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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초록/2012년도설교초록

2012년 12월 23일 대림 4주일(다해) 성서정과 및 강론초록




2012년 12월 23일 대림 4주일(다해) 성서말씀

 

미가 5:2-5

2 그 여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시리라. 그런 다음 남은 겨레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면, 3 그가 백성의 목자로 나서리라. 야훼의 힘을 입고 그 하느님 야훼의 드높은 이름으로 목자 노릇을 하리니, 그의 힘이 땅 끝까지 미쳐 4 모두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리라. 아시리아가 쳐들어와 이 땅을 짓밟을 때, 우리는 목자 일곱을 세워 맞서리라. 2) 장군 여덟을 세워 맞서리라.  2) 목자는 곧 장군을 말한다. 일곱, 여덟은 여럿이라는 뜻이다. 5 그들은 아시리아를 칼로 다스리리라. 칼을 빼어 들어 니므롯 땅을 다스리리라. 아시리아가 쳐들어와 우리 국토를 짓밟을 때, 야훼께서 우리를 아시리아의 손에서 살려내시리라.

 

성모마리아송가

1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오며, ∥ 내 마음이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을 /기뻐/합니/다.
2 주께서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으니, 이제부터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할 것/입니/다.
3 전능하신 분께서 내게 큰일을 /행하/셨으니 ∥ 주님의 이름 /거룩/하십/니다.
4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 대대로 구원의 자비를 /베푸/십니/다.
5 주께서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6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습/니다.
7 굶주린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8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 주님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9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자비를 |베푸|십니|다.
◉ 영광이 |성부|와 ∥ 성|자와|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 그리고 영|원히,|아-|멘

 

히브 10:5-10

5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율법의 희생제물과 봉헌물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참 제물로 받으시려고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6 당신은 번제물과 속죄의 제물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 처음에는 "당신은 희생제물과 봉헌물과 번제물과 속죄제물을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율법을 따라 바쳐지는 것인데도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9 다음에는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나중 것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 것을 폐기하셨습니다. 1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단 한 번 몸을 바치셨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루가 1:39-45(45-55)

39  며칠 뒤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서 40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42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43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44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45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46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48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50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51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53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54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55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본기도> 은혜로우신 하느님, 성자께서는 이 땅에 오시어 은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그 복된 날을 맞이할 때 기쁨으로 놀라우신 구원의 은총을 찬양하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기쁘고 복된 주님의 강생 (루가 1: 39-45)

 

제18대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지지율로 따지자면 우리들 가운데도 한 분은 기뻐하시고 한 분은 서운해 하실 결과지만, 이제는 모두 한 마음으로 더 밝은 내일을 소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실상 우리 신앙인들의 희망은 무슨 정책이나 정권교체의 문제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진짜 희망은 우리 각자가 좀 더 변화되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좀 더 깊어지는 데서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우리의 욕망과 가치관과 실천이 바뀐 만큼만, 다시 말해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우리가 준비하고 희생하는 그 만큼만, 조금씩 서서히 바뀐다고 해야겠지요.


오늘 나자렛의 시골처녀 마리아는 하느님께 “희망”을 찾습니다. 그리고 유다 산골의 엘리사벳을 찾아가 그 희망을 나누고 확인합니다. 마리아의 시대는 우리의 일제 식민지 시대와 비슷하게 암울한 상황입니다. 마리아의 몸에 일어난 일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처녀가 애를 밴 스캔들로 보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인간들의 수근거림과 돌팔매질을 걱정하는 대신에 천사가 전하는 소식에 기쁘게 순종했습니다. 자기 태중의 이 복된 아기, 성령과 약속으로 말미암은 이 아기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세상을 변화시키실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습니다. 그 일이 자신의 몸에 일어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하느님을 찬양하며 그 기쁨을 엘리사벳과 나누었던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이 아름답고 귀한 만남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노래가 흘러나왔고 화답이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우리는 누구와 어떤 만남을 통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요? 우리는 과연 어떤 언어로 인생과 세상과 구원을 노래 합니까?

세상은 살기 어렵고 인생은 내일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부 하느님께서 하신 임마누엘의 약속,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는 약속은 변함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저 하늘에 고고히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들 가운데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강생하여 오시어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들의 곤고한 삶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관심을 두시고 함께 하시는 귀한 기회라는 깨달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공평과 사랑이 엄연하다는 데 있습니다. 성탄절기는  우리의 희망과 우리의 행복을 확인하고 되찾는 기쁨의 때입니다.*

 

<강론초록2>

                       기쁘고 복된 성탄의 신비 (루가 1: 39-45)

 

한파가 심합니다. 건강에 더욱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몸이 추위를 느껴 온기를 찾듯 우리가  이 시대의 영적인 한파를 예민하게 느끼고 참된 신앙을 통해 절실하게 대안을 찾아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복음이 복음답게, 교회가 교회답게, 신자가 신자답게 되어 하루속히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 사랑과 평화의 왕국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12월 25일 겨울바람 속에 한 해가 저무는 무렵 성탄절을 맞게 되는 것은 아름다운 섭리입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성탄일은 성경에 분명히 언급이 없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강생을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일”로 되새기며 가장 밤이 길어졌다가 다시금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절기를 “구원의 태양”이신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키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루가복음서에서 나자렛의 시골처녀 마리아가 유다 산골의 엘리사벳을 찾아가 대화를 나눕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엘리사벳의 인사에 답하여 마리아는 절세의 아름다운 송가를 노래합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단순히 ‘위대한 왕이 천민의 모습으로 변장하였다’ 거나 ‘강화도령이 철종임금이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로 그 의미를 해석한다면 안타까운 오해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이야기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구원의 필연성으로 설명합니다. “하느님께서 더 이상 율법의 희생제물과 봉헌물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참 제물로 받으시려고 인간으로 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저 높은 곳에서 인간들의 희생과 봉헌을 즐기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를 인간으로 나게 하시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봉헌하는 분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인간이 바치는 사랑의 헌신, 그것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하고 권세 있고 부요한 자들이 그리하듯이 율법을 지키고 화려한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는 일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주님을 공경하는 이들과 보잘 것 없고 배고픈 이들에게 그리하시듯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구원합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고 축하하는 일은 밖으로 전능한 해결사를 기다리고 의지하는 태도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우리의 삶 가운데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참된 기쁨으로 우리의 몸과 삶을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은 헛된 낭패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참된 영광입니다. 이 신비를 경험한 첫 사람이 바로 성모 마리아입니다. 우리도 오늘 그 신비를 깨닫기 원합니다.✠