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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08 주님께서 드러내 전하신 세례의 은총 (주의세례주일/ 마태 3:13-17) (1)

2011년 1월 9일 주의 세례주일(연중 1주일) 성서말씀 

이사 42:1-9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믿어주는 자, 마음에 들어 뽑아 세운 나의 종이다. 그는 나의 영을 받아 뭇 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주리라. 2 그는 소리치거나 고함을 지르지 않아 밖에서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3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만 펴리라. 4 그는 기가 꺾여 용기를 잃는 일 없이 끝까지 바른 인생길을 세상에 펴리라. 바닷가에 사는 주민들도 그의 가르침을 기다린다."

5 하늘을 창조하여 펼치시고 땅을 밟아 늘이시고 온갖 싹이 돋게 하신 하느님, 그 위에 사는 백성에게 입김을 넣어주시고 거기 움직이는 것들에게 숨결을 주시는 하느님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6 "나 야훼가 너를 부른다. 정의를 세우라고 너를 부른다. 내가 너의 손을 잡아 지켜주고 너를 세워 인류와 계약을 맺으니 너는 만국의 빛이 되어라. 7 소경들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여 있는 이들을 풀어주고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놓아주어라.
8 나는 야훼다. 이것이 내 이름이다. 내가 받을 영광을 뉘게 돌리랴? 내가 받을 찬양을 어떤 우상에게 돌리랴? 9 전에 말한 일들은 이미 이루어졌다. 이제 새로 될 일을 내가 미리 알려준다. 싹도 트기 전에 너희의 귀에 들려준다."

시편 29

1 하느님을 모시는 자들아, 주님께 돌려 |드려|라. ∥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돌려|드려|라.

2 그 이름이 지니는 영광 주님께 돌려 |드려|라. 거룩한 빛 두르신 주님께 머리를 |조아|려-|라.
3 주님의 목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진|다. ∥ 영광의 하느님께서 천둥소리로 |말씀|하신|다.
4 주께서 바닷물 위에 나타나신다. 그 목소리는 힘|차시|고 ∥ 그 목소리는 |장엄|하시|다.
5 주님의 목소리에 송백이 쩌개|지-|고 ∥ 레바논의 송백이 |갈라|진-|다.
6 레바논 산이 송아지처럼 |뛰-|고 ∥ 시룐 산이 들 송아지처럼 |뛰게|하신|다.
7, 8 주님의 목소리에 불꽃이 튕기고, 광야가 흔들거린다. 주 앞에서 카데스 광야가 흔들린다.
9 주님의 목소리에, 상수리나무들이 뒤|틀리|고 ∥ 숲들은 벌거숭|이가|된-|다.
# 모두 주님의 성전에 |모-|여 ∥ 한결같이 그 영|광을|기린|다.
10 주께서 거센 물결 위에 옥좌를 잡|으시|고 ∥ 영원히 왕위를 |차지|하셨|다.
11 주님의 백성들아, 그에게서 새 힘을 |얻-|고 ∥ 복을 받아 평화를 |누리|어-|라.
 영광이 |성부|와 ∥ 성|자와|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 그리고 영|원히,|아-|멘 

사도 10:34-43

34 베드로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35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36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그것은 만민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켜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입니다. 37 이것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비롯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서 일어났던 38 나자렛 예수에 관한 일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주시고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해주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39 우리는 예수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증인으로 미리 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자기를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자로 정하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43 모든 예언자들도 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마태 3:13-17

13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오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 하며 굳이 사양하였다.

15 예수께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은 예수께서 하자 하시는 대로 하였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17 그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본기도> 사랑의 하느님, 의로우신 성자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어 우리 죄인들과 같이 세례를 받으셨나이다. 비옵나니,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주님의 세례- 세례의 참된 의미 (마태 3:13-17)

오늘은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하여 “신자”가 되고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세례성사”는 “성체성사”와 더불어 주님이 세우신 가장 중요한 “성사”입니다. 니케아 신경을 통해 우리는 “죄를 사하는 하나의 세례를 믿으며”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주님께서 세례를 베풀며 세례성사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감히 주님께 세례 베풀기를 사양하는 요한에게 기꺼이 세례를 받으시며 세례성사를 세우신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생각 같으면 세례를 베풀고 있는 요한에게 “이제부터는 내가 세례를 베풀 테니 자네부터 새로 나에게 세례를 받도록 하게” 하셔야 마땅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겸손히 세례를 받으시며 세례의 참뜻을 밝혀주십니다. “세례”는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내세우는 일이 아닙니다. 세례는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죽이는 일입니다. (로마 6:3이하 참조)

우리는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 줄로 믿고 고백합니다만 이 죄사함은 단순히 징벌을 피하여 안심하고 죄의식을 더는 차원이 아닙니다. 죄의 본질은 하느님과의 관계의 어긋함인 바, 이제 세례를 통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가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이란 제 생각과 욕심에 따라 덧없이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소명을 받아 사는 인생이 됨을 뜻합니다.

사양하는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청하며, 예수님은 이렇게 하여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세례”에 어떤 표징이 따랐습니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렸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세례가 곧 주님의 구원 사명, 곧 십자가 고난의 세례와 통해 있음을 예고하는 것입니다(루가12:50, 마르10:3).

주님의 세례를 따라 세례 받은 우리 모두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한가지로 성령을 받게 되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시는 음성을 마음속에 듣게 됩니다. 비록 육신으로는 이 땅에 살지만, 영으로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하늘의 차원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약육강식의 논리를 따라, 두려움 속에 미움과 다툼과 거짓의 삶을 살지 않고, 하늘나라의 이치를 따라 평화 가운데 더불어 사랑하고 돕고 진실한 삶을 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각자의 마음속에 사랑의 주님을 모시고 살아갑니다. 먹고 살다 죽어 사라지는 육적인 인간이 아니라, 순간순간 지복을 누리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영적인 인간으로 삽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세례의 은총입니다. ✠

<강론초록2> 
                                     주님께서 드러내 전하신 세례의 은총 (마태 3:13-17)

우리 성당 입구에 성수대가 있습니다. 의무는 아니지만 교우님들은 성당에 들어오실 때 성수를 적셔 십자성호를 그으며 “세례의 은총을 보존하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성수대는 본래 세례대입니다. 그 행위는 무슨 기복이 아니라 세례의 은총을 상기하는 것이지요.

우리 신자들의 신원, 정체성은 바로 세례의 은총 안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살아내고 일생을 마무리 하는 일이 됩니다. 오늘은 바로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며 그 세례성사를 세우신 것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예수님을 기억하고 높여 드리는 일이 그 분을 우리와 전적으로 다른 분으로 구별하는 일로만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성을 자랑하려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완전한 사람으로 나시어 철저히 성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시며 일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우리와 똑 같은 삶을 사시며 성자로서의 신성을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죄와 율법과 죽음에 부자유한 우리 인간의 삶이 어떻게 구원을 받아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예수님은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어떻게 비천한 우리 인간의 존재와 삶을 휘감으며 생명의 능력을 떨치는가를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의 화신이 되어 드러내주셨습니다. 

세례가 “씻는 예식”이라는 생각은 자칫 죄가 우리 존재 외면에 묻은 허물인 것처럼 여겨지게 합니다. 육신을 목욕하듯이 영혼을 씻어 죄를 벗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부족합니다. 세례는 사실은 “죽는 예식”입니다. 신앙적인 이해를 구하실 때 “실체” 아닌 “관계”의 시각으로 생각하시면 훨씬 깊은 깨우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죄와 죽음은 실체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용서와 구원도 마찬가지이구요.

예수님은 죄라는 실체를 씻어내시려 세례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로이 하고자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 관계로 말미암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는 하늘의 음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그 세례는 장차 “고난의 세례”- 곧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야 부활의 영광으로 높여지십니다.

우리의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훼방하는 모든 일입니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과의 회복된 관계입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는 일이 세례입니다. 세례는 우리 자신이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은총으로 변화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죄에 대하여 죽습니다. 우리의 율법추종이 은총 안에서 포기됩니다. 유한한 죽음의 공포가 영원한 생명의 약속으로 평안해집니다. 세례는 우리 내면에서 시작되어 우리의 삶으로 완성되어가는  일입니다. 

우리 신자의 한 평생은 세례의 은총 자체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세례의 은총을 우리에게 전하시고자 몸을 낮추어 기꺼이 세례를 받으신 것이지요. 교우님께 허락된 그 귀한 세례의 은총을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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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쁨의나무 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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