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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4 우리는 부활의 증인입니다!
  2. 2010.04.04 부활단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부활주일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부활신앙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활의 증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축하합니다. 계절은 봄이요, 많은 교우들이 모이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생명은 참으로 귀하고 , 오늘 우리의 사랑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런 날에 칙칙하고 무겁고 답답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다시 한 번 교우 여러분들께 부활에 대한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부활신앙이 우리의 신앙입니다만, 여러분은 부활은 어떻게 믿으십니까?
부활체험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듭니다만 여러분은 부활을 어떻게 경험하셨습니까? 우리 모두가 부활의 증인으로서 부활을 선포하고 부활을 증언해야 하는데 여러분은 부활을 어떻게 설명하시고 전하시렵니까?

제 물음이 거슬리십니까?
제 물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사람이 훌륭한 신자 가운데에 반드시 있습니다.
 "
야, 또 왜 자꾸 따지려고 그래, 부활이란 예수님이 분명히 돌아가셨다가 무덤에 묻히신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일이지. 물론 의학상식으로는 믿기 어렵겠지만 예수님이 보통 분이신가, 하느님의 아들이시니 다시 소생하신 것도 가능한 일이지.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것을 못하신다면 말이 안되지. 제품을 만든 사람은 당연히 고장수리를 할 수 있듯이 창조의 하느님은 부활의 하느님이실 수 있는 것 아니야. 하느님의 말씀인 진리의 성경이 증언하지 않나?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었고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하여 베드로와 많은 제자들이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뵈었다고... 그리고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걸었지 않아. 거짓말을 위해 목숨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러니 부활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이지. 이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인데, 아니 저 신부는 명색이 성직자가 왜 자꾸 부활을 의심하는 것 같은 뉘앙스의 말을 자꾸 해서 순진한 교우들의 믿음을 혼란에 빠뜨리려고 하는 걸까? 주교님한테 일러바칠까? ^^"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저 자신 수십년간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부활주일을 맞고 보내며, 신앙적으로 어떻게 부활이 묘사되고 표현되는지는 모르지 않습니다. 부활의 기쁨으로 사십시오, 부활의 능력으로 사십시오 하고 권면하는 말씀을 많이 들었고 부활주일 가까이에 사일구 혁명 기념일이 있곤 해서 사일구 혁명 정신이 부활신앙과 통하는 것이라는 설교도 많이 들었습니다. 믿음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이므로 무조건 믿으라는 단순용감한 주장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저는 예수님이 지금 제게 물으신다고 해도 숨기지 않고 솔직히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부활을 주님의 육신이 소생했다는 신화로 믿지 않습니다. 한 번 죽은 육신이 다시 살아난다는 그 믿기 어려운 주장을 사실로 믿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요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에 대한 이해, 부활에 대한 이해는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오직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살아계신 주님이시고 우리와 만나주시는 인격이요, 우리와 대화하시는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납득하기 어렵지만 꾹 참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를 지혜롭게 해주는 것고 아니고 우리를 용기있게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꼭 어리석기 때문에 제가 그런 무조건의 믿음을 깍아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그런 무조건적인 믿음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높이는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부활이라는 사실, 그 사실은 실은 “어떻게 일어났는가?”의 차원입니다만, 그 사실에만 집착하게 되면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지 그 부활을 이루어주신, 자비와 능력과 인격의 하느님 자신이 아니게 된다는 점입니다.

창세기의 창조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론이 고집하는 것은 창조사실, 즉 어떻게 창조되었는가의 문제도 성서가 답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이고 신앙적인 문제, 즉 왜 이 세계가 생겨났는가 하는 문제를 답하려는 본래의 의도를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는 것은 부활사실 때문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활은 우리가 이성을 포기하며 억지로 믿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부활은 우리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일이고 경험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하느님을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현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현존입니다. 부활은 제자들이 추리해내거나, 상상하거나, 환상을 보거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은 제자들의 체험입니다. 제가 부활이 예수님의 시신이 소생한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드리는 까닭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생전의 모습으로 알아보았기에 부활을 믿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알아보게 되었지 반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죽은 후에 다시금 죽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차원의 그런 부활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은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 비참하게 죽은 인간으로 잊혀져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내신 하느님의 아들로서 높여지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증인이 법정에서 증언을 한다고 가정 합시다.
그가 전해들은 어떤 일에 대하여 “저는 그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들었고 배웠고 그렇다고 믿습니다. 제 믿음을 믿어주세요” 하고 백번을 주장한다 해도 그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저는 분명히 이렇게 경험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경험한 사실만은 분명히 증언할 수 있습니다.”하고 자기가 경험한 일을 말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충분한 증언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0년전에 부활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머리에서 머리로 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200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 내가 부활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감격을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힘을 얻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위안을 받습니까? 성령의 감화로 서로 사귀는 일이 있습니까? 서로 애정을 나누며 동정하고 있습니까?“(필립2:1)고 바울로 사도는 묻습니다. 부활을 우리가 경험하면 우리는 세상의 그 어느 박사나 교수보다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부활을 경험하면 우리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건지시고 다시 살리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 문제는 살아계신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달라진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부활을 확신한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느님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달라진 세계를 이루어가는 하는 문제입니다.

신앙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살아계신 성부 하느님이십니다.

신앙의 근거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앙생활의 주도권은 우리가 아니라 성령께서 잡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우리가 주체가 되어 우리의 믿음의 능력을 발휘하여 하느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죄와 고통과 죽음을 피하겠다는 시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본래의 신앙이란 하느님의 주도권에 우리의 죄와 고통과 죽음을 맡겨드리는 것이고 그것이 곧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이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부활하려고, 우리가 어떤 종교적 업적을 이루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각자의 자기 십자가 위에서 온전히 죽는 일입니다. 죽은 척한 것 아니고, 죽을 뻔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 온전히 죽어서 자기 주장과 자기 고집, 자기 사랑까지도 포기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오해하기 쉬운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어서 능력이 있어서 스스로 되살아나신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의 부활이 시신의 소생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똑 같은 사람으로 죽으셨고 그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일으키셔서 하느님의 아들로 높여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활이라면 그것은 우리와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시고 죽기 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력하게 겸허하게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고 완전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을 하느님께서는 다시 일으키셨다는 것이 부활의 참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활을 체험하려면 엉뚱한 기대와 엉뚱한 확신으로 시신 옆에서 기다리고 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오.' 부활을 체험하려면 주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 해주셨던 그 갈릴래아,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십자가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 십자가에 자기를 못박아 죽는 일을 감수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뵐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부활 체험이 되고, 그 체험은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하리라는 확신과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우리도 터무니 없는 이유로 고난과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마치 주님이 십자가형의 선고를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모욕과 조롱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뺨을 맞고 침뱉음을 당하신 것처럼!
우리의 몸도 병고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살을 후벼파는 채찍의 고통에 신음하신 것처럼!
우리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손에 못박히듯이!
우리도 미움과 배신의 대상이 되고 마음이 찢길 수 있습니다. 주님의 발에 못박히시듯이!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이미 어쩌지도 못하는 우리의 심장까지 찔러 오는 창과 같이 상처를 입혀옵니다.
우리도 견디다 못해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십니까!?” 소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병고를 겪으면서도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우리의 치유를 원하시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우리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하신 주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는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 아픔과 고통과 침묵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부활의 증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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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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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단상

1.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죽었다”는 사실로부터의 부활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임을 당했다”는 현실로부터의 부활이다.
죽임을 당한 예수가 사실은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이시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사실로부터의 부활이다.
죽음을 피하지 않은 예수를 하느님의 생명이 다시 일으키셨다는 말씀이다.

2.

예수님의 몸의 부활!
왜 정신이나 영혼의 부활이 아닌가?
십자가의 못자국이 예수님의 몸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토마가 의심한 것은 부활이 아니라 부활의 주장이 아니었을까?
못자국 창자국 없는 부활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부활사건은 십자가사건에 이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는가?
우리는 몸으로 나서 몸으로 살고 몸으로 죽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으로 십자가를 진다.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관념의 일부가 아니라 온 몸이다.

3.

부활 아침!
지난 밤 잠들기 전에 나는 완전히 죽지 않았다.
아침에 깨자마자 어제 저녁의 불쾌한 기억이 이어진다.
잠들기 전에 게쎄마니의 기도를 바쳤더라면...
그래서 하루의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어 탄원하고 관계들을 돌아보고 용서하고
만족하고 소망하고 감사하며 영혼을 하느님께 맡겼더라면...
무덤 같은 잠을 이루었다면
오늘 아침은 얼마나 기쁜 부활의 아침이었을까?

4.

욕망의 자아는 죽고
현존의 자아는 다시 살아
사탄의 권세는 근거를 잃고
성삼위의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현존하시는
부활아침의 성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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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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