 매우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위의 주장은 동성애자들도 하여금 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미연에 잃어버리고 동성애에 매이게 만든다.

(5) 동성애가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을 반대한다고 해서, 동성애자들을 손가락질하고 조롱하고 괴롭혀도 좋다는 뜻으로 오해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안에 있는 차별금지의 개념은 손가락질하고 조롱하고 괴롭히는 것을 금지하는 차원을 벗어나, 분리, 구별조차 금하며, 어떠한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을 주어서는 안 되고, 혐오와 편견을 교육내용에 포함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은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을 벗어나 동성애로 인하여 어떠한 수치심을 주어서도 안 되고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가르쳐서도 안 된다고 규정함으로서 동성애 자체를 옹호한다. 즉, 동성애는 개인적인 성적지향으로서 정상이기에, 비정상이나 죄악으로 취급하는 편견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려는 뜻은 없지만, 차별금지법안에서의 차별금지대상으로는 동성애를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동성애 자체는 분명히 사회악으로 구별되어야 하며, 교육을 통해서 동성애가 나쁘다는 것이 가르쳐져야 하며, 사회적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억제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차별금지대상인 성별, 장애, 인종, 피부색 등과 동등한 의미로서 동성애를 차별금지하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차별금지대상과는 달리, 동성애는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중독처럼 분명히 비정상적인 사회악으로서 억제되어져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흐려지지 않는 선에서 동성애자 인권보호법이 제정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이 만들어지고 나면, 외국의 경우와 같이 동성간의 혼인신고를 허락해 달라고 주장할 것이며, 우리 자녀가 친구로부터 동성애의 유혹을 받더라도 전혀 막을 길이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닥친다.

별첨 3

서명교수 분포 및 명단

1. 29개 대학에서 211명의 교수들이 참여했다.

2. 10명 이상의 교수들이 참여한 대학교 명단

서울대학교 : 28명, 부산대학교 : 32명, 연세대학교 : 28명, 한동대학교 : 17명 계명대학교 : 15명, 고신대학교 : 20명, 동아대학교 : 21명,

서울대학교(28명)

의과대학 : 채종일, 신은희, 박재형, 한문희, 장기현, 김승협, 조정연, 김종효, 김인원, 이왕재, 조사선, 서유현, 서인석,정진욱, 박병주, 김전, 김상정, 강대희, 홍윤철

환경대학원 : 김정욱 사범대학 : 민현식

공과대학 : 강신후, 박진우, 최종근, 박형동

자연과학대학 : 홍종인, 박성현, 이영조

부산대학교(32명)
자연대학 : 길원평, 김장환, 전태수, 윤웅찬
생명자원과학대학 : 권혁숭, 이완직, 김선종, 신범주, 허석렬
공과대학 : 김철, 안승국, 손권, 부정숙, 김종식, 임오강, 이민철, 이병훈, 박노길, 김문생, 정지환, 김상현
인문대학 : 정인모, 최동규, 안동환
치과대학 : 최점일,
사범대학 : 김영민, 이남원 상과대학 : 임정덕,
법과대학 : 박용석 기타 : 이시복, 김창원, 오정은

경북대학교(5명)
의과대학 : 이원주, 공과대학 : 김동현, 김태정
자연대학 : 전창진, 상과대학 : 조성표

한동대학교(17명)
공과대학 : 서병선, 신현길, 도명술, 현창기, 성금영, 이강, 조윤석, 김영섭, 용환기, 한윤식, 김영인
경영경제학부 : 이종철, 유기선, 상담사회복지학부 : 유장춘
국제어문학부 : 방청록, 박혜경, 언론정보화학부 : 이선영

고신대학교(20명)
생명과학부 : 이병욱, 식품영양학과 : 정동관
보건환경학부 : 손형근, 조형미술학부 : 윤영화
신학과 : 전광식, 신득일, 정보미디어학부 : 이강래
간호대학 : 태영숙
기타 : 박금자, 이지현, 김상희, 이영은, 강은실, 손수경, 계영희, 박기수, 강병식, 김동인, 강진훈, 서재수

목원대학교(9명)
총장 : 이요한 부총장 : 강병길 인문대학 : 김영택
공과대학 : 장현봉, 최병갑 경영대학 : 이규상, 이강철
사회과학대학 : 강용찬 기타 : 이광주

전북대학교(3명)
화학공학부 : 한윤봉 기타 : 김재영, 이국행

해양대학교 : 공과대학 고성철

한세대학교 : 미디어영상학부 안종배

제주대학교 : 자연대학 오덕철

국민대학교(2명)

기타 최은미, 박희숙

창원대학교 : 인문대학 동성식

부경대학교 : 인사대학 진경년

인하대학교 : 공과대학 이억섭

한국과학기술원(2명)

홍경희, 노희천

계명대학교(15명)

공과대학 : 장준호, 최현식, 호광수, 신동수, 공성훈, 김종영, 손철수, 이종국, 권지훈, 김영철

경영대학 : 최만기, 이병찬 경제통상대학 : 이재율

미술대학 : 이재길 인문대학 : 오우성

순천향대학교(3명)

생명과학과 : 정계헌, 기타 : 박종안, 한만덕

연세대학교(28명)

문리대학 : 박정진, 김종두, 김영근, 이주삼, 채승진, 이정자, 김재능, 이윤석

보건과학대학 : 한봉수, 유승현, 김성헌, 전병훈, 차기철, 이충휘, 강준원, 이규식, 김희중

정용현, 이해종, 정보민, 서용칠, 조승연, 박주면, 정태영, 이무춘, 박상규

기타 : 김원쟁, 의과대학 : 김법민

숭실대학교 : 자연과학대학 김상수

배제대학교 : 기타 남청

동서대학교 : 기타 임백보

동의대학교 : 과학대학 윤기정

동아대학교 (21명)
경영대학 : 이강배, 김현수, 현승용, 강영무, 홍순구, 박병권, 손성호, 조명환, 정익준 김정수, 김용대, 이정형, 최형림, 이준탁
의과대학 : 이혜정, 이가언, 윤진호, 정진아, 강도영, 조광조, 김종민

명지대학교(3명)
기타 이웅상, 지상태, 김광호

고려대학교 : 의과대학 이은일

인제대학교 : 자연대학 전진우

한남대학교 : 기타 장해동

한양대학교 : 자연대학 권영헌

전남대학교(9명)
약학대학 : 최보길, 최현진, 조원제, 이광열, 최중갑, 오인준, 강복윤, 임동구
사범대학 : 조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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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올초 성공회 관구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에서 두 개의 게시글을 옮깁니다.
견해가 비교적 솔직하고, 분명하고, 신학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듯 하여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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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용인문제와 세계성공회의 분열위기에 대한 의견

글쓴이 : 용기없는이 (2007.1.27 - 04:41)

주낙현 신부님의 글을 계기로 표면화된 신학적인 논쟁에 저도 한 말씀 드리렵니다.

저는 한국성공회의 한 신자로서 동성애 주교 서품 문제로 세계성공회가 분열의 위기에 처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장차는 한국성공회에도 그 여파가 밀려와 서로가 동성애 문제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적과 동지를 구분하려 들겠지요.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동성애 주교 서품은 전적으로 미국성공회가 고민하고 결정할 문제이지 다른 관구에서 세계성공회의 일치를 위협하는 문제로 확대시킬 사안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해결을 위해서 벌이고 있는 작금의 과정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주낙현신부님의 견해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떤 분들이 댓글을 달아서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들을 하시겠지요.
성공회 사람의 댓글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주낙현 신부님의 글은 말씀 그대로 신학적인 성찰입니다. 신학적 성찰을 표현하지 말라니... 그 무슨 성공회 교인 답지 않은 말씀입니까? 정말 문제가 되는 것는 "신학적 성찰"이 아닌 "신앙적인 공격"입니다.

무엇이 위험합니까? 자신의 신학적인 성찰을 말하는 것이 위험합니까?

정말 위험한 것은 아무 생각없이(스스로의 반성없이, 타인에 대한 배려나 존중없이) 자신의 신앙의 기준으로 남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성공회의 사제가 보여주어야 하는 태도는 남을 나의 신앙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신앙을 존중하며 신학적으로 대화하는 태도입니다. 저는 주신부님이 용기있게 그 길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난과 욕설은 사실 쉬운 길입니다.

성서에 동성애가 "죄"라고 언급되어 있다는 정도를 누가 모릅니까? 구약성서의 율법에 따르자면 돼지고기만 먹어도 죄가 아닙니까? 그러나 죄의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규정으로 해결될 문제입니까?

성서에 노예제도는 긍정이 되어있어서 그리 오래 인류는 노예제도를 지켜왔는가요? 노예제도가 폐지된 것이 언제인가요? 그나마 영국성공회 교인들의 노력이 크게 이바지 하지 않았던가요?

신학적 성찰에는 같은 고민과 같은 수준의 신학적 성찰로 답하면 좋지 않을까요? 
저는 가령 대한성공회 주교님의 공식입장같은 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공식입장이 어떤 신학적 성찰에 근거했는가, 그리고 어떤 교회공동체의 합의절차를 거쳤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사실 지금 세계성공회의 위기도 동성애 문제 자체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교회사에서 많은 교파들이 성경해석에 있어서 자기들의 상황속에서 자기들의 입장을 고집하며 분리의 길을 걸었습니다.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니” 함께 할 수 없다는데 누가 그 분열의 길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특이하게도 성공회는 분명 다른 신학적 입장의 교회들이 이른바 "시카고-람베스 4개조"와 같은 최소한(어쩌면 최대한)의 기준을 함께 하며 서로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해온 것이 특징이고 자랑이라고 봅니다. 지금 문제는 그 자부심이 참담히 깨질 분열의 위기에 있는 것이지요.

미국성공회를 비난하며 분열의 길을 "의롭게" 걸어가는 것은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그리 어려운 선택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 정도 분별과 결단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은 제 생각에는 유치하고 경솔한 태도로 여겨집니다.

주교님이 동성애를 용인하는 미국성공회에 반대하는 공식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걱정하시는 것은 미국성공회처럼 교회가 공식적으로 동성애를 죄가 아니라고 용인하는 것이 우리 교우들의 신앙생활에 심각한 장애가 된다고 여겨서이겠지요.

이해는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제 경험으로는 미국성공회의 동성애 용인문제와 대한성공회의 우리가 참된 신자로 살아가는 일은 그다지 심각한 연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깊이 따지자면 물론 연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요.

그렇다면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물신주의에 대하여 교회는 어떤 태도입니까?
자원을 차지하려고 강대국이 일으키는 전쟁에 대하여 신앙인은 무어라 말합니까?
그대로 용인하면 신앙생활에 심각한 장애가 될 본질적인 문제는 산더미 같습니다.

정말 그렇게 복음에 충실하다면,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한다면  동성애 문제에 쏟는 그 관심을 세상의 모든 불의를 향하여도 열정적으로 보여야 마땅한 일이 아닐까요?

저는 사실 위선적으로 삽니다. 그리고 저의 위선적인 삶을 그나마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시몬아, 자고 있느냐? 단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단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는 말씀을 제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어서이죠.

저는 영원한 죄인으로 끝없이 주님의 자비를 구하고 싶습니다.

저는 저의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 완전하게 되어 도무지 죄를 짓지 않는 성인이 되어 여전히 죄짓은 이들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상종하지 않는 그런 신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 반대입장의 분들은 절대로 신실하게 사신다구요?

부럽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요한8:7) 하시는 말씀에 “기꺼이 제가 합지요” 나설 수 있으시니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정말로 풀어야 할 문제는 성경에서 동성애가 죄인가 아닌가를 해석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곁에 엄연히 우리와 같은 인간이 동성애자로서 삶을 살아가는데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요?

그들이 동성애를 통하여 우리와 사회에 자신들에게 분명한 해악을 끼치고 스스로도 불행해 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도와 동성애를 벗어나도록 해야 하고, 필요하면 정죄하고 규제하는 법을 만들어서 강제력을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성공회의 입장은 그리스월드 前수좌주교가 표현하듯이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통하여서도 성령의 빛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이 마땅히 인간다운 삶, 신자다운 생활의 기준에서 조금도 부족함없이 충분히 아름다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박하려면 반대의 증거들을 충분히 많이 검토하고 드러내 보여야 할 것입니다. 반대의 증거를 들 수 없으면 좀 더 시간을 두고 판단을 유보해야 할 것입니다.

저 같은 이성애자더러 “너는 동성애자가 되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강요한다면 참으로 황당한 일이듯이, 이제 “타고난” 경향으로 또는 “자유로운”(=책임있는) 선택으로 동성애자로 사는 사람들에게 “너는 동성애를 포기하고 이성애자가 되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강요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동성애를 용인하는 입장이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고 성경의 권위를 무시한다구요?
과연 미국성공회는 교회도 아니고 성경도 인정하지 않는 것일끼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신앙을 분별하는 권위로서의 “성서, 전통, 이성”에 얼마나 충실한가의 문제입니다. 이 때 “이성”은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결론내고 주장하는 인간적인 자기주장의 능력이 아닙니다. “이성”은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인간의 진지한 반성 능력이고 그것을 서로 공감하고 대화할 수 있는 소통의 능력입니다.

“오직 성서로만 충분하고 오직 성서에만 충실하다”는 많은 이들이 그런 반성하고 소통하는 참된 “이성”의 능력을 부인한 채, 실제로는 성서의 문자적 이해를 고집하는 자기들의 제한된 이성을 내세우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성경의 권위란 무엇일까요? 성경은 하느님의 유언장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경을 남기고 죽으시거나 떠나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권위는 성서의 쓰여진 문자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성경의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분별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에 성경은 신앙의 기준입니다.

성서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알게 됩니다. 그 현존을 체험한 신앙인들의 고백들, 성자 아드님 체험, 성령 체험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게 됩니다. 성서의 권위에 비추어 저는 예수님께서 동성애자를 정죄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라면 동성애자를 대하시는 일이 예수님 당대의 세리나 창녀나 죄인들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잣대로 인간을 판단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제 믿음은 “성경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라고 문자적인 이해를 강조하는 부흥사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그렇다 하는 것”을 전통(교회 역사속의 하느님 체험)에 비추어 보고 이성을 통한 해석(성령의 깨우침)을 통하여 이해하고 그 실제를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와 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뭐, 이 정도의 제 신학적인 설명에 설득되실 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제 신앙을 공격하지는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가령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너는 성공회 신자일 수 없다, 알량한 이성으로 궤변을 늘어놓아 복음을 훼손하지 말아라, 나아가 너는 마귀들린 적그리스도다는 식의 황당한 말씀은 제발 말아주십시오. 저는 도리어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 정말 그리스도인이지 의심이 들고 정말 걱정이 되거든요.

장차 정말 신앙의 입장이 달라서 한국성공회의 우리도 갈라설 수 밖에 없다고 분열의 길을 걷게 된다면 어쩌겠습니까? 가능성으로 보면 가령 동성애를 용인하는 입장에서 먼저 분열하자고 주장할리는 없습니다. 동성애를 절대 반대하는 입장에서 용인하는 입장의 적그리스도(?)와는 함께 할 수 없다고 분열의 길을 밟겠지요.

저는 만일 제가 소수의 입장이 되어서 교회를 떠나게 된다하더라도 원망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일생을 살고자 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일 뿐이고, 남을 정죄하여 내가 옳고 잘났음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으니까요.

다만 저와 다른 견해의 신실한 형제 교우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입장을 끝내 함께 하지는 못해도, 나와 다르다고 상대를 정죄하고 저주하는 일은 있을 수 없겠지요. 그러니 신학적인 대화는 계속해도 신앙적인 공격은 서로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실 세계성공회는 바로 이런 제 마음과 통하는 태도, 즉 현실적인 다름과 갈등을 인정하면서 “신학적인 대화를 계속하되 서로와 단절하는 것은 피하는” 입장으로 계속 유지되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저는 동성애의 용인 문제가 세계성공회가 분열되어야 하는 이유로서는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미국성공회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 정부의 불공정한 세계지배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것 아닌가”의 문제제기로 공격하고 만일 미국성공회의 입장변화가 없을시엔 관계단절도 무릅쓰겠다는 아프리카 교회가 있다면... 하느님께서 빙긋이 웃으시며 편들어 주시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무지하게 길어졌네요. 읽어 주셔서 감사한데 혹시 너무 마음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무조건 비난말고 자상한 비판의 가르침을 주시면 경청하며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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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동성애용인문제와 세계성공회의 분열위기에 대한 의견

글쓴이 : 분석 (2007.1.27 - 12:17)

지금 성공회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에 대해서 이러한 생각을 적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일반적으로 언론에 보도되는 바는 성공회가 동성애의 문제로 분열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하니까, 그렇게 이해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그 문제로 분열의 위기가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정말 슬픈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읽어본 바로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동성애 논쟁이 된 지는 이미 30 년 이상이 지났고 1998년 램버스 회의에서 이 문제가 많이 토론되고 다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제야 그 문제가 터졌다는 사실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합니다. 이 논란의 배경에는 교회에 대한 이해와 그 논쟁 과정에서 생긴 신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문제입니다.

첫째, 캔터베리 대주교가 거듭 강조하는 교회에 대한 이해입니다.
교회는 성사적 공동체입니다. 이는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성사에 대한 일반적인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성애 문제 이전에 다른 어떤 신학적 이견보다도 여성 성직자 문제가 교회 일치에 가장 큰 문제를 제기하게 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한 교구의 성직자가 다른 교구에서는 성직자로 인정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사적 공동체의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기로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그것이 진정 공교회의 정신에 맞는 해결책이었는지는 아직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성애가 죄가 아니냐는 논의로 인해서 교회가 분열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사의 문제로 발전될 때,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캐나다의 웨스트민스터 교구나, 현 미국 관구장이 관구장이 되기 전에 교구장이던 네바다 교구 같은 경우, 동성애자들의 결합을 축복하기 위한 축복식이 거행됩니다. 교회의 한 쪽에서는 죄라고 인정되는 것이 다른 쪽에서는 축복의 대상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성사 공동체로 보기가 힘들겠지요. 영국의 관구장인 캔터베리 대주교를 비롯해서 아일랜드의 관구장, 스코틀랜드의 관구장 등은 모두 동성애를 죄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동성애자를 서품하거난 동성애자의 연합을 축복하는 것을 안 된다고 선언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로는 교회의 뜻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는 그렇게 교회를 이해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공회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다른 관구끼리 계속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가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둘째, 동성애 지지자들의 이론을 들어보면, 의학적 이론, 심리학적 이론, 사회학적 이론,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그들은 이것을 성령의 움직임이라고 부릅니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는 거기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이는 성서와 전통, 이성에 근거한 조직 신학에 바탕을 두는 것입니다. 지난 미국 관구 의회 때, 센타무 요크 대주교가 의회를 방문했었는데, 어느 한 사람이 현재의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대주교는 동성애 지지자들은 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성서적 근거를 대어서 설득해야 하는 데,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이론을 내면서도 성서적 근거를 거의 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기독교 전통애도 위배되기 때문에 전통을 들어서도 설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성에만 의존해서 신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자면 동성애 지지자들의 대다수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신학의 방법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이 더 이상 기독교라고 불릴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미국 관구는 사실상 성공회를 떠났다고 사려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단순히 헌장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사회 단체라면, 미국 관구의 결정은 교회 헌장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므로 절대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신앙 공동체, 성사 공동체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공동체 정신을 떠난 행동이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누차 강조하는 것처럼, 신학적 토론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교회의 정신에 따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관구가 사실상 성공회를 떠났다면, 그것을 법적으로도 구체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구체화 시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한 지역에 한 관구만 있을 수 있다는 성공회 전통 때문에, 미국의 정통파 성공회 교인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성공회 정신을 제대로 지니고 있는 교회들이 미국 성공회를 떠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지로 동성애를 찬성하더라도 교회의 뜻을 더 중요시하는 교인들까지 합하면 미국 내에도 정통파 교인은 1/3 이상 될 것입니다. 미국에 진정한 의미의 성공회 교회가 생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현재의 관구는 성공회에서 분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세계 성공회가 실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힌다면, 일반 언론에서, "분노"와 같은 표현을 자주 쓰다 보니, 이 논쟁의 양쪽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있다고 오해하기가 쉬운데, 실지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그들은 서로를 비판하면서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친분이 없다고 하더라도 미움의 동기에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서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성공회의 지도자들은 분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만, 교회의 정신에 알맞는 옳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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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